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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18 -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Jose Saramaga) - Part 1

Episode 18 -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Jose Saramaga)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안녕하세요. 김영하 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진행하고 있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오늘은 열여덟 번 째 시간입니다. 네, 좀 오랜만에 하게 되는데요. 제가 그동안 한.. 몇 주 동안 여행을 좀 다녀왔습니다. 프랑스와 핀란드, 스웨덴의 몇몇 도시들을 방문하고 돌아왔는데요. 네 오랜만에 장비들을 펼져놓고 팟캐스트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글쎄요.. 기분이 또 새롭네요. 자 오늘 그.. 저는 어제 귀국을 했는데요, 오늘 이 팟캐스트를 해야되겠다, 제작을 해야되겠다 생각을 하는데 지난 간밤에 시차 때문에 잠을 못자고 좀 왔다갔다 하는데 뉴스를 하나 봤어요. 거기에 주제 사라마구가 돌아가셨다..라는 그런 기사입니다. 향년 87 세를 일기로 사망을 했습니다. 장수를 하신 편이죠.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영면하셨다..이렇게 들었는데요, 이 주제 사라마구는 우리나라에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이 출간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서, 또 노벨 문학상을 포루투갈 어 권에서는 처음으로 수상을 하면서 전세계에서 더욱 많은 독자를 확보하게 됐습니다. 다른 나라 보다도 특히 우리나라에서 독자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좀 특이한 현상인데요. 솔직히그런 것은 뭐 왜 그랬는지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출판시장이라는 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거든요. 초기의 독자들의 반응이라든가 출판사의 전략..이렇게 잘 맞아 떨어지면..잘 되는 거고요. 물론 이제 작품이 좋아야죠. 그런데 좋은 작품이라고 해서 언제나 국경을 넘어서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주제 사라마구는 한국에 많은 독자를 확보하게 됐는데, 이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참 후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었죠? 자 이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저는..예..뭐 상당히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그 전에도 많은 분들에게 권하곤 했던 그런 소설인데요, 이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을 전부 다 읽지는 못 했지만 그런게 있는 것 같아요.. 단 한 작품이라도 어떤 작가의 작품이 우리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면 그 작가를 잊을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작가가 저 먼 포르투갈 어디에선가 사망했다는 기사도 절대로 심상하게 넘길 수가 없는 겁니다. 어쩌면 먼 친척의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 보다, 내가 감명깊게 읽었던 어떤 소설의 저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어쩌면 우리에게 더 크게 다가올지 모른다..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끼리의 이.. 뭐랄까요.. 비밀스런 연대랄까요? 예.. 사실 이것은 가족주의, 민족주의 같은 강력한 감정도 초월하게 됩니다. 국경을 초월해서 우리는 어떤 작가와 사랑에 빠지에 되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경우입니다. 그 카프카의 작품을.. 예를 들면 어디.. 아르헨티나의 한 서점에서 발견을 해도 우린 반가움을 느낍니다. 그것은 카프카를 알아서 반갑기도 하지만 아르헨티나에도 카프카를 읽는 독자들이 이렇게 있구나..라는 걸 발견하기 때문에 기쁜 것이죠. 여기에도 나와 영혼이, 정신이 교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살고 있구나..라는 것이 우리에게 정신적인 기쁨과 위안을 주는 것 인데요. 문학이 가진 이런 어떤 초국가적 성격, 탈국가적 성격들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물론 번역을 거치고 이런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서 다른 나라로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꼭 번역을 통해서 전해진 어떤 작품이 제대로 전달 되지 않는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하면 언어민족주의와 지나친 순결주의에 빠지에 되는 것이죠. 