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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18 -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Jose Saramaga) - Part 4

Episode 18 -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Jose Saramaga) - Part 4

그리고 이 신호등이라든가 이런 것들...그것은 하나의 사회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인데, 신호등이 중요하게 등장을 합니다. 신호등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 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요. 특히 앞부분에 보면은 '차들은 곧 내리 꽂힐 채찍을 의식하여 신경이 예민해진 말 처럼 앞뒤로 몸을 들썩였다.' 이것은 그냥 브레이크를 밟았다 놨다, 또는 클러치를 밟았다 놨다 하는 차들을 묘사하는 것 같지만 이 묘사 자체가 이들에게 닥칠 어떤 운명을 암시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대놓고 암시처럼 사용하지 않았다는 데에 주제 사라마구의 탁월한 점이 있습니다. 이 신호등이라는 건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뭐 농담들이 많이 있죠. 그 신호등에 관한 농담에는 서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파란불이 되도 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왜 안 가냐..사람들이 또 빵빵거리고, 이 소설의 첫 장면하고 비슷합니다. 빵빵거리는데 파란불이 되도 안 가고 빨간불이 되도 안 가고...안 가요 계속. 그래서 경찰이 와서 물었죠. 아니 당신 파란불인데 왜 안 가냐. 그랬더니, 저것은 충분히 파랗지 않다..이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저 색은 파란색이 아니라는 거..자기가 생각하는 파란색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것은 기호학에 관한 책에 나오는 농담인데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신호등에서 보는 파란색이라는 것은 파란색이라고 합의한 그 어떤 것이죠. 즉, 빨간색보다만 파라면 그것은 파란색인 것이죠. 그런데 이 사람이 볼 때 그것은 충분히 파랗지 않은 거예요.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는 파란색이 아닌 것이죠. 우리 나라에서도 녹색등화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또 푸른 신호등이라고도 하지만 또 파란색 신호등이라고도 부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어? 푸른 신호등은 green인데? 녹색인데? 저건 녹색이 아닌데? '라고 생각한다거나, 아니면 충분히 파랗지 않다고 녹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런 사람은 없잖아요. 그것은 사회적 합의일 뿐 정확한 색깔을 가르키기 위한 말이 아닌데, 이런 기호학적 훈련이 안 된 사람들은 그것을 반대 할 수 있죠. 그래서 저것은 파랗지 않다고 안 가는 거예요. 그런가 하면 좀 비슷한 농담이지만 약간 다른 농담은, 어떤 사람이 또 파란불이어도 안 가고, 빨간불이어도 안 가고 노란 불에도 안 가니까 경찰이 와서 이제 묻는 거죠. 저...왜 마음에 드는 색깔이 없으십니까? 뭐 이렇게 묻는 그런 농담도 있는데 뭐 그런식이죠. 이 신호등에 관해서는 서구에 농담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은 이 소설의 첫 부분은 그런 신호등에 관한 익숙한 농담들을 연상시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여간 이 소설을 소설을 시작하자 마자 바로 강력하게 독자들을 흡인하고요, 중요한 사건을 던지고, 뿐만 아니라 눈이 먼 사람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할 것이냐라는 어떤 윤리적인 문제들을 던지게 되는 것이죠. 사회가 잘 기능하고 있는데 눈이 먼 사람이 하나 출현하는데 눈이 먼 사람이 어디서 출현하는냐? 바로 절대로 눈이 먼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인 운전을 하던 사람이 눈이 머는 것에서 출발함으로서 그 갈등을 극대화 시켜놓고 주제 사라마구가 소설을 시작하고 있는 것 입니다. 결국 이 소설은 잘 아시다시피, 이 사람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죠. 눈이 먼 사람들 보면 마치 전염되듯이 또 눈이 멀고, 눈이 멀고, 이렇게 되서 전 사회가 이제 눈이 멀어가게 되는 과정입니다. 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른바 우리가 본격적인 문학이라고 하는 문학과 다른 여러가지 경항을 보이게 되는데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것 처럼 어떤 몽환적이거나 장식적인 문체를 쓰지 않는 다는 점도 그렇고요,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판타지에서나 쓸 법한 설정을 과감하게 본격문학으로 가져왔다는 점도..네..재밌습니다. 이런 점은 뭐 이것 뿐만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소설도 공유하고 있는 특성입니다. 추리소설의 기법을 가져와서 그것을 가지고 일단 독자를 자깃 소설의 세계속으로 초대한 다음에 그 다음 부터는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거죠. 이 주제 사라마구 같은 경우도 이런 어떤 공상 과학적 설정..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눈이 멀고 별다른 바이러스도 없이 계속해서 눈이 연달아서 먼다는 것인데, 근데 좋은 작가들은 이런 설정을 끌어 들인 다름에 이것을 설득력있게 과감하게 제시하고 그러면서도 뒤로가면 결국에는 중요한 윤리적인 문제들로 사람들을 끌고가게 됩니다. 과연 이렇게 눈먼 세계가 됐을 때, 눈 뜬 사람들의 세계에서 지켜지던 도덕 또는 약속 (예를 들면 신호등 같은 것이죠? 횡단보도 같은 것인데) 그런 것들 아주 사소한 약속, 그 밖에 더 중대한 약속이 있겠죠. 사람이 사람을..뭐 예를 들면 죽여서는 안 된다라든가..착취해선 안 된다라든가..뭐 이런 것이죠. 남의 아내를 빼앗아선 안 된다..라든가..이른바 성경의 십계명에 있을 것 같은 그런 여러가지 문제들을 과연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냐를 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런 이상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결국에는 '과연 그렇다면 이렇게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닌 눈뜬 사람들의 도시에서 이런 도덕은 과연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됨으로서, 이 소설을 어떤 단순한 공상과학 소설에서 깊이있는 문제를 다루는 인류의 어떤 문학적 유산으로 끌어 올리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눈먼 자들의 도시]가 연상시키는 소설들은 많이 있습니다. 특히 강력하게 이 소설이 환기시키는 소설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라는 소설이죠. 이 두 소설을 비교해서 보면 상당히 재밌습니다. 이 [페스트]라는 소설은 갑자기 페스트가 돌기 시작하는 한 도시,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죠. 역시 그 어떤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의사가 있습니다. 이 의사는 이 페스트가 돌고있는 도시에서 이 도시의 환자들을 돌보고, 여러가지 지도자의 역할을 맡기도 하고, 또 회의하는 철학자 역할을 맡기도 하는데 이 도시는 페스트가 돌고 있기 때문에 폐쇄되게 됩니다. 그 도시에 들어간 사람은 나올 수가 없고요. 이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이 도시가 폐쇄되는 운명을 겪게되고 그 안에서는 어떤 야만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카뮈가 묘사한 [페스트]의 도시보다 이 [눈먼 자들의 도시]는 좀 더 끔찍하고 좀 더 야만에 가깝습니다. 이 상태들은 우리 읽는 독자들을 전율하게 만드는데요. 특히 그 독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던 '아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는데'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한번 읽고 더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 뒤, 눈먼 깡패들은 여자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냥 우리에게 여자들을 보내라. '는 내용이었다. 특이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쨌는 예상치 못했던 이 요구 때문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항의하는 소리가 쏟아져나왔다. 그 말을 들은 당황한 병실 대표들은 즉시 병실로 돌아가 명령을 전달했다. 우병동의 세 병실과 좌병동의 두 병실, 그리고 바닥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 마저도 만장일치로 그 모욕적인 요구를 거절하시로 결정했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 이 경우에는 여성의 존엄성이 이 정도까지 짓밟힐 수는 없다, 좌병동 3호 병실에 여자가 없다 해도 다른 병실에서 그것을 책임져 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깡패들의 대답은 무뚝뚝했고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여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먹을 것도 주지 않는다.' 굴욕감에 사로잡힌 대표들은 병실로 돌아가 그 명령을 전했다.

