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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20 - 정이현 (Jung Yihyun) - Part 4

Episode 20 - 정이현 (Jung Yihyun) - Part 4

토요일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오니 Q매장의 전화번호가 삐삐에 찍혀 있었다.

"너 오늘 하루만 아르바이트해라, 우리 매니저 언니네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언니 급하게 시골 내려갔거든. 본사 지원은 내일이나 되어야 나온다고 하고, 세일이라 손님 많을텐데 하루만 도와줘."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옷장을 열어보았다. 아무래도 Q브랜드의 옷을입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작년 봄 시즌에 산 Q브랜드의 흰색 남방셔츠를 찾아 입었다. 밑에는 이대 앞 보세가게에서 산 블랙스커트를 입었는데 언젠가 R이, 우리 옷이구나, 라고 착각했던 치마였다.

Q매장에는 R과 처음 보는 남자가 함께 있었다.

"대리님, 오늘 저희 매장 일일 지원이에요." R이 나를 소개했다. 남자는 내 주민등록증을 받아 몇 가지를 베껴 적었다. 그리고 말했다.

"제복으로 갈아입으세요." 나보다 더 당황한 것은 R이었다.

"아니, 얘는 오늘 하루 알반데 유니폼을 왜 입어요?" "원래 규정이 그렇잖아." "그동안 안 그랬어요." "안 입었던 사람들이 잘못한 거야." "그래도 얘는 학생이고 제 친구라서 그냥 오늘 하루만 잠깐 도와주는 거예요, 한번만 봐주세요." 학생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움찔했다. R의 태세는 강경했다. 지나는 사람이 봤다면, 그 대리가 나에게 입히려는 것이 삼풍백화점 판매원 유니폼이 아니라 죄수복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내가 R을 말렸다.

"나는 괜찮아, 그냥 입지 뭐." R이 나를 보았다. 어린 소처럼 어글어글한 눈망울이었다.

"너 진짜 괜찮아?"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당연하지, 그게 뭐 어때서." "대리님 그럼 얘 가슴에 명찰 하나 달아주세요. 지원 아르바이트라고요." 유니폼은 내 몸에 딱 맞았다. 나는 완벽한 교복자율화 세대였다. 국민학교 때 걸 스카우트 단복을 입었던 이래로 아주 오랜만에 입어보는 제복이었다. 유니폼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상하게, 그렇게 느껴졌다. 아무렇게나 입고 서서 아무런 말이나 툭툭 던지며, R의 일을 도와주던 때와는 모든 것이달랐다. 정오가 지나자 손님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할 건 많은데 몸은 굼뜨고 일은 서툴렀다.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기는커녕 사이즈를 찾아달라는 주문에도 땀이 뻘뻘 흘러내렸다. R이 열심히 커버해주었지만 그녀가 재고를 찾기 위해 창고에 들어가거나 다른 손님을 응대하고 있을 때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가 없었다. 먼저 들어온 손님의 소맷단을 핀으로 표시하고 있으면 나중에 들어온 다른 손님이 버럭 신경질을 내기 일쑤였다.

"삼십 프로 디스카운트해서 이 블라우스가 얼마야?" 십오만 원도 아니고 십사만 팔천 오백 원의 삼십 퍼센트가 얼마인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더구나 나는 아라비아 숫자만 보면 머리가 핑핑 도는 인간이 아닌가. 나는 R을 쳐다보았다. 저편의 R의 손님이 마음에 들어하는 흰 바지에 어울릴 웃옷을 골라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계산대의 캐셔도 정신없이 바빠보였다.

"아가씨, 뭐해? 얼른 계산 좀 해줘. 이렇게 네 벌 할 거고. 삼십 퍼센트로 계산해봐봐." 나는 신중하게 전자계산기를 두드렸다. 바빴던 캐셔가, 내 엉성한 산수를 재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백만 원권 수표를 내고 거스름까지 받아 돌아갔던 손님이 다시 나타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 계산 어떤 년이 한 거야?" 년,이라는 발음을 그녀는 눈 하나 깜짝 않고 했다. 그 욕이 지시하는 대상이 나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왜 그러시죠?" R이 나를 막고 나섰다.

