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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25 - 로알드 달 “맛” - Part 4

Episode 25 - 로알드 달 “맛” - Part 4

보기스 씨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발을 딱 멈추어다. 충격 때문에 작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는 그 자리에 적어도 5초, 10초, 아니 15초는 서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앞만 보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현실일 수가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자 점차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건은 그의 눈 바로 앞의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집 자체 만큼이나 견고한 현실이었다. 세상에 누가 그런 물건을 두고 실수를 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하얗게 칠이 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떤 바보가 해 놓은 웃기는 것일 뿐이었다. 칠이야 쉽게 벗겨낼 수 있었다. 와! 저것좀 봐 ! 그것도 이런집에서!

순간 보기스 씨는 세 남자, 즉 러민스, 버트, 클로드가 난롯가에 모여 서서 그를 뚫어져라 살피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보기스 씨가 발을 멈추고 , 입을 떡 벌리고 ,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 아니 어쩌면 하얘졌을 지도 모르지, 그것도 보았을 것이다. 어쨋든 그들은 염병할 일을 전부 망쳐버릴 만큼 많은 것을 보았다. 빨리 손을 써야 했다. 보기스 씨는 한 손으로 심장을 움켜쥐며 비틀비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로 다가 가더니 의자에 주저 앉으며 숨을 헐떡거렸다.

"왜 그러쇼?" 클로드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보기스씨는 숨을 헐떡이면 말을 이었다.

"금방 괜찮아 질 겁니다. 저기 물 한 잔만 주십시오. 심장에 좀 문제가 있어서요." 버트가 물을 가져다 주더니, 옆에 그대로 서서 멍청한 표정으로 곁눈질을 해댔다.

"댁이 뭘 보고 있는 줄 알았소." 러민스가 말했다.

그의 널찍한 개구리 입이 약간 더 벌어져 교활한 웃음으로 바뀌자 부러진 이 몇개의 뿌리가 드러나 보여다.

"아니, 아닙니다." 보기스 씨가 대꾸하고는 말을 이었다.

"오, 이런 아닙니다. 그냥 심장 때문에, 정말 미안합니다. 가끔 이러죠. 하지만 올때 처럼 금방 사라집니다.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생각할 시간을 벌어야 해.

보기스씨는 속으로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지금 어떤 말을 더 하기 전에 완전히 냉정을 찾을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드럽게 나가자. 보기스. 무슨일을 하든지 차분하게 하자. 이 사람들은 무지할 지는 몰라도 어리석지는 않아. 이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절대 방심하지 않고, 언제나 교활해. 그런데 아까 그것이 현실이라면.... 아냐... 그럴 리가 없어, 현실일 수가 없어.

보기스 씨는 고통을 가리려는 듯 한 손을 들어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아무도 눈치 못채게 두 손가락을 살짝 벌려 그 사이로 내다 봤다.

그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번에는 오랫동안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래 처음부터 제대로 보았어!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전문가라면 손에 넣기 위해 무슨짓이라도 할 만한 가구였다. 문외한은 별 생각없이 지나칠 수도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더러운 흰 페인트로 덮여 있을 때는. 하지만 보기스씨에게 이것은 고가구상의 꿈이었다. 보기스 씨는 유럽과 미국의 다른 모든 고가구상과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18세기 영국 가구 가운데 누구나 선망하는 가장 유명한 물건은 '치펀데일 장'이라고 알려진 가구 세 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장의 역사를 줄줄 외우고 있었다. 첫 번째는 1920년에 모레턴 온 더 마시의 어떤 집에거 발견되어 같은 해에 소더비 경매에서 팔렸다. 나머지 둘은 1년 뒤에 같은 경매장에 나타났다. 둘 다 노포크의 레인햄 홀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가구는 모두 엄청난 가격에 팔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가구의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마지막 가구가 3,900기니에 팔렸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1921년의 일이었다! 지금 같으면 만 파운드는 틀림없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떤 사람이 최근에 이 장을 연구한 결과 세가구 모두 같은 작업장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박판이 모두 같은 통나무에서 나왔고, 모두 똑같은 형판을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장에서도 청구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세 개의 장을 토머스 치펀데일 자신이, 그 자신의 손으로 , 그의 최전성기에 만들었다는 데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 여기에 네번째 치펀데일 장이 나타나다니! 보기스 씨는 손가락 틈으로 세심하게 살피면서 속으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내가 발견하다니! 나는 부자가 될거야! 또 유명해질거야! 세 개의 장은 고가구계에서 특별한 이름을 얻었다. 체슬턴 장, 제1 레인햄 장, 제2 레인햄 장 . 이 장은 보기스 장으로 역사에 기록될 터였다! 내일 아침 런던에서 이 장을 보았을 때 그곳 친구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상상해 보라! 웨스트엔드에서 거물로 꼽히는 프랭크 파트리지, 몰릿, 제리 등등이 얼마나 큰 액수를 제시할 지 상상해 보라! '더 타임스'에 사진이 실리고, 거기에 이런 기사가 따라 붙을 것이다. "런던의 고가구상 시럴 보기스씨가 최근에 발견한 훌륭한 치펀데일 장은...." 우와,나의 발견으로 인해 사람들은 얼마나 흥분할 것인가!

