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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눈물의 고백, 두 번째-170

눈물의 고백, 두 번째-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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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두 번째

이 먼 곳 남조선에서까지도 다 알고 있는 것을 무슨 크나큰 비밀이라고 그렇게 ‘비밀비밀' 하며 겁을 주었는지 실소를 금할 수 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동북리 초대소에 있었습니다.” 하고 말하면 수사관이,

“동북리 몇 호 초대소였지?” 하고 보충질문을 던졌다. 또 내가 이러이러한 훈련을 받았다고 설명하면,

“비트 굴설을 몇 시간이나 받았어?” ,“아크 소총은 몇 발 쏘았지?”, “행군 훈련 때는 몇 키로짜리 배낭을 맸나?”

하고 묻는 것이었다. 북조선 공작원의 생활은 완전히 장막에 싸여 있어서 우리 공작원들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해 온 나로서는 그만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들도 북에 간첩을 보내서 알아낸 것일까? 아니면 그들 말대로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아서 수사 과정에서 저절로 알게 된 내용일까? 어찌되었거나 나로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다음은 김승일과 만나 한조가 되던 때부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1984년도에 김승일과 함께 해외여행 실습을 하던 내용과 초대소에서 생활하던 내용까지다 이야기를 하고 나니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드디어 김승일과 공작임무를 받고 KAL 기를 폭파하던 이야기를 해야 할 순간이 왔다. 사건과 직접 관련된 이야기여서인지 다른 이야기처럼 술술 나와 주지를 않았다. 막상 이야기를 하자니까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쏟아졌다.

중국인 행세를 하면서 한 일은 우리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자부하던 때와는 상황이 너무 달랐다. 단지 이 시점에서는 엄청난 큰 죄를 지은 한낱 살인마일 뿐이었다. 그 사건에 대해서는 모두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그 자체까지도 깨끗하게 잊어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울음을 터뜨려 또다시 벽에 부딪힌 수사관들은 내 심정을 이해하듯이 잠시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진작 털어 놓았으면 네가 심적으로 고통 받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었을 게 아니냐? 얼마나 괴로웠는지 이해가 가는 일이야. 넌 결코 그 누구도 배신하는 일이 아니야. 이제 한결 마음이 편안해질 테니 두고 봐.”

그들은 30여분 동안이나 나를 달랬다. 밤이 이슥한 시간이었지만 조사실 분위기는 밤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마저 돌았다. 눈물을 닦고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저와 신이찌라는 가명을 사용한 김승일은 KAL 858기를 탔습니다. 우리는 비행기 선반 위에 9시간 후에 터지도록 장치한 시한폭탄 라디오를 올려놓고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렸습니다.”

나는 그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 결론부터 들려주고 나서 KAL 858기 폭파 임무 수행과정을 설명했다.

“금년 10월 말 , 마카오에서 오랫동안 불법채류한 중국인에게 일제히 영주권을 준다는 정보가 있어서 저와 그리고 함께 훈련받던 김숙희는 마카오 영주권을 취득하는 공작을 위해 광주에 나가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지에서 저만 긴급 복귀하라는 전문이 내려왔습니다. 평양으로 급히 돌아왔더니 1과의 일을 지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2과 소속이었습니다. 10월 27일에 해외여행 실습을 함께 다녀온 김승일과 다시 배합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대외정보조사부장 이모씨가 찾아와 우리에게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두 개 조선 책동인 88서울올림픽을 저지하기 위해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임무를 받은 우리는 15일 동안 계획을 수립하고 노정을 연구하는 준비사업에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쉽지 않은 고백이었지만 나는 도저히 거기에서 말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눈물의 고백, 두 번째-170 Bekenntnis der Tränen, Zweite - 170 Confession of Tears, Second - 170 Исповедь слез, вторая -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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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두 번째

이 먼 곳 남조선에서까지도 다 알고 있는 것을 무슨 크나큰 비밀이라고 그렇게 ‘비밀비밀' 하며 겁을 주었는지 실소를 금할 수  가 없다. この遠い南朝鮮でさえも知っていることを、何でそんなに大きな秘密であるかのように「秘密の秘密」であるかのように怖がらせるのか、笑いを禁じ得ない。 예를 들어 내가, “동북리 초대소에 있었습니다.” 하고 말하면 수사관이, 例えば私が、「東北里の招待所にいました。と言うと、捜査官が、

“동북리 몇 호 초대소였지?” 하고 보충질문을 던졌다. "東北里何号館の招待所だったっけ?"と補足質問を投げかけた。 또 내가 이러이러한 훈련을 받았다고 설명하면, また、私がこういう訓練を受けたと説明すると、

“비트 굴설을 몇 시간이나 받았어?” ,“아크 소총은 몇 발 쏘았지?”, “행군 훈련 때는 몇 키로짜리 배낭을 맸나?” "ビート掘削は何時間受けた?" 、"アークライフルは何発撃った?" 、"行軍訓練では何キロのリュックを背負った?"。

