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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15 -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Romain Gary) - Part 5

Episode 15 -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Romain Gary) - Part 5

그러니까 로맹 가리에게서 글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것이었죠. 아까 어떤 장면에서 어머니하고 앉아서 필명을 정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결국 로맹 가리는 '가리'라는 필명을 쓰게 되고요, 뿐만 아니라 나중에 에밀 라자르, 제가 말씀드렸지만, 그런 다른 필명으로 또 쓰게 되고.. 여러 필명이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자면 로맹 가리의 안정되지 못한 성격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진정 어떤 것을 바래서 어떤일을시작한게 아니라 어머니가 원한 것을 만족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오페라도 하고 발레도 하고 여러가지를 다 하던 중에 글을 썼던 것이죠. 그렇게 됐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이름을 가지로 쓴다라는 것 보다는 그것은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어떤 것이었던 것이죠. 제가 이책에서 상당히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에피소드는 좀 뒤에 나오는데 이것 역시 그 어머니와 관련이 돼있습니다. 이 두 모녀는 폴란드의 소도시에서 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 당시에 역시 로맹 가리는 어렸고요. 그런데도 이 어머니는 툭하면 이 아들보고 '넌 프랑스 대사가 될거야' 이런 식으로 얘기합니다. 외교관에 대해서 환상이 있었던 그런 어머니인데요, 이런 것이... 생각해 보세요 폴란드에 살고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볼 때, 러시아 유태인이고 프랑스엔 가본적도 없는 사람, 여자가 자기 아들이 프랑스 대사가 될거라고 외치는 장면들 생각하면 상당히 기이한데요. 한번 그 장명의 에피소드들을 로맹 가리가 또 다른 자기의.. 그 이후의 일생과 엮는지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이 [백설공주]나 [장화 신은 고양이]를 이야기하듯 프랑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영웅들과 모범적인 덕들로 충만한 나라라는 프랑스의 이 동화적 이미지를 떨쳐 버리는 데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나는 아마도 어릴 적에 들은 옛날 이야기를 충실히 믿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불행히도 어머니는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그 꿈, 마음을 위로하는 꿈을 혼자 간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선 모든 것이 즉각 밖으로 향하고, 주장되고, 나팔을 울리고, 분출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용암과 화산재를 동반하고서.

우리에겐 이웃이 있었고, 그 이웃들은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윌노의 소시민들은 타국에서 온 여자를 전혀 탐탁해하지 않았으며, 비밀스럽고 수상쩍은 것으로 판단되는 가방들과 상자들을 가지고 왔다갔다 하는 어머니의 행동은 곧, 당시 러시아 망명객들을 매우 경계하던 폴란드 경찰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일이야 어머니에겐 전혀 어렵지 않았으나, 창피와 슬픔과 분노는 언제나처럼 과도하게 공격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마구 흩어져 있는 모자들 속에서 몇 시간을 울고 난 어머니는 내 손을 잡더니, "저것들이 누구를 상대로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게야" 하면서 나를 방 밖 층계로 끌고 나갔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내 생애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 중의 하나였다-그런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어머니는 문마다 종을 치고 두드리고 하면서 입주자들을 층계참으로 불러내었다. 최초의 입씨름이 오고 간 직후-이 방면에선 늘 어머니가 한 수 위였다-어머니는 나를 끌어당기더니 청중들에게 나를 가리키며 선언하였다. 높고도 자랑스럽게, 지금도 내 귓가에 울리는 그런 목소리로.

"이 더럽고 냄새나는 속물들아! 감히 너희들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줄이나 아는 게야?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사람이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것이고, 위대한 극작가가 될 거란 말이야. 입센,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될 거라구! 내 아들은 말이야..." 어머니는 잠시 완전히 찍어누를 무엇인가를, 지상에서의 성공을 단적으로 증명해줄 증거를 찾았다.