사실 우리가 읽는 너무나 많은 작품들은 번역이고요, 심지어는 고전들도, 우리의 고전들도 우리는 번역을 통해서 읽고 있습니다. 그렇죠? [삼국사기]라던가 [삼국유사]라던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같은 것도 우리는 번역을 통해서 읽는 것이지 원문을 읽는 것은 결코 아니죠.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의 작품들.. 많은 오역과 또 여러가지 잘못된 또는 부정확한...뭐 또는 매끄럽지 않는 그런 번역일지언정 우리는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일단 그 작품과 작가와 만나게 되면 더이상 남이 아닌거죠. 남이 아닙니다. 비록 제가 포르투갈 어로 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진 않았지만, 저는 주제 사라마구를 누구보다 가깝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이 [눈먼 자들의 도시]는 물론 번역이 상당히 좋습니다. 좋은데, 번역자는 정영목 씨입니다. 아주 좋은 번역자죠? 이분은 영어권 번역자 중에서 정말 그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번역을 잘 하시는 분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어로 썼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히 중역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죠? 정영목 씨가 설마 포르투갈 어를 안다고는..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그렇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여간, 이것은 중역을 통해서 나왔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크게..저의 감동을 해치거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옛날에도 우리나라에 소개된 많은 작품들이 일본어 중역, 또는 영어중역을 통해서 세계문학이 소개됐었는데요, 물론 이제 나중에 원전 번역들이 좋은게 나오면은 더 좋죠. 그렇지만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본질 적으로 독자 자신의 해석에 달린 거라서요저는 작품의 매력이 충분하다면 어느 정도는 독자들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라고 믿는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팟캐스트에도 소개해드렸던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에 보면, 아프리카에 가서 사람들에게 [햄릿]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어떤 여성학자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물론 아프리카 부족들은 자꾸 반대를 합니다. "에이..그럴리가 없어. 아버지한테 뭐 잘 못 했구만..유령이 나올리가 없는데?' 뭔가 하여튼 계속 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죠. 그런 것이 문학이 가진 힘이고요, 가끔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이 읽는 문학작품을 읽혀서는 안 된다..이렇게 말씀들을 하는 분들도 계신데, 왜냐하면 아이들이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어른분들도 어차피 이해를 잘 못 합니다. 우리가 '이해'라는 측면에서 문학작품을 접근하면 맹점이 있는 것이죠. 문학작품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즐기는 것인데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은 많이 배우지 못한대로, 또 배운 사람은 배운대로 그 문학작품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나름의 어떤 것이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이해를 하네..못 하네..이런 측면에서 접근을 하면은 저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문학을 그런 측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시험을 치는 것이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죠? 문학은 즐기는 것이죠. 이 주제 사라마구라는 사람의 일생도 문학의 그런 속성하고 관계가 있습니다. 이분은 대단히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요. 너무너무 가난해서 이 사람이 어릴 적 접한 문학적 경험이라는 것은 할머니가 읽어주는 것이 아닌, 할머니가 외워서 얘기해주는 옛날 이야기를 통해서 문학적 경험을 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요. 이분의 이런 고백은 노벨상,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수상 연설집이 언젠가 나온 적이 있는데요.. 여기에 감동적으로 서술돼있습니다.