여기 이것은 제2의 레인햄 장과 거의 똑같아. 보기스 씨는 생각했다. 세 개의 장, 즉 채슬턴과 두 개의 레인햄은 아주 많은 부분에서 조금씩 달랐다. 제2 의 레인햄 장은 치펀데일의 감독시기에 프랑스 로코코 스타일로 제작된 아주 당당하고 잘 생긴 장이었다. 크고 듬직한 서랍장에는 세로로 홈이 패고 조각이 된 다리가 네 개 달려 있어, 장의 아랫부분은 바닥에서 3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서랍은 모두 여섯개였다. 가운데에 긴 서랍 두 새가 있고, 양쪽에 짧은 서랍 두 개가 있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앞면은 위와 양옆과 바닥에 훌륭한 장식이 붙어 있었으며, 각 서랍들 사이에도 수직의 장식이 달려 있었다. 꽃줄과 소용돌이와 꽃송이를 복잡하게 새겨 놓은 장식이었다. 하얀 페인트 때문에 분분적으로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황동 손잡이 역시 훌륭해 보였다. 물론 상당히 묵직한 가구였지만 워낙 우아하고 고상한 디자인이라 그 묵직함이 전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젠 좀 괜찮소?"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이제 많이 좋아졌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아플때마다 몇 분 쉬기만 하면 걱정할 것도 없다고 의사가 그러더군요. 이제 됐어요." 그는 천천히 일어서면서 말을 이었다.

" 많이 좋아졌어요. 이젠 괜찮아요." 보기스 씨는 약간 불안정한 걸음으로 방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한번에 하나씩 가구를 살피면서 짧게 한마디씩 던졌다. 그러나 치펀데일 장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형편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좋은 떡갈나무 탁자로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래되지않아 큰 관심을 끌것 같지는 않네요. 편안하고 좋은 의자들입니다만 너무 현대적이네요. 그래요 너무 현대적이에요. 그리고 이 찬장은, 글쎄, 약간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값어치는 별로 없어요. 이 서랍장은...." 그는 태연하게 치펀데일 장 옆을 지나가면서 경멸감을 드러내듯 가볍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몇 파운드는 나가겠군요. 안 됐지만 그 이상은 안 되겠어요. 안타깝게도 좀 조악한 복제품인 것 같네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여기서 흰색으로 칠한 건가요?" "그렇소 버트가 칠했소" "아주 잘하신 겁니다. 흰색을 칠하니 좀 나아 보이는군요." "그거 아주 튼튼한 물건이요. 조각도 좀 되어있고." 러민스가 말했다.

"기계로 새긴거지요" 보기스씨는 당당한 태도로 대꾸를 하고 나서 허리를 굽히더니 장인의 섬세한 솜씨를 살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거지요. 그렇다해도 그 나름으로 예쁘기는 하네요. 그 나름의 장점은 있습니다. " 보기스 씨는 계속 걸어가려다가 발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손가락을 턱끝에 대고 머리를 한 쪽으로 기울이더니, 깊은 생각에 잠긴것 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는 별 관심이 없다는 투로 말을 했기 때문에 말끝이 계속 흐려졌다.

