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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24 - 김영하 “검은 꽃" - Part 1

Episode 24 - 김영하 “검은 꽃"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안녕하세요.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진행하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는 완연히 가을입니다. 가을도 조금있으면 갈 것 같은 그런 시간이죠? 요새는 걸어다니다 보면 나무들이 잎을 다 잃어가고 있는 그런 시기입니다. 색이 변하다가 잎들을 떨구면서 겨울을 날 준비를 하는 것이죠. 자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생각을 하다가요 네, 오랜만에 제 책을 하나 읽어볼까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다섯 권의 장편소설과 네 권의 단편집을 냈습니다. 책이, 아홉 권이 소설이 됐으니까요. 많은 분들이.. 뭐 많이 다 읽어보신 분들도 계시겠고, 아직 제 소설을 전혀 읽어보지 않은 분도 있으실텐데, 만약 어떤 분이 저한테 '나는 시간이 너무너무 없고, 당신 소설을 단 한 권 밖에 읽을 수가 없는데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겠느냐?' 라고 저에게 질문을 한다면, 저는 아마 주저없이 이 책을 고를 것 같아요. 이 책은 2003 년에 제가 출판했던 [검은 꽃]이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2003 년에 출간 됐으니까 이제 벌써 한 7 년 전에 쓴 소설인데요. 네, 그 아홉 권이 책 중에서 굳이 이 소설을 권하는 것은 우열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 소설에 대해서 제가 갖고 있는 어떤...그런 애정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2003 년에 이 소설을 낼 무렵에 개인적으로 좀 '아..작가로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을 계속 고민하던 시기였는데요. 이 소설을 쓰면서 저 자신이 좀 확고하게 '아..내가 작가로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던 그런 소설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그 저로서는 좀 모험이었는데요. 그 과테말라와 멕시코로 떠나서 취재를 하면서, 취재를 하고 거기에 머물면서 소설을 썼습니다. 이 과테말라는 그 당시에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치안이 별로 안정되어있지 않아서요 수퍼마켓 같은 데에 가도 전부 철창이 쳐있고 밖에는 총을 든 경비원들이 서 있곤 했습니다. 그런 곳이었죠. 그런데에 머물면서..이 소설의 배경이 됐던 곳이기 때문에 거기서 직접 쓴다는 것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이 소설의 앞부분을 쓰고요 그 뒤에 한국에 돌아와서 나머지 부분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의 특히 뒷부분을 쓸 무렵에는 (그때 이제 서울에 있었습니다만) 뒷부분을 쓸 무렵에는 상당히 어떤 격렬한 감정의 격동 같은 것은 글쎄요...처음 경헙했다고 할까요? 이전에 소설..단편소설이라든가 다른 장편소설을 쓸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깊은 격동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뒤에 작가후기에도 썼습니다만,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책상으로 달려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 아침에 눈을 뜨면 좀 다른 일을 하잖아요. 바로 일도 들어가기 뭐하니까 이런저런 딴전을 피우는데, 이 소설을 쓰던 시절에는 바로 그 책상 앞으로 달려가서 어제 쓰던 부분을 이어서 계속 쓰고싶은 충동들을 강하게 느끼곤 했던 그런 소설입니다. 네, 오늘은 이 작품의 앞부분을 읽어보도록 하겠는데요. 뭐 사실 제가 쓴 소설이니까 저작권에 문제 없이 전편을 다 읽을 수도 있습니다만..일단은 앞부분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물풀들로 흐느적거리는 늪에 고개를 처박은 이정의 눈앞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오래 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제물포의 풍경이었다. 사라진 것은 없었다. 피리 부는 내시와 도망중인 신부, 옹니박이 박수무당, 노루피 냄새의 소녀, 가난한 황족과 굶주린 제대 군인, 혁명가의 이발사까지, 모든 이들이 이 환한 얼굴로 제물포 언덕의 일본식 건물 앞에 모여 이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감았는데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이토록 선명할까. 이정은 의해하며 눈을 떴다. 그러자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의 폐 속으로 더러운 물과 플랑크톤이 밀려들어왔다. 군홧발이 목덜미를 눌러 그의 머리를 늪 바닥 깊숙이 처박았다.