Episode 18 -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Jose Saramaga) - Part 1 Episode 18 - Subject Saramagu [City of the Blind] (Jose Saramaga) - Part 1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안녕하세요. 김영하 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진행하고 있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오늘은 열여덟 번 째 시간입니다. 네, 좀 오랜만에 하게 되는데요. 제가 그동안 한.. 몇 주 동안 여행을 좀 다녀왔습니다. I've been on a... trip for a few weeks. 프랑스와 핀란드, 스웨덴의 몇몇 도시들을 방문하고 돌아왔는데요. I came back after visiting several cities in France, Finland and Sweden. 네 오랜만에 장비들을 펼져놓고 팟캐스트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글쎄요.. 기분이 또 새롭네요. 자 오늘 그.. 저는 어제 귀국을 했는데요, 오늘 이 팟캐스트를 해야되겠다, 제작을 해야되겠다 생각을 하는데 지난 간밤에 시차 때문에 잠을 못자고 좀 왔다갔다 하는데 뉴스를 하나 봤어요. 거기에 주제 사라마구가 돌아가셨다..라는 그런 기사입니다. There is such an article that the subject Saramagu died.. 향년 87 세를 일기로 사망을 했습니다. He died at the age of 87. 장수를 하신 편이죠.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하게 영면하셨다..이렇게 들었는데요, 이 주제 사라마구는 우리나라에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작품이 출간되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서, 또 노벨 문학상을 포루투갈 어 권에서는 처음으로 수상을 하면서 전세계에서 더욱 많은 독자를 확보하게 됐습니다. 다른 나라 보다도 특히 우리나라에서 독자가 많았습니다. There were more readers in Korea, especially than in other countries. 이것은 좀 특이한 현상인데요. This is a peculiar phenomenon. 솔직히그런 것은 뭐 왜 그랬는지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출판시장이라는 것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거든요. The publishing market means you don't know where to go. 초기의 독자들의 반응이라든가 출판사의 전략..이렇게 잘 맞아 떨어지면..잘 되는 거고요. If the initial readers' reactions or the publisher's strategy fit together like this... it's going to work. 물론 이제 작품이 좋아야죠. Of course, you should like your work now. 그런데 좋은 작품이라고 해서 언제나 국경을 넘어서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주제 사라마구는 한국에 많은 독자를 확보하게 됐는데, 이 [눈먼 자들의 도시]는 한 참 후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었죠? 자 이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저는..예..뭐 상당히 좋아하는 작품이어서 그 전에도 많은 분들에게 권하곤 했던 그런 소설인데요, 이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을 전부 다 읽지는 못 했지만 그런게 있는 것 같아요.. 단 한 작품이라도 어떤 작가의 작품이 우리의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면 그 작가를 잊을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작가가 저 먼 포르투갈 어디에선가 사망했다는 기사도 절대로 심상하게 넘길 수가 없는 겁니다. 어쩌면 먼 친척의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 보다, 내가 감명깊게 읽었던 어떤 소설의 저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어쩌면 우리에게 더 크게 다가올지 모른다..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 끼리의 이.. 뭐랄까요.. 비밀스런 연대랄까요? Is it a secret solidarity between people who love this literature? 예.. 사실 이것은 가족주의, 민족주의 같은 강력한 감정도 초월하게 됩니다. 국경을 초월해서 우리는 어떤 작가와 사랑에 빠지에 되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경우입니다. 그 카프카의 작품을.. 예를 들면 어디.. 아르헨티나의 한 서점에서 발견을 해도 우린 반가움을 느낍니다. Even if we find that Kafka's work... for example, somewhere... in a bookstore in Argentina, we feel happy. 그것은 카프카를 알아서 반갑기도 하지만 아르헨티나에도 카프카를 읽는 독자들이 이렇게 있구나..라는 걸 발견하기 때문에 기쁜 것이죠. 여기에도 나와 영혼이, 정신이 교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살고 있구나..라는 것이 우리에게 정신적인 기쁨과 위안을 주는 것 인데요. 문학이 가진 이런 어떤 초국가적 성격, 탈국가적 성격들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Some of these transnational and post-national characters of literature are really interesting. 물론 번역을 거치고 이런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서 다른 나라로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꼭 번역을 통해서 전해진 어떤 작품이 제대로 전달 되지 않는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잘못하면 언어민족주의와 지나친 순결주의에 빠지에 되는 것이죠. It's wrong to fall into linguistic nationalism and excessive chastity. 사실 우리가 읽는 너무나 많은 작품들은 번역이고요, 심지어는 고전들도, 우리의 고전들도 우리는 번역을 통해서 읽고 있습니다. In fact, so many works we read are translations, even classics, our classics, we read through translations. 그렇죠? [삼국사기]라던가 [삼국유사]라던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같은 것도 우리는 번역을 통해서 읽는 것이지 원문을 읽는 것은 결코 아니죠. Some things like [Three Kingdoms Sagi], [Three Kingdoms], and Yeonam Park Ji-won’s [Yeolha Diary] are read through translation, not the original text.