"여자들이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먹을 것도 안 주겠답니다." 혼자 있는 여자들, 즉 짝이 없는, 적어도 고정된 짝이 없는 여자들은 즉시 항의했다. 그들은 남의 남자를 먹이기위해 자신들의 다리 사이에 있는 것으로 댓가를 지불할 생각은 없었다. 한 여자는 심지어 자신의 성에 대한 예의 마저 잊고 대담하게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나는 원한다면 갈거예요. 하지만 내가 버는 것은 다 내꺼예요. 그리고 마음에 들기만 하면 나는 그 병실에서 살거예요. 거기 가면 침대도 있고.. 내 먹을 것은 보장 받을 수 있잖아요?" 그녀는 분명하게 그렇게 말 했으나 분명하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욕정에 넘치는 스무명의 남자들 그렇게 다급해하는 것을 보면 혹시 욕정 때문에 눈이 먼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남자들의 성적인 광란을 혼자 감당해야 할 경우에 격어야할 무시무시한 일들이 제때에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우병동 2호 병실에서는 그녀가 가볍게 내뱉은 그 말이 미처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직업 의식이 투철한 대표하나가 얼른 그 말을 받아 '자원자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제안해버렸다.


Episode 18 -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Jose Saramaga) - Part 4 Episode 18 - Subject Saramagu [City of the Blind] (Jose Saramaga) - Part 4