"내 아들은 말이야 런던식으로 차려입고 살 거야!" 아직도 그 어머니의 표현대로라면 '냄새나는 속물들'이 웃던 그 걸쭉한 웃음소리가 귓전에 생생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분명하게 그들의 소리가 들리며, 비웃음과 미움과 멸시에 찬 그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렇다. 나는 아무 미움 없이 그들을 떠올린다. 그것이 인간의 얼굴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다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지금 프랑스 총영사이며, 영토 해방의 용사로서 레지옹 도뇌르 수여자임을 밝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 입센이나 단눈치오는 되지 못하였으나, 그 또한 노력해보지 않아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알아두기 바란다. 나는 지금 런던식 옷차림을 하고 있다. 영국식 재단법은 지긋지긋하게 싫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믿는다. 어떤 사건도 그랑드 포월랑카 16번지, 윌노의 낡은 집 층계에서 내게로 쏟아지던 그 폭소보다 내 인생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진 못했다고. 그 웃음 덕에 나는 오늘날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가장 나쁜 점에서도, 가장 좋은 점에서도 그 웃음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고 웃음의 광풍 아래 머리를 쳐들고 꼿꼿이 서 있었다. 어머니에겐 단 한 점의 무안함이나 창피스러운 기색도 없었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몇 주일 동안의 내 인생은 편안치를 못했다. 나이는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으나, 비웃음에 대한 감각은 벌써부터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어머니가 한몫을 했음은 당연하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거기에 익숙해졌다. 나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놓고 모욕을 받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받는 교육의 일부분을 이룬다. 오래전부터 나는 더는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는 인간이란 결코 웃음거리가 될 수 없는 무엇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조롱과 빈정거림과 욕지거리를 맞으며 층계참에 서 있던 그 몇 분 동안에는, 내 가슴은 수치와 공포에 사로잡힌 한 짐승이 절망적으로 빠져나가려 몸부림치는 하나의 우리로 화하였다.

어머니에 의해 그랑드 포윌랑카 16번지에 세 든 사람들에게 예고된 내 위대한 미래에 대한 극적인 계시가 구경꾼들 전부에게 가가대소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그 구경꾼들 중에는 피키엘니라는 사람이 있었다. 피키엘니는 폴란드 말로 '지옥의'라는 뜻이었다. 그 특별한 사람의 조상들이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평범치 못한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괴상스럽게 둘러쓰고 있는 그 이름보다 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은 없었다. 피키엘니 씨는 천성적으로 꼼꼼 깔끔하고 부지런한 슬픈 생쥐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고 지워진 듯한, 한마디로 없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사물의 법칙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아주 조금이나마, 땅 위로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없는 듯이 보일 수 있는 그 최대치로 말이다. 그는 매우 감동하기 쉬운 기질의 사람이어서, 어머니가 내 머리에 한 손을 얹고 가장 순수한 성경의 문체로 예언의 말을 던지던 때의 그 완벽한 확신은 그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층계에서 마주칠 적마다 그는 멈추어 서서는 엄숙하게, 존경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곤 하였다. 한두 번은 용기를 내어 내 뺨을 두드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더니 납으로 된 병정 열두 개와 마분지로 만든 성을 주었다. 한번은 자기 집에까지 부르더니 사탕과 터키 과자세례를 퍼붓는 것이었다. 배가 터지도록 먹는 동안 그 남자는 담배로 누렇게 찌든 염소 수염을 만지며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드디어, 비장한 청원, 가슴속의 외침, 이 맘씨 좋은 사람인 생쥐가 자기 조끼 밑에 감추고 있던 열렬하고도 터무니없는 야심을 털어놓았다.


