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 use cookies to help make LingQ better. By visiting the site, you agree to our cookie policy.


image

황장엽 회고록 Memoirs of Jang-Yeop Hwang, 제27부 조선노동당에 입당. 두번째

제27부 조선노동당에 입당. 두번째

제27부 [...] 조선노동당에 입당. 두번째

심재윤 교장은 외모가 단정하고 세련되었으며 노래를 잘 불렀다. 그는 자신을 훌륭한 혁명가로, 철학의 대가로 자처했다. 그리고 자신이 간부가 되지 못한 것은 최창익을 비롯한 엠엘파(마르크스-레닌파)들이 파벌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를 배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도쿄제국대학 출신 공산주의자 김두용 등과 친교가 있었다. 심 교장은 말을 잘하고 외모가 번듯해 청년들에게 호감을 샀다. 나는 그를 선배로서 존경했고 그 역시 나를 아껴 주었다. 잔정도 많아 밤늦도록 일을 하고 있으면 간식을 사다 주기도 했다.그는 나에게 철학을 공부해 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중국교재를 읽고 있을 뿐 철학사에 대한 지식이 보잘것없다는 걸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희랍철학이나 독일고전철학을 관념철학이라고 배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 세포위원장은 학도지원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탈영하여 연안에서 일본군과 싸웠다고 주장하는 최규봉이었다. 그의 고향은 평안북도였다. 세포위원장은 나에게 협박조로 입당할 것을 권고했다. 심 교장도 입당을 권했다. 나는 당에 들어가는 게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동료교사들도 선생을 하려면 당에 들어가야 한다고 달래기에 입당원서를 냈다. 그리고 구역당 심사를 거쳐 1946년 11월 16일,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입당원서에 기록된 나의 출신성분은 중농이었고, 사회성분은 사무원이었다. 동료들이 그렇게 기록하는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해방 전에 일본에서 고학하면서 노동을 했고 징용 가서도 1년 6개월이나 노동을 했으면서 그렇게 쓰면 어떻게 합니까? 노동성분이 앞으로 출세하는 데 훨씬 유리하니 그렇게 고쳐 쓰도록 하세요.”

“강제로 징용 나가 노동한 것이 무슨 노동잡니까. 출세할 생각은 별로 없으니 괜찮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입당원서를 냈다.

제27부 조선노동당에 입당. 두번째 Part 27 Joined the Workers' Party of Korea. Second

제27부 [...] 조선노동당에 입당. Part 27 [...] Joined the Workers' Party of Korea. 두번째

심재윤 교장은 외모가 단정하고 세련되었으며 노래를 잘 불렀다. Principal Shim Jae-yoon was well-groomed, refined in appearance, and sang well. 그는 자신을 훌륭한 혁명가로, 철학의 대가로 자처했다. He fancied himself a great revolutionary and a master of philosophy. 그리고 자신이 간부가 되지 못한 것은 최창익을 비롯한 엠엘파(마르크스-레닌파)들이 파벌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를 배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He claimed that the reason he was unable to become a cadre was because Choi Chang-ik and other members of the M-LP (Marxist-Leninist Party) ostracized him due to factional feelings.

그는 도쿄제국대학 출신 공산주의자 김두용 등과 친교가 있었다. He had friendships with communist Kim Doo-yong, a graduate of Tokyo Imperial University. 심 교장은 말을 잘하고 외모가 번듯해 청년들에게 호감을 샀다. Principal Shim is well-spoken and good-looking, which endeared him to the youth. 나는 그를 선배로서 존경했고 그 역시 나를 아껴 주었다. I looked up to him as a senior and he looked up to me. 잔정도 많아 밤늦도록 일을 하고 있으면 간식을 사다 주기도 했다.그는 나에게 철학을 공부해 보라고 권했다. He would also buy me snacks when I was working late at night. He encouraged me to study philosophy. 그러나 나는 그가 중국교재를 읽고 있을 뿐 철학사에 대한 지식이 보잘것없다는 걸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But I had already realized that he was reading Chinese textbooks and had little knowledge of philosophical history.

왜냐하면 그는 희랍철학이나 독일고전철학을 관념철학이라고 배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This is because he rejected the Hegelian philosophy and the German classical philosophy as conceptual philosophy. 당 세포위원장은 학도지원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탈영하여 연안에서 일본군과 싸웠다고 주장하는 최규봉이었다. The leader of the cell was Choi Kyu-bong, who claimed to have joined the Japanese army as a student volunteer, then deserted and fought with the Japanese on the coast. 그의 고향은 평안북도였다. His hometown was North Pyongan Province. 세포위원장은 나에게 협박조로 입당할 것을 권고했다. The cell chairman advised me to join the blackmail squad. 심 교장도 입당을 권했다. Principal Shim also encouraged him to join. 나는 당에 들어가는 게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동료교사들도 선생을 하려면 당에 들어가야 한다고 달래기에 입당원서를 냈다. I didn't like the idea of joining the Party, but my fellow teachers assured me that if I wanted to be a teacher, I had to join the Party, so I signed up. 그리고 구역당 심사를 거쳐 1946년 11월 16일,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On November 16, 1946, he joined the Workers' Party of Korea after a district-level examination.

입당원서에 기록된 나의 출신성분은 중농이었고, 사회성분은 사무원이었다. My ethnicity was middle peasant and my social class was clerk. 동료들이 그렇게 기록하는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My coworkers have cautioned me for writing that way.

“해방 전에 일본에서 고학하면서 노동을 했고 징용 가서도 1년 6개월이나 노동을 했으면서 그렇게 쓰면 어떻게 합니까? "What if I write that I studied and worked in Japan before liberation, and I was drafted and worked for a year and a half? 노동성분이 앞으로 출세하는 데 훨씬 유리하니 그렇게 고쳐 쓰도록 하세요.” The labor component is much better for your future, so rewrite it that way."

“강제로 징용 나가 노동한 것이 무슨 노동잡니까. "What kind of labor is forced labor? 출세할 생각은 별로 없으니 괜찮습니다." I don't have any intention of leaving, so that's fine."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입당원서를 냈다. I answered that and filed my candid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