그리고 이 신호등이라든가 이런 것들...그것은 하나의 사회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인데, 신호등이 중요하게 등장을 합니다. And these traffic lights and things like this... it means the promise of a society, and traffic lights are important. 신호등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 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요. 특히 앞부분에 보면은 '차들은 곧 내리 꽂힐 채찍을 의식하여 신경이 예민해진 말 처럼 앞뒤로 몸을 들썩였다.' In particular, in the front part,'the cars were conscious of the whip that would be put down soon, and they shook their bodies back and forth like a nervous horse.' 이것은 그냥 브레이크를 밟았다 놨다, 또는 클러치를 밟았다 놨다 하는 차들을 묘사하는 것 같지만 이 묘사 자체가 이들에게 닥칠 어떤 운명을 암시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대놓고 암시처럼 사용하지 않았다는 데에 주제 사라마구의 탁월한 점이 있습니다. 이 신호등이라는 건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에 뭐 농담들이 많이 있죠. There are a lot of jokes because this traffic light is a social promise. 그 신호등에 관한 농담에는 서양에는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파란불이 되도 안 가는 거예요. Even if some people turn blue, they don't go. 그래서 왜 안 가냐..사람들이 또 빵빵거리고, 이 소설의 첫 장면하고 비슷합니다. 빵빵거리는데 파란불이 되도 안 가고 빨간불이 되도 안 가고...안 가요 계속. It's fluttering, but it doesn't turn blue, it doesn't turn red... it doesn't go on. 그래서 경찰이 와서 물었죠. So the police came and asked. 아니 당신 파란불인데 왜 안 가냐. No, it's your blue light, so why aren't you going? 그랬더니, 저것은 충분히 파랗지 않다..이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Then, that's not blue enough... That's how you answer. 저 색은 파란색이 아니라는 거..자기가 생각하는 파란색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것은 기호학에 관한 책에 나오는 농담인데요. This is a joke from a book on semiotics. 다시 말해서 우리가 신호등에서 보는 파란색이라는 것은 파란색이라고 합의한 그 어떤 것이죠. 즉, 빨간색보다만 파라면 그것은 파란색인 것이죠. 그런데 이 사람이 볼 때 그것은 충분히 파랗지 않은 거예요.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는 파란색이 아닌 것이죠. 우리 나라에서도 녹색등화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또 푸른 신호등이라고도 하지만 또 파란색 신호등이라고도 부르지만, 우리는 그것을 '어? 푸른 신호등은 green인데? 녹색인데? 저건 녹색이 아닌데? '라고 생각한다거나, 아니면 충분히 파랗지 않다고 녹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런 사람은 없잖아요. 그것은 사회적 합의일 뿐 정확한 색깔을 가르키기 위한 말이 아닌데, 이런 기호학적 훈련이 안 된 사람들은 그것을 반대 할 수 있죠. 그래서 저것은 파랗지 않다고 안 가는 거예요. So that’s not going to go because it’s not blue. 그런가 하면 좀 비슷한 농담이지만 약간 다른 농담은, 어떤 사람이 또 파란불이어도 안 가고, 빨간불이어도 안 가고 노란 불에도 안 가니까 경찰이 와서 이제 묻는 거죠. 저...왜 마음에 드는 색깔이 없으십니까? 뭐 이렇게 묻는 그런 농담도 있는데 뭐 그런식이죠. 이 신호등에 관해서는 서구에 농담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은 이 소설의 첫 부분은 그런 신호등에 관한 익숙한 농담들을 연상시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Perhaps the first part of this novel is reminiscent of familiar jokes about such traffic lights. 하여간 이 소설을 소설을 시작하자 마자 바로 강력하게 독자들을 흡인하고요, 중요한 사건을 던지고, 뿐만 아니라 눈이 먼 사람을 사람들이 어떻게 대할 것이냐라는 어떤 윤리적인 문제들을 던지게 되는 것이죠. Anyway, as soon as you start a novel with this novel, it strongly aspirates readers, throws important events, and raises some ethical questions about how people will treat people who are blind. 사회가 잘 기능하고 있는데 눈이 먼 사람이 하나 출현하는데 눈이 먼 사람이 어디서 출현하는냐? The society is functioning well, but one blind person appears. Where does the blind person appear? 바로 절대로 눈이 먼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인 운전을 하던 사람이 눈이 머는 것에서 출발함으로서 그 갈등을 극대화 시켜놓고 주제 사라마구가 소설을 시작하고 있는 것 입니다. 결국 이 소설은 잘 아시다시피, 이 사람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눈이 멀게 되죠. In the end, this novel, as you know well, follows these people and many people are blinded. 눈이 먼 사람들 보면 마치 전염되듯이 또 눈이 멀고, 눈이 멀고,  이렇게 되서 전 사회가 이제 눈이 멀어가게 되는 과정입니다. It is a process in which blind people are blinded and blinded again, as if contagious, so that the entire society is now blinded. 이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른바 우리가 본격적인 문학이라고 하는 문학과 다른 여러가지 경항을 보이게 되는데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것 처럼 어떤 몽환적이거나 장식적인 문체를 쓰지 않는 다는 점도 그렇고요,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서나 판타지에서나 쓸 법한 설정을 과감하게 본격문학으로 가져왔다는 점도..