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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나의 어린시절, 열 번째-10

나의 어린시절, 열 번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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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시절, 열 번째

나는 ‘사회주의 조국을 찾은 영수와 영옥' 이라는 영화에 ‘ 영옥' 의 어린 시절 역으로 뽑혔다. 첫 촬영은 개성에 가서 큰 기와집을 배경으로 지주 집 장면을 찍는다고 했다. 열흘간 개성으로 지방 촬영을 간다니까 어머니는 집집마다 뒤져서 작은 트렁크를 빌려 오고, 원피스, 치마 등 여러 가지 고운 옷을 챙겨 넣고 , 객지에 나가 배를 곯을까봐 떡과 빵을 만들어 싸주며 애를 썼다. 나이 어린 딸을 처음 객지로 떠나보내는 것에 대하여 조바심을 쳤다.

“배 고프면 참지 말고 이거 꺼내 먹어.” “입었던 옷은 개켜서 그때 그때 가방에 넣어두고......”

어머니는 떠나는 순간까지 이것저것 일러주는 것이 너무 많았다. 물가에 내놓는 어린 아이를 보듯이 어머니는 불안 해 하는 눈치였다./

촬영소에서 보낸 차를 타기 위해 학교 앞으로 가보니 학급 동무들과 구경나온 학생들이 나를 겹겹이 에워싸고 아빠트 아주머니들도 창문으로 내다보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마치 금방 유명한 배우가 된 우쭐한 기분이면서도 여러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니 수집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촬영소 사람들과 연출가, 그리고 배역인 지주의 아들과 딸, 영수 역을 맡은 중학생, 그리고 나였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전송을 받으며 개성을 향해 떠났다.

개성에 가서는 려관에서 생활하면서 99칸짜리 기와집에서 지주 집 장면과 영수의 어머니가 인민군대를 숨겨 준 죄로 미국 군인에게 붙들려 갈 때 영수와 영옥이가 매달려 우는 장면을 촬영했다. 내가 맡은 역은 가난한 머슴의 딸 역이기 때문에 천 조각으로 기운 검정 고무신에 누덕누덕 기운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머리도 길게 땋아 늘어뜨린 가발을 써야 했다.

어머니 역에는 ‘양혜련' 이라는 당시 40대의 배우가 맡았고 ‘영수'의 아이역은 대타령중학교에 다니던 오빠가 맡았으며 지주 집 딸 역에는 모란봉인민학교에 다니던 ‘향란' 이라는 아이가 맡았다. 향란이는 나보다 나이가 두세 살 정도 우였는데 귀국자의 딸이여서 그런지 옷차림과 생김새가 깔끔했다.

개성에서 촬영하는 도중 연출가 아저씨에게, 외가집이 개성에 있는데 잠시 다녀오면 안 되나 하고 부탁했더니 쾌히 접수하고 향란이와 같이 자동차를 타고 가도록 보장해 주었다. 외가집에 갔더니 외할머니와 이모, 외삼촌들은 내가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세상에........저 어린 것이 기특하기도 하지..”

할머니는 일삼아 나를 쓰다듬었다.

평양에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지방 촬영을 나갔다. 이번에는 함흥과 신의주 쪽으로 장기 촬영을 나갔는데 아이역 배우로는 나와 영수 역인 오빠만 동행했다. 어린 녀자아이가 나 하나여서 그런지 배우들은 물론 후방부 언니도 나를 귀여워하고 사랑해 주었다. 특히 후방부 언니는 나만 따로 불러내여 사탕을 주거나 강냉이를 쪄 주었다. 짖궂은 남자 배우들은 일부러 나의 코를 잡기도 하고 팔을 비틀어 울상이 되는 모습을 보려고 했고 시간이 있으면 서로 다투어 나를 업고 다녔다.