"방금 기억이 났는데 ... 나는 오래 전부터 저렇게 생긴 다리를 갖고 싶었어요. 우리 집에 좀 묘하게 생긴 탁자가 있거든요. 소파앞에 놓는 탁자말입니다. 커피 탁자 비슷한 거지요. 지난 미가엘 축일에 이사를 하는데 어떤 멍청한 일꾼들이 아주 끔찍하게 다리를 망가뜨렸지 뭡니까. 그 탁자는 내가 무척 아끼는 것이거든요. 늘 커다란 성경을 그 위에 올려 놓죠. 설교에 필요한 메모도요." 그는 말을 끊고 턱을 쓰다듬었다.

"갑자기 생각이 난 건데, 저 서랍장 다리가 딱 맞을 것 같네요. 그래 정말 괜찮을걸 같아. 잘라서 내 탁자에 붙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고." 보기스 씨는 주위를 둘러 보다가 세남자가 꼼짝도 않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의심하는 표정으로 보기스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 쌍의 눈은 각기 다르기는 했지만 불신의 표정이 담겨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러민스의 작은 돼지 같은 눈, 클로드의 크고 둔해 보이는 눈, 버트의 짝이 맞지 않는 두눈. 버트의 한 쪽 눈은 아주 야릇했는데 몽롱하게 취한 듯 탁하고 색깔이 없었다. 접시위의 생선의 눈처럼 그 한가운데 적고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보기스씨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런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꼭 저 물건이 내것인양 이야기 하고 있잖아. 정말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저걸 사고 싶다는 거요?" 러민스가 물었다.

"글쎄요...." 보기스 씨는 장을 다시 흘끗 돌아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 다시 보니....다시 생각해보니....아니야....너무 귀찮을 것 같군요. 그럴 가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얼마를 줄 생각이요" 러민스가 물었다.


Episode 25 - 로알드 달 “맛” - Part 4 Episode 25 - Roald Dahl "Flavors" - Part 4

보기스 씨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는 발을 딱 멈추어다. 충격 때문에 작은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는 그 자리에 적어도 5초, 10초, 아니 15초는 서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앞만 보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현실일 수가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보자 점차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건은 그의 눈 바로 앞의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집 자체 만큼이나 견고한 현실이었다. 세상에 누가 그런 물건을 두고 실수를 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하얗게 칠이 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떤 바보가 해 놓은 웃기는 것일 뿐이었다. 칠이야 쉽게 벗겨낼 수 있었다. 와! 저것좀 봐 ! 그것도 이런집에서!

순간 보기스 씨는 세 남자, 즉 러민스, 버트, 클로드가 난롯가에 모여 서서 그를 뚫어져라 살피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보기스 씨가 발을 멈추고 , 입을 떡 벌리고 , 물끄러미 앞을 바라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 아니 어쩌면 하얘졌을 지도 모르지, 그것도 보았을 것이다. 어쨋든 그들은 염병할 일을 전부 망쳐버릴 만큼 많은 것을 보았다. 빨리 손을 써야 했다. 보기스 씨는 한 손으로 심장을 움켜쥐며 비틀비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의자로 다가 가더니 의자에 주저 앉으며 숨을 헐떡거렸다.

"왜 그러쇼?" 클로드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보기스씨는 숨을 헐떡이면 말을 이었다.

"금방 괜찮아 질 겁니다. 저기 물 한 잔만 주십시오. 심장에 좀 문제가 있어서요." 버트가 물을 가져다 주더니, 옆에 그대로 서서 멍청한 표정으로 곁눈질을 해댔다.

"댁이 뭘 보고 있는 줄 알았소." 러민스가 말했다.

그의 널찍한 개구리 입이 약간 더 벌어져 교활한 웃음으로 바뀌자 부러진 이 몇개의 뿌리가 드러나 보여다.

"아니, 아닙니다." 보기스 씨가 대꾸하고는 말을 이었다.

