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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3 - 성석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 (Seong Sokze) - Part 1

Episode 3 - 성석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 (Seong Sokze)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오늘 세 번 째 시간입니다. 저는 소설을 쓰고있는 김영하라고 합니다. 오늘 팟캐스트는. . 요, 지난번에 이제 미시마 유키오, 일본 작가의 책을 가지고 왔었는데요. 오늘은 한국 작가, 저의 선배 작가가 됩니다. 사실 저랑 소설가로 같은 애였는데 대학교는 선배시죠. 그리고, 물론 저보다 문학 활동은 훨씬 ⟨더⟩ 먼저 시작하신 분입니다. 원래는 시인으로 출발을 하셨는데, 시 쪽 보다는 소설 쪽에 좀더 흥미를 느끼셨는지 소설거 전향을 하게됩니다. 많은 소설가들이 사실은 그런 경로를 거쳤습니다. 예를 들면, 외국에서도, 보르에스 같은 경우도 원래는 시인으로 출발을 했는데, 점점 소설가로 변신을 하게 되는데요. 이분도 그렇습니다. 이분이 바로 성석제 씨입니다. 이 성석제 씨는 이런 어떤 이행기를 거치게 되죠. 시인에서 소설가로 이행하게 되는 이행기가 있는데, 그 이행기에 쓰게 된 글들이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전통적인 산문도 아닌, 지금봐도 대단히 실험적인 그런 글들을 쓰게 됩니다. 이런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마 그분의 첫 번 째 산문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짧은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요. 그것이 바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라는 책입니다.

처음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저도 기억이 나요. 여기저기서 어떤 풍문들이 들려왔습니다.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라는 아주 이상한 책이 나왔다.' 이상하다 그랬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거죠. 그때는 엄숙하던 시기가 끝나고, 80 년 대가 끝나고, 90 년 대 초반도 그런 80 년 대의 상황들을 애도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90 년 대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후일담 소설'이라고 하는, 지난 시대를 이상화하고 그리워하고..'하~ 그때는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하~ 순수한 시대였는데! 지금은 타락했다.' 이렇게 말하는 소설들, 우리는 흔히 그런 소설들을 ‘후일담 소설'이라고 하죠. 주인공들은 주로 운동권들이고 소설 안에 내용은 대단히 무겁습니다. 무겁고 감상적인 내용들이 많죠. 주인공들은 다 선량합니다. 악한 것은 밖에 있고. 우리가 이제 이런 소설들을 ‘후일담 소설'이라고 부르는데요. 좋은 뜻은 아니였습니다. 처음에 이 ‘후일담 소설'이라는 말(을)로 90 년 대 초반에 소설들을 규정했던 분은 평론가 김윤식, 이 선생님이었는데요. 이분이 이제 ‘후일담 소설'로 명명한 이후에 급속히 ‘후일담 소설'은 퇴조하게 됩니다. 이 성석제 씨 같은 경우에는 이른바 ‘포스트 후일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작가죠. 소설에 그런 어떤.. 지난 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 그 다음에..뭐 하튼 그런 ‘후일담' 같은 소설의 내용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단히 특이하다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는데요. 이 책에는 보면 아주 짤막하게 돼있습니다. 짤막한 글들이 쭉 있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좋겠습니다만, 한번 진지하게 파보는 것도 좋은 그런 책입니다. 이런 웃음의 전략이랄까요? 작가가 알고 쓴건 아니겠습니다만,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된 작가의 어떤 심사랄까요? 이런거를 한번 되새겨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요. 그냥 ‘아 재밌다! '이러면서 우리가 흔히 유쾌한소설들을 볼 때 그러는데요, 그냥 지나가기가 쉽습니다. 그냥 ‘아 재밌네. '그러고 ‘화장실에 앉아서 읽으면 좋겠다. '하거나 그런데 성석제 씨 같은 경우에는 원래 시인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산문의 문장들도 굉장히 단단합니다. 단단하고, 허투로 쓴 문장들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저랑, 저와 제 친구들은 이 분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 소리내서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현대에 쓰여지는 소설들은 대부분 눈으로 읽도록 돼있죠. 이 소설을 눈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즉 소리내어 읽지 않기 시작하면서, 이것은 뭐 한 18 세기, 19 세기를 지나면서 생겨난 풍속이죠. 그 전까지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드물었기 때문에 성당이나 교회에서 (지금도 그렇게 하듯이) 한 사람이 앞에 나가서 성서를 읽으면 다른 사람은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서를 읽을 그런 능력이 없는 문맹들이었기 때문이죠. 일반인들은. 