네..재밌습니다. 이런 점은 뭐 이것 뿐만 아니라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소설도 공유하고 있는 특성입니다. This is a characteristic that not only shares this but also novels such as Umberto Echo's [The Name of the Rose]. 추리소설의 기법을 가져와서 그것을 가지고 일단 독자를 자깃 소설의 세계속으로 초대한 다음에 그 다음 부터는 자기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거죠. You take the technique of a mystery novel, take it, invite the reader into the world of your own novel, and then tell the story you want to say. 이 주제 사라마구 같은 경우도 이런 어떤 공상 과학적 설정.. 있을 수 없는 일이죠. Even in the case of this subject Saramagu, any sci-fi setting like this... is impossible. 눈이 멀고 별다른 바이러스도 없이 계속해서 눈이 연달아서 먼다는 것인데, 근데 좋은 작가들은 이런 설정을 끌어 들인 다름에 이것을 설득력있게 과감하게 제시하고 그러면서도 뒤로가면 결국에는 중요한 윤리적인 문제들로 사람들을 끌고가게 됩니다. 과연 이렇게 눈먼 세계가 됐을 때, 눈 뜬 사람들의 세계에서 지켜지던 도덕 또는 약속 (예를 들면 신호등 같은 것이죠? When the world became so blind, the morals or promises that were kept in the world of people who opened their eyes (such as traffic lights, right? 횡단보도 같은 것인데) 그런 것들 아주 사소한 약속, 그 밖에 더 중대한 약속이 있겠죠. It's like a pedestrian crossing) There are some very trivial promises, and more important ones. 사람이 사람을..뭐 예를 들면 죽여서는 안 된다라든가..착취해선 안 된다라든가..뭐 이런 것이죠. People say that people shouldn't be killed, for example, they shouldn't be exploited, something like this. 남의 아내를 빼앗아선 안 된다..라든가..이른바 성경의 십계명에 있을 것 같은 그런 여러가지 문제들을 과연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냐를 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런 이상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결국에는 '과연 그렇다면 이렇게 눈먼 자들의 도시가 아닌 눈뜬 사람들의 도시에서 이런 도덕은 과연 지금도 지켜지고 있는가?' However, this is what happens in this strange world, but in the end,'If so, is this morality still preserved in the city of the open people, not the city of these blind people?'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됨으로서, 이 소설을 어떤 단순한 공상과학 소설에서 깊이있는 문제를 다루는 인류의 어떤 문학적 유산으로 끌어 올리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By asking such a question, I think we are going to lift this novel from a simple science fiction novel to a literary legacy of humanity dealing with in-depth problems. 이 [눈먼 자들의 도시]가 연상시키는 소설들은 많이 있습니다. There are many novels reminiscent of this [City of the Blind]. 특히 강력하게 이 소설이 환기시키는 소설은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라는 소설이죠. The novel that this novel evokes particularly strongly is a novel called [Pest] by Albert Camus, the author of [The Gentiles]. 이 두 소설을 비교해서 보면 상당히 재밌습니다. 이 [페스트]라는 소설은 갑자기 페스트가 돌기 시작하는 한 도시, 그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죠. This novel called Plague is what happens in a city, a city where the plague starts to circulate suddenly. 역시 그 어떤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의사가 있습니다. Again, there are doctors who play a key role. 이 의사는 이 페스트가 돌고있는 도시에서 이 도시의 환자들을 돌보고, 여러가지 지도자의 역할을 맡기도 하고, 또 회의하는 철학자 역할을 맡기도 하는데 이 도시는 페스트가 돌고 있기 때문에 폐쇄되게 됩니다. In the city where the plague is circulating, the doctor takes care of the city's patients, takes on various leadership roles, as well as the philosopher of the meeting, which is closed because the plague is circulating. 그 도시에 들어간 사람은 나올 수가 없고요. Anyone who enters the city cannot come out. 이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도 이 도시가 폐쇄되는 운명을 겪게되고 그 안에서는 어떤 야만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 카뮈가 묘사한 [페스트]의 도시보다 이 [눈먼 자들의 도시]는 좀 더 끔찍하고 좀 더 야만에 가깝습니다. 이 상태들은 우리 읽는 독자들을 전율하게 만드는데요. These states thrill our readers. 특히 그 독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던 '아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되는데'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런 대목이 있습니다. 그 부분을 한번 읽고 더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I'll read that part once and talk about it more.