Episode 15 -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Romain Gary) - Part 5 Episode 15 - Romain Gary "Das Versprechen der Morgendämmerung" (Romain Gary) - Teil 5 Episode 15 - Romain Gary "The Promise of Dawn" (Romain Gary) - Part 5

그러니까 로맹 가리에게서 글이라는 것은 어머니의 욕망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것이었죠. 아까 어떤 장면에서 어머니하고 앉아서 필명을 정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결국 로맹 가리는 '가리'라는 필명을 쓰게 되고요, 뿐만 아니라 나중에 에밀 라자르, 제가 말씀드렸지만, 그런 다른 필명으로 또 쓰게 되고.. 여러 필명이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자면 로맹 가리의 안정되지 못한 성격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자기가 진정 어떤 것을 바래서 어떤일을시작한게 아니라 어머니가 원한 것을 만족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오페라도 하고 발레도 하고 여러가지를 다 하던 중에 글을 썼던 것이죠. 그렇게 됐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이름을 가지로 쓴다라는 것 보다는 그것은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어떤 것이었던 것이죠. 제가 이책에서 상당히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에피소드는 좀 뒤에 나오는데 이것 역시 그 어머니와 관련이 돼있습니다. 이 두 모녀는 폴란드의 소도시에서 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 당시에 역시 로맹 가리는 어렸고요. 그런데도 이 어머니는 툭하면 이 아들보고 '넌 프랑스 대사가 될거야' 이런 식으로 얘기합니다. 외교관에 대해서 환상이 있었던 그런 어머니인데요, 이런 것이... 생각해 보세요 폴란드에 살고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볼 때, 러시아 유태인이고 프랑스엔 가본적도 없는 사람, 여자가 자기 아들이 프랑스 대사가 될거라고 외치는 장면들 생각하면 상당히 기이한데요. 한번  그 장명의 에피소드들을 로맹 가리가 또 다른 자기의.. 그 이후의 일생과 엮는지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이 [백설공주]나 [장화 신은 고양이]를 이야기하듯 프랑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고,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영웅들과 모범적인 덕들로 충만한 나라라는 프랑스의 이 동화적 이미지를 떨쳐 버리는 데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나는 아마도 어릴 적에 들은 옛날 이야기를 충실히 믿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불행히도 어머니는 자신 속에 깃들어 있는 그 꿈, 마음을 위로하는 꿈을 혼자 간직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선 모든 것이 즉각 밖으로 향하고, 주장되고, 나팔을 울리고, 분출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용암과 화산재를 동반하고서.

우리에겐 이웃이 있었고, 그 이웃들은 어머니를 좋아하지 않았다. 윌노의 소시민들은 타국에서 온 여자를 전혀 탐탁해하지 않았으며, 비밀스럽고 수상쩍은 것으로 판단되는 가방들과 상자들을 가지고 왔다갔다 하는 어머니의 행동은 곧, 당시 러시아 망명객들을 매우 경계하던 폴란드 경찰의 주의를 끌게 되었다.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일이야 어머니에겐 전혀 어렵지 않았으나, 창피와 슬픔과 분노는 언제나처럼 과도하게 공격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마구 흩어져 있는 모자들 속에서 몇 시간을 울고 난 어머니는 내 손을 잡더니, "저것들이 누구를 상대로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게야" 하면서 나를 방 밖 층계로 끌고 나갔다. 그 다음에 일어난 일은 내 생애에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들 중의 하나였다-그런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어머니는 문마다 종을 치고 두드리고 하면서 입주자들을 층계참으로 불러내었다. 최초의 입씨름이 오고 간 직후-이 방면에선 늘 어머니가 한 수 위였다-어머니는 나를 끌어당기더니 청중들에게 나를 가리키며 선언하였다. 높고도 자랑스럽게, 지금도 내 귓가에 울리는 그런 목소리로.

"이 더럽고 냄새나는 속물들아! 감히 너희들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줄이나 아는 게야?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사람이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것이고, 위대한 극작가가 될 거란 말이야. 입센, 가브리엘레 단눈치오가 될 거라구! 내 아들은 말이야..." 어머니는 잠시 완전히 찍어누를 무엇인가를, 지상에서의 성공을 단적으로 증명해줄 증거를 찾았다.