"아까 아가씨가 아니잖아, 저기 쟤가 계산했는데." "저 사람은 우리 아르바이트생이구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돼요." "아니, 무슨 저런 기본도 안된 아르바이트생을 써? 중학교도 못 나왔어? 이깟 덧셈뺄셈도 못해?" 어쨌거나 기본도 안된 아르바이트생이 틀림없었으므로 나는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얼른 다시 계산해드리겠습니다." R이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사만 원 가량이 어디서 보태졌는지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머지 돈을 돌려받은 손님은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마네킹의 목에 걸린 스카프를 벗겨냈다.

"화가 나서 그냥은 못 가겠어. 내가 저 멍청한 애 때문에 여기서 허비한 시간이 얼만데 이거 보상금 대신 가져가는 거야. 쟤 일당에서 까든지 알아서 해." R이 손님 손의 스카프를 낚아챘다.

"손님, 이건 정품이라서 곤란하구요. 저희가 다른 사은품 드릴게요." 손님이 다시 스카프를 뺏으며 언성을 높였다.

"누가 허접한 사은품 받고 싶대? 난 이게 마음에 들어서 가져가겠다는데 왜 이래?" 소동은 아까의 그 대리라는 남자가 달려오고 나서야 종결되었다. 손님은 결국 스카프를 쇼핑백 귀퉁이에 밀어넣은 채 당당히 사라졌다. 대리의 가시 돋친 잔소리를 듣는 동안 R은입술만 꼭 깨물고 있었다. 나는, 나는 거기서 도망쳐버리고만 싶었다. 대리가 돌아간 뒤 R이나에게 말했다.

"나 때문에 괜히 미안해." 지나고 보니 내가 먼저 했어야 할말이었다.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너 괜찮아?" R의 눈동자가 잔잔하게 흔들렸다. 그럼, 이런 건 일축에도 안 끼는 걸. R이 내 유니폼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주었다.

"오늘은 수고했어, 이제 바쁜시간 대충 지났으니까 그만 가라."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일한 건 내가 나중에따로 정산해줄게, 얼른 옷 갈아입어." "혼자 있어도 돼? 응, 나 혼자가 편해, 빨리 갈아입어." R이 나를 고객용 탈의실로 떠밀었다. 탈의실에서 나는 삼풍백화점 판매원의 제복을 벗고, 내옷으로 갈아입었다. 흰 남방셔츠와 검은색 치마. 유니폼이 아닌데도 그 옷들은 참 무거웠다. 철근이 어깨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Q매장에 온 지 고작 네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R을 남겨두고 황급히 백화점을 떠났다. 분홍색 삼풍백화점 건물이 쿵쿵, 나를 따라오는 것같았다.

한 때 가까웠던 누군가와 멀어지게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어른이 된 다음에는 특히 그렇다. 그 일이 있은 뒤,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취직을 했다. 동물 사료를 수입하는 회사였다. 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동물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마케팅 팀에 배속되어 연구용 실험동물을 위한 사료를 팔았다. 햄스터는 하구 10~14그램의 열량을 섭취해야 하고, 랫은 15~20그램을 먹어야 한다. 토끼에게는 적어도 120그램 이상이 필요하다. R과 나는 서로에게 삐삐를 치지 않았다. 회사 복도 자판기 밀크커피는 R이 타준 커피에 비해 형편없었다. 우리 회사 제품을 사용하는 서울 경기 지역의 병원과 대학 실험실에 인사를 도느라 봄이 어지러이 깊어가는 것도 몰랐다. 안국동의 회사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평일엔 정장을 입어야 했지만 토요일엔 청바지도 입을 수 있었다.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몇 번인가 전화기를 들었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남자친구도 생겼다. 증권회사의 신입사원인 그와 만나면, 주로 서로의 회사생활에 대해 얘기 했다. 그는 내가 귀여워서 좋다고 했다.

"귀엽다는 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너 예쁘지는 않지만 귀엽게 생겼잖아. 피부도 하얗고, 웃을 때 양쪽 눈가에 주름이 세 개씩 잡히거든." 그는 기형도가 한려수도쯤에 있는 외딴 섬 이름인 줄 알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선하고 밝아서 나쁘지 않았다. 그해 봄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비교적 온화한 중도우파의 부모, 슈퍼 싱글사이즈의 깨끗한 침대, 반투명의 초록색 모토로라 호출기와 네 개의 핸드백, 구태의연한 것들이었다. 봄이 가고 무기력하게, 여름이 오고 있었다.

