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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12 - 폴 오스터 "빨간 공책" (Paul Auster)

Episode 12 - 폴 오스터 "빨간 공책" (Paul Auster)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안녕하세요. 김여하입니다. 그동안 잘들 지내셨습니까? 책 읽는 시간 그 열 두번 째 시간이 되겠습니다. 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또 서가 앞에서 어슬렁 거리면서 책을 골라봤는데요. 숨어있어가지고 잘 눈에 띄지 않던 책이었는데, 오랜만에 제 눈에 걸려든 그런 책입니다. 작가는뭐 다들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폴 오스터입니다. 미국작가죠? 폴 오스터. 우리나라에는 그 [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으로 유명하고요. 그밖에도 많은 책들을 내셨죠. 특히 그 영화 [스모크]의 원작자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분 소설의 독자들이 한국에도 상당히 많은 데요 일단.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상다히 환상적인 이야기와 현실적인 이야기를 잘 결합해서 재미난 소설을 쓰는 분이고요. 이분 소설에 독특한 점이라면 다른 현대 작가들과는 달리 우연이라는 것, 뭐 다른말로 표현하면 운명의 장난이랄까요? 이런것들을 과감하게 소설에 집어넣는다는것이죠.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정말 말도안 되는 우연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다거나 아니면 과거의 누군가와 조우한다거나 또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확률로 어떤 일들을 겪게 된다는 것이 상당히 이분 소설의 중요한 플롯 상의 특징 인데요. 왜냐면 현대 소설에서 작가들은 우연을 배제하도록 배웁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일어나는 것은 좀 무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배우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주로 이제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이 폴 오스터의 소설에서는 이러날 수 있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게 그게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이 사람의 소설, 이 작가의 소설 작법의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분은 뉴욕에 살고있고요, 네 뉴요커들이 아주 사랑하는 소설가 중에 한 분 입니다. 이 분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역시 [뉴욕 3 부작 New York Trilogy]라는 책인데요. 86년에 나왔습니다. 그 뒤에 [달의 궁전 Moon Palace], [공중 곡예사 Mr.Vertigo]라던가요, 그 다음에 뭐 에세이도 많이 내셨어요. [굶기의 예술], [빵 굽는 타자기],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이게 이제 [스모크]의 원작이 되는거죠. 이런 것을 냈고요. 영화도 하셨어요. 성공은 하지는 못하셨지만 영화도 이제 잠깐 만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다. 이 분 소설에 이렇게 우연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까 도데체 이런 것은 다 어디서 나온거냐..이런 의문들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갖게 되는데요. 그래서 이분의 에세이를 보면 자기 인생에 일어났던 그런 기가막힌 우연들에 대해서 적어놓은 글들이 좀 있습니다. 온르 소개해드릴 책은 [빨간 공책]이라는 책인데요. 이 책에 또 역시 그런 우연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읽고있으면 말이 안 될것 같은데 말이 되면서 재밌습니다. 그게 이분의 글의, 글쓰기의 특징 입니다. 그래서 한 부분을 먼저 읽어 보고요. 그리고 계속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내 첫 번 째 소설에 영감을 준 것은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어느 날 오후, 내가 브루클린의 아파트에서 혼자 책상 앞에 않아 일을 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것은 내가 시어스타디움 밖에서 10센트 짜리 동전을 주운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80 년의 봄이었다. 내가 수화기를 들자 전화를 건 남자는 핑커턴 탐정사무소사 맞느냐고 물었다. 나는 나이라고,전화를잘못 걸었다고 말하고 수홧기를 내려놓았다. 나는다시 일을 시작했고, 잘못 걸려온 전화에 대해서는 곧 잊어버렸다. 이튿날 오후에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어제 그 사람이 어제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핑커턴 탐정사무소인가요?" 나는 또 아니라고 대답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렇다고 대답했으면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핑커턴 탐정사무소에 소속된 사립탐정인 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 사람이 의뢰하는 사건을 실제로 내가 맡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솔직히 말하면 좀 처럼 얻기 힘든 기회를 놓쳐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가 또 전화를 걸어보면 좀더 말을 시켜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써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전화벨이 다시 울리기를 기다렸지만 세 번 째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후 내 머리속에서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기 시작했고, 수많은 가능성의 세계가 내 앞에 전모를 드러냈다. 일년 뒤에 내가 [유리도시]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잘못 걸려온 그 전화는 그 작품의 중대한 사건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실수가 이야기 전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퀸이라는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건 사람은 사립탐정인 폴 오스터와 통화하고 싶다고 말한다. 퀸은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말하고 수화기를 놓는다. 이튿날 밤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또다시 퀸은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퀸은 한 번 더 기회를 얻는다. 사흘 째 밤에 또 전화벨이 울리자 퀸은 전화를 건 사람에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서 사건을 맡는다.

"네, 제가 폴 오스터인데요. "하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 광기가 시작된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원래 충동에 충실하고 싶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의 정신에 충실하지 않으면 책을 쓰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나 자신, 또는 적어도 나를 닮은 사람,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이야기의 전개 속에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했고, 또한 탐정이 아닌 탐정에 대해, 남의 흉내를 내는 것에 대해, 풀릴 수 없는 미스터리에 대해 쓰는것을 의미했다. 좋든 나쁘든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쩔수 없다. 나는 10 년 전에 그 책을 끝냈고, 그 후 다른 계획과 다른 착상과 다른 작품에 열중했다. 하지만 책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저자가 없어도 이야기가 저절로 계속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두 달 전에 깨달았다. 그날 오후 브루클린의 아파트에서 혼자 책상앞에 앉아 일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이것은 내가 1980년에 살았던 아파트와는 다른 아파트였다. 아파트도 다르고 전화번호도 달랐다. 내가 수화기를 들자 전화를 건 사람은 퀸 씨를 바꿔줄 수 있냐고 물었다. 스페인 억양이 섞여있는 내가 모르는 목소리였다. 나는 문득 친구가 나를 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퀸 씨라고요? 이건 무슨 농담인가요?" 아니 그것은 농담이 아니였다. 그 남자는 더없이 진지했다. 그는 퀸씨와 꼭 통화해야 하니까 바꿔달라고 진지하게 부탁했다. 나는 확인을 하기 위해 이름의 철자를 물어보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외국 말투가 아주 심하니까 어쩌면 퀸(Quinn)이 아니라 퀸(Queen)씨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러기를 바랐지만 불행이도 내 기대는 무너졌다.

"Quinn." 그가 대답했다.

