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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11 - 김영하 “악어”

Episode 11 - 김영하 “악어”

작가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목소리로 유명한 가수였다. 그러나 변성기가 되기 전까지 허약하고 별볼일 없는 작은 소년에 지나지않았다. 늘 감기에 걸려있었고 그 밖에도 잦은 병치레를 했다. 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그의 부모는그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죽을지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랬기때문에 아들 이원하는 것은 가능하면 들어주었다. 말만 하면 부모가 어떻게든 소망을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자신이원하는 것을 입 밖에 잘 내지 않는 소년이 되었다. 그 역시 자신은 일찍 죽어 부모를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부모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부모는 그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그는 피아노를 더 좋아했지만 오래 치지는 못 했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 피아노 앞에 앉아 한 두 시간 씩 연습을 하곤했다. 건반을 두드리면서 가끔 허밍을 하기도 했다. 피아노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어린 그의 내면에서 서서히 커져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 친구들도 그를 알고는 있었지만 워낙 조용하고 말 수가 적는 아이였기 때문에, 몇 번 집적거리다가 흥미를 읽고 내버려두었다. 아이답지 않은 깊고 그윽한 눈과 한 번 마주치면 잔인하게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둥지에서 떨어져 파닥거리는 어린 새를 보듯 아이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훗날 그를 알게된 한 여자는 그의 눈을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눈동자'라고 회상했다. 그런데 변성기가 찾아오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다른아이들과 달리 그의 변성은 갑작스럽고 돌연했다. 그날도 그는 여느 때 처럼, 심한 감기에 걸려 며칠 동안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열도 높은데다 목이 꽉 감겨 아무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땀과 콧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그래서 시트와 베갯잇이 흠뻑 젖으면 어머니가 그것을 잘 마른 것들로 갈아주었다. 세 번 째로 시트를 갈았을 쯤에야 비로소 열리내리고, 미친 듯 흘러내리던 콧물도 멈췄다. 그리고 오래 잠겨있던 목도 풀렸다. 아, 아, 그릉그릉, 크르르르릉.. 목청을 가다듬을 때마다 목에서 진득한 무언가가 거칠게 치밀고 올라왔다. 몸은 아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그는 기억했다. 말리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욕실에 들어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그리고 뜨거운 김 속으로.. 자신의 마르고 쇠약한 몸을 밀어 넣었다. 그의 육체가 체온 보다 높은 온도의 물 속으로 잠겼다. 그는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후텁한 공기속으로 뭔가 차가운 것이 지나갔다. 그는 눈을 떴다. 욕실 안에 낯선 목소리가 앉아 있었다. 훗날 그는 그 장면을 그렇게 표현하곤 했다. 낯선 목소리 하나가 앉아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해도 목소리는 그의 몸속으로 들어와 그의 것이 되지 못한 채 욕실 안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를 조율할 때와 같은 단조로운 아, 아, 아, 소리가 욕실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아주 매력적이고 감미로웠다. 일찍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경한 목소리였지만 싫지 않았다. 자꾸만 듣고 싶은 울림이 있었다. 그는 손바닥을 목을 대에 대보고서야 그 매혹적인 목소리가 분명 자기 목소리임을 알았다. 그는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러보았다. 제 목에서 나와 욕실의 도기타일에 어지럽게 부딛쳐 돌아오는 그 음성은 풍성하고 다채로웠다. 높은 음을 낼 때는 아주 예리한 칼로 웃 자란 풀을 자를 때와 같은 소리가 났고, 낮은 음에서는 오래 무두질한 가죽으로 만든 북을 노련한 연주자가 섬세하게 두드리는 듯 했다. 중간음역대에서는 잘 숙성된 술이 그렇듯 독특한 성질이 여러 겹을 이루며 조화를 이루었다. 거친 야성은도회적 세련미와 어울렸고, 피콜로의 음색을 연상시키는 고음이 바순을 연상시키는 저음과 포개져 감칠맛을 냈다. 그 절묘한 하모니만으로는 그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아름다운 목소리 속에는 어떤 날카롭고 위험한 것이 숨어 있었다. 소년은 욕실에 울려 퍼지는 자기 목소리를 주의 깊에 들으며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자 했었다. “아..조심해.” 소년은 몸서리를 치며 혼잣말을 했다. 생크림 같은 짙은 안개가 숲을 뒤덥고 있었다. 그 속에서 갑자기 순록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이차선 도로의 한 가운데 멈춰선 채 고개를 돌린 순록은 마치 동화속의 유니콘 처럼 보였다. 바로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트럭 한 대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와 순록을 들이받고는 잠시 도로 위에서 비틀거리다가 다시 안개속으로 사라져 갔다. 트럭이 지나간 길을 따라 순록의 붉은 피가 점점이 도로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러나 순록은 보이지 않았다. 