1989년 12월 개장한 삼풍백화점은 지상 5층, 지하 4층의 초현대식 건물이었다. 1995년 6월29일. 그날, 에어컨디셔너는 작동되지 않았고 실내는 무척 더웠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언제 여름이 되어버린 거지?" 5시 40분, 1층 로비를 걸으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5시 43분, 정문을 빠져나왔다. 5시 48분, 집에 도착했다. 5시 53분, 얼룩말 무늬 일기장을 펼쳤다. '나는 오늘', 이라고 썼을 때 쾅, 소리가 들렸다. 5시 55분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 한 층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1초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내 초록색 반투명 모토로라 삐삐에 안위를 묻는 메시지들이 가득 찼다. 저녁을 짓다 말고 찌개에 넣을 두부를 사러 삼풍백화점 슈퍼마켓에 간 아랫집 아주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다. 도마 위에는 반쯤 썬 대파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며칠 뒤 조간신문에는 사망자와 실종자 명단이 실렸다. 나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옆면에는 한 여성 명사가 기고한 특별칼럼이 있었다. 호화롭기로 소문났던 강남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대한민국이 사치와 향락에 물드는 것을 경계하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나는 신문사 독자부에 항의전화를 걸었다. 신문사에는 필자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독자부의 담당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가 거기 한번 와 본적이나 있대요? 거기 누가 있는지 안대요?" 나는 하아하아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전화를 들고 있어 주었던 그 신문사 직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맙게 생각한다.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230시간을 버틴 청년이 구조되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285시간을 버틴 소녀도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TV만 보았다. 남자친구가 나를 걱정했다.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는 거야. 군대에서 의무병으로 근무할 때 나는 여러 죽음들을 보았어. 외삼촌이 육군 장성이라 손을 쓸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억지로 나를 그곳에 보냈지."


Episode 20 - 정이현 (Jung Yihyun) - Part 4 Episode 20 - Jung Yihyun - Part 4

토요일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세수를 하고 오니 Q매장의 전화번호가 삐삐에 찍혀 있었다. It was Saturday, and when I got up late and came to wash my face, the phone number of the Q store was stamped on the page.

"너 오늘 하루만 아르바이트해라, 우리 매니저 언니네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언니 급하게 시골 내려갔거든. "You have to work part-time for just one day, because my manager, your grandmother, died suddenly, and you hurried down to the countryside. 본사 지원은 내일이나 되어야 나온다고 하고, 세일이라 손님 많을텐데 하루만 도와줘." It is said that the support from the headquarters will only come out tomorrow, and there will be a lot of customers because it is a sale.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I replied that I knew. 옷장을 열어보았다. I opened the closet. 아무래도 Q브랜드의 옷을입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작년 봄 시즌에 산 Q브랜드의 흰색 남방셔츠를 찾아 입었다. I think it would be better to wear Q brand clothes, so I found a white southern shirt from Q brand that I bought last spring season. 밑에는 이대 앞 보세가게에서 산 블랙스커트를 입었는데 언젠가 R이, 우리 옷이구나, 라고 착각했던 치마였다. Underneath, I wore a black skirt that I bought at a bonded store in front of Ewha Womans University, but it was a skirt that one day I misunderstood that R is our clothes.

Q매장에는 R과 처음 보는 남자가 함께 있었다. At the Q store, R and a man I've never seen before.

"대리님, 오늘 저희 매장 일일 지원이에요." "Deputy, this is our daily support for our store today." R이 나를 소개했다. 남자는 내 주민등록증을 받아 몇 가지를 베껴 적었다. The man took my ID card and copied several things. 그리고 말했다.

"제복으로 갈아입으세요." "Please change into a uniform." 나보다 더 당황한 것은 R이었다. What was more embarrassing than me was R.

"아니, 얘는 오늘 하루 알반데 유니폼을 왜 입어요?" "No, why is he wearing a uniform today?" "원래 규정이 그렇잖아." "That's the original rule." "그동안 안 그랬어요." "안 입었던 사람들이 잘못한 거야." "그래도 얘는 학생이고 제 친구라서 그냥 오늘 하루만 잠깐 도와주는 거예요, 한번만 봐주세요." 학생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움찔했다. R의 태세는 강경했다. R's stance was tough. 지나는 사람이 봤다면, 그 대리가 나에게 입히려는 것이 삼풍백화점 판매원 유니폼이 아니라 죄수복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Had anyone seen it, they would have guessed that it was not the uniform of the salesman at Sampoong Department Store, but a prisoner's suit that the deputy was trying to wear on me. 내가 R을 말렸다. I dried R

"나는 괜찮아, 그냥 입지 뭐." R이 나를 보았다. 어린 소처럼 어글어글한 눈망울이었다. It was like a small cow.