그러나 문맹률이 떨어지고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국민교육을 통해서 광범위하게 늘어나면서 이제 소설이라는 것은 눈으로 읽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소래내서 읽으면 이상한 사람이죠. 지하철에서 혹시 책을 소리내서 읽는 사람 보셨습니까? 미친사람이죠. 그 사람은 미쳤다고 밖에 볼 수가 없는거예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용히 책을 읽게 되면서 비로소 내면이라는 것이 생기게 됐습니다. 소설의 작가들이 심리묘사라든가, 아니면은 독자의 내면과 일대일로 조응하게 되는 그런 문학들을 발전시켜가게 되는 것입니다. 혼자 음미하고, 혼자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치 라디오 같은 거죠? 혼자 스투디오에서 이렇게 떠들면 (그래서) 혼자 이어폰을 끼고 듣듯이, 책에 있는 내용도 저자와 독자가 일 대 일로 감응하게 된다고 할까요? 이제 그런 시대가 18 세기, 19 세기 부터 열렸습니다. 그 전까지는 소리내어서 읽는 음독이 일반적이었고, 묵독이라고 하죠, 조용히 읽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이 성석제 씨의 소설은 소리내서 읽기에 참 좋은 그런 어떤 책입니다. 리듬감도 있고요. 그리고 한 사람이 읽고 한 사람이 들을 때 대단히 웃깁니다. 그런 웃음을 서로 나누면서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책이 참 흔치 않죠. 그러면서도 글맛이 있어서 읽기에 참 좋은 소설입니다. 한번 주변에, 주위를 한번 지금 둘러보십시오. 서가에 성석제 씨의 책이 꽂혀 있다면 한번 꺼내서 소리내서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재밌는 독서의 경험일 것 같아요.

지금까지 뭐 현대인들은 바쁘니까 막 닥치는 대로 읽잖아요. 막 인터넷 서점에 주문해서 책이 막 날아오면 허겁지겁 읽고 던져버리고 또 뭐 이러는데, 사실 책이라는 것은 천천히 읽고, 또 다시 읽고, 이런데 매력이 있습니다. 10 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데서 진정한 매력이 발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Episode 3 - 성석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 (Seong Sokze) - Part 1 Episode 3 - Seong Sokze "There Live the Absurdities ." (Seong Sokze) - Part 1 Episodio 3 - Seong Sokze "Viven personas ridículas ." (Seong Sokze) - Parte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Writer Kim Young-ha's 'Book Reading Time' Podcast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오늘 세 번 째 시간입니다. 저는 소설을 쓰고있는 김영하라고 합니다. I am Kim Ha-ha writing a novel. 오늘 팟캐스트는. . 요, 지난번에 이제 미시마 유키오, 일본 작가의 책을 가지고 왔었는데요. Today's podcast was last time I brought a book by Yukio Mishima and a Japanese writer. 오늘은 한국 작가, 저의 선배 작가가 됩니다. 사실 저랑 소설가로 같은 애였는데 대학교는 선배시죠. Actually, I was a novelist and went to school in the same year, but the university is a senior. 그리고, 물론 저보다 문학 활동은 훨씬 ⟨더⟩ 먼저 시작하신 분입니다. Of course, literary activities started much earlier than I did. 원래는 시인으로 출발을 하셨는데, 시 쪽 보다는 소설 쪽에 좀더 흥미를 느끼셨는지 소설거 전향을 하게됩니다. Originally, he started out as a poet, but he turned to a novel if he was more interested in the novel than the poet. 많은 소설가들이 사실은 그런 경로를 거쳤습니다. Many novelists have actually taken that path. 예를 들면, 외국에서도, 보르에스 같은 경우도 원래는 시인으로 출발을 했는데, 점점 소설가로 변신을 하게 되는데요. For example, even in foreign countries, Bores originally started as a poet, but gradually became a novelist. 이분도 그렇습니다. So is this. 이분이 바로 성석제 씨입니다. This is Seongseokje. 이 성석제 씨는 이런 어떤 이행기를 거치게 되죠. 시인에서 소설가로 이행하게 되는 이행기가 있는데, 그 이행기에 쓰게 된 글들이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니고, 전통적인 산문도 아닌, 지금봐도 대단히 실험적인 그런 글들을 쓰게 됩니다. There is a transition period from a poet to a novelist, and the writings written during that transition period are not novels, no attempts, no traditional prose, and even very experimental writings now. 이런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마 그분의 첫 번 째 산문집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A collection of these writings is probably his first prose collection. 짧은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요. You could call it a short novel. 그것이 바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라는 책입니다.