나는 불현듯 겁이나서 한동안 아무 말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마침내 나는 말했다. "퀸 씨라는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그는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우리는 둘다 전화를 끊었다.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내가 이 [빨간 공책]에 적어놓은 얘기들이 모두 그렇듯이 이것도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네, 무슨 믿거나 말거나 같은데 나올 법한 이야기죠? 처음에는 핑커턴 탐정사무소를 찾는 전화가 폴 오스터한테 오고요. 그래서 폴 오스터가 이것에 영감을 받아가지고, 소설에 그 퀸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는 거죠. 폴 오스터를 찾는 전화를 받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요. 그로부터 한 10 년이 지나서 이번에는 폴 오스터에게 퀸이라는 사람을 찾는 전화가 온다는 것이죠? 돌고 돌면서 이야기들이 맞물리게 되는데, 이런 그.. 작법 (물론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폴 오스터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물고 물리는 것은 폴 오스터 소설의 어떤.. 플롯의 원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제 이분 소설 중에서 [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 이라는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걸 보면 이런 식으로 어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에 약간 뒤틀려서 맞물리고 또 뒤틀려서 맞물리는 그런 과정을 볼 수가 있고요. 그런 것이 이야기의 독특한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그 이런 얘기가 약간 연관됐습니다만은, 소설가들은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하는데요. 어떤 이야기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죠), 그 이야기를 일단 글로 쓰면요 그 다음에는 어떤 마술적인 일들이 가끔 일어납니다. 예전에도 보면 마법사들이 이렇게 주문을 글로 써가지고 태우기도 하고 이러지 않나요? 또는 그냥 말로, 이렇게 말하자면 방자해도 되는데 꼭 그림을 그리고 뭐 글로 써가지고.. 우리나라 옛날에도 보면 궁중에서 바늘로 꽂고 그러잖아요. 그런것이 왜 필요할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글이 가진 어떤 마법적인 힘 때문인 것 같아요. 일단 써놓으면 바꾸기가 어렵죠. 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힘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그 옛날에 마법의 주문 같은 거에도 적용이 됐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마르케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적인 성공작이죠?)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에 보면, 돼지 꼬리를 갖고 태어난 남자가 있습니다. 이 돼지 꼬리를 갖고 태어난다.. 사람의 꼬리 뼈는 전부 퇴화했죠. 그래서 꼬리가 없는게 사람이죠. 꼬리가 있으면 원숭이죠.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도 원숭이 꼬리도 아니고 이렇게 스프링 처럼 생긴 돼지 꼬리를 갖고 태어난 남자인데요. 이 남자 얘기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야말로 상상을 해서 쓴겁니다. 그런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없어요. 그리고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뭐 아시겠지만 그 소설에는 그런 얘기가 나와도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사람이 담요타고 승천하고 뭐 뭐 하튼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공간으로 남미가 묘사되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걸 썼더니, 쓰고 이 사람은 그 소설로 뭐 일약 세계적인 유명작가가 돼서 노벨 문학상도 받게되죠. 근데 노벨 문학상을 받고 전 세계적으로 그 책이 유명해진 뒤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수백통의 편지를 받은거예요. 누가 보냈냐하면, 그 돼지 꼬리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이분에게 편지를 보낸겁니다. "저는 그냥 이것을 그냥 부끄럽게 생각하고 모두에게 감추고 살아왔는데,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런 소설에 (물론 노벨 문학상은 소설에 주어지는 상은 아닙니다.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이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죠)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런 소설에 나와 같은 인물이 나온다는 것을 보고 아주 위안을 받았다. 많은 위안을 받았다. 고맙다. 이런걸 써줘서 고맙다." 이런 글들이 전세계 돼지 꼬리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로 부터 편지를 받게 된거죠. 그런데 이 마르케스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이제 그 마르케스라는 작가의 상당히 그 독특한 점인데, 이분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돼지 꼬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자기는 그것을 모르고 소설을 썼더니 그 사람들이 (말하자면) 커밍아웃을 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소설에 돼지 꼬리를 가진 사람을 씀으로서 비로소 그런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보는거예요. 다시 말해서, 자신이 소설에 돼지 꼬리를 가진 남자를 쓰지 않았다면 그들은 영원히 없었을 거라는 것이죠. 존재 자체가 그냥 없었다는 거예요. 물론 있었겠죠. 현실적으로는 있었겠지만 없는것과 마찬가지였다란 뜻은 마르케스틑 좀더 강하게 얘기하는 겁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유명한 시 [꽃]인데요. 이런 시를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마르케스 이 얘기를 좀 더 밀고 나가자면, 언어라는 것은 세상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죠. [로미오와 줄리엣]에 그 유명한 대사가 나오죠. 거기 보면, '다른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장미는 여전히 향기로울 거예요. 당신의 일부가 아닌 그 이름을 벗어 던지고 대신 내 전부를 가져요.' 뭐 이런 대사인데요. [장미의 이름]이라는 그 움베르토의 소설도 여기서 따온 것이죠. 장미의 이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장미는 장미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사랑에 빠질 때 줄리엣의 대사이고요. 사실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끝에 가보면 장미의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이 몬테규고 케퓰렛이고.. 즉 이들의 성, 가문의 이름이라는 것이 이 두 젊은 남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죠. 그만큼 언어, 그 이름, 여기서는 성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인데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명명하면, 그리고 그것이 이름을 갖게 되면, 이름을 붙이면, 또 어떤 스토리가 만들어지면, 암흑속에 있던 이름 없는 것들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죠. 돼지 꼬리를 달고 태어났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조차도 부정하던 자기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저는 무섭다..이런 생각이 드는데, 이 폴 오스터의 경우에도 어떤 계기가 있죠. 영감이 있어서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을 쓰고 나서 그것이 또 어떤 일을 만들어 냈다고 믿고 있는 것인데, 이런 일은 실제로 많은 소설가들이 여러 형태로 경험하게되는 네 그런 일인 것 같아요. 자 한편을 더 읽어 볼까요? 이것은 그런 우연의 문제는 아니지만 절묘한 타이밍 역시 이 폴 오스터가 좋아하는 그런 이야기 소 중에 하나입니다. 절묘한 타이밍에 대한 얘긴데 들으면 좀 재밌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1973 년에 나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어느 농가에 관리인 자리를 제의 받았다. 내 친구의 법률적 문제는 진작 해결되었고, 끊어졌다 이어졌다하는 우리의 연애가 또 시작된듯 했기 때문에 우리는 힘을 합쳐 그 일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즘에는 둘다 빈털털이 신세여서 그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면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둘다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1973 년은 지나고 보니 기묘한 해였다. 게다가 그곳은 아름다웠다. 