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의 작품들.. 많은 오역과 또 여러가지 잘못된 또는 부정확한...뭐 또는 매끄럽지 않는 그런 번역일지언정 우리는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됩니다. Likewise, works from other countries.. Many mistranslations and various wrong or inaccurate...something or such a non-smooth translation, but we come across some works. 그리고 일단 그 작품과 작가와 만나게 되면 더이상 남이 아닌거죠. And once you meet the work and the author, you are no longer someone else. 남이 아닙니다. 비록 제가 포르투갈 어로 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진 않았지만, 저는 주제 사라마구를 누구보다 가깝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이 [눈먼 자들의 도시]는 물론 번역이 상당히 좋습니다. 좋은데, 번역자는 정영목 씨입니다. 아주 좋은 번역자죠? 이분은 영어권 번역자 중에서 정말 그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번역을 잘 하시는 분이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 어로 썼기 때문에 이것은 당연히 중역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죠? 정영목 씨가 설마 포르투갈 어를 안다고는..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I don't think that Jung Young-mok knows Portuguese. 제가 틀렸을 수도 있지만..그렇다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I may be wrong, but if so, please let me know. 하여간, 이것은 중역을 통해서 나왔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크게..저의 감동을 해치거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Anyway, this came out through the executive, but that didn't greatly hurt or hurt my impressions. 옛날에도 우리나라에 소개된 많은 작품들이 일본어 중역, 또는 영어중역을 통해서 세계문학이 소개됐었는데요, 물론 이제 나중에 원전 번역들이 좋은게 나오면은 더 좋죠. In the past, many works introduced in Korea were introduced to world literature through Japanese executives or English executives. 그렇지만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본질 적으로 독자 자신의 해석에 달린 거라서요저는 작품의 매력이 충분하다면 어느 정도는 독자들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라고 믿는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However, understanding a literary work is essentially up to the reader's own interpretation, and I have an optimistic view that, to some extent, readers can surpass it if the work is attractive enough. 예전에 팟캐스트에도 소개해드렸던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에 보면, 아프리카에 가서 사람들에게 [햄릿]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어떤 여성학자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물론 아프리카 부족들은 자꾸 반대를 합니다. In Pierre Bayar's book [How to Talk About Unread Books], which was previously introduced in a podcast, there is a story of a female scholar who goes to Africa and tries to make people understand [Hamlet]. Of course, African tribes keep I do the opposite. "에이..그럴리가 없어. 아버지한테 뭐 잘 못 했구만..유령이 나올리가 없는데?' 뭔가 하여튼 계속 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죠. But that doesn't mean they don't enjoy it. 그런 것이 문학이 가진 힘이고요, 가끔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이 읽는 문학작품을 읽혀서는 안 된다..이렇게 말씀들을 하는 분들도 계신데, 왜냐하면 아이들이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어른분들도 어차피 이해를 잘 못 합니다. 우리가 '이해'라는 측면에서 문학작품을 접근하면 맹점이 있는 것이죠. 문학작품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고 즐기는 것인데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은 많이 배우지 못한대로, 또 배운 사람은 배운대로 그 문학작품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나름의 어떤 것이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이해를 하네..못 하네..이런 측면에서 접근을 하면은 저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문학을 그런 측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시험을 치는 것이고 점수를 매기는 것이죠? Because you approach literature from that aspect, you take the test and score it, right? 문학은 즐기는 것이죠. 이 주제 사라마구라는 사람의 일생도 문학의 그런 속성하고 관계가 있습니다. 이분은 대단히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요. I was born in a poor family. 너무너무 가난해서 이 사람이 어릴 적 접한 문학적 경험이라는 것은 할머니가 읽어주는 것이 아닌, 할머니가 외워서 얘기해주는 옛날 이야기를 통해서 문학적 경험을 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요. 이분의 이런 고백은 노벨상,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수상 연설집이 언젠가 나온 적이 있는데요.. 여기에 감동적으로 서술돼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