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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15 -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Romain Gary) - Part 6

Episode 15 -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Romain Gary) - Part 6

"저, 이 다음에 네가..“ 자기의 실없음을 알면서도 어떻게 자기 자신을 억제할 수 없는 듯, 그는 약간 거북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다음에 네가... 네 엄마가 말한 것처럼 되거든," 나는 그를 찬찬히 관찰하였다. 터키 과자 상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어머니가 내게 예언한 찬란한 미래라는 이유를 빼면 내가 그 과자에 전혀 권리가 없음을 간파했다.

"나는 프랑스 대사가될 거예요" 하고 나는 엄숙하게 말하였다. "과자 한 개 더 먹으렴" 하고 피키엘니 씨가 상자를 내 쪽으로 밀며 말했다. 나는 그것을 먹었다. 그는 가볍게 기침했다.

“어머니들은 그런 것을 느끼는 법이거든. 아마 넌 정말 중요한 인물이 될지도 몰라. 신문에 글을 쓰거나, 책을 써낼지도...”

그는 내게로 몸을 굽히더니 내 한쪽 무릎 위에 손을 올려 놓았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유명한 사람들,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거든 이렇게 좀 말해주겠니?" 정신 나간 욕망의 불꽃이 갑작스럽게 생쥐의 눈 속에서 타올랐다.

“이렇게 좀 말해주겠다고 약속해주렴. 윌노의 그랑드 포윌랑카 16번지에 피키엘니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그의 시선은 무언의 애원을 품고 내 눈 속을 파고들었다. 그의 손은 내 무릎 위에 얹혀져 있었다. 나는 그를 엄숙하게 응시하며 나의 터키 과자를 먹었다.

전쟁 말기, 전투를 계속하기 위해 영국으로 간 지 사 년째 되던 해에, 현재 여왕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왕비가 열병식에 참관하러 하트포드 브리지의 우리 비행 중대에 온 일이 있었다. 나는 장비를 갖추고 내 비행기 옆에 차려 자세로 굳어 있었다. 왕비는 내 앞에서 멈추더니 그녀의 인기를 당연하게 만드는 그 보기 좋은 미소를 머금고 나에게 프랑스 어느 지방 출신이냐고 물었다. 나는 지체 없이 니스라고 대답했다. 왕비님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말이다. 그러고 나서.. 그것은 나보다 강한 무엇이었다. 내 기억을 환기시키려 애쓰느라 안달이 나서 손짓을 하고 발을 구르고 염소 수염을 잡아당기는 그 남자가 거의 보이기까지 한 것 같았다. 억제하려 해도 단어들이 저절로 입술까지 올라왔고, 한 생쥐의 미친 꿈을 실현시키기로 결심한 나는 크고도 또렷한 목소리로 왕비에게 고하였다.

“윌노의 그랑드 포윌랑카 16번지에 피키엘니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왕비는 우아하게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열병을 계속하였다.‘로랜' 비행 중대의 중대장인 친애하는 앙리 드 랑쿠르가 지나가며 내게 독살스런 눈초리를 던졌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그것으로 내 터키 과자를 벌었던 것을. 지금, 윌노의 그 맘씨 좋은 생쥐는 이미 오래전에 나치의 화덕에서 그 미미한 삶을 끝내고 없다, 다른 수백만의 유대인들과 더불어.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세상의 대단한 인물들과 만나는 대로 내 약속을 세심하게 수행한다. 국제연합의 강단에서 런던의 대사관까지, 베른의 페데랄 궁에서 엘리제 궁까지, 샤를 드골과 비친스키 앞에서, 백년대계를 세우는 고관 대작들이며 훈장 수여자들 앞에서, 나는 한 번도 빠짐없이 그 작은 사람의 존재를 알려왔으며, 또한 여러 번, 미국 텔레비전의 광대한 네트워크를 타고 수백만 명의 시청자들 앞에서 알릴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기까지 했다. 윌노의 그랑드 포윌랑카 16번지에 피키엘니라는 사람이 살았었는데, 하느님이 그의 영혼을 거두어 가셨다고. 그렇지만 결국,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화덕에서 꺼내어져 비누로 화한 그 작은 사람의 뼈들은 오래전 나치들의 청결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사용되어버렸다.

나는 지금도 옛날처럼 터키 과자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줄곧 나를 바이런 경과 가리발디, 단눈치오, 달타냥, 로빈 후드, 사자왕 리처드 들의 혼합물로만 보려 하였으므로, 이제 와서 나는 내 노선에 매우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내게 걸었던 모든 기대를 죄다 만족시킬 수는 없었으나, 최소한 너무 배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매일 나는 유연 체조를 하고 일주일에 두 번 달리기를 한다. 나는 뛰고 또 뛴다. 오, 나는 얼마나 달리고 있는가! 나는 또 펜싱도 하고, 활도 쏘고, 사격도 하며, 높이 뛰기, 다이빙, 역도, 아령을 하고, 게다가 아직도 공 세 개로 재주를 부릴 줄 안다. 분명, 마혼다섯 살이나 되어가지고 어머니가 자기에게 한 말을 모두 믿는다는 건 좀 너무 천진한 짓인 줄은 안다. 하지만 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세계를 바로 세우는 데, 어리석음과 악의를 눌러 이기고 사람들에게 위엄과 정의를 되돌려주는 데 성공하진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1932년 니스의 탁구 시합에서 이겼고, 아직도 아침이면 열두 번씩 턱걸이를 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그때엔 용기를 잃을 짬조차 없는 것이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이 [새벽의 약속] 앞부분만 조금 읽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이 책은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왔고요. 약 400 페이지 정도 되는데 아주 잘 읽힙니다. 그러나 로맹 가리를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은 이 책을 먼저 읽지는 마시고요, 로맹 가리의 다른 소설들을 읽은 다음에 읽으시면 더 재밌을 거예요. 로맹 가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작가인지 알고 읽으실 것을 권하고요, 뭐 권한다면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단편집인데요 좋은 소설이고요. 그 다음에 공쿠르 상을 탔던 [하늘의 뿌리] 같은 소설도 권하고 싶고, 그보다 좀 더 가볍게 접근하겠다 하시는 분들은 역시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공쿠르 상을 두 번 째 받았던 소설이죠) [자기 앞의 생]이라는 소설로 시작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새벽의 약속], 작가가 쓴 일종의 자서전, 여러종류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제가 아주 좋아하는 책입니다. 여러분께 오늘 권해 드렸고요. 특히 부모의 과도한 기대 때문에 고통 받는 일이 많은 이런 한국 같은 사회에서 예술가와 가족의 관계, 그다음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책인 것 같고요.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로맹 가리라는 사람이 어떻게 참 얘기하기 쉽지 않은 자기의 과거를 가지고 이렇게 재밌게 이야기를 끌고갈 수 있는지 그 작가로서의 기예를 살펴보는 것 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운 책입니다. 자 오늘 '책 읽는 시간' 에피소트 15, 열다섯 번 째 에피소드는 로맹 가리의 [새벽의 약속]이라는 책을 가지고 소개를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영하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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