처음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저도 기억이 나요. 여기저기서 어떤 풍문들이 들려왔습니다. Some rumors have been heard here and there.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라는 아주 이상한 책이 나왔다.' 'There was a very strange book [There's a ridiculous].' 이상하다 그랬어요. 지금처럼 이렇게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거죠. There was a part I couldn't laugh like now. 그때는 엄숙하던 시기가 끝나고, 80 년 대가 끝나고, 90 년 대 초반도 그런 80 년 대의 상황들을 애도하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At that time, the solemn period ended, the 80s ended, and even the early 90s had an atmosphere that mourned the 80s. 그래서 90 년 대 초반 까지만 하더라도 ‘후일담 소설’이라고 하는, 지난 시대를 이상화하고 그리워하고..'하~ 그때는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So even in the early 90's, the past era, called 'the later story novel', idealizes and misses the past. 하~ 순수한 시대였는데! Ha ~ It was a pure time! 지금은 타락했다.' Now it's fallen. ' 이렇게 말하는 소설들, 우리는 흔히 그런 소설들을 ‘후일담 소설’이라고 하죠. Novels like this, we often refer to such novels as 'future tale novels'. 주인공들은 주로 운동권들이고 소설 안에 내용은 대단히 무겁습니다. The main characters are mainly athletic rights, and the content in the novel is very heavy. 무겁고 감상적인 내용들이 많죠. There is a lot of heavy and sentimental content. 주인공들은 다 선량합니다. The main characters are all good. 악한 것은 밖에 있고. The evil one is outside. 우리가 이제 이런 소설들을 ‘후일담 소설’이라고 부르는데요. We now refer to these novels as 'future tale novels'. 좋은 뜻은 아니였습니다. It was not a good thing. 처음에 이 ‘후일담 소설’이라는 말(을)로 90 년 대 초반에 소설들을 규정했던 분은 평론가 김윤식, 이 선생님이었는데요. Criticist Kim Yun-shik and Lee were the first to define novels in the early 90s with the term 'future story novel'. 이분이 이제 ‘후일담 소설’로 명명한 이후에 급속히 ‘후일담 소설’은 퇴조하게 됩니다. After this person is now called 'the later story novel', 'the later story novel' rapidly deteriorates. 이 성석제 씨 같은 경우에는 이른바 ‘포스트 후일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작가죠. In the case of Mr. Seong-Jeok Lee, it is such a writer who can be called the 'post future story'. 소설에 그런 어떤.. 지난 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 그 다음에..뭐 하튼 그런 ‘후일담' 같은 소설의 내용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단히 특이하다 하는 생각들을 하게 됐는데요. There was no such thing in the novel... a faint nostalgia for the past, and then... Anyway, there was no such thing as a 'future story' at all, so I thought it was very unusual. 이 책에는 보면 아주 짤막하게 돼있습니다. It's very short in this book. 짤막한 글들이 쭉 있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도 좋겠습니다만, 한번 진지하게 파보는 것도 좋은 그런 책입니다. There are a lot of short articles, and it's good to read them with a light mind, but it's a good book to dig into seriously. 이런 웃음의 전략이랄까요? Is this a strategy of laughter? 작가가 알고 쓴건 아니겠습니다만, 이런 시대적 맥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된 작가의 어떤 심사랄까요? It's not that the author knew and wrote it, but in this context of the times, what kind of review did the author say about this? 이런거를 한번 되새겨 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고요. It would be interesting to revisit this once again. 그냥 ‘아 재밌다! It's just like, 'Oh, that's fun! '이러면서 우리가 흔히 유쾌한소설들을 볼 때 그러는데요, 그냥 지나가기가 쉽습니다. 그냥 ‘아 재밌네. '그러고 ‘화장실에 앉아서 읽으면 좋겠다. ' Then I said, 'I'd like to sit on the toilet and read. '하거나 그런데 성석제 씨 같은 경우에는 원래 시인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산문의 문장들도 굉장히 단단합니다. 'But by the way, in the case of Seongseokje, the sentences of the prose are very solid because they originally started as poets. 단단하고, 허투로 쓴 문장들이 별로 없어요. It's hard, and there are few sentences written in vain. 그래서 저랑, 저와 제 친구들은 이 분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 소리내서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So, me and my friends liked to read aloud when this novel first appeared.