그들은 아주 멀리에서 왔다. 입 속에서 굵은 모래가 서걱거렸다. 벽이 없는 천막으로 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떠나온 나라에선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1904 년 2월 일본은 러시아에 선전포고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일본군은 조선에 상륙하여 서울을 장악하고 뤼순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했다. 이듬해 3월, 이와오가 이끄는 일본 육군 25만은 3월에 만주 펀텐에서 회전, 7만을 잃었으나 승리하였다.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일본 연합함대는 숨을 죽이고 로제스트벤스키 휘하의 발틱함대를 기다렸다. 전멸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길 발틱함대는 제 운명을 모른 채 희망봉을 돌아 극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해 본, 제물포한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걸하는 거지들, 단발의 사내들,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자와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총망라된 궁중이었다. 십 년 전 고종이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단발령을 공포한 이래 짦은 머리가 유행하고 있었다. 일본의 압력으로 상투를 자른 왕은 그해 일본과 아버지가 보낸 자객에게 왕후까지 일었다. 난자당한 그녀의 시체에 일본 낭인들은 불을 질렀다. 어려서부터 기른 머리와 오래도록 함께 지낸 아내를 한거번에 읽은 왕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재기를 도모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몇 년 후, 왕국은 제국이 되고 왕은 황제가 되었으나 그에겐 힘이 없었다. 바로 그해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필리핀을 얻었다. 아시아를 향해 볼려오는 열강들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힘없는 황제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개항 이후 제물포는 서양과 일본, 중국의 새로운 문물이 밀려들어오는 분주한 항구로 변모하였다.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된 같판들이 이곳이 조선 제일의 국제항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경사진 언덕 위로 일본인 거류지와 르네상스 풍의 일본 영사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연해의 섬과 내륙의 산에는 나무가 없어 마치 토탄을 쌓아놓은 야적지처럼 보였다. 민가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짚으로 겪은 지붕은 낮고 둥글게 지표 가까이 엎드려 있어 눈에 띄지 않았다. 희 무명 띠를 머리게 두른 조선인 지게꾼들이 열을 지어 걸어가면 맨발의 아이들이 뒤를 따라 뛰어다녔아. 일본 영사관 근처에선 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걸러가는 일본 여자들이 보였다. 봄 햇살이 눈부셨지만 여인들은 땅을 보고 걸었다. 착검한 소총을 들고 경게를 서는 검은 제복의 일본 군인들이 곁눈으로 여인들의 행진을 훔쳐보았다. 기모노 행렬은 유럽풍의 목조건물 앞을 지났다. 건물 정명에는 '영국 영사관'이라고 씌어진 작은 목간판이 걸려 있었다. 한 서양인이 그곳에서 나와 부두로 내려갔다.

멀리 뤼순 항 포위공격에 가담했던 일본 제국의 함대가 욱일승천기를 높이 걸고 남쪽으로 항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뱃전의 검은 함포가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소년은 배 밑창 선실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구석에 맞춤한 공간이 있었다. 몸을 한껏 웅크린 후 가져온 웃가지를 이불 삼아 덮었다. 그러고는 동굴처럼 침침한 선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가족 단위로 승선한 사람들은 둥그런 원을 만들어 모여 있었다. 가슴이 봉긋한 딸을 거느린 사내들의 신경은 날카로웠다. 핏발이 흰자위를 어지럽게 가로질렀다. 얼핏 보기에도 남자의 수효가 여자보다 다섯 배는 많아 보였다. 그런 만큼 여자들이 어딘가로 움직이기라도 하면 남자들의 시선은 은밀하고도 집요하게 그들을 좇았다. 4 년이다. 그 동안을 함께할 사람들이고 여자들인 것이다. 어떤 소녀는 혼기에 다다를 것이요, 그렇다면 자신의 짝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혼자인 남자들은 생각했다. 소년은 그렇게까지 치밀하지는 않았으나 피가 뜨거운 나이였으니 모든 것에 민감하였다. 벌써 며칠째 소년의 꿈은 뒤숭숭하였다. 한 소녀가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나타나 소년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의 귓불과 더벅머리를 섬섬옥수로 쓰다듬어주는 것은 양반이었고 때론 온통 벗은 몸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선잠을 깨우곤 하였다.