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래 하는 모습을 보고 남자들은 재미있다는 듯 자기 런닝셔츠도 벗어 주며 빨아달라고 했는데 그 큰 빨래를 오래도록 주물러 희게 빨아 주면 금방 낳은 따끈 따끈한 달걀을 선물로 주곤 했다. (힘든) 어린 나이에 장기간 집을 떠나 있자니 고생스러울수록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어떤 때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다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해 이불장 뒤에 숨어서 몰래 울기도 했다. 집에 돌아갈 때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로 함흥시에서는 시장 보는 비닐가방을, 신의주에서는 신발 한 켤레를 사서 이동 할 때마다 보물단지 모시듯 하고 다녔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나의 어린시절, 열 번째-10 Meine Kindheit, Zehnte - 10 My Childhood, Tenth-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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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시절, 열 번째

나는 ‘사회주의 조국을 찾은 영수와 영옥' 이라는 영화에 ‘ 영옥' 의 어린 시절 역으로 뽑혔다. I was selected as the childhood role of 'Youngok' in the movie 'Youngsoo and Youngok' who visited the socialist country. 첫 촬영은 개성에 가서 큰 기와집을 배경으로 지주 집 장면을 찍는다고 했다. The first shot was to go to Kaesong and take a holding house scene with a large tiled house in the background. 最初の撮影は開城に行き、大きな瓦屋を背景に地主の家のシーンを撮るそうです。 열흘간 개성으로 지방 촬영을 간다니까 어머니는 집집마다 뒤져서 작은 트렁크를 빌려 오고, 원피스, 치마 등 여러 가지 고운 옷을 챙겨 넣고 , 객지에 나가 배를 곯을까봐 떡과 빵을 만들어 싸주며 애를 썼다. After 10 days of shooting in locality, my mother slept in every house and borrowed a small trunk, packed a variety of fine clothes such as a dress and a skirt, and struggled to make rice cakes and bread in order to get out of the room. . 10日間、個性的に地方撮影に行くということで、母は家々を探し回って小さなトランクを借りてきて、ワンピース、スカートなど様々なきれいな服を詰め込み、地方に出かけてお腹を壊すのを心配して餅やパンを作って包んでくれた。 나이 어린 딸을 처음 객지로 떠나보내는 것에 대하여 조바심을 쳤다. He was nervous about leaving his young daughter for the first time.

“배 고프면 참지 말고 이거 꺼내 먹어.”  “입었던 옷은 개켜서 그때 그때 가방에 넣어두고......” "If you're hungry, don't hold it, take it out and eat it." 「お腹が空いたら我慢しないでこれ出して食べなさい」「着ていた服は開けてその都度バッグに入れておいてね......"

어머니는 떠나는 순간까지 이것저것 일러주는 것이 너무 많았다. 물가에 내놓는 어린 아이를 보듯이 어머니는 불안 해 하는 눈치였다./ My mother noticed her anxiety as she saw her baby at the water's edge. 水辺に出す幼子を見るように、母親は不安そうな顔をしていた。

촬영소에서 보낸 차를 타기 위해 학교 앞으로 가보니 학급 동무들과 구경나온 학생들이 나를 겹겹이 에워싸고 아빠트 아주머니들도 창문으로 내다보며 구경하고 있었다. When I went to school to ride a car from the studio, my classmates and students came to me and saw me through the window. 그때 나는 마치 금방 유명한 배우가 된 우쭐한 기분이면서도 여러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니 수집기도 했다. At that time, I felt as if I was a famous actor, but I was aware of the eyes of many people. その時、私はまるで有名な俳優になったような高慢な気分になりつつも、いろんな人の視線を意識し、コレクションもしました。 우리 일행은 촬영소 사람들과 연출가, 그리고 배역인 지주의 아들과 딸, 영수 역을 맡은 중학생, 그리고 나였다. Our group was the filmmakers, the director, the son and daughter of the cast landlord, the middle school student in the role of Yeong-su, and me.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전송을 받으며 개성을 향해 떠났다.

