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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36 - 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 - Part 5

Episode 36 - 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 - Part 5

제가 최근에 그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도 다시 읽었는데요. 이번제 진짜로 다시 읽은 책인데요. 이 [폭풍의 언덕]도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아마 읽었을 것 같은데요. 그때 읽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이 [폭풍의 언덕]의 서두들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시작하면 막 이 폭풍이 치고 이 인물들이 등장해서 막 움직일 것 같지만, 의외로 이 [폭풍의 언덕]에는 그 서두에 다른 화자가 등장을 합니다 . 이 사람이 즉 중심에 있는 이야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한 일물이 이 동네를 찾아와서 하숙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는 형식이고요. 이 사람이 이야기를 듣고, 또 이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고요. 과거에 일어났던 일과 그 일과 관련된 후대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런 어떤 동네에서 중첩되면서 보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작가가된 뒤에 다시 읽었기 때문에 저는 에밀리 브론테가 어떻게 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가..이런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보게되고요. 그렇게 되면 될 수록, 아 어렸을 때 읽은 것과는 정말 완전히 다른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구나..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어쨌든 간에 몰입해서 보게 됐습니다. 특히 [폭풍의 언덕]같은 작품은 그 이후에 수많은 서사, 심지어 한국의 이 TV드라마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 그런 소설아닙니까? 직접적 영향을 끼졌다기 보다는 폭풍의 언덕이 그 이후의 수많은 어떤 로맨스 소설이라든가 다른 영화라든가에 영향을 끼쳤고 그것들이 결국에는 멀리 돌아돌아서 우리나라의 TV드라마 까지도 영향을 끼쳤을 텐데요. 이런 후대에 끼친 영향, 이미 만연해 있는 영향이죠. 이 영향에 근원을 찾는 그런 즐거움, 독서의 즐거움도 준다는 것에서 고전을 읽는 새로운 기쁨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어서 이탈로 칼비노가 이야기하는 11번 정의와 12번 정의는 좀 더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부분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그 11번. '고전이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작품과 맺는 관계 안에서 마침내 그 작품과 대결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런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요. 조금 전에 제가 [폭풍의 언덕] 말씀 드리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작가고 늘 소설을 쓰고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작가로서 소설을 보게됩니다. 어렸을 때는 그런 마음이 없었죠. 어렸을 때는 제가 뭐가 될지도 몰랐고, 이탈로 칼비노가 얘기하는 것 처럼, 어떤 인생의 모델을 찾기 위해서 읽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작가로서 그 고전의 저자인 다른 작가와 그가 쓴 작품을 놓고 일종의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탈로 칼비노는 대결이라고 말을 했지만요. 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대결이기도 합니다. 나라면 이렇게 썼을 텐데,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아 이렇게 했을 수도 있구나, 이거는 정말 대단하다, 또는 어떻게 이 시기에 이렇게 썼을까. 예를 들면, 2000년 전에 쓰여진 소포클레스의 [오이티푸스 왕] 같은 작품은 지금 봐도 그 짜임새와 그 인물들의 역동이 대단합니다. 읽으면 2000년 전에 이미 이런 소설을..이런 소설이 아니죠..이런 희곡을 쓴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경외감을 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 이런 점은 좀 아쉽다. 또 이런 점은 그 이후에 이렇게 계승되어 왔구나, 또는 극복되어 왔구나..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인데..저는 개인적으로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을 볼때 지금의 처지, 작가이고 남자이고 또 제 나이가 있고 또 제가 처한 상황이 있죠. 이런 이 모든것이 이 고전 속에 있는인물들의 상황..그런 것과 조응하면서 읽어나가게 되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또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것을 줄 수 없는 작품은 오래전에 쓰여졌던 지금 당대의 작품이던 간에 지금의 제 인생과 무과나하게 느껴지고 제 존재와 그 작품이 대결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책은 고전이 아닌 것 이죠. 이탈로 칼비노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입니다.