"너 진짜 괜찮아?"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I smiled bloody.

"당연하지, 그게 뭐 어때서." "Of course, how is that?" "대리님 그럼 얘 가슴에 명찰 하나 달아주세요. 지원 아르바이트라고요." 유니폼은 내 몸에 딱 맞았다. The uniform fit my body. 나는 완벽한 교복자율화 세대였다. I was the perfect school uniform autonomous generation. 국민학교 때 걸 스카우트 단복을 입었던 이래로 아주 오랜만에 입어보는 제복이었다. It's been a long time since I wore a girl scout uniform in elementary school. 유니폼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이상하게, 그렇게 느껴졌다. 아무렇게나 입고 서서 아무런 말이나 툭툭 던지며, R의 일을 도와주던 때와는 모든 것이달랐다. 정오가 지나자 손님들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할 건 많은데 몸은 굼뜨고 일은 서툴렀다. 손님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주기는커녕 사이즈를 찾아달라는 주문에도 땀이 뻘뻘 흘러내렸다. Rather than choosing clothes that suit the customers, sweat poured down when asked to find a size. R이 열심히 커버해주었지만 그녀가 재고를 찾기 위해 창고에 들어가거나 다른 손님을 응대하고 있을 때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가 없었다. 먼저 들어온 손님의 소맷단을 핀으로 표시하고 있으면 나중에 들어온 다른 손님이 버럭 신경질을 내기 일쑤였다. If the cuffs of the first visitor were marked with a pin, other guests who came in later were often nervous.

"삼십 프로 디스카운트해서 이 블라우스가 얼마야?" 십오만 원도 아니고 십사만 팔천 오백 원의 삼십 퍼센트가 얼마인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더구나 나는 아라비아 숫자만 보면 머리가 핑핑 도는 인간이 아닌가. 나는 R을 쳐다보았다. 저편의 R의 손님이 마음에 들어하는 흰 바지에 어울릴 웃옷을 골라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계산대의 캐셔도 정신없이 바빠보였다. Even the cashier at the cashier seemed hectic.

"아가씨, 뭐해? "Mister, what are you doing? 얼른 계산 좀 해줘. Please do some math. 이렇게 네 벌 할 거고. 삼십 퍼센트로 계산해봐봐." Calculate it with thirty percent." 나는 신중하게 전자계산기를 두드렸다. I carefully tapped the calculator. 바빴던 캐셔가, 내 엉성한 산수를 재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The problem was that the busy cashier did not reaffirm my sloppy arithmetic.

백만 원권 수표를 내고 거스름까지 받아 돌아갔던 손님이 다시 나타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It wasn't long before the customer, who had returned to pay a check for one million won, and even received a change, reappeared.

"이 계산 어떤 년이 한 거야?" 년,이라는 발음을 그녀는 눈 하나 깜짝 않고 했다. 그 욕이 지시하는 대상이 나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I couldn't realize that I was the target of the curse.

"왜 그러시죠?" R이 나를 막고 나섰다.

"아까 아가씨가 아니잖아, 저기 쟤가 계산했는데." "저 사람은 우리 아르바이트생이구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돼요." "That person is our part-time job, you can tell me." "아니, 무슨 저런 기본도 안된 아르바이트생을 써? "No, what kind of non-basic part-time job student? 중학교도 못 나왔어? 이깟 덧셈뺄셈도 못해?" Can't you add or subtract this cat?" 어쨌거나 기본도 안된 아르바이트생이 틀림없었으므로 나는 고개만 푹 수그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얼른 다시 계산해드리겠습니다." R이 몇 번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R tightened his head again and again 사만 원 가량이 어디서 보태졌는지 알수 없는 노릇이었다. It was unclear where the 40,000 won was added. 나머지 돈을 돌려받은 손님은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마네킹의 목에 걸린 스카프를 벗겨냈다. The customer who received the rest of the money glanced at me once and removed the scarf from the mannequin's neck.