18세기에 지은 널찍한 돌집의 한 쪽은 포도밭에 면해 있고 또 한 쪽에는 국유림이 펼쳐져 있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은 2 km 나 떨어져 있었고, 마을 주민은 아홉 명도 채 안 되었고, 게다가 육, 칠십 세 이하는 한 사람도 없었다. 두 젊은 작가가 일 년 쯤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L과 나는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반면에 우리는 늘 벼랑 끝에 서있는 것 처럼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었다. 우리를 고용한 사람은 파리에 사는 미국인 부부였는데, 매달 우리에게 약간의 급료 50 달러와 자동차 기름값, 집에 딸린 식구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두 마리의 사료값을 보내주었다. 대체로 후한 조건이었다. 집세도 필요 없고 급료는 우리 둘이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매달 생활비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발판이 되어 주었다. 모자라는 생활비는 번역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우리는 파리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기 전에 일년 동안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번역 일거리를 얻어 두었다. 우리가 미처 계산해 넣지 않은 것은 출판사들이 번역료를 늦게 줄 때 가 많다는 것이었다. 또한 외국에서 보내온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면 몇 주가 걸릴 수 있고, 일단 추심이 끝나도 수표에적힌금액에서은행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가 공제된다는 것도 우리는 고려하지 않았다. L과 나는 실수와 계산 착오를 전혀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적인 궁지에 빠질 때가 많았다. 담배가 떨어져 지독한 니코틴 금단 증세에 시달리던 일이 기억난다. 나는 흡연욕구로 몸이 마비되어 떨어진 동전이 없나하고 소파 쿠션사이를 뒤지거나 찬장뒤를 기어다녔다. 18 상팀, 약 4.5 센트만 있으면 한 갑에 네 개비가 들어있는 파리지엔 담배를 살 수 있었다. 개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녀석들이 나보다 잘 먹는다고 생각했던 일이 기억난다. 개 먹이 통조림을 따서 저녁식사로 먹으면 어떨까하고 L과 진지하게 의논한 적도 있었다. 그해의 우리의 다른 수입원은 제임스 슈거라는 사람 뿐이었다. 슈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전속 사진가였는데 우리 고용주와 협력하여 그 지역에 대한 기사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잡지사가 제공한 렌터카를 타고 프로방스 지역으로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몇 달 동안 사진을 찍었고 우리가 사는 숲 근처에 올 때 마다 우리와 함께 밤을 보냈다. 잡지사는 그에게 필요 경비도 지급했기 때문에 호텔 숙박비로 할당된 돈을 우리한테 너그럽게 내주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액수는 하루에 50 프랑이었다. 요컨데 L과 나는 슈거의 전용 여인숙 주인이 되었고 게다가 슈거는 상냥하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그를 반갑게 맞이 했다. 유일한 문제는 그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는 전화를 미리 걸어준 적도 없었고 한 번 왔다 가면 몇 주 동안 감감 무소식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슈거 씨를 믿지 않기로 했다. 그는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반짝이는 푸른색 차를 집 앞에 새우고, 하루나 이틀 머물다가 다시 사라졌다. 그가 떠날 때 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그를 만나지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늦 겨울에서 이른 봄에 이르는 시기에 최악의 순간이 찾아왔다. 수표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개 한 마리를 도둑 맞았다. 부엌에 비축된 식량도 조금씩 야금야금 줄어들어 결국에는 양파 한 자루와 식용유 한 병,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누군가 사다놓은 파이 껍질, 지난 여름에 먹다 남은 것이어서 다 말라 비틀어진 찌꺼기 그것 밖에 남지 않았다. L과 나는 오전 내내 배고픔을 견뎠고 오후로 넘어간 뒤에도 몇 시간을 버쳤지만 두 시 반이 되자 결국 허기가 우리를 이겼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식사를 장말하러 부엌에 들어갔다. 음식 재료가 부족해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양파파이 뿐이었다. 양파파이를오븐에 넣은 뒤 충분한 시간이 지난 것 처럼 느껴지자 우리는 파이를 꺼내 식탁에 놓고 걸신 들린 듯이 먹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이제까지 맛 본 음식 가운데 최고로 맛있다고 말하기까지 했지만, 물론 그것은 기운을 잃지 않으려는 심겨운 노력이고 책략이었다. 하지만 씹을 수록 파이 맛은 실망스러웠다. 파이는 다 익지 않았고 특히 가운데 부분은 아직도 너무 차가워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마지못해 정말로 마지못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파이를 오븐에 다시 넣고 십 분에서 십 오분 동안 익힐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얼마나 시장했는지를 생각하면, 그리고 우리 침샘이 이제 막 활성화한 것을 생각하면 파이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초조감을 달래려고 밖에 나가 잠깐 산책을 했다. 부엌에 감도는 좋은 냄새를 맡지 않으면 시간이 좀 더 빨리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집을 한 바퀴 돌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두 바퀴 돌았는지도 모른다. 아마 대화에 빠져들었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리고 아무리 오랫동안 밖에 나가 있었다 해도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부엌은 벌써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미친듯이 오븐으로 달려가 파이를 꺼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우리의 식사는 죽어버렸다. 죽어서 화장되어 버렸다. 까맣게 타서 숯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단 한 입도 구제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우스갯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때는 결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캄캄한 구덩이에 빠져버렸는데 밖으로 벗어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꼴이었다. 그래도 남자답게 굴려고 버둥거리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때 만큼 웃고 싶은 마음도 나지않고 농담도 지껄이고 싶지도 않은 순간이 또 있었을까? 이것은 정말로 끝이었다. 끔찍하고 무서운 벼랑 끝이었다. 오후 네 시 였다. 그후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방랑자 슈거 씨가 불쑥 나타났다. 먼지 구름을 일으키고 자갈과 흙을 자박자박 짓누르면서 달려왔다. 그때 일을 열씸히 생각하면 차에서 뛰어내려 인사할 때 그의 얼굴에 감돌던 순진하고 얼띤 미소를 아직도 눈앞에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진짜 기적이었다. 나는 내 눈으로 기적을 목격했고 내 몸으로 기적을 체험했다. 그 순간까지만 해고 나는 그런 일은 오직 책에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다. 슈거는 그날 밤 별 두 개짜리 레스토랑에서 우리에게 저녁을 사주었다. 우리는 배불리 잘 먹었고 포도주를 몇 병이나 비웠고 배꼽을 잡으며 웃어댔다. 그때 먹은 음식은 틀림없이 맛있었을 텐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해 낼 수가 없다. 하지만 양파파이의 맛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네 여기 나오는 L은 나중에 그 폴 오스터의 아내가 되는 사람입니다. 이 둘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죠. 폴 오스터는 (여기도 잠깐 묘사가 되어 있지만) 처음에는 불어 번역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대단히 가난한 오랜 시절을 보냈는데요. 그 시절 이야기를 여러군데 많이 썼습니다. 뭐 [빵 굽는 타자기]라던가 이런데에 썼는데, 가난했던 시절의 경험을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쓰기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잘 써요. 재밌는 사연이 이것 말고도 많은데 나중에 한번 기회가 되면 [빵 굽는 타자기] 같은 책도 읽어보시기 바라고요. 이 글에서 그 슈거 씨라는 그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까?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전속 사진가인데, 이 '슈거'라는 것이 알고 들으시면 또 재밌는데 미국의 속어로 돈을 뜻합니다. 