뿔이 어지러운 그 우아한 초식동물은 어디로 갔을까?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노래를 멈추고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욕실 밖으로 나와니 어머니가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그가 묻자, 그녀는 ‘잘 모르겠다. 괜히 눈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엄마 나이되면 가끔 이럴때가 있단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실은 자기도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다 몇 달 새 키가 부쩍 커버린 아들을 올려다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너 목소리가 변했네. 우리 아들 변성기인가보네.”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 목소리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좁혔다. “아니, 이상하지는 않은데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내 아들 같지가 않아.” 그녀는 아들이 변치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소파에서 일어나 목욕으로 몸이 뜨거워진 아들을 꼭 껴안았다. “어이구, 우리아들 맞네. 얼른 방에 들어가서 쉬어.” 그날 이후부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문은 빨리 퍼졌다.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들도 그에게 노래를 시켰다. 몇몇 여자애들이 앓아 누웠다. 별로 슬픈 노래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의 노래는 듣는 사람들 모두에게 자기 생애 가장 슬픈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체온도 올라가 그의 노래를 들을 때면 돌연 저릿, 한기를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평생 경험한 가장 달콤한 추위였어요.” 당시 그의 노래를 들었던 한 여자는 훗날 그렇게 회고했다. 한 여선생은 그를 상담실로 불러냈다. 한참을 안절부절하던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뺨에 갖다댔다. “미안해. 한 번 만. 그냥 한 번 만 너를 만져보고 싶었어. 니가 정말 사람일까 생각했었거든. 어떻게..어떻게 너는 그런 목소리를 가졌니? 그러고도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니? 넌, 넌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 그가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받게될 질문 세례의 시작이었다. 길지 않는 일생동안 그는 많은 여자를 안을 수 있었다. 가끔은 남자와도 잤다. 여자도 그리고 남자도, 사실 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들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모든 사람의 예상대로 그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직업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은 가지 않았다. 남의 곡을 받아 음반을 냈고, 여기저기서 콘서트를 했다. 그는 모두 다섯 장의 음반을 냈는데 당대의 음악적 유행과 거리가 먼 그런 노래들을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큰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기업적인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된 건 아니였지만 적지 않은 수의 열광적 팬들이 있었다. 어느 가을 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알몸으로 뒹굴고 있는..이름도 모르는 여자 옆에 누워 그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 목소리에 반했다고들 하지. 그런데 나는 이 목소리를 얻기위해 아무 노력도 한 적이 없어. 그냥 다른 사람처럼 변성기가 찾아왔을 뿐이야. 그리고 무슨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이런 목소리를 갖게 됐지. 그렇다면 언젠가 마치 그 김이 가득한 욕실로 그것이 나를 찾아왔을 때 처럼 다시 떠나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 그런 생각은 처음이었다. 늘 당연하다고만 생각해 왔었다. 새로 산 차를 몰고 주춤주춤 도로를 나서듯이, 그러다 어느새 그 차가 자기 차라는 걸 추호도 의심하지 않게 되듯이, 그는 새로 얻은 목소리에 익숙해 있었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잠든 여자를 흔들어 깨워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 새로 산 스포츠 카를 몰로 밖으로 나가 시내로 향했다. 가끔 사람들이 그리울 때마다 모자를 눌러쓰고 어두운 구석에 앉아 데킬라를 마시다 가곤하는 작은 클럽이었다. 자욱한 담배연기를 뚫고 들어가자 한 밴드가 악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기타 하나에 보컬 하나, 그리고 키보드로 이루어진 무명의 밴드였다. 고등학생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아이들이 앰프의 선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보컬은 특히 어려보였는데, 무대경험이 거의 없는 듯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보컬은 눈을 감은 채 마이크를 부여잡고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기타는음이 잘 맞지 않았고 키보드는 자주 리듬을 놓쳤다. 한마디로 초보적인 수준의 무명밴드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실력으로 남 앞에 나설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보컬만은 달랐다. 