"화가 나서 그냥은 못 가겠어. "I just can't go because I'm angry. 내가 저 멍청한 애 때문에 여기서 허비한 시간이 얼만데 이거 보상금 대신 가져가는 거야. How much time I've wasted here because of that stupid kid, and I'm taking this instead of the reward. 쟤 일당에서 까든지 알아서 해." He does it on his own." R이 손님 손의 스카프를 낚아챘다. R snatched a scarf from a customer's hand.

"손님, 이건 정품이라서 곤란하구요. "Guests, this is a genuine product, so I am in trouble. 저희가 다른 사은품 드릴게요." We'll give you another gift." 손님이 다시 스카프를 뺏으며 언성을 높였다. The customer took the scarf again and raised his voice.

"누가 허접한 사은품 받고 싶대? "Who wants to get a crappy gift? 난 이게 마음에 들어서 가져가겠다는데 왜 이래?" I like this and I'm going to take it. 소동은 아까의 그 대리라는 남자가 달려오고 나서야 종결되었다. The commotion ended only when a man called the surrogate came in. 손님은 결국 스카프를 쇼핑백 귀퉁이에 밀어넣은 채 당당히 사라졌다. The customer finally disappeared with the scarf pushed into the corner of the shopping bag. 대리의 가시 돋친 잔소리를 듣는 동안 R은입술만 꼭 깨물고 있었다. While listening to the thorny nagging of the surrogate, R was biting only his lips. 나는, 나는 거기서 도망쳐버리고만 싶었다. I, I just wanted to run away from there. 대리가 돌아간 뒤 R이나에게 말했다.

"나 때문에 괜히 미안해." 지나고 보니 내가 먼저 했어야 할말이었다. It was something I should have said first as it passed.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너 괜찮아?" R의 눈동자가 잔잔하게 흔들렸다. R's eyes shook gently. 그럼, 이런 건 일축에도 안 끼는 걸. R이 내 유니폼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주었다.

"오늘은 수고했어, 이제 바쁜시간 대충 지났으니까 그만 가라." "You did a good job today, now that busy time has passed, stop going."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일한 건 내가 나중에따로 정산해줄게, 얼른 옷 갈아입어." "What I've worked so far, I'll pay for it later, change clothes quickly." "혼자 있어도 돼? 응, 나 혼자가 편해, 빨리 갈아입어." Yes, I'm comfortable alone, I change quickly." R이 나를 고객용 탈의실로 떠밀었다. R pushed me to the customer's changing room 탈의실에서 나는 삼풍백화점 판매원의 제복을 벗고, 내옷으로 갈아입었다. In the changing room, I took off the uniform of the salesman at Sampoong Department Store and changed into my own clothes. 흰 남방셔츠와 검은색 치마. A white southern shirt and a black skirt. 유니폼이 아닌데도 그 옷들은 참 무거웠다. Even though it was not a uniform, the clothes were very heavy. 철근이 어깨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It seemed that the rebar was pressing down on the shoulder. Q매장에 온 지 고작 네 시간이 지나 있었다. Q Only four hours have passed since I came to the store. 나는R을 남겨두고 황급히 백화점을 떠났다. 분홍색 삼풍백화점 건물이 쿵쿵, 나를 따라오는 것같았다.

한 때 가까웠던 누군가와 멀어지게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어른이 된 다음에는 특히 그렇다. This is especially true after becoming an adult. 그 일이 있은 뒤,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취직을 했다. 동물 사료를 수입하는 회사였다. It was a company that imported animal feed. 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동물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It was amazing that there are so many animals in this world. 나는 마케팅 팀에 배속되어 연구용 실험동물을 위한 사료를 팔았다. I was assigned to the marketing team and sold feed for research animals. 햄스터는 하구 10~14그램의 열량을 섭취해야 하고, 랫은 15~20그램을 먹어야 한다. Hamsters should eat 10-14 grams of calories in the mouth, and rats should eat 15-20 grams. 토끼에게는 적어도 120그램 이상이 필요하다. Rabbits need at least 120 grams. R과 나는 서로에게 삐삐를 치지 않았다. 회사 복도 자판기 밀크커피는 R이 타준 커피에 비해 형편없었다. Milk coffee, a vending machine in the company hallway, was poor compared to the coffee that R had made. 우리 회사 제품을 사용하는 서울 경기 지역의 병원과 대학 실험실에 인사를 도느라 봄이 어지러이 깊어가는 것도 몰랐다. I didn't even know that spring was getting deeper while greeting hospitals and university laboratories in the Gyeonggi area of Seoul that use our products. 안국동의 회사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I took the subway to the company in Anguk-dong. 평일엔 정장을 입어야 했지만 토요일엔 청바지도 입을 수 있었다. 그거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몇 번인가 전화기를 들었다가 그냥 내려놓았다.