12번 정의를 보면, '고전이란 그것들 사이에 일련의 위계속에서 속하는 작품이다. 그런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은 고전의 계보에서 하나의 작품이 차지하는 지위를 쉽게 알아차린다,' 이런 것입니다. 단순히 시간적인 어떤 흐름 속에서 어떤 고전이 차지하는 위치를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죠. 그런데 고전들을 쭉 읽어나가다 보면 그 하나의 고전이 다른 고전에 끼친 영향들을 발견할 수 있고요. 그 영향이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전과 고전사이에 관계들 영향의 그 역동,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것, 이런 것은 그 독서가가 대단히 초보적인 수준이든 아니면 대단히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든 반드시 겪게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고요. 그것을 자기가 소화하는 수준에서 충분한 어떤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이런 생각을 합니다. 일탈로 칼비노도 그래서 약간 그 뭐랄까요. 비아냥거리 듯이 루크레티우스, 루키아누스, 몽테뉴, 에라스무스...뭐 수많은 작가들을 얘기하면서 이런 책만 읽고 사는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것자체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다독을 장려하지 않고있다는 점이 이 이탈로 칼비노에게서 흥미로운 점인데요. 이 에세이에서 이탈로 칼비노는 다독보다는 어떤 작품과 작품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작품과 독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즐거움의 원천이 고전을 읽는 어떤 기쁨의 원천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저도 이탈로 칼비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그런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탈로 칼비노는 당대의 작품과 고전은 어떤 관계를 갖게되는가..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건 사실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이탈로 칼비노가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아이패드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런 시대 아니었습니까. 이런 시대에도 정보가 너무 많다.. 당대에 나오는 인쇄물들, 책, 그다음에 뭐 신문, 뉴스, 저널, 이런 것들이 많은데 언제 고전을 읽고 있는냐..불평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때와도 또 비견할 수 없이 그렇게 정보가 많아진 사회 아닙니까. 쉴새 없이 정보들이 우리들 교란하는데요. 이럴때에 과연 당대와 지금 현재의 정보, 그리고 고전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이것은 정말 독서를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예전에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고전은 나이가 들 수록 많이 읽어야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반대로 젊었을 때, 또 어릴 때는 당대의 자기가 즉각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문제들을 읽어야 한다는 그런 쪽이고요. 그런 면에서 이탈로 칼비노와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이탈로 칼비노는 학교에서 고전을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이 거기서 읽어야 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저는 어렸을 때 읽은 고전에서 깊은 그런 영향을..물론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이탈로 칼비노 말에 의하면 내적 매카니즘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저의 일부가 되어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어렸을 때는 당대의 소설에서 더 강렬한 영향들을 받았던 것 같고요. 지나면서 거꾸로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죠. 그때 제가 읽었던 당대의 소설들에 영향을 주었을 법한 그 이전의 소설, 그 이전의 소설들을 찾아 올라가는게 뭐..저에게는 더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뭐 사람마다 여러가지 다른 방법이 있겠죠. 어쨌든 간에 고전과 당대의 책들을 읽는 비중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그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고전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실제론 읽지 않게 됩니다. 고전이 필요하다는 거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가 참 어려워요. 당대에 나오는 책들로도 충분히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당대에 나오고 있는 책들은 당연히 마케팅에, 광고에 어떤 지원을 받게 되고요. 우리가 그 책을 사도록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또 하나, 거기다 또 하나는, 당대의 책들은 우리에게 읽는 즐거움에 더해서 정보도 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죠. 우리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읽는 요즘 책들을 따라 읽으려고 하는 것이고요. 그러다 보면 사실은 고전은 뒤로 물러나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안 읽는다고 해서 뭐 고전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도서관에 가면 있겠지..이런 생각도 들어서 사지도 않고 이렇게 가게되는데, 그러나 고전은, 이탈로 칼비노도 여기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고전이란 오랫동안 사람들이 자기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이 좌표를 잡아주었던 그런 책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그런 책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좀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서 읽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아까 오늘 팟캐스트 시작하면서 새 계획으로 책을 백권 읽겠다..