그리고 Sugar Daddy라고 하면요 원조교제를 하는 돈 많고 어수룩한 나이 많은 남자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슈거 씨를 기다리고 있다..이런 것은 사실은 참 절묘한 표현이 됩니다. 그리고 이상한 우연이죠. 하필 그때 슈거 씨가 나타나가지고 밥을 사준다는 것은 대단히 미국 독자들에게는 우리(에게)보다는 좀 더 배밌는 부분이 아니였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자 오늘은 폴 오스터의 [빨간 공책]이라는, 책은 작은데요 예쁩니다. 이 책 가지고 얘기를 나눠봤는데 이 책에는 그런 어떤 이상한 일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적혀 있어요. 폴 오스터의 책 중에서 한국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책 중에 하나가 [나는 아버지가 신인 줄 알았다]라는 책 입니다. 이 책은 NPR (라디오)에서 폴 오스터가 그 어떤 재밌는 실화들을 전국의 (미국 전국의) 독자들 한테, 청취자들한테 수집한 것을 편집해서 낸거예요. 다시 말해서, 폴 오스터의 글은 아니지만 폴 오스터의 경험은 아니지만 폴 오스터가 패널로 나가서 수집한 이야기, 미국 전국의 독자들이 보내온 그런 이야기들을 추린 겁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꼭 아까 그 폴 오스터의 사례 같기고 하고 마르케스의 사례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폴 오스터가 거기 앉아 있으니까 꼭 폴 오스터스러운 이야기들이 모인거예요. 그래서 이상한 우연들, 말도 안 되는 얘긴데 뭐 어떻게 들으면 말이 될 것 같기도 한 그런 얘기들이 모였습니다. 일반인들이 겪은,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겪은 그런 희안하고 좀 재밌는 얘기들도 거기에 반드시 유머가 있어요. 폴 오스터가 유머를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런 것들이 들어있는 좀 두툼한 책인데 저는 그것도 좀 재밌게 봤습니다. 자 오늘은 이렇게 폴 오스터의 [빨간 공책]이라는 책의 에피소드들을 읽어드렸습니다.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열 두 번 째 에피소드 여기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영하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pisode 12 - 폴 오스터 "빨간 공책" (Paul Auster) Episode 12 - Paul Auster "The Red Notebook" (Paul Auster) Episode 12 - ポール・オースター "赤いノート" (Paul Auster)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Writer Kim Young-ha's'Book Reading Time' Podcast 안녕하세요. 김여하입니다. 그동안 잘들 지내셨습니까? 책 읽는 시간 그 열 두번 째 시간이 되겠습니다. It will be the twelfth hour of reading time. 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또 서가 앞에서 어슬렁 거리면서 책을 골라봤는데요. Yes, what kind of book will I read today? I also wandered in front of the bookshelf and picked a book. 숨어있어가지고 잘 눈에 띄지 않던 책이었는데, 오랜만에 제 눈에 걸려든 그런 책입니다. It was a book that was invisible because it was hidden, but it caught my eye after a long time. 작가는뭐 다들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I think that everyone knows what the artist is. 폴 오스터입니다. 미국작가죠? 폴 오스터. 우리나라에는 그 [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으로 유명하고요. In Korea, it is famous for that [Giant Monster: Leviathan]. 그밖에도 많은 책들을 내셨죠. He published many other books. 특히 그 영화 [스모크]의 원작자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In particular, it is well known as the original author of the movie [Smoke]. 이분 소설의 독자들이 한국에도 상당히 많은 데요 일단. There are quite a lot of readers of this novel in Korea.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상다히 환상적인 이야기와 현실적인 이야기를 잘 결합해서 재미난 소설을 쓰는 분이고요. He writes a fun novel that combines a really fantastic story with a realistic story. 이분 소설에 독특한 점이라면 다른 현대 작가들과는 달리 우연이라는 것, 뭐 다른말로 표현하면 운명의 장난이랄까요? What is unique about this novel is that it is a coincidence unlike other contemporary writers, or in other words, is it a joke of fate? 이런것들을 과감하게 소설에 집어넣는다는것이죠. It means that these things are boldly incorporated into the novel.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정말 말도안 되는 우연으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된다거나 아니면 과거의 누군가와 조우한다거나 또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확률로 어떤 일들을 겪게 된다는 것이 상당히 이분 소설의 중요한 플롯 상의 특징 인데요. So it's quite an important plot feature of this novel that the characters are going to meet someone by a really ridiculous coincidence, encounter someone in the past, or go through certain things with a probability that can hardly happen. 왜냐면 현대 소설에서 작가들은 우연을 배제하도록 배웁니다. Because in modern novels, writers are taught to rule out coincidence.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일어나는 것은 좀 무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배우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주로 이제 생각하게 되죠. It's a bit unreasonable for this ridiculous coincidence to happen. Because I learn this way, I mainly think about what could happen. 그런데 이 폴 오스터의 소설에서는 이러날 수 있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게 그게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이 사람의 소설, 이 작가의 소설 작법의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분은 뉴욕에 살고있고요, 네 뉴요커들이 아주 사랑하는 소설가 중에 한 분 입니다. He lives in New York and is one of the novelists that your New Yorkers love very much. 이 분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역시 [뉴욕 3 부작 New York Trilogy]라는 책인데요. A novel that can be said to be his success story is also a book called [New York Trilogy]. 86년에 나왔습니다. 그 뒤에 [달의 궁전 Moon Palace], [공중 곡예사 Mr.Vertigo]라던가요, 그 다음에 뭐 에세이도 많이 내셨어요. [굶기의 예술], [빵 굽는 타자기],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이게 이제 [스모크]의 원작이 되는거죠. [Art of Hunger], [Bread Typewriter], [Ogi Ren's Christmas Story] are now the original works of [Smoke]. 이런 것을 냈고요. 영화도 하셨어요. 성공은 하지는 못하셨지만 영화도 이제 잠깐 만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다. I wasn't successful, but I have made a movie for a while now. 이 분 소설에 이렇게 우연이 많이 등장하다 보니까 도데체 이런 것은 다 어디서 나온거냐..이런 의문들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갖게 되는데요. 그래서 이분의 에세이를 보면 자기 인생에 일어났던 그런 기가막힌 우연들에 대해서 적어놓은 글들이 좀 있습니다. So, if you look at his essay, there are some writings written about such incredible coincidences in his life. 온르 소개해드릴 책은 [빨간 공책]이라는 책인데요. The book I will introduce to you is a book called [Red Notebook]. 이 책에 또 역시 그런 우연들로 가득합니다. This book is also full of such coincidences. 그런데 읽고있으면 말이 안 될것 같은데 말이 되면서 재밌습니다. But reading it doesn't make sense, but it makes sense and it is fun 그게 이분의 글의, 글쓰기의 특징 입니다. That is the characteristic of his writing, writing. 그래서 한 부분을 먼저 읽어 보고요. 그리고 계속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And we will continue to talk about it.