Episode 24 - 김영하 “검은 꽃" - Part 1 Episode 24 - Youngha Kim "Black Flower"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Writer Kim Young-ha's'Book Reading Time' Podcast 안녕하세요.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진행하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이제는 완연히 가을입니다. 가을도 조금있으면 갈 것 같은 그런 시간이죠? Isn't it such a time when it's likely to go if there's a little fall? 요새는 걸어다니다 보면 나무들이 잎을 다 잃어가고 있는 그런 시기입니다. The fortress is a time when trees are losing all their leaves when walking around. 색이 변하다가 잎들을 떨구면서 겨울을 날 준비를 하는 것이죠. The color changes and then the leaves fall, preparing for winter. 자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생각을 하다가요 네, 오랜만에 제 책을 하나 읽어볼까 생각을 했습니다. Now, I was thinking about what kind of book to read. Yes, I thought about reading my book after a long time. 지금까지 제가 다섯 권의 장편소설과 네 권의 단편집을 냈습니다. So far, I have published five feature novels and four short stories. 책이, 아홉 권이 소설이 됐으니까요. Because books, nine volumes became novels. 많은 분들이.. 뭐 많이 다 읽어보신 분들도 계시겠고, 아직 제 소설을 전혀 읽어보지 않은 분도 있으실텐데, 만약 어떤 분이 저한테 '나는 시간이 너무너무 없고, 당신 소설을 단 한 권 밖에 읽을 수가 없는데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겠느냐?' 라고 저에게 질문을 한다면, 저는 아마 주저없이 이 책을 고를 것 같아요. 이 책은 2003 년에 제가 출판했던 [검은 꽃]이라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2003 년에 출간 됐으니까 이제 벌써 한 7 년 전에 쓴 소설인데요. 네, 그 아홉 권이 책 중에서 굳이 이 소설을 권하는 것은 우열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 소설에 대해서 제가 갖고 있는 어떤...그런 애정 같은 것입니다. Yes, it is not a matter of superiority and inferiority that I would recommend this novel among those nine books, but it is something I have... such a love for this novel. 그래서  이 2003 년에 이 소설을 낼 무렵에 개인적으로 좀 '아..작가로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So, when I was writing this novel in 2003, I personally asked,'Ah..Can I live well as a writer?' 이런 문제들을 계속 고민하던 시기였는데요. It was a time when I kept worrying about these problems. 이 소설을 쓰면서 저 자신이 좀 확고하게 '아..내가 작가로서 평생을 살아갈 수 있겠구나.' As I wrote this novel, I made myself a little firmly saying,'Ah...I can live my whole life as a writer.' 생각을 하게 되었던 그런 소설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그 저로서는 좀 모험이었는데요. So it was an adventure for me at the time. 그 과테말라와 멕시코로 떠나서 취재를 하면서, 취재를 하고 거기에 머물면서 소설을 썼습니다. I went to Guatemala and Mexico to report, while I covered and stayed there to write a novel. 이 과테말라는 그 당시에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치안이 별로 안정되어있지 않아서요 수퍼마켓 같은 데에 가도 전부 철창이 쳐있고 밖에는 총을 든 경비원들이 서 있곤 했습니다. This Guatemala at the time (it still is) wasn't very secure, so even if you went to a supermarket or something like that, all had bars and there were guards with guns standing outside. 그런 곳이었죠. 그런데에 머물면서..이 소설의 배경이 됐던 곳이기 때문에 거기서 직접 쓴다는 것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By the way, staying in... It was a place that became the background of this novel, so it meant a lot to me to write directly there. 거기서 이 소설의 앞부분을 쓰고요 그 뒤에 한국에 돌아와서 나머지 부분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There I wrote the first part of this novel, and after that, I came back to Korea to finish the rest. 이 소설의 특히 뒷부분을 쓸 무렵에는 (그때 이제 서울에 있었습니다만) 뒷부분을 쓸 무렵에는 상당히 어떤 격렬한 감정의 격동 같은 것은 글쎄요...처음 경헙했다고 할까요? Especially when I was writing the later part of this novel (I was in Seoul now), there was quite a bit of a violent emotional upheaval by the time I was writing the back part. 이전에 소설..단편소설이라든가 다른 장편소설을 쓸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깊은 격동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I remember feeling a deep upheaval that I didn't experience when writing novels, short novels, or other feature novels. 그래서 이 소설의 뒤에 작가후기에도 썼습니다만,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책상으로 달려가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So I wrote it in the author's review after this novel, but when I wake up in the morning, I feel like I want to run to my desk right away. 보통 아침에 눈을 뜨면 좀 다른 일을 하잖아요. Usually when you open your eyes in the morning, you do something different. 바로 일도 들어가기 뭐하니까 이런저런 딴전을 피우는데, 이 소설을 쓰던 시절에는 바로 그 책상 앞으로 달려가서 어제 쓰던 부분을 이어서 계속 쓰고싶은 충동들을 강하게 느끼곤 했던 그런 소설입니다. 네, 오늘은 이 작품의 앞부분을 읽어보도록 하겠는데요. Yes, today I will read the first part of this work. 뭐 사실 제가 쓴 소설이니까 저작권에 문제 없이 전편을 다 읽을 수도 있습니다만..일단은 앞부분을 먼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Well, since it's a novel I've written, I can read the entire part without any copyright issues.. First, I'll read the first part.