형편없는 연주를 뚫고 서서히 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잘 다듬어진 창법은 아니였지만 날것 그대로의 맹렬한 신선함이 살아있었다. 클럽의 공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민감한 귀를 가진 여자들이 먼저 수다를 멈췄다. 엑스터시에 취해 흐느적거리던 사내들이 고개를 들었다. 두 번 째 곡이 시작됐을 때는 클럽 안의 거의 모두가 무대를 보고 있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가수는 아직 여드름이 남아있는 소년이었다. 몸은 비쩍 말랐고 목은 가늘어 마치 해바라기 줄기 같았다. ‘어, 저렇게 야윈 몸이 어떻게 저렇게 무거운 머리를 지탱할 수 있을 까?' 그런나 그의 목소리 만은 놀라웠다. 그가 입을 벌려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클럽 안의 온도가 일 도 씩 내려가는 것 같았다. 스스슥, 차가운 물이 클럽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소년의 이 매혹적인 목소리에 어딘가 위험한 기운이 있었다. 낯설지 않았다. 소년의 노래를 들으며 그는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닦았다. 바로 그때, 쉬이익, 턱! 거대한 무언가가 천천히 길고 무거운 꼬리를 부드럽게 흔들며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지나 어두운 플로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눈물로 흐려진 눈으로 그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악어였다. 그토록 거대한 파충류가 꼬리를 흔들며 클럽 한 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악어는 노래에 빠진 사람들 사이를 유연하게 통과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온전히 그 안으로 사라지기 직전에 악어는 뭔가 잊은 것이 있다는 듯 쓰윽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온몸에 드르륵 돌기들이 솓았다. 다섯 곡을 내리 부른 뒤 밴드는 무대 뒤로 퇴장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뒤에 마련된 옹색한 대기실로 갔다. 꽃다발을 든 여자들이 대기실에 진을 치고 있었다. 몇 명은 그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향수 냄새를 풍기는 여자들을 젖히고 대기실의 철문을 열었다. 땀을 흘리며 악기를 챙기는 세 명의 덜 자란 청년, 혹은 웃자란 소년들이 거기있었다. 그는 보컬에게 다가갔다. 숨이 아직 거칠었고, 눈은 꿈꾸는 듯 몽롱했다. “무슨 일이시죠?”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 소년에게 자기 얼굴을 보여주었다. “노래 잘 들었어. 꽤 하던데?” “아..네.” 소년은 그가 누군지 전혀 못 알아보는 눈치였고, 알고 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초조해진 그는 더 화려한 찬사로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럴수록 소년은 그를 지겨워하는 눈치였다. 어서 그에게서 벗어나 밖에서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소녀들에게 가고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는 소년에게 물었다. “올해 몇 살이니? 변성기는 지난거야?” 돌아서려던 소년이 발길을 멈췄다. 그러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처음부터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던 기티리스트가 다가와 그를 향해 가슴을 내밀며 물었다. “그런건 왜 물어보세요? 아저씨 변태예요?” 그는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도시의 더러운 어둠을 향해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이런, 개새끼..' 그리고는 차를 커칠게 몰고, 여러번의 신호위반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독한 술을 마시고 잠이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느지막히 일어나 천천히 샤워를 했다. 그때가지도 그는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머리를 말리고 거실에 앉아서 지난 밤 여자 때문에 보지 못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를 보았다. ‘근데 어제 그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전혀 기억이 나지않았다. 전반전이 끝나고 그는 휴대폰을 들어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후의 일정을 알고싶었기 때문이었다. ‘왜요(not clear) 오늘 말이예요.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의 입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챈 매니저가 ‘여보세요? 여보세요?' 큰 소리로 외쳤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 아, 아, 입을 벌리고 목과 혀에 힘들 주었다. 마치 말이라는 것을 처음 배우는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를 않았다. 귀에는 이상이 없었다. 프리미어리그의 중계는 정상적으로 잘 들렸다. 그는 고함을 치려고도 해보았고 상상하기어려운 고음을 내보려고도 했다. 역시 소용이 없었다. 1리터가 넘는 물을 마셨고 목이 아플 때 마다 먹는 알약도 삼켰다. 신이 리모컨을 집어들고 나라는 인간의 볼륨을 확 커버린 걸까? 이제 지켜워 졌다고, 시끄럽다고 채널을 돌려버린 걸까? 한 시가 되자 그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매니저가 황급히 집으로 달려왔다. “야, 콘서트가 내일 모렌데 장난치는거지? 왜 이래? 이런 장난 나 싫어해.” 매니저는 묻고 또 물었다. “너 어제 도데체 뭘 한거야? 뭐 잘 못 먹었어?” 그는 코앞에 앉아 있는 매니저에게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야만 했다.