내 첫 번 째 소설에 영감을 준 것은 잘못 걸려온 전화였다. It was the wrong phone call that inspired my first novel. 어느 날 오후, 내가 브루클린의 아파트에서 혼자 책상 앞에 않아 일을 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것은 내가 시어스타디움 밖에서 10센트 짜리 동전을 주운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80 년의 봄이었다. If my memory is correct, it was the spring of 1980, not long after I picked up a 10-cent coin outside Sears Stadium. 내가 수화기를 들자 전화를 건 남자는 핑커턴 탐정사무소사 맞느냐고 물었다. When I picked up the handset, the man calling me asked if it was Pinkerton's detective office. 나는 나이라고,전화를잘못 걸었다고 말하고 수홧기를 내려놓았다. 나는다시 일을 시작했고, 잘못 걸려온 전화에 대해서는 곧 잊어버렸다. 이튿날 오후에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어제 그 사람이 어제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핑커턴 탐정사무소인가요?" 나는 또 아니라고 대답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I said no again and put the handset down.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But suddenly I thought this. 만약 내가 그렇다고 대답했으면 무슨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핑커턴 탐정사무소에 소속된 사립탐정인 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What if I had been a private detective belonging to the Pinkerton Detective Office? 그 사람이 의뢰하는 사건을 실제로 내가 맡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솔직히 말하면 좀 처럼 얻기 힘든 기회를 놓쳐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 남자가 또 전화를 걸어보면 좀더 말을 시켜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애써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전화벨이 다시 울리기를 기다렸지만 세 번 째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후 내 머리속에서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기 시작했고, 수많은 가능성의 세계가 내 앞에 전모를 드러냈다. 일년 뒤에 내가 [유리도시]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잘못 걸려온 그 전화는 그 작품의 중대한 사건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실수가 이야기 전체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퀸이라는 남자가 전화를 받는다. A man named Queen answers the phone. 전화를 건 사람은 사립탐정인 폴 오스터와 통화하고 싶다고 말한다. 퀸은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말하고 수화기를 놓는다. Quinn says she made the wrong phone call, like I did, and puts the handset over. 이튿날 밤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또다시 퀸은 전화를 끊는다. The same thing happens the next night, and again Quinn hangs up. 하지만 나와는 달리 퀸은 한 번 더 기회를 얻는다. But unlike me, Queen gets one more chance. 사흘 째 밤에 또 전화벨이 울리자 퀸은 전화를 건 사람에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서 사건을 맡는다. On the third night, when the phone rings again, Quinn confronts the caller and takes the case.

"네, 제가 폴 오스터인데요. "하고 그는 말한다. "And he says. 그리고 그 순간 광기가 시작된다. And at that moment, the madness begins. 무엇보다도 나는 내 원래 충동에 충실하고 싶었다. Above all, I wanted to be true to my original impulse. 실제로 일어난 일의 정신에 충실하지 않으면 책을 쓰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나 자신, 또는 적어도 나를 닮은 사람,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이야기의 전개 속에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했고, 또한 탐정이 아닌 탐정에 대해, 남의 흉내를 내는 것에 대해, 풀릴 수 없는 미스터리에 대해 쓰는것을 의미했다. 좋든 나쁘든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I felt like I had no choice, good or bad. 어쩔수 없다. 나는 10 년 전에 그 책을 끝냈고, 그 후 다른 계획과 다른 착상과 다른 작품에 열중했다. 하지만 책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저자가 없어도 이야기가 저절로 계속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두 달 전에 깨달았다. 그날 오후 브루클린의 아파트에서 혼자 책상앞에 앉아 일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이것은 내가 1980년에 살았던 아파트와는 다른 아파트였다. This was a different apartment from the apartment I lived in 1980. 아파트도 다르고 전화번호도 달랐다. 내가 수화기를 들자 전화를 건 사람은 퀸 씨를 바꿔줄 수 있냐고 물었다. When I picked up the handset, the person calling asked if she could replace Mr. Quinn. 스페인 억양이 섞여있는 내가 모르는 목소리였다. It was a voice I didn't know with a Spanish accent. 나는 문득 친구가 나를 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I suddenly thought my friend might be making fun of me.

"퀸 씨라고요? 이건 무슨 농담인가요?" 아니 그것은 농담이 아니였다. 그 남자는 더없이 진지했다. 그는 퀸씨와 꼭 통화해야 하니까 바꿔달라고 진지하게 부탁했다. 나는 확인을 하기 위해 이름의 철자를 물어보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외국 말투가 아주 심하니까 어쩌면 퀸(Quinn)이 아니라 퀸(Queen)씨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The caller speaks very foreignly, so maybe he's looking for Mr. Queen, not Quinn. 나는 그러기를 바랐지만 불행이도 내 기대는 무너졌다. I hoped so, but unfortunately my expectations collapsed.

"Quinn." 그가 대답했다.

나는 불현듯 겁이나서 한동안 아무 말도 입 밖에 낼 수가 없었다. I was suddenly scared and couldn't say anything for a while.