"오, 이런 아닙니다. 그냥 심장 때문에, 정말 미안합니다. 가끔 이러죠. 하지만 올때 처럼 금방 사라집니다. 조금만 있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생각할 시간을 벌어야 해.

보기스씨는 속으로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지금 어떤 말을 더 하기 전에 완전히 냉정을 찾을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드럽게 나가자. 보기스. 무슨일을 하든지 차분하게 하자. 이 사람들은 무지할 지는 몰라도 어리석지는 않아. 이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절대 방심하지 않고, 언제나 교활해. 그런데 아까 그것이 현실이라면.... 아냐... 그럴 리가 없어, 현실일 수가 없어.

보기스 씨는 고통을 가리려는 듯 한 손을 들어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아무도 눈치 못채게 두 손가락을 살짝 벌려 그 사이로 내다 봤다.

그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번에는 오랫동안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래 처음부터 제대로 보았어!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전문가라면 손에 넣기 위해 무슨짓이라도 할 만한 가구였다. 문외한은 별 생각없이 지나칠 수도 있었다. 특히 지금처럼 더러운 흰 페인트로 덮여 있을 때는. 하지만 보기스씨에게 이것은 고가구상의 꿈이었다. 보기스 씨는 유럽과 미국의 다른 모든 고가구상과 마찬가지로 현존하는 18세기 영국 가구 가운데 누구나 선망하는 가장 유명한 물건은 '치펀데일 장'이라고 알려진 가구 세 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장의 역사를 줄줄 외우고 있었다. 첫 번째는 1920년에 모레턴 온 더 마시의 어떤 집에거 발견되어 같은 해에 소더비 경매에서 팔렸다. 나머지 둘은 1년 뒤에 같은 경매장에 나타났다. 둘 다 노포크의 레인햄 홀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가구는 모두 엄청난 가격에 팔렸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가구의 정확한 가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마지막 가구가 3,900기니에 팔렸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1921년의 일이었다! 지금 같으면 만 파운드는 틀림없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떤 사람이 최근에 이 장을 연구한 결과 세가구 모두 같은 작업장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박판이 모두 같은 통나무에서 나왔고, 모두 똑같은 형판을 사용해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장에서도 청구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세 개의 장을 토머스 치펀데일 자신이, 그 자신의 손으로 , 그의 최전성기에 만들었다는 데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 여기에 네번째 치펀데일 장이 나타나다니! 보기스 씨는 손가락 틈으로 세심하게 살피면서 속으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내가 발견하다니! 나는 부자가 될거야! 또 유명해질거야! 세 개의 장은 고가구계에서 특별한 이름을 얻었다. 체슬턴 장, 제1 레인햄 장, 제2 레인햄 장 . 이 장은 보기스 장으로 역사에 기록될 터였다! 내일 아침 런던에서 이 장을 보았을 때 그곳 친구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상상해 보라! 웨스트엔드에서 거물로 꼽히는 프랭크 파트리지, 몰릿, 제리 등등이 얼마나 큰 액수를 제시할 지 상상해 보라! '더 타임스'에 사진이 실리고, 거기에 이런 기사가 따라 붙을 것이다. "런던의 고가구상 시럴 보기스씨가 최근에 발견한 훌륭한 치펀데일 장은...." 우와,나의 발견으로 인해 사람들은 얼마나 흥분할 것인가!

여기 이것은 제2의 레인햄 장과 거의 똑같아. 보기스 씨는 생각했다. 세 개의 장, 즉 채슬턴과 두 개의 레인햄은 아주 많은 부분에서 조금씩 달랐다. 제2 의 레인햄 장은 치펀데일의 감독시기에 프랑스 로코코 스타일로 제작된 아주 당당하고 잘 생긴 장이었다. 크고 듬직한 서랍장에는 세로로 홈이 패고 조각이 된 다리가 네 개 달려 있어, 장의 아랫부분은 바닥에서 30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서랍은 모두 여섯개였다. 가운데에 긴 서랍 두 새가 있고, 양쪽에 짧은 서랍 두 개가 있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앞면은 위와 양옆과 바닥에 훌륭한 장식이 붙어 있었으며, 각 서랍들 사이에도 수직의 장식이 달려 있었다. 꽃줄과 소용돌이와 꽃송이를 복잡하게 새겨 놓은 장식이었다. 하얀 페인트 때문에 분분적으로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황동 손잡이 역시 훌륭해 보였다. 물론 상당히 묵직한 가구였지만 워낙 우아하고 고상한 디자인이라 그 묵직함이 전혀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젠 좀 괜찮소?" 누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이제 많이 좋아졌습니다. 금방 사라지거든요. 아플때마다 몇 분 쉬기만 하면 걱정할 것도 없다고 의사가 그러더군요. 이제 됐어요." 그는 천천히 일어서면서 말을 이었다.