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클럽에 가서 술 몇 잔 했어. 그게 다야.' 매니저도 역시 코앞에 앉아 있는 그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 답장을 보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을 못하면 귀도 안 들리는 줄 안다. 그는 병원에 가자고 했다. 잠깐 쉬면 좋아질 거라고 밤까지 지켜보고 안 되면 병원에 가자고.. 매니저는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매니저를 잘 달래 사무실로 돌려 보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매니저가 그를 대신에 세상에 그 사실을 알렸지만 그 말을 고지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악성 루머들이 떠돌아 다녔고 파기된 계약에 대한 소송이 잇따랐다. 어떤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아마 콘서트에 대한 압박 때문일겁니다.” 그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고 그 밖에도 사람들이 권한 그 모든것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의 목소리를 돌려주지 못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보내다 만 문자 메시지가 남아있는 휴대폰과 돈과 신용카드가 잔뜩든 지갑까지 그대로 둔채.. 심지어 입으려던 바지까지 침대위에 걸쳐둔 채.. 그는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가 살던 빌라 잔디밭에서 악어 한 마리가 발견됐다. 악어는 입을 벌린 채로 죽어있었다. 그 악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그 후로도 밝혀내지 못 했다. 죽은 악어는 한 동물원으로 보내져 박제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 동물원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깊은 밤이면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오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동물들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그 노래를 듣는 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암사자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홍학이 고개를 떨구고 슬퍼하더라고 했다. 동물원 전체에서 내내 태연한 것은 박제된 악어 뿐이었다. 영원히 입을 다물 수 없게 된 악어는 언제나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열한 번 째 에피소드를 진행하고 있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자 오늘 읽어드린 이 소설은, 이 그 짧은 소설은 제가 쓴겁니다. 제가 지난해 밴쿠버에 있을 때요, 그때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 도서관에 매일 자전거를 타고가서 글을 조금씩 썼었는데요, 이 밴쿠버라는 동네가 비도 많이 오고요, 어딘가 사람을 울적하게 만드는데가 있는 그런 도시입니다. 이 소설이 그런 도시에서 나온 것도 우연만은 아닌 것 같아요. 아직 아무데도 발표하지 않은 신작인데, 이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처음으로 공개를 합니다. 아마 다음에.. 어딘가에 묶일 수도 있겠죠. 뭐 하지만 현재까지는 이 팟캐스트를 들으시는 분들이 제일 처음 이 소설을 접하시는게 되겠습니다. 네, 오늘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열한 번 째는 제가 쓴 소설로 오랜만에 해봤는데요. 제목은 “악어”입니다. 잘 들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자 다음 시간에 저는 다시 뵙기로 하고요. 여기서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Episode 11 - 김영하 “악어” Episode 11 - Youngha Kim "Crocodile" Kim Episode 11 - キム・ヨンハ "ワニ"

작가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한 남자가 있었다. There was a man in the podcast'Time to Read a Book' by Young-Ha Kim. 그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목소리로 유명한 가수였다. He was a singer famous for his unique and mysterious voice. 그러나 변성기가 되기 전까지 허약하고 별볼일 없는 작은 소년에 지나지않았다. However, he was no more than a weak and useless little boy until his transformation period. 늘 감기에 걸려있었고 그 밖에도 잦은 병치레를 했다. 내놓고 말은 안 했지만 그의 부모는그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죽을지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랬기때문에 아들 이원하는 것은 가능하면 들어주었다. Because of that, I listened to my son Lee Won-i if possible. 말만 하면 부모가 어떻게든 소망을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자신이원하는 것을 입 밖에 잘 내지 않는 소년이 되었다. 그 역시 자신은 일찍 죽어 부모를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하면 부모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부모는 그에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쳤다. Parents taught him the piano and violin. 그는 피아노를 더 좋아했지만 오래 치지는 못 했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 피아노 앞에 앉아 한 두 시간 씩 연습을 하곤했다. 