"죄송합니다." 마침내 나는 말했다. Finally I said "퀸 씨라는 사람은 여기 없습니다.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그는 폐를 끼쳐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우리는 둘다 전화를 끊었다.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내가 이 [빨간 공책]에 적어놓은 얘기들이 모두 그렇듯이 이것도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네, 무슨 믿거나 말거나 같은데 나올 법한 이야기죠? Yes, believe it or not, it sounds like a story, right? 처음에는 핑커턴 탐정사무소를 찾는 전화가 폴 오스터한테 오고요. Initially, a phone call to the Pinkerton detective office comes from Paul Oster. 그래서 폴 오스터가 이것에 영감을 받아가지고, 소설에 그 퀸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받는 거죠. 폴 오스터를 찾는 전화를 받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요. 그로부터 한 10 년이 지나서 이번에는 폴 오스터에게 퀸이라는 사람을 찾는 전화가 온다는 것이죠? 돌고 돌면서 이야기들이 맞물리게 되는데, 이런 그.. 작법 (물론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폴 오스터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물고 물리는 것은 폴 오스터 소설의 어떤.. 플롯의 원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Stories come together as they go around, and this... Writing (Of course, Paul Oster says it happened) This way, the story bites and bites is the archetype of some of Paul Oster's novels. 저는 이제 이분 소설 중에서 [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 이라는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데, 그걸 보면 이런 식으로 어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에 약간 뒤틀려서 맞물리고 또 뒤틀려서 맞물리는 그런 과정을 볼 수가 있고요. I now like the novel [Giant Monster: Leviathan] among these novels, and if you look at it, you can see a process in which one event is slightly twisted and interlocked with another event in this way. 그런 것이 이야기의 독특한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그 이런 얘기가 약간 연관됐습니다만은, 소설가들은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하는데요. 어떤 이야기 (소설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죠), 그 이야기를 일단 글로 쓰면요 그 다음에는 어떤 마술적인 일들이 가끔 일어납니다. 예전에도 보면 마법사들이 이렇게 주문을 글로 써가지고 태우기도 하고 이러지 않나요? 또는 그냥 말로, 이렇게 말하자면 방자해도 되는데 꼭 그림을 그리고 뭐 글로 써가지고.. 우리나라 옛날에도 보면 궁중에서 바늘로 꽂고 그러잖아요. 그런것이 왜 필요할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글이 가진 어떤 마법적인 힘 때문인 것 같아요. I thought why would I need that, but I think it was because of some magical power of writing. 일단 써놓으면 바꾸기가 어렵죠. 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힘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그 옛날에 마법의 주문 같은 거에도 적용이 됐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마르케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Marquez, Gabriel Garcia Marquez I once said something similar. 이분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적인 성공작이죠?)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에 보면, 돼지 꼬리를 갖고 태어난 남자가 있습니다. 이 돼지 꼬리를 갖고 태어난다.. 사람의 꼬리 뼈는 전부 퇴화했죠. 그래서 꼬리가 없는게 사람이죠. 꼬리가 있으면 원숭이죠. 그런데 이 사람은 그것도 원숭이 꼬리도 아니고 이렇게 스프링 처럼 생긴 돼지 꼬리를 갖고 태어난 남자인데요. 이 남자 얘기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야말로 상상을 해서 쓴겁니다. 그런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없어요. 그리고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뭐 아시겠지만 그 소설에는 그런 얘기가 나와도 하나도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사람이 담요타고 승천하고 뭐 뭐 하튼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 공간으로 남미가 묘사되고 있는데요. South America is described as a space where people ascend on a blanket and somehow strange things continue to happen. 그래서 그걸 썼더니, 쓰고 이 사람은 그 소설로 뭐 일약 세계적인 유명작가가 돼서 노벨 문학상도 받게되죠. So when I wrote it, I wrote it, and this person became a world famous writer with that novel, and received the Nobel Prize for Literature. 근데 노벨 문학상을 받고 전 세계적으로 그 책이 유명해진 뒤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수백통의 편지를 받은거예요. 누가 보냈냐하면, 그 돼지 꼬리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이분에게 편지를 보낸겁니다. Who sent it, people who were born with the pig's tail sent a letter to him. "저는 그냥 이것을 그냥 부끄럽게 생각하고 모두에게 감추고 살아왔는데,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런 소설에 (물론 노벨 문학상은 소설에 주어지는 상은 아닙니다.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이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죠)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런 소설에 나와 같은 인물이 나온다는 것을 보고 아주 위안을 받았다. 많은 위안을 받았다. 고맙다. 이런걸 써줘서 고맙다." 이런 글들이 전세계 돼지 꼬리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로 부터 편지를 받게 된거죠. 그런데 이 마르케스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이제 그 마르케스라는 작가의 상당히 그 독특한 점인데, 이분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원래 돼지 꼬리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자기는 그것을 모르고 소설을 썼더니 그 사람들이 (말하자면) 커밍아웃을 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소설에 돼지 꼬리를 가진 사람을 씀으로서 비로소 그런 사람들이 나타났다고 보는거예요. 다시 말해서, 자신이 소설에 돼지 꼬리를 가진 남자를 쓰지 않았다면 그들은 영원히 없었을 거라는 것이죠. 존재 자체가 그냥 없었다는 거예요. 물론 있었겠죠. 현실적으로는 있었겠지만 없는것과 마찬가지였다란 뜻은 마르케스틑 좀더 강하게 얘기하는 겁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유명한 시 [꽃]인데요. 이런 시를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마르케스 이 얘기를 좀 더 밀고 나가자면, 언어라는 것은 세상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죠. Marques To push this story a little further, language is what gives the world a name. [로미오와 줄리엣]에 그 유명한 대사가 나오죠. There is a famous line in [Romeo and Juliet]. 거기 보면, '다른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더라도 장미는 여전히 향기로울 거예요. If you look there,'No matter what other name you call it, the rose will still be fragrant. 당신의 일부가 아닌 그 이름을 벗어 던지고 대신 내 전부를 가져요.' Throw off those names that aren't part of you and take my all instead.' 뭐 이런 대사인데요. Well, this is a line like this. [장미의 이름]이라는 그 움베르토의 소설도 여기서 따온 것이죠. That Umberto novel called [The Name of the Rose] is also taken here. 장미의 이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장미는 장미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사랑에 빠질 때 줄리엣의 대사이고요. 사실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끝에 가보면 장미의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이 몬테규고 케퓰렛이고.. 즉 이들의 성, 가문의 이름이라는 것이 이 두 젊은 남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죠. These are the Monte Gyugo Kepulets... that is, their surname and family name determine the fate of these two young men and women. 그만큼 언어, 그 이름, 여기서는 성이라는 것은 아버지의 이름인데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명명하면, 그리고 그것이 이름을 갖게 되면, 이름을 붙이면, 또 어떤 스토리가 만들어지면, 암흑속에 있던 이름 없는 것들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죠. 돼지 꼬리를 달고 태어났던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조차도 부정하던 자기의 모습을 받아들이게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을 보면 저는 무섭다..이런 생각이 드는데, 이 폴 오스터의 경우에도 어떤 계기가 있죠. I'm scared to see something like this.. I think this is what happened in Paul Oster's case. 영감이 있어서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을 쓰고 나서 그것이 또 어떤 일을 만들어 냈다고 믿고 있는 것인데, 이런 일은 실제로 많은 소설가들이 여러 형태로 경험하게되는 네 그런 일인 것 같아요. 자 한편을 더 읽어 볼까요? Now shall we read one more? 이것은 그런 우연의 문제는 아니지만 절묘한 타이밍 역시 이 폴 오스터가 좋아하는 그런 이야기 소 중에 하나입니다. This isn't a matter of coincidence, but the exquisite timing is also one of Paul Oster's favorite stories. 절묘한 타이밍에 대한 얘긴데 들으면 좀 재밌습니다. It's about exquisite timing, but it's a bit fun to hear. 한번 들어보시죠.