현대에 쓰여지는 소설들은 대부분 눈으로 읽도록 돼있죠. 이 소설을 눈으로 읽기 시작하면서, 즉 소리내어 읽지 않기 시작하면서, 이것은 뭐 한 18 세기, 19 세기를 지나면서 생겨난 풍속이죠. As I started reading this novel with my eyes, i.e. not starting to read it out loud, this was a custom that occurred through the 18th and 19th centuries. 그 전까지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드물었기 때문에 성당이나 교회에서 (지금도 그렇게 하듯이) 한 사람이 앞에 나가서 성서를 읽으면 다른 사람은 들었습니다. Until then, few could read, so in a cathedral or church (as they still do) one person would go out and read the Bible, and the other would listen. 다른 사람들은 성서를 읽을 그런 능력이 없는 문맹들이었기 때문이죠. Others were illiterate without the ability to read the Bible. 일반인들은. The ordinary people. 그러나 문맹률이 떨어지고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국민교육을 통해서 광범위하게 늘어나면서 이제 소설이라는 것은 눈으로 읽는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However, as illiteracy rates fell, intellectuals increased, and people who could read letters increased widely through national education, now is the time to read novels with eyes. 소래내서 읽으면 이상한 사람이죠. If you read it out loud, you are a strange person. 지하철에서 혹시 책을 소리내서 읽는 사람 보셨습니까? Have you ever seen someone reading a book aloud on the subway? 미친사람이죠. 그 사람은 미쳤다고 밖에 볼 수가 없는거예요. I can only see that person as crazy. 그런 시대가 됐습니다. Such a time has come. 그런데 이렇게 조용히 책을 읽게 되면서 비로소 내면이라는 것이 생기게 됐습니다. However, when I read a book quietly, the internal side arises for the first time. 소설의 작가들이 심리묘사라든가, 아니면은 독자의 내면과 일대일로 조응하게 되는 그런 문학들을 발전시켜가게 되는 것입니다. The authors of the novels are developing psychological descriptions, or other literatures that correspond one-to-one with the reader's inner world. 혼자 음미하고, 혼자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치 라디오 같은 거죠? It's like a radio that savors alone and accepts it alone, isn't it? 혼자 스투디오에서 이렇게 떠들면 (그래서) 혼자 이어폰을 끼고 듣듯이, 책에 있는 내용도 저자와 독자가 일 대 일로 감응하게 된다고 할까요? Do you think that if you talk like this in the studio alone (so) the author and the reader respond one-on-one to the contents of the book, just like listening to them with earphones alone? 이제 그런 시대가 18 세기, 19 세기 부터 열렸습니다. 그 전까지는 소리내어서 읽는 음독이 일반적이었고, 묵독이라고 하죠, 조용히 읽는 시대가 왔습니다. Until then, reading aloud was common, and it was called silent reading. 그러나 이 성석제 씨의 소설은 소리내서 읽기에 참 좋은 그런 어떤 책입니다. But this novel by Seong-Jae Seong is a good book to read aloud. 리듬감도 있고요. There is also a sense of rhythm. 그리고 한 사람이 읽고 한 사람이 들을 때 대단히 웃깁니다. And it's very funny when one person reads and one listens. 그런 웃음을 서로 나누면서 읽을 수 있다는 것. That we can read while sharing such laughter. 그런 책이 참 흔치 않죠. Such a book is very rare. 그러면서도 글맛이 있어서 읽기에 참 좋은 소설입니다. 한번 주변에, 주위를 한번 지금 둘러보십시오. 서가에 성석제 씨의 책이 꽂혀 있다면 한번 꺼내서 소리내서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재밌는 독서의 경험일 것 같아요. If Sung Seok-je's book is on the bookshelf, taking it out and reading it aloud once will be a fun reading experience.

지금까지 뭐 현대인들은 바쁘니까 막 닥치는 대로 읽잖아요. So far, modern people are busy, so you just read randomly. 막 인터넷 서점에 주문해서 책이 막 날아오면 허겁지겁 읽고 던져버리고 또 뭐 이러는데, 사실 책이라는 것은 천천히 읽고, 또 다시 읽고, 이런데 매력이 있습니다. 10 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데서 진정한 매력이 발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It can be said that the real charm is found in re-reading a book you read 10 years 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