건반을 두드리면서 가끔 허밍을 하기도 했다. I sometimes humming while hitting the keyboard. 피아노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어린 그의 내면에서 서서히 커져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몰라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 친구들도 그를 알고는 있었지만 워낙 조용하고 말 수가 적는 아이였기 때문에, 몇 번 집적거리다가 흥미를 읽고 내버려두었다. 아이답지 않은 깊고 그윽한 눈과 한 번 마주치면 잔인하게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자기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Once he encountered deep, profound eyes that weren't like a child, his desire to brutally harass him disappeared without his knowledge. 둥지에서 떨어져 파닥거리는 어린 새를 보듯 아이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The children looked at him like they saw a young bird flapping off a nest. 훗날 그를 알게된 한 여자는 그의 눈을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눈동자'라고 회상했다. 그런데 변성기가 찾아오자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But when the transformer came, everything changed. 다른아이들과 달리 그의 변성은 갑작스럽고 돌연했다. 그날도 그는 여느 때 처럼, 심한 감기에 걸려 며칠 동안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다. 열도 높은데다 목이 꽉 감겨 아무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땀과 콧물이 쉴새없이 흘렀다. Sweat and runny nose continued to flow. 그래서 시트와 베갯잇이 흠뻑 젖으면 어머니가 그것을 잘 마른 것들로 갈아주었다. So, when the sheets and pillowcases got wet, my mother changed them to dry ones. 세 번 째로 시트를 갈았을 쯤에야 비로소 열리내리고, 미친 듯 흘러내리던 콧물도 멈췄다. It wasn't until the third time that the sheet was polished, and the runny nose that was running down like crazy stopped. 그리고 오래 잠겨있던 목도 풀렸다. And the neck, which had been locked for a long time, was released. 아, 아, 그릉그릉, 크르르르릉.. 목청을 가다듬을 때마다 목에서 진득한 무언가가 거칠게 치밀고 올라왔다. Oh, ah, Greung Greung, Kreung Greung... Whenever I trimmed my throat, something rough came up from my throat. 몸은 아팠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그는 기억했다. He remembered that he was sick, but not feeling bad. 말리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욕실에 들어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Marley didn't listen to her mother and went into the bathroom to get hot water in the bathtub. 그리고 뜨거운 김 속으로.. 자신의 마르고 쇠약한 몸을 밀어 넣었다. 그의 육체가 체온 보다 높은 온도의 물 속으로 잠겼다. 그는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He closed his eyes and opened his mouth. 후텁한 공기속으로 뭔가 차가운 것이 지나갔다. Something cold passed through the thick air. 그는 눈을 떴다. 욕실 안에 낯선 목소리가 앉아 있었다. A strange voice sat in the bathroom. 훗날 그는 그 장면을 그렇게 표현하곤 했다. 낯선 목소리 하나가 앉아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해도 목소리는 그의 몸속으로 들어와 그의 것이 되지 못한 채 욕실 안을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를 조율할 때와 같은 단조로운 아, 아, 아, 소리가 욕실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아주 매력적이고 감미로웠다. It was very charming and sweet. 일찍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생경한 목소리였지만 싫지 않았다. 자꾸만 듣고 싶은 울림이 있었다. 그는 손바닥을 목을 대에 대보고서야 그 매혹적인 목소리가 분명 자기 목소리임을 알았다. 그는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러보았다. He sang quietly. 제 목에서 나와 욕실의 도기타일에 어지럽게 부딛쳐 돌아오는 그 음성은 풍성하고 다채로웠다. The voice coming out of my neck and hitting the ceramic tile in the bathroom dizzyingly came back was rich and varied. 높은 음을 낼 때는 아주 예리한 칼로 웃 자란 풀을 자를 때와 같은 소리가 났고, 낮은 음에서는 오래 무두질한 가죽으로 만든 북을 노련한 연주자가 섬세하게 두드리는 듯 했다. At high notes, the sound was the same as when cutting grass overgrown with a very sharp knife, and at low notes it seemed as if a seasoned player was delicately tapping a drum made of long tanned leather. 중간음역대에서는 잘 숙성된 술이 그렇듯 독특한 성질이 여러 겹을 이루며 조화를 이루었다. 