물풀들로 흐느적거리는 늪에 고개를 처박은 이정의 눈앞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Too many things flocked in front of Lee Jung's eyes, headed in the swamps sobbing with water grass. 오래 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제물포의 풍경이었다. 사라진 것은 없었다. 피리 부는 내시와 도망중인 신부, 옹니박이 박수무당, 노루피 냄새의 소녀, 가난한 황족과 굶주린 제대 군인, 혁명가의 이발사까지, 모든 이들이 이 환한 얼굴로 제물포 언덕의 일본식 건물 앞에 모여 이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From the piped eunuch and the fleeing bride, the Ongnibak applause, the girl with the smell of norupi, the impoverished royal family and the hungry veteran, and the barber of a revolutionary, everyone gathered in front of the Japanese-style building on Chemulpo Hill with this bright face, waiting for the transition. 눈을 감았는데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이토록 선명할까. I closed my eyes and how could all this be so clear? 이정은 의해하며 눈을 떴다. 그러자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의 폐 속으로 더러운 물과 플랑크톤이 밀려들어왔다. 군홧발이 목덜미를 눌러 그의 머리를 늪 바닥 깊숙이 처박았다.

그들은 아주 멀리에서 왔다. 입 속에서 굵은 모래가 서걱거렸다. 벽이 없는 천막으로 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떠나온 나라에선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1904 년 2월 일본은 러시아에 선전포고했다.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일본군은 조선에 상륙하여 서울을 장악하고 뤼순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했다. 이듬해 3월, 이와오가 이끄는 일본 육군 25만은 3월에 만주 펀텐에서 회전, 7만을 잃었으나 승리하였다.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의 일본 연합함대는 숨을 죽이고 로제스트벤스키 휘하의 발틱함대를 기다렸다. Admiral Heihachiro Dogo's Japanese allied fleet held their breath and waited for the Baltic fleet under Rozestbensky. 전멸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길이 남길 발틱함대는 제 운명을 모른 채 희망봉을 돌아 극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The Baltic Fleet, which will leave its name in history by being annihilated, turned around the Cape of Good Hope and headed for the Far East without knowing my fate.

그해 본, 제물포한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구걸하는 거지들, 단발의 사내들,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자와 코흘리개 아이들까지 총망라된 궁중이었다. It was a court that encompassed beggars, short-haired men, women in skirts and jackets, and children with nosebleeds. 십 년 전 고종이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단발령을 공포한 이래 짦은 머리가 유행하고 있었다. 일본의 압력으로 상투를 자른 왕은 그해 일본과 아버지가 보낸 자객에게 왕후까지 일었다. The king, who had cut his coat of arms under Japanese pressure, stood up to the queen of Japan and the assassin sent by his father that year. 난자당한 그녀의 시체에 일본 낭인들은 불을 질렀다. Japanese ancestors set fire to her ovum. 어려서부터 기른 머리와 오래도록 함께 지낸 아내를 한거번에 읽은 왕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겨 재기를 도모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몇 년 후, 왕국은 제국이 되고 왕은 황제가 되었으나 그에겐 힘이 없었다. Years later, the kingdom became an empire, and the king became emperor, but he was powerless. 바로 그해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필리핀을 얻었다. 아시아를 향해 볼려오는 열강들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힘없는 황제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The powerless emperor suffered from insomnia.