하고 묻는 것이었다. 북조선 공작원의 생활은 완전히 장막에 싸여 있어서 우리 공작원들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리가 없다고 생각해 온 나로서는 그만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北朝鮮の工作員の生活は完全にベールに包まれており、私たち工作員が言わなければ誰も知らないと思っていた私としては、驚きの声が止まらなかった。 이들도 북에 간첩을 보내서 알아낸 것일까? 彼らも北にスパイを送り込んで調べたのだろうか? 아니면 그들 말대로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아서 수사 과정에서 저절로 알게 된 내용일까? それとも、彼らの言葉通り、北から降りてきた人が多く、捜査の過程で自然に知った内容なのだろうか。 어찌되었거나 나로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いずれにせよ、私にとっては非常に衝撃的な出来事だった。 다음은 김승일과 만나 한조가 되던 때부터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次は、キム・スンイルと会い、ハンゾー時代からの話を始めた。 1984년도에 김승일과 함께 해외여행 실습을 하던 내용과 초대소에서 생활하던 내용까지다 이야기를 하고 나니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드디어 김승일과 공작임무를 받고 KAL 기를 폭파하던 이야기를 해야 할 순간이 왔다. 사건과 직접 관련된 이야기여서인지 다른 이야기처럼 술술 나와 주지를 않았다. 事件に直接関係する話だからか、他の話のようにすらすらと出てこない。 막상 이야기를 하자니까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쏟아졌다. いざ話をしようとすると、言葉が詰まり、涙が溢れてきました。

중국인 행세를 하면서 한 일은 우리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한 일이었다고 자부하던 때와는 상황이 너무 달랐다. 中国人のふりをしてやったことは、祖国と民族のためにやったと自負していた頃とは状況があまりにも違っていた。 단지 이 시점에서는 엄청난 큰 죄를 지은 한낱 살인마일 뿐이었다. ただ、この時点では、とてつもなく大きな罪を犯した一介の殺人鬼に過ぎなかった。 그 사건에 대해서는 모두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그 자체까지도 깨끗하게 잊어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そのような事件があったということ自体さえも、きれいに忘れられたらいいのにと切望した。

내가 울음을 터뜨려 또다시 벽에 부딪힌 수사관들은 내 심정을 이해하듯이 잠시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私が泣き出し、またもや壁にぶつかった捜査官たちは、私の気持ちを理解するかのように、しばらく心が落ち着くのを待っていました。

“진작 털어 놓았으면 네가 심적으로 고통 받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었을 게 아니냐? 「もっと早く打ち明けていれば、お前が精神的に苦しむ時間がそれだけ減ったんじゃないか? 얼마나 괴로웠는지 이해가 가는 일이야. どれほど苦しかったか、よくわかる。 넌 결코 그 누구도 배신하는 일이 아니야. 君は決して誰かを裏切るようなことはしない。 이제 한결 마음이 편안해질 테니 두고 봐.” これで一段と心が落ち着くだろうから、様子を見よう。"

그들은 30여분 동안이나 나를 달랬다. 彼らは30分もの間、私をなだめた。 밤이 이슥한 시간이었지만 조사실 분위기는 밤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마저 돌았다. 夜が近い時間帯でしたが、調査室の雰囲気は夜を感じさせないほど緊迫した緊張感すら漂っていました。 눈물을 닦고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涙を拭きながら、再び話を続けた。

“저와 신이찌라는 가명을 사용한 김승일은 KAL 858기를 탔습니다. "私とシンイチという仮名を使ったキム・スンイルはKAL858便に乗りました。 우리는 비행기 선반 위에 9시간 후에 터지도록 장치한 시한폭탄 라디오를 올려놓고 아부다비 공항에서 내렸습니다.”

나는 그들이 궁금해 할 것 같아 결론부터 들려주고 나서 KAL 858기 폭파 임무 수행과정을 설명했다. 私は、彼らが疑問に思うだろうから、結論から話して、KAL 858機爆破任務の遂行過程を説明した。

“금년 10월 말 , 마카오에서 오랫동안 불법채류한 중국인에게 일제히 영주권을 준다는 정보가 있어서 저와 그리고 함께 훈련받던 김숙희는 마카오 영주권을 취득하는 공작을 위해 광주에 나가있었습니다. 「今年10月末、マカオで長い間不法滞在していた中国人に一斉に永住権を与えるという情報があり、私と一緒に訓練を受けていたキム・ソクヒは、マカオの永住権を取得する工作のために広州に出かけました。 그런데 기지에서 저만 긴급 복귀하라는 전문이 내려왔습니다. ところが、基地から私だけ緊急帰還するようにとの通達が下りました。 평양으로 급히 돌아왔더니 1과의 일을 지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急いで平壌に戻ると、1課の仕事を支援するようにとのことでした。 그때 저는 2과 소속이었습니다. 10월 27일에 해외여행 실습을 함께 다녀온 김승일과 다시 배합되었습니다. 10月27日に海外旅行実習を一緒に行ったキム・スンイルと再び配属されました。 그날 저녁 대외정보조사부장 이모씨가 찾아와 우리에게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その日の夕方、対外情報調査部長の叔母さんが訪ねてきて、私たちに任務を与えました。 두 개 조선 책동인 88서울올림픽을 저지하기 위해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라는 것이었습니다. 二つの朝鮮の策動である88ソウルオリンピックを阻止するために、南朝鮮の飛行機を撃墜せよというものでした。 이 임무를 받은 우리는 15일 동안 계획을 수립하고 노정을 연구하는 준비사업에 정신없이 바빴습니다.“ この任務を受けた私たちは、15日間、計画を立て、ルートを研究する準備作業に追われました。"

쉽지 않은 고백이었지만 나는 도저히 거기에서 말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 簡単な告白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私はどうしてもそこで言葉を止めることができませんでした。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