거친 야성은도회적 세련미와 어울렸고, 피콜로의 음색을 연상시키는 고음이 바순을 연상시키는 저음과 포개져 감칠맛을 냈다. The harsh wildness matched the urban sophistication, and the high notes reminiscent of piccolo's tone were superimposed with the bass reminiscent of the bassoon, giving it a rich taste. 그 절묘한 하모니만으로는 그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아름다운 목소리 속에는 어떤 날카롭고 위험한 것이 숨어 있었다. 소년은 욕실에 울려 퍼지는 자기 목소리를 주의 깊에 들으며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자 했었다. “아..조심해.” 소년은 몸서리를 치며 혼잣말을 했다. “Ah.. be careful.” The boy shuddered and spoke to himself. 생크림 같은 짙은 안개가 숲을 뒤덥고 있었다. A thick fog like whipped cream covered the forest. 그 속에서 갑자기 순록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이차선 도로의 한 가운데 멈춰선 채 고개를 돌린 순록은 마치 동화속의 유니콘 처럼 보였다. 바로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트럭 한 대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와 순록을 들이받고는 잠시 도로 위에서 비틀거리다가 다시 안개속으로 사라져 갔다. 트럭이 지나간 길을 따라 순록의 붉은 피가 점점이 도로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The red blood of reindeer was scattered over the road along the road the truck had passed. 그러나 순록은 보이지 않았다. However, no reindeer were seen. 뿔이 어지러운 그 우아한 초식동물은 어디로 갔을까? Where did that graceful herbivore with dizzying horns go?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노래를 멈추고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욕실 밖으로 나와니 어머니가 손등으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왜 우느냐고 그가 묻자, 그녀는 ‘잘 모르겠다. When he asked why he was crying, she said,'I don't know. 괜히 눈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Tears come out for nothing.' 엄마 나이되면 가끔 이럴때가 있단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실은 자기도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다 몇 달 새 키가 부쩍 커버린 아들을 올려다 보면서 눈을 크게 떴다. “너 목소리가 변했네. 우리 아들 변성기인가보네.”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 목소리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녀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좁혔다. “아니, 이상하지는 않은데 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No, it's not strange, but I think I've become a different person. 내 아들 같지가 않아.” 그녀는 아들이 변치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소파에서 일어나 목욕으로 몸이 뜨거워진 아들을 꼭 껴안았다. “어이구, 우리아들 맞네. 얼른 방에 들어가서 쉬어.” 그날 이후부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문은 빨리 퍼졌다.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들도 그에게 노래를 시켰다. 몇몇 여자애들이 앓아 누웠다. 별로 슬픈 노래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It wasn't a sad song, but people shed tears. 그의 노래는 듣는 사람들 모두에게 자기 생애 가장 슬픈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체온도 올라가 그의 노래를 들을 때면 돌연 저릿, 한기를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평생 경험한 가장 달콤한 추위였어요.” 당시 그의 노래를 들었던 한 여자는 훗날 그렇게 회고했다. 한 여선생은 그를 상담실로 불러냈다. A female teacher called him to the counseling room. 한참을 안절부절하던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뺨에 갖다댔다. “미안해. 한 번 만. 그냥 한 번 만 너를 만져보고 싶었어. 니가 정말 사람일까 생각했었거든. 어떻게..어떻게 너는 그런 목소리를 가졌니? 그러고도 어떻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니? 넌, 넌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 그가 살아가는 동안 무수히 받게될 질문 세례의 시작이었다. 길지 않는 일생동안 그는 많은 여자를 안을 수 있었다. 가끔은 남자와도 잤다. 여자도 그리고 남자도, 사실 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들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모든 사람의 예상대로 그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직업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은 가지 않았다. 남의 곡을 받아 음반을 냈고, 여기저기서 콘서트를 했다. 그는 모두 다섯 장의 음반을 냈는데 당대의 음악적 유행과 거리가 먼 그런 노래들을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큰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기업적인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된 건 아니였지만 적지 않은 수의 열광적 팬들이 있었다. 