개항 이후 제물포는 서양과 일본, 중국의 새로운 문물이 밀려들어오는 분주한 항구로 변모하였다. After the port was opened, Chemulpo was transformed into a bustling port where new cultures from the West, Japan, and China flow in.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로 된 같판들이 이곳이 조선 제일의 국제항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Dungeons in English, Chinese and Japanese showed that this is the No. 1 international port of Joseon. 경사진 언덕 위로 일본인 거류지와 르네상스 풍의 일본 영사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A Japanese settlement and a Renaissance-style Japanese consulate sit on the sloping hills. 그러나 연해의 섬과 내륙의 산에는 나무가 없어 마치 토탄을 쌓아놓은 야적지처럼 보였다. However, there were no trees on the coastal islands and inland mountains, so it looked like a pile of peat. 민가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짚으로 겪은 지붕은 낮고 둥글게 지표 가까이 엎드려 있어 눈에 띄지 않았다. However, the roof that suffered from straw was low and round, lying prone near the surface, and was inconspicuous. 희 무명 띠를 머리게 두른 조선인 지게꾼들이 열을 지어 걸어가면 맨발의 아이들이 뒤를 따라 뛰어다녔아. When the Korean carriers, who wore hee-cotton bands, walked in rows, the barefoot children ran behind them. 일본 영사관 근처에선 다리를 부지런히 놀리며 걸러가는 일본 여자들이 보였다. 봄 햇살이 눈부셨지만 여인들은 땅을 보고 걸었다. The spring sun was dazzling, but the women looked at the ground and walked. 착검한 소총을 들고 경게를 서는 검은 제복의 일본 군인들이 곁눈으로 여인들의 행진을 훔쳐보았다. Japanese soldiers in black uniforms standing lightly with rifled rifles stared at the women's march with their side eyes. 기모노 행렬은 유럽풍의 목조건물 앞을 지났다. The kimono procession passed in front of the European-style wooden structure. 건물 정명에는 '영국 영사관’이라고 씌어진 작은 목간판이 걸려 있었다. 한 서양인이 그곳에서 나와 부두로 내려갔다.

멀리 뤼순 항 포위공격에 가담했던 일본 제국의 함대가 욱일승천기를 높이 걸고 남쪽으로  항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In the distance, the Japanese imperial fleet, which had been involved in the siege of the port of Lushun, was seen marching southward with the Rising Sun Flag high. 뱃전의 검은 함포가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The black guns on the ship were greased with oil.

소년은 배 밑창 선실에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구석에 맞춤한 공간이 있었다. 몸을 한껏 웅크린 후 가져온 웃가지를 이불 삼아 덮었다. 그러고는 동굴처럼 침침한 선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Then I looked inside the cabin, which was dim like a cave. 가족 단위로 승선한 사람들은 둥그런 원을 만들어 모여 있었다. 가슴이 봉긋한 딸을 거느린 사내들의 신경은 날카로웠다. The nerves of the guys who had daughters with swelling hearts were sharp. 핏발이 흰자위를 어지럽게 가로질렀다. 얼핏 보기에도 남자의 수효가 여자보다 다섯 배는 많아 보였다. 그런 만큼 여자들이 어딘가로 움직이기라도 하면 남자들의 시선은 은밀하고도 집요하게 그들을 좇았다. 4 년이다. 그 동안을 함께할 사람들이고 여자들인 것이다. They are people and women who will be with them. 어떤 소녀는 혼기에 다다를 것이요, 그렇다면 자신의 짝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Some girls are going to get married, and if so, maybe they could be their mate. 혼자인 남자들은 생각했다. 소년은 그렇게까지 치밀하지는 않았으나 피가 뜨거운 나이였으니 모든 것에 민감하였다. 벌써 며칠째 소년의 꿈은 뒤숭숭하였다. 한 소녀가 이렇게도 또 저렇게도 나타나 소년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의 귓불과 더벅머리를 섬섬옥수로 쓰다듬어주는 것은 양반이었고 때론 온통 벗은 몸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그의 선잠을 깨우곤 하였다. It was the nobleman who stroked his earlobe and head with island corn, and sometimes he would rush to him with a naked body to wake him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