1973 년에 나는 프랑스 남부에 있는 어느 농가에 관리인 자리를 제의 받았다. In 1973 I was offered a position as custodian at a farmhouse in southern France. 내 친구의 법률적 문제는 진작 해결되었고, 끊어졌다 이어졌다하는 우리의 연애가 또 시작된듯 했기 때문에 우리는 힘을 합쳐 그 일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My friend's legal problem had already been resolved, and our relationship, which was broken and then continued, seemed to have started again, so we decided to join forces and do it together. 그때 즘에는 둘다 빈털털이 신세여서 그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면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At that time, both of them had no choice but to return to the United States if they couldn't get the job because they were both vulgar. 하지만 아직 둘다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But neither of them were ready to return to the United States yet. 1973 년은 지나고 보니 기묘한 해였다. 게다가 그곳은 아름다웠다. 18세기에 지은 널찍한 돌집의 한 쪽은 포도밭에 면해 있고 또 한 쪽에는 국유림이 펼쳐져 있었다. One side of the spacious stone house built in the 18th century faced the vineyard, and the other side was a national forest. 가장 가까운 마을은 2 km 나 떨어져 있었고, 마을 주민은 아홉 명도 채 안 되었고, 게다가 육, 칠십 세 이하는 한 사람도 없었다. The nearest town was 2 km away, there were less than nine villagers, and there was no one under the age of six or seventy. 두 젊은 작가가 일 년 쯤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It was a perfect place for two young writers to spend about a year. L과 나는 그곳에서 열심히 일했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반면에 우리는 늘 벼랑 끝에 서있는 것 처럼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었다. 우리를 고용한 사람은 파리에 사는 미국인 부부였는데, 매달 우리에게 약간의 급료 50 달러와 자동차 기름값, 집에 딸린 식구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두 마리의 사료값을 보내주었다. 대체로 후한 조건이었다. It was generally a generous condition. 집세도 필요 없고 급료는 우리 둘이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매달 생활비를 마련하는데 필요한 발판이 되어 주었다. 모자라는 생활비는 번역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The lack of living expenses was planned to be covered by translation. 우리는 파리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기 전에 일년 동안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번역 일거리를 얻어 두었다. Before we left Paris and settled in the countryside, we had enough translation jobs to live for a year. 우리가 미처 계산해 넣지 않은 것은 출판사들이 번역료를 늦게 줄 때 가 많다는 것이었다. 또한 외국에서 보내온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면 몇 주가 걸릴 수 있고, 일단 추심이 끝나도 수표에적힌금액에서은행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가 공제된다는 것도 우리는 고려하지 않았다. L과 나는 실수와 계산 착오를 전혀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에 절망적인 궁지에 빠질 때가 많았다. 담배가 떨어져 지독한 니코틴 금단 증세에 시달리던 일이 기억난다. I remember running out of cigarettes and suffering from severe nicotine withdrawal. 나는 흡연욕구로 몸이 마비되어 떨어진 동전이 없나하고 소파 쿠션사이를 뒤지거나 찬장뒤를 기어다녔다. I was paralyzed by the desire to smoke, so I looked through the sofa cushions or crawled behind the cupboards to see if there were any coins that had fallen. 18 상팀, 약 4.5 센트만 있으면 한 갑에 네 개비가 들어있는 파리지엔 담배를 살 수 있었다. 18 Sangtim, for about 4.5 cents, I could buy a Parisian cigarette containing four cigarettes in a pack. 개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녀석들이 나보다 잘 먹는다고 생각했던 일이 기억난다. 개 먹이 통조림을 따서 저녁식사로 먹으면 어떨까하고 L과 진지하게 의논한 적도 있었다. There was a time when I seriously discussed with L what it would be like to take canned dog food and eat it for dinner. 그해의 우리의 다른 수입원은 제임스 슈거라는 사람 뿐이었다. Our other source of income for the year was a man named James Sugar. 슈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전속 사진가였는데 우리 고용주와 협력하여 그 지역에 대한 기사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우리 생활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Sugar was an exclusive photographer at National Geographic, and because he was working with our employer to make an article about the area, he naturally came into our lives. 그는 잡지사가 제공한 렌터카를 타고 프로방스 지역으로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몇 달 동안 사진을 찍었고 우리가 사는 숲 근처에 올 때 마다 우리와 함께 밤을 보냈다. He took pictures for several months, traveling side by side through the Provence region in a rental car provided by the magazine, and spent the night with us whenever he came near the forest where we live. 잡지사는 그에게 필요 경비도 지급했기 때문에 호텔 숙박비로 할당된 돈을 우리한테 너그럽게 내주었다. The magazine also paid him the necessary expenses, so generously gave us the money allocated for hotel accommodation.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액수는 하루에 50 프랑이었다. If my memory is correct, that amount was 50 francs a day. 요컨데 L과 나는 슈거의 전용 여인숙 주인이 되었고 게다가 슈거는 상냥하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그를 반갑게 맞이 했다. 유일한 문제는 그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The only problem was that he didn't know when to appear. 그는 전화를 미리 걸어준 적도 없었고 한 번 왔다 가면 몇 주 동안 감감 무소식일 때가 많았다. He hadn't called him in advance, and once it came and went, it was often invisible for weeks. 그래서 우리는 슈거 씨를 믿지 않기로 했다. So we decided not to trust Mr. Sugar. 그는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반짝이는 푸른색 차를 집 앞에 새우고, 하루나 이틀 머물다가 다시 사라졌다. 그가 떠날 때 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그를 만나지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Every time he left, we thought we would never see him again. 늦 겨울에서 이른 봄에 이르는 시기에 최악의 순간이 찾아왔다. The worst moment has come from late winter to early spring. 수표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개 한 마리를 도둑 맞았다. The check seldom came, and a dog was stolen. 부엌에 비축된 식량도 조금씩 야금야금 줄어들어 결국에는 양파 한 자루와 식용유 한 병, 우리가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누군가 사다놓은 파이 껍질, 지난 여름에 먹다 남은 것이어서 다 말라 비틀어진 찌꺼기 그것 밖에 남지 않았다. L과 나는 오전 내내 배고픔을 견뎠고 오후로 넘어간 뒤에도 몇 시간을 버쳤지만 두 시 반이 되자 결국 허기가 우리를 이겼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식사를 장말하러 부엌에 들어갔다. So we went into the kitchen for our last meal. 음식 재료가 부족해서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양파파이 뿐이었다. The only dish we could make because of the lack of ingredients was onion pie. 