남자친구도 생겼다. 증권회사의 신입사원인 그와 만나면, 주로 서로의 회사생활에 대해 얘기 했다. When I met him, a new employee at a securities company, we mainly talked about each other's corporate life. 그는 내가 귀여워서 좋다고 했다.

"귀엽다는 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너 예쁘지는 않지만 귀엽게 생겼잖아. 피부도 하얗고, 웃을 때 양쪽 눈가에 주름이 세 개씩 잡히거든." 그는 기형도가 한려수도쯤에 있는 외딴 섬 이름인 줄 알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선하고 밝아서 나쁘지 않았다. 그해 봄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비교적 온화한 중도우파의 부모, 슈퍼 싱글사이즈의 깨끗한 침대, 반투명의 초록색 모토로라 호출기와 네 개의 핸드백, 구태의연한 것들이었다. They were relatively gentle middle-right parents, a super single-sized clean bed, a translucent green Motorola pager and four handbags, and the old ones. 봄이 가고 무기력하게, 여름이 오고 있었다. Spring was passing and summer was coming, helpless.

1989년 12월 개장한 삼풍백화점은 지상 5층, 지하 4층의 초현대식 건물이었다. Sampoong Department Store, which opened in December 1989, was an ultra-modern building with 5 stories above the ground and 4 stories below the ground. 1995년 6월29일. 그날, 에어컨디셔너는 작동되지 않았고 실내는 무척 더웠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언제 여름이 되어버린 거지?" "When has it been summer?" 5시 40분, 1층 로비를 걸으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5시 43분, 정문을 빠져나왔다. 5시 48분, 집에 도착했다. 5시 53분, 얼룩말 무늬 일기장을 펼쳤다. At 5:53, I opened my zebra-patterned diary. '나는 오늘', 이라고 썼을 때 쾅, 소리가 들렸다. When I wrote'I am today', I heard a bang. 5시 55분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 Sampoong Department Store collapsed. 한 층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1초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내 초록색 반투명 모토로라 삐삐에 안위를 묻는 메시지들이 가득 찼다. 저녁을 짓다 말고 찌개에 넣을 두부를 사러 삼풍백화점 슈퍼마켓에 간 아랫집 아주머니가 돌아오지 않았다. 도마 위에는 반쯤 썬 대파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며칠 뒤 조간신문에는 사망자와 실종자 명단이 실렸다. A few days later, a list of the dead and missing people appeared in the morning newspaper. 나는 그것을 읽지 않았다. I didn't read it. 옆면에는 한 여성 명사가 기고한 특별칼럼이 있었다. On the side was a special column contributed by a female celebrity. 호화롭기로 소문났던 강남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대한민국이 사치와 향락에 물드는 것을 경계하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The collapse of the Sampoong Department Store in Gangnam, which was rumored to be luxurious, was an article saying that it may be the will of the sky to warn the Republic of Korea from being stained with luxury and pleasure. 나는 신문사 독자부에 항의전화를 걸었다. I made a complaint call to the readers of the newspaper. 신문사에는 필자의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I told the newspaper that I couldn't give my contact information. 할 수 없이 나는 독자부의 담당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여자가 거기 한번 와 본적이나 있대요? 거기 누가 있는지 안대요?" Do you know who is there?" 나는 하아하아 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울음이 그칠 때까지 전화를 들고 있어 주었던 그 신문사 직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맙게 생각한다.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230시간을 버틴 청년이 구조되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I watched a young man rescued after 230 hours in concrete rubble. 285시간을 버틴 소녀도 있었다. There was a girl who lasted 285 hours.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TV만 보았다. 남자친구가 나를 걱정했다.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는 거야. 군대에서 의무병으로 근무할 때 나는 여러 죽음들을 보았어. While serving as a medic in the military, I saw several deaths. 외삼촌이 육군 장성이라 손을 쓸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억지로 나를 그곳에 보냈지." My uncle was an army general, so I could have used my hand, but my father forced me t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