"내 아들은 말이야 런던식으로 차려입고 살 거야!" 아직도 그 어머니의 표현대로라면 '냄새나는 속물들'이 웃던 그 걸쭉한 웃음소리가 귓전에 생생하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얼굴이 달아오른다. 분명하게 그들의 소리가 들리며, 비웃음과 미움과 멸시에 찬 그들의 얼굴이 보인다. 그렇다. 나는 아무 미움 없이 그들을 떠올린다. 그것이 인간의 얼굴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보다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지금 프랑스 총영사이며, 영토 해방의 용사로서 레지옹 도뇌르 수여자임을 밝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또 입센이나 단눈치오는 되지 못하였으나, 그 또한 노력해보지 않아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알아두기 바란다. 나는 지금 런던식 옷차림을 하고 있다. 영국식 재단법은 지긋지긋하게 싫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믿는다. 어떤 사건도 그랑드 포월랑카 16번지, 윌노의 낡은 집 층계에서 내게로 쏟아지던 그 폭소보다 내 인생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진 못했다고. 그 웃음 덕에 나는 오늘날의 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가장 나쁜 점에서도, 가장 좋은 점에서도 그 웃음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고 웃음의 광풍 아래 머리를 쳐들고 꼿꼿이 서 있었다. 어머니에겐 단 한 점의 무안함이나 창피스러운 기색도 없었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몇 주일 동안의 내 인생은 편안치를 못했다. 나이는 여덟 살밖에 되지 않았으나, 비웃음에 대한 감각은 벌써부터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어머니가 한몫을 했음은 당연하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거기에 익숙해졌다. 나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내 놓고 모욕을 받고도 전혀 개의치 않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받는 교육의 일부분을 이룬다. 오래전부터 나는 더는 조롱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나는 인간이란 결코 웃음거리가 될 수 없는 무엇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조롱과 빈정거림과 욕지거리를 맞으며 층계참에 서 있던 그 몇 분 동안에는, 내 가슴은 수치와 공포에 사로잡힌 한 짐승이 절망적으로 빠져나가려 몸부림치는 하나의 우리로 화하였다.

어머니에 의해 그랑드 포윌랑카 16번지에 세 든 사람들에게 예고된 내 위대한 미래에 대한 극적인 계시가 구경꾼들 전부에게 가가대소를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그 구경꾼들 중에는 피키엘니라는 사람이 있었다. 피키엘니는 폴란드 말로 '지옥의'라는 뜻이었다. 그 특별한 사람의 조상들이 어떤 사정으로 그렇게 평범치 못한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괴상스럽게 둘러쓰고 있는 그 이름보다 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은 없었다. 피키엘니 씨는 천성적으로 꼼꼼 깔끔하고 부지런한 슬픈 생쥐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고 지워진 듯한, 한마디로 없는 것 같은 사람이었다. 사물의 법칙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아주 조금이나마, 땅 위로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없는 듯이 보일 수 있는 그 최대치로 말이다. 그는 매우 감동하기 쉬운 기질의 사람이어서, 어머니가 내 머리에 한 손을 얹고 가장 순수한 성경의 문체로 예언의 말을 던지던 때의 그 완벽한 확신은 그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층계에서 마주칠 적마다 그는 멈추어 서서는 엄숙하게, 존경스러운 듯 나를 바라보곤 하였다. 한두 번은 용기를 내어 내 뺨을 두드리기까지 하였다. 그러더니 납으로 된 병정 열두 개와 마분지로 만든 성을 주었다. 한번은 자기 집에까지 부르더니 사탕과 터키 과자세례를 퍼붓는 것이었다. 배가 터지도록 먹는 동안 그 남자는 담배로 누렇게 찌든 염소 수염을 만지며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드디어, 비장한 청원, 가슴속의 외침, 이 맘씨 좋은 사람인 생쥐가 자기 조끼 밑에 감추고 있던 열렬하고도 터무니없는 야심을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