일주일 뒤, 눈먼 깡패들은 여자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A week later, the blind thugs sent a message saying they wanted a woman.

'그냥 우리에게 여자들을 보내라. 'Just send us girls. '는 내용이었다. 특이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어쨌는 예상치 못했던 이 요구 때문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지만 항의하는 소리가 쏟아져나왔다. It couldn't be said that it was unusual, but because of this unexpected request anyway, it could be expected enough, but the voice of protest poured out. 그 말을 들은 당황한 병실 대표들은 즉시 병실로 돌아가 명령을 전달했다. 우병동의 세 병실과 좌병동의 두 병실, 그리고 바닥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 마저도 만장일치로 그 모욕적인 요구를 거절하시로 결정했다.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 이 경우에는 여성의 존엄성이 이 정도까지 짓밟힐 수는 없다, 좌병동 3호 병실에 여자가 없다 해도 다른 병실에서 그것을 책임져 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깡패들의 대답은 무뚝뚝했고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But the thugs' answers were blunt and there was no room for compromise.

'여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먹을 것도 주지 않는다.' 굴욕감에 사로잡힌 대표들은 병실로 돌아가 그 명령을 전했다. The representatives, captivated by humiliation, returned to the hospital room and delivered the order.

"여자들이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먹을 것도 안 주겠답니다." "If women don't go there, I won't give you anything to eat." 혼자 있는 여자들, 즉 짝이 없는, 적어도 고정된 짝이 없는 여자들은 즉시 항의했다. 그들은 남의 남자를 먹이기위해 자신들의 다리 사이에 있는 것으로 댓가를 지불할 생각은 없었다. 한 여자는 심지어 자신의 성에 대한 예의 마저 잊고 대담하게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나는 원한다면 갈거예요. 하지만 내가 버는 것은 다 내꺼예요. 그리고 마음에 들기만 하면 나는 그 병실에서 살거예요. 거기 가면 침대도 있고.. 내 먹을 것은 보장 받을 수 있잖아요?" 그녀는 분명하게 그렇게 말 했으나 분명하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She clearly said so, but clearly did not act. 욕정에 넘치는 스무명의 남자들 그렇게 다급해하는 것을 보면 혹시 욕정 때문에 눈이 먼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남자들의 성적인 광란을 혼자 감당해야 할 경우에 격어야할 무시무시한 일들이 제때에 머리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우병동 2호 병실에서는 그녀가 가볍게 내뱉은 그 말이 미처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직업 의식이 투철한 대표하나가 얼른 그 말을 받아 '자원자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제안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