어느 가을 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알몸으로 뒹굴고 있는..이름도 모르는 여자 옆에 누워 그는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 목소리에 반했다고들 하지. 그런데 나는 이 목소리를 얻기위해 아무 노력도 한 적이 없어. 그냥 다른 사람처럼 변성기가 찾아왔을 뿐이야. 그리고 무슨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이런 목소리를 갖게 됐지. 그렇다면 언젠가 마치 그 김이 가득한 욕실로 그것이 나를 찾아왔을 때 처럼 다시 떠나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 그런 생각은 처음이었다. 늘 당연하다고만 생각해 왔었다. 새로 산 차를 몰고 주춤주춤 도로를 나서듯이, 그러다 어느새 그 차가 자기 차라는 걸 추호도 의심하지 않게 되듯이, 그는 새로 얻은 목소리에 익숙해 있었고 그것으로 돈을 벌고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잠든 여자를 흔들어 깨워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 새로 산 스포츠 카를 몰로 밖으로 나가 시내로 향했다. 가끔 사람들이 그리울 때마다 모자를 눌러쓰고 어두운 구석에 앉아 데킬라를 마시다 가곤하는 작은 클럽이었다. 자욱한 담배연기를 뚫고 들어가자 한 밴드가 악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기타 하나에 보컬 하나, 그리고 키보드로 이루어진 무명의 밴드였다. 고등학생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아이들이 앰프의 선을 점검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보컬은 특히 어려보였는데, 무대경험이 거의 없는 듯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연주가 시작되자 보컬은 눈을 감은 채 마이크를 부여잡고 음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기타는음이 잘 맞지 않았고 키보드는 자주 리듬을 놓쳤다. 한마디로 초보적인 수준의 무명밴드라고 할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실력으로 남 앞에 나설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보컬만은 달랐다. 형편없는 연주를 뚫고 서서히 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잘 다듬어진 창법은 아니였지만 날것 그대로의 맹렬한 신선함이 살아있었다. 클럽의 공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민감한 귀를 가진 여자들이 먼저 수다를 멈췄다. 엑스터시에 취해 흐느적거리던 사내들이 고개를 들었다. 두 번 째 곡이 시작됐을 때는 클럽 안의 거의 모두가 무대를 보고 있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가수는 아직 여드름이 남아있는 소년이었다. 몸은 비쩍 말랐고 목은 가늘어 마치 해바라기 줄기 같았다. ‘어, 저렇게 야윈 몸이 어떻게 저렇게 무거운 머리를 지탱할 수 있을 까?' 그런나 그의 목소리 만은 놀라웠다. 그가 입을 벌려 소리를 내지를 때마다 클럽 안의 온도가 일 도 씩 내려가는 것 같았다. 스스슥, 차가운 물이 클럽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소년의 이 매혹적인 목소리에 어딘가 위험한 기운이 있었다. 낯설지 않았다. 소년의 노래를 들으며 그는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남몰래 닦았다. 바로 그때, 쉬이익, 턱! 거대한 무언가가 천천히 길고 무거운 꼬리를 부드럽게 흔들며 그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지나 어두운 플로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눈물로 흐려진 눈으로 그는 그것을 지켜보았다. 악어였다. 그토록 거대한 파충류가 꼬리를 흔들며 클럽 한 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악어는 노래에 빠진 사람들 사이를 유연하게 통과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온전히 그 안으로 사라지기 직전에 악어는 뭔가 잊은 것이 있다는 듯 쓰윽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온몸에 드르륵 돌기들이 솓았다. 다섯 곡을 내리 부른 뒤 밴드는 무대 뒤로 퇴장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뒤에 마련된 옹색한 대기실로 갔다. 꽃다발을 든 여자들이 대기실에 진을 치고 있었다. 몇 명은 그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향수 냄새를 풍기는 여자들을 젖히고 대기실의 철문을 열었다. 땀을 흘리며 악기를 챙기는 세 명의 덜 자란 청년, 혹은 웃자란 소년들이 거기있었다. 그는 보컬에게 다가갔다. 숨이 아직 거칠었고, 눈은 꿈꾸는 듯 몽롱했다. “무슨 일이시죠?”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 소년에게 자기 얼굴을 보여주었다. “노래 잘 들었어. 꽤 하던데?” “아..네.” 소년은 그가 누군지 전혀 못 알아보는 눈치였고, 알고 싶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초조해진 그는 더 화려한 찬사로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럴수록 소년은 그를 지겨워하는 눈치였다. 어서 그에게서 벗어나 밖에서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는 소녀들에게 가고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는 소년에게 물었다. “올해 몇 살이니? 변성기는 지난거야?” 돌아서려던 소년이 발길을 멈췄다. 그러다 뭔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처음부터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던 기티리스트가 다가와 그를 향해 가슴을 내밀며 물었다. “그런건 왜 물어보세요? 아저씨 변태예요?” 그는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도시의 더러운 어둠을 향해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이런, 개새끼..' 