뭐 이백권 읽겠다..이렇게 결심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얘기 했었는데요. 그거보다 다가오는 2012년에는 옛날에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읽어보는 그런 계획을 세우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자 올 한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해 잘 마무리 하시길 바라고요. 다가오는 2012년에도 여러분들 인생에 의미를 주는 그런 책들과 함께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영하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pisode 36 - 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 - Part 5 Episode 36 - Italo Calvino "Why Read the Classics" - Part 5

제가 최근에 그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도 다시 읽었는데요. I recently read Emily Bronte's [Storm Hill] again. 이번제 진짜로 다시 읽은 책인데요. This is the book I really read again. 이 [폭풍의 언덕]도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아마 읽었을 것 같은데요. I think you probably read this [Storm Hill] when you were a child in elementary school. 그때 읽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측면에서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이 [폭풍의 언덕]의 서두들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네요. I don't know if you remember the rushes of [Storm Hill]. 시작하면 막 이 폭풍이 치고 이 인물들이 등장해서 막 움직일 것 같지만, 의외로 이 [폭풍의 언덕]에는 그 서두에 다른 화자가 등장을 합니다 . 이 사람이 즉 중심에 있는 이야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한 일물이 이 동네를 찾아와서 하숙을 하면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는 형식이고요. As long as this person has nothing to do with the story in the center, Ilmul visits this neighborhood and stays at a boarding house and listens to this story. 이 사람이 이야기를 듣고, 또 이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고요. 과거에 일어났던 일과 그 일과 관련된 후대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런 어떤 동네에서 중첩되면서 보여지게 됩니다. 그래서 작가가된 뒤에 다시 읽었기 때문에 저는 에밀리 브론테가 어떻게 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가..이런 측면에서 관심을 갖고 보게되고요. 그렇게 되면 될 수록, 아 어렸을 때 읽은 것과는 정말 완전히 다른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구나..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어쨌든 간에 몰입해서 보게 됐습니다. 특히 [폭풍의 언덕]같은 작품은 그 이후에 수많은 서사, 심지어 한국의 이 TV드라마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 그런 소설아닙니까? In particular, isn't it such a novel that has influenced many narratives and even this Korean TV drama since then? 직접적 영향을 끼졌다기 보다는 폭풍의 언덕이 그 이후의 수많은 어떤 로맨스 소설이라든가 다른 영화라든가에 영향을 끼쳤고 그것들이 결국에는 멀리 돌아돌아서 우리나라의 TV드라마 까지도 영향을 끼쳤을 텐데요. 이런 후대에 끼친 영향, 이미 만연해 있는 영향이죠. It's an influence that has had on these future generations, an influence that is already prevalent. 이 영향에 근원을 찾는 그런 즐거움, 독서의 즐거움도 준다는 것에서 고전을 읽는 새로운 기쁨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어서 이탈로 칼비노가 이야기하는 11번 정의와 12번 정의는 좀 더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부분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요. Following that, definitions 11 and 12 that Italo Calvino talks about are more philosophical and aesthetic. 그 11번. '고전이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작품과 맺는 관계 안에서 마침내 그 작품과 대결하는 관계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A classic is a book that cannot exist irrespective of us and helps us to correct ourselves in a relationship with the work and finally confrontation with the work.' 이런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요. I'm making this definition. 조금 전에 제가 [폭풍의 언덕] 말씀 드리기도 했습니다만, 저는 작가고 늘 소설을 쓰고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는 작가로서 소설을 보게됩니다. 어렸을 때는 그런 마음이 없었죠. When I was young, I didn't have that kind of mind. 어렸을 때는 제가 뭐가 될지도 몰랐고, 이탈로 칼비노가 얘기하는 것 처럼, 어떤 인생의 모델을 찾기 위해서 읽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작가로서 그 고전의 저자인 다른 작가와 그가 쓴 작품을 놓고 일종의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탈로 칼비노는 대결이라고 말을 했지만요. 