" 많이 좋아졌어요. 이젠 괜찮아요." 보기스 씨는 약간 불안정한 걸음으로 방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한번에 하나씩 가구를 살피면서 짧게 한마디씩 던졌다. 그러나 치펀데일 장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형편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좋은 떡갈나무 탁자로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래되지않아 큰 관심을 끌것 같지는 않네요. 편안하고 좋은 의자들입니다만 너무 현대적이네요. 그래요 너무 현대적이에요. 그리고 이 찬장은, 글쎄, 약간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값어치는 별로 없어요. 이 서랍장은...." 그는 태연하게 치펀데일 장 옆을 지나가면서 경멸감을 드러내듯 가볍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몇 파운드는 나가겠군요. 안 됐지만 그 이상은 안 되겠어요. 안타깝게도 좀 조악한 복제품인 것 같네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여기서 흰색으로 칠한 건가요?" "그렇소 버트가 칠했소" "아주 잘하신 겁니다. 흰색을 칠하니 좀 나아 보이는군요." "그거 아주 튼튼한 물건이요. 조각도 좀 되어있고." 러민스가 말했다.

"기계로 새긴거지요" 보기스씨는 당당한 태도로 대꾸를 하고 나서 허리를 굽히더니 장인의 섬세한 솜씨를 살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거지요. 그렇다해도 그 나름으로 예쁘기는 하네요. 그 나름의 장점은 있습니다. " 보기스 씨는 계속 걸어가려다가 발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는 손가락을 턱끝에 대고 머리를 한 쪽으로 기울이더니, 깊은 생각에 잠긴것 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는 별 관심이 없다는 투로 말을 했기 때문에 말끝이 계속 흐려졌다.

"방금 기억이 났는데 ... 나는 오래 전부터 저렇게 생긴 다리를 갖고 싶었어요. 우리 집에 좀 묘하게 생긴 탁자가 있거든요. 소파앞에 놓는 탁자말입니다. 커피 탁자 비슷한 거지요. 지난 미가엘 축일에 이사를 하는데 어떤 멍청한 일꾼들이 아주 끔찍하게 다리를 망가뜨렸지 뭡니까. 그 탁자는 내가 무척 아끼는 것이거든요. 늘 커다란 성경을 그 위에 올려 놓죠. 설교에 필요한 메모도요." 그는 말을 끊고 턱을 쓰다듬었다.

"갑자기 생각이 난 건데, 저 서랍장 다리가 딱 맞을 것 같네요. 그래 정말 괜찮을걸 같아. 잘라서 내 탁자에 붙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고." 보기스 씨는 주위를 둘러 보다가 세남자가 꼼짝도 않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의심하는 표정으로 보기스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 쌍의 눈은 각기 다르기는 했지만 불신의 표정이 담겨있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러민스의 작은 돼지 같은 눈, 클로드의 크고 둔해 보이는 눈, 버트의 짝이 맞지 않는 두눈. 버트의 한 쪽 눈은 아주 야릇했는데 몽롱하게 취한 듯 탁하고 색깔이 없었다. 접시위의 생선의 눈처럼 그 한가운데 적고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보기스씨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이런 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꼭 저 물건이 내것인양 이야기 하고 있잖아. 정말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저걸 사고 싶다는 거요?" 러민스가 물었다.

"글쎄요...." 보기스 씨는 장을 다시 흘끗 돌아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말을 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 다시 보니....다시 생각해보니....아니야....너무 귀찮을 것 같군요. 그럴 가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얼마를 줄 생각이요" 러민스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