양파파이를오븐에 넣은 뒤 충분한 시간이 지난 것 처럼 느껴지자 우리는 파이를 꺼내 식탁에 놓고 걸신 들린 듯이 먹기 시작했다. After putting the onion pie in the oven, it felt like enough time had passed, so we pulled out the pie, put it on the table, and started eating it as if we had heard it. 예상과는 달리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이제까지 맛 본 음식 가운데 최고로 맛있다고 말하기까지 했지만, 물론 그것은 기운을 잃지 않으려는 심겨운 노력이고 책략이었다. 하지만 씹을 수록 파이 맛은 실망스러웠다. However, the more I chewed, the more disappointing the pie taste. 파이는 다 익지 않았고 특히 가운데 부분은 아직도 너무 차가워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마지못해 정말로 마지못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We were reluctantly reluctant to admit this fact. 파이를 오븐에 다시 넣고 십 분에서 십 오분 동안 익힐 수 밖에 없었다. I had to put the pie back in the oven and cook it for ten to fifteen minutes. 우리가 얼마나 시장했는지를 생각하면, 그리고 우리 침샘이 이제 막 활성화한 것을 생각하면 파이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초조감을 달래려고 밖에 나가 잠깐 산책을 했다. We went outside for a short walk to relieve our nervousness. 부엌에 감도는 좋은 냄새를 맡지 않으면 시간이 좀 더 빨리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집을 한 바퀴 돌았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두 바퀴 돌았는지도 모른다. 아마 대화에 빠져들었겠지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리고 아무리 오랫동안 밖에 나가 있었다 해도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부엌은 벌써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미친듯이 오븐으로 달려가 파이를 꺼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우리의 식사는 죽어버렸다. Our meal is dead. 죽어서 화장되어 버렸다. I died and was cremated 까맣게 타서 숯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It was charred and turned into a lump of charcoal. 단 한 입도 구제할 수가 없었다. I couldn't save a single bite. 지금은 우스갯 소리처럼 들리지만 그때는 결코 웃을 일이 아니었다. It sounds like a joke now, but then it was never something to laugh. 캄캄한 구덩이에 빠져버렸는데 밖으로 벗어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꼴이었다. 그래도 남자답게 굴려고 버둥거리며 살아온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때 만큼 웃고 싶은 마음도 나지않고 농담도 지껄이고 싶지도 않은 순간이 또 있었을까? 이것은 정말로 끝이었다. 끔찍하고 무서운 벼랑 끝이었다. It was a terrible and terrifying cliff. 오후 네 시 였다. 그후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방랑자 슈거 씨가 불쑥 나타났다. 먼지 구름을 일으키고 자갈과 흙을 자박자박 짓누르면서 달려왔다. Raising a cloud of dust and crushing gravel and dirt, he ran. 그때 일을 열씸히 생각하면 차에서 뛰어내려 인사할 때 그의 얼굴에 감돌던 순진하고 얼띤 미소를 아직도 눈앞에 떠올릴 수 있다. If you think hard about what happened at that time, you can still remember the innocent, sulky smile on his face when he jumped out of the car and said hello. 그것은 기적이었다. It was a miracle. 진짜 기적이었다. It was a real miracle. 나는 내 눈으로 기적을 목격했고 내 몸으로 기적을 체험했다. I witnessed a miracle with my own eyes and experienced a miracle with my body. 그 순간까지만 해고 나는 그런 일은 오직 책에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다. Fired up to that moment, I thought it only happened in books. 슈거는 그날 밤 별 두 개짜리 레스토랑에서 우리에게 저녁을 사주었다. Sugar bought us dinner at a two-star restaurant that night. 우리는 배불리 잘 먹었고 포도주를 몇 병이나 비웠고 배꼽을 잡으며 웃어댔다. 그때 먹은 음식은 틀림없이 맛있었을 텐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억해 낼 수가 없다. 하지만 양파파이의 맛은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네 여기 나오는 L은 나중에 그 폴 오스터의 아내가 되는 사람입니다. 이 둘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죠. 폴 오스터는 (여기도 잠깐 묘사가 되어 있지만) 처음에는 불어 번역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Paul Oster (albeit briefly depicted here) initially made money with a French translation. 대단히 가난한 오랜 시절을 보냈는데요. 그 시절 이야기를 여러군데 많이 썼습니다. 뭐 [빵 굽는 타자기]라던가 이런데에 썼는데, 가난했던 시절의 경험을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쓰기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잘 써요. 재밌는 사연이 이것 말고도 많은데 나중에 한번 기회가 되면 [빵 굽는 타자기] 같은 책도 읽어보시기 바라고요. 이 글에서 그 슈거 씨라는 그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까?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전속 사진가인데, 이 '슈거’라는 것이 알고 들으시면 또 재밌는데 미국의 속어로 돈을 뜻합니다. I'm an exclusive photographer at National Geographic, and it's fun to know and hear that this'sugar' is an American slang word meaning money. 그리고 Sugar Daddy라고 하면요 원조교제를 하는 돈 많고 어수룩한 나이 많은 남자를 뜻합니다. And when I say Sugar Daddy, I mean a rich, stupid old man with an assistant dating. 그래서 이들이 슈거 씨를 기다리고 있다..이런 것은 사실은 참 절묘한 표현이 됩니다. That's why they are waiting for Mr. Sugar. This is actually an exquisite expression. 그리고 이상한 우연이죠. 하필 그때 슈거 씨가 나타나가지고 밥을 사준다는 것은 대단히 미국 독자들에게는 우리(에게)보다는 좀 더 배밌는 부분이 아니였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자 오늘은 폴 오스터의 [빨간 공책]이라는, 책은 작은데요 예쁩니다. 이 책 가지고 얘기를 나눠봤는데 이 책에는 그런 어떤 이상한 일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적혀 있어요. 폴 오스터의 책 중에서 한국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책 중에 하나가 [나는 아버지가 신인 줄 알았다]라는 책 입니다. 이 책은 NPR (라디오)에서 폴 오스터가 그 어떤 재밌는 실화들을 전국의 (미국 전국의) 독자들 한테, 청취자들한테 수집한 것을 편집해서 낸거예요. 다시 말해서, 폴 오스터의 글은 아니지만 폴 오스터의 경험은 아니지만 폴 오스터가 패널로 나가서 수집한 이야기, 미국 전국의 독자들이 보내온 그런 이야기들을 추린 겁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꼭 아까 그 폴 오스터의 사례 같기고 하고 마르케스의 사례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폴 오스터가 거기 앉아 있으니까 꼭 폴 오스터스러운 이야기들이 모인거예요. However, the interesting thing is that it looks like the case of Paul Oster earlier, and it reminds me of the case of Marquez, but since Paul Oster is sitting there, the stories that look like Paul Oster are gathered. 그래서 이상한 우연들, 말도 안 되는 얘긴데 뭐 어떻게 들으면 말이 될 것 같기도 한 그런 얘기들이 모였습니다. So, strange coincidences, nonsense, and things that might make sense if you hear them all gathered. 일반인들이 겪은, 작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겪은 그런 희안하고 좀 재밌는 얘기들도 거기에 반드시 유머가 있어요. There must be humor in the strange and funny stories that the general public suffered, and those who were not the writers. 폴 오스터가 유머를 좋아하기 때문인데, 그런 것들이 들어있는 좀 두툼한 책인데 저는 그것도 좀 재밌게 봤습니다. It's because Paul Oster likes humor, and it's a bit thicker book with stuff like that, and I enjoyed it a bit too. 자 오늘은 이렇게 폴 오스터의 [빨간 공책]이라는 책의 에피소드들을 읽어드렸습니다.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열 두 번 째 에피소드 여기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영하였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