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대결이기도 합니다. 나라면 이렇게 썼을 텐데,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아 이렇게 했을 수도 있구나, 이거는 정말 대단하다, 또는 어떻게 이 시기에 이렇게 썼을까. 예를 들면, 2000년 전에 쓰여진 소포클레스의 [오이티푸스 왕] 같은 작품은 지금 봐도 그 짜임새와 그 인물들의 역동이 대단합니다. For example, a work such as Sophocles' [King Oitipus] written 2000 years ago still has a great texture and the dynamics of the characters. 읽으면 2000년 전에 이미 이런 소설을..이런 소설이 아니죠..이런 희곡을 쓴 사람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경외감을 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 이런 점은 좀 아쉽다. 또 이런 점은 그 이후에 이렇게 계승되어 왔구나, 또는 극복되어 왔구나..이런 것들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인데..저는 개인적으로 작가이기 때문에 작품을 볼때 지금의 처지, 작가이고 남자이고 또 제 나이가 있고 또 제가 처한 상황이 있죠. Also, these points have been passed on or overcame since then.. I can find these things.. I am a personal artist, so when I see the work, I am a writer and a man, and I have my age and again. There's a situation I'm in. 이런 이 모든것이 이 고전 속에 있는인물들의 상황..그런 것과 조응하면서 읽어나가게 되는 것인데요. 그러니까 또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것을 줄 수 없는 작품은 오래전에 쓰여졌던 지금 당대의 작품이던 간에 지금의 제 인생과 무과나하게 느껴지고 제 존재와 그 작품이 대결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책은 고전이 아닌 것 이죠. 이탈로 칼비노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입니다. Italo Calvino is talking that way.

12번 정의를 보면, '고전이란 그것들 사이에 일련의 위계속에서 속하는 작품이다. 그런 고전을 많이 읽은 사람은 고전의 계보에서 하나의 작품이 차지하는 지위를 쉽게 알아차린다,' 이런 것입니다. 단순히 시간적인 어떤 흐름 속에서 어떤 고전이 차지하는 위치를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죠. It's very easy to figure out the place a classic occupies in a simple passage of time. 그런데 고전들을 쭉 읽어나가다 보면 그 하나의 고전이 다른 고전에 끼친 영향들을 발견할 수 있고요. 그 영향이 또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It can also be found that the influence leads to another work. 이렇게 고전과 고전사이에 관계들 영향의 그 역동, 이런 것들을 발견하는 것, 이런 것은 그 독서가가 대단히 초보적인 수준이든 아니면 대단히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든 반드시 겪게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고요. 그것을 자기가 소화하는 수준에서 충분한 어떤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이런 생각을 합니다. 일탈로 칼비노도 그래서 약간 그 뭐랄까요. That's why it's a bit of a deviant Calvino 비아냥거리 듯이 루크레티우스, 루키아누스, 몽테뉴, 에라스무스...뭐 수많은 작가들을 얘기하면서 이런 책만 읽고 사는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것자체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Lucretius, Lucianus, Montaigne, Erasmus...well, there may be people who read only books like this while talking about a lot of writers, but that's not a good thing. 다독을 장려하지 않고있다는 점이 이 이탈로 칼비노에게서 흥미로운 점인데요. The fact that extensive reading is not encouraged is what is interesting about Calbino with this departure. 이 에세이에서 이탈로 칼비노는 다독보다는 어떤 작품과 작품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작품과 독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In this essay, Italo Calbino continues to talk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a work and a work,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work and the reader, rather than extensive reading. 즐거움의 원천이 고전을 읽는 어떤 기쁨의 원천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보는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저도 이탈로 칼비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그런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탈로 칼비노는 당대의 작품과 고전은 어떤 관계를 갖게되는가..이런 얘기를 하는데 이건 사실 어려운 질문입니다. 이 이탈로 칼비노가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아이패드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그런 시대 아니었습니까. 이런 시대에도 정보가 너무 많다.. 당대에 나오는 인쇄물들, 책, 그다음에 뭐 신문, 뉴스, 저널, 이런 것들이 많은데 언제 고전을 읽고 있는냐..불평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때와도 또 비견할 수 없이 그렇게 정보가 많아진 사회 아닙니까. 쉴새 없이 정보들이 우리들 교란하는데요. Information constantly disturbs us. 