그리고는 차를 커칠게 몰고, 여러번의 신호위반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독한 술을 마시고 잠이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느지막히 일어나 천천히 샤워를 했다. 그때가지도 그는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머리를 말리고 거실에 앉아서 지난 밤 여자 때문에 보지 못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를 보았다. ‘근데 어제 그 여자 이름이 뭐였더라?' 전혀 기억이 나지않았다. 전반전이 끝나고 그는 휴대폰을 들어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후의 일정을 알고싶었기 때문이었다. ‘왜요(not clear) 오늘 말이예요.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의 입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챈 매니저가 ‘여보세요? 여보세요?' 큰 소리로 외쳤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아, 아, 아, 입을 벌리고 목과 혀에 힘들 주었다. 마치 말이라는 것을 처음 배우는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를 않았다. 귀에는 이상이 없었다. 프리미어리그의 중계는 정상적으로 잘 들렸다. 그는 고함을 치려고도 해보았고 상상하기어려운 고음을 내보려고도 했다. 역시 소용이 없었다. 1리터가 넘는 물을 마셨고 목이 아플 때 마다 먹는 알약도 삼켰다. 신이 리모컨을 집어들고 나라는 인간의 볼륨을 확 커버린 걸까? 이제 지켜워 졌다고, 시끄럽다고 채널을 돌려버린 걸까? 한 시가 되자 그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매니저가 황급히 집으로 달려왔다. “야, 콘서트가 내일 모렌데 장난치는거지? 왜 이래? 이런 장난 나 싫어해.” 매니저는 묻고 또 물었다. “너 어제 도데체 뭘 한거야? 뭐 잘 못 먹었어?” 그는 코앞에 앉아 있는 매니저에게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야만 했다.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클럽에 가서 술 몇 잔 했어. 그게 다야.' 매니저도 역시 코앞에 앉아 있는 그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 답장을 보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을 못하면 귀도 안 들리는 줄 안다. 그는 병원에 가자고 했다. 잠깐 쉬면 좋아질 거라고 밤까지 지켜보고 안 되면 병원에 가자고.. 매니저는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매니저를 잘 달래 사무실로 돌려 보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매니저가 그를 대신에 세상에 그 사실을 알렸지만 그 말을 고지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악성 루머들이 떠돌아 다녔고 파기된 계약에 대한 소송이 잇따랐다. 어떤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아마 콘서트에 대한 압박 때문일겁니다.” 그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고 그 밖에도 사람들이 권한 그 모든것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의 목소리를 돌려주지 못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보내다 만 문자 메시지가 남아있는 휴대폰과 돈과 신용카드가 잔뜩든 지갑까지 그대로 둔채.. 심지어 입으려던 바지까지 침대위에 걸쳐둔 채.. 그는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가 살던 빌라 잔디밭에서 악어 한 마리가 발견됐다. 악어는 입을 벌린 채로 죽어있었다. 그 악어가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고 그 후로도 밝혀내지 못 했다. 죽은 악어는 한 동물원으로 보내져 박제가 되었다. 그때부터 이 동물원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깊은 밤이면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노래가 들려오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동물들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그 노래를 듣는 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암사자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더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홍학이 고개를 떨구고 슬퍼하더라고 했다. 동물원 전체에서 내내 태연한 것은 박제된 악어 뿐이었다. 영원히 입을 다물 수 없게 된 악어는 언제나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열한 번 째 에피소드를 진행하고 있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자 오늘 읽어드린 이 소설은, 이 그 짧은 소설은 제가 쓴겁니다. 제가 지난해 밴쿠버에 있을 때요, 그때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 도서관에 매일 자전거를 타고가서 글을 조금씩 썼었는데요, 이 밴쿠버라는 동네가 비도 많이 오고요, 어딘가 사람을 울적하게 만드는데가 있는 그런 도시입니다. 이 소설이 그런 도시에서 나온 것도 우연만은 아닌 것 같아요. 아직 아무데도 발표하지 않은 신작인데, 이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처음으로 공개를 합니다. 아마 다음에.. 어딘가에 묶일 수도 있겠죠. 뭐 하지만 현재까지는 이 팟캐스트를 들으시는 분들이 제일 처음 이 소설을 접하시는게 되겠습니다. 네, 오늘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열한 번 째는 제가 쓴 소설로 오랜만에 해봤는데요. 제목은 “악어”입니다. 잘 들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자 다음 시간에 저는 다시 뵙기로 하고요. 여기서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