이럴때에 과연 당대와 지금 현재의 정보, 그리고 고전은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이것은 정말 독서를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예전에도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저는 고전은 나이가 들 수록 많이 읽어야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반대로 젊었을 때, 또 어릴 때는 당대의 자기가 즉각적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문제들을 읽어야 한다는 그런 쪽이고요. 그런 면에서 이탈로 칼비노와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이탈로 칼비노는 학교에서 고전을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이 거기서 읽어야 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Italo Calvino said that classics should be taught in school and that students should read them there. 저는 어렸을 때 읽은 고전에서 깊은 그런 영향을..물론 제가 모르는 사이에 이탈로 칼비노 말에 의하면 내적 매카니즘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저의 일부가 되어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오히려 어렸을 때는 당대의 소설에서 더 강렬한 영향들을 받았던 것 같고요. I have a deep influence from the classics I read when I was a child..Of course, I would say that it is in the inner mechanism according to Ibero Calbino's words. I think I received it. 지나면서 거꾸로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죠. As it passes, it goes backwards and the flow goes up. 그때 제가 읽었던 당대의 소설들에 영향을 주었을 법한 그 이전의 소설, 그 이전의 소설들을 찾아 올라가는게 뭐..저에게는 더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뭐 사람마다 여러가지 다른 방법이 있겠죠. 어쨌든 간에 고전과 당대의 책들을 읽는 비중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그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Anyway, I think the weight of reading classics and contemporary books is something that needs to be considered at least once. 고전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실제론 읽지 않게 됩니다. Classics are actually not read unless you pay attention. 고전이 필요하다는 거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가 참 어려워요. It's very difficult to convince yourself that you need a classic. 당대에 나오는 책들로도 충분히 그것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I think that even the books of the time could do it enough. 그러나 당대에 나오고 있는 책들은 당연히 마케팅에, 광고에 어떤 지원을 받게 되고요. But, of course, the books that are available in the day receive some kind of support for marketing and advertising. 우리가 그 책을 사도록 만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A lot of effort goes into making us buy the book. 그래서 또 하나, 거기다 또 하나는, 당대의 책들은 우리에게 읽는 즐거움에 더해서 정보도 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죠. 우리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읽는 요즘 책들을 따라 읽으려고 하는 것이고요. 그러다 보면 사실은 고전은 뒤로 물러나 있기 마련입니다. 오늘 안 읽는다고 해서 뭐 고전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Just because you don't read today doesn't mean the classics are going anywhere. 그래서 도서관에 가면 있겠지..이런 생각도 들어서 사지도 않고 이렇게 가게되는데, 그러나 고전은, 이탈로 칼비노도 여기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만, 고전이란 오랫동안 사람들이 자기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이 좌표를 잡아주었던 그런 책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살아남아서 지금까지 내려오는 그런 책들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좀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서 읽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아까 오늘 팟캐스트 시작하면서 새 계획으로 책을 백권 읽겠다..뭐 이백권 읽겠다..이렇게 결심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Earlier today, starting today's podcast, I will read a hundred books with a new plan.. Well, I will read two hundred books.. There may be people who decide like this. 이런 얘기 했었는데요. 그거보다 다가오는 2012년에는 옛날에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읽어보는 그런 계획을 세우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자 올 한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Now this year, there is not much left. 한해 잘 마무리 하시길 바라고요. 다가오는 2012년에도 여러분들 인생에 의미를 주는 그런 책들과 함께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I hope you will be with those books that give meaning to your life in 2012. 지금까지 김영하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