개성에 가서는 려관에서 생활하면서 99칸짜리 기와집에서 지주 집 장면과 영수의 어머니가 인민군대를 숨겨 준 죄로 미국 군인에게 붙들려 갈 때 영수와 영옥이가 매달려 우는 장면을 촬영했다. In Kaesong, I lived in a ryokan and shot a holding house scene in a 99-kan tile house and a scene where Yeong-soo and Yeong-ok hang when they were held by an American soldier for the death of Young Soo's mother. 내가 맡은 역은 가난한 머슴의 딸 역이기 때문에 천 조각으로 기운 검정 고무신에 누덕누덕 기운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I played a poor mother's daughter, so I wore a black rubber shoes with a piece of cloth and a patchy skirt. 私の役柄は貧乏人の娘役なので、布切れになった黒のゴム靴に布切れになったチマチョゴリを履いていました。 머리도 길게 땋아 늘어뜨린 가발을 써야 했다. I had to wear a wig with braided hair. 髪も長く編み上げたウィッグをつ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어머니 역에는 ‘양혜련' 이라는 당시 40대의 배우가 맡았고 ‘영수’의 아이역은 대타령중학교에 다니던 오빠가 맡았으며 지주 집 딸 역에는 모란봉인민학교에 다니던 ‘향란' 이라는 아이가 맡았다. In her mother's role, Yang Hye-ryeon was in her 40s, and her younger brother was in Daetayeong Middle School. 향란이는 나보다 나이가 두세 살 정도 우였는데 귀국자의 딸이여서 그런지 옷차림과 생김새가 깔끔했다. Hyangran was two or three years older than me, but she was a daughter of a returnee.

개성에서 촬영하는 도중 연출가 아저씨에게, 외가집이 개성에 있는데 잠시 다녀오면 안 되나 하고 부탁했더니 쾌히 접수하고 향란이와 같이 자동차를 타고 가도록 보장해 주었다. While filming in Kaesong, my director asked me if I had a house in Kaesong. 외가집에 갔더니 외할머니와 이모, 외삼촌들은 내가 영화에 출연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When I went to my mother's house, my grandmother, aunt and uncle were really happy that I appeared in the movie.

“세상에........저 어린 것이 기특하기도 하지..”

할머니는 일삼아 나를 쓰다듬었다. Grandma stroking me all the time. おばあちゃんはひたすら私を撫でた。

평양에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지방 촬영을 나갔다. Shortly after returning to Pyongyang, I went to shoot the province again. 이번에는 함흥과 신의주 쪽으로 장기 촬영을 나갔는데 아이역 배우로는 나와 영수 역인 오빠만 동행했다. This time, I went to Hamheung and Sinuiju for long-term filming. I was accompanied by my older brother, my younger actor. 어린 녀자아이가 나 하나여서 그런지 배우들은 물론 후방부 언니도 나를 귀여워하고 사랑해 주었다. The little girl was one of me, so not only the actors but also my sister in the rear cute and loved me. 특히 후방부 언니는 나만 따로 불러내여 사탕을 주거나 강냉이를 쪄 주었다. In particular, my sister in the rear called me out and gave me candy or chopped corn. 짖궂은 남자 배우들은 일부러 나의 코를 잡기도 하고 팔을 비틀어 울상이 되는 모습을 보려고 했고 시간이 있으면 서로 다투어 나를 업고 다녔다. The horrible male actors deliberately caught my nose, twisted their arms, and watched them cry.

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빨래 하는 모습을 보고 남자들은 재미있다는 듯 자기 런닝셔츠도 벗어 주며 빨아달라고 했는데 그 큰 빨래를 오래도록 주물러 희게 빨아 주면 금방 낳은 따끈 따끈한 달걀을 선물로 주곤 했다. When I watched my clothes wash like a fern, the men told me to take off their running shirts as if it were fun. (힘든)  어린 나이에 장기간 집을 떠나 있자니 고생스러울수록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어떤 때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다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해 이불장 뒤에 숨어서 몰래 울기도 했다. 집에 돌아갈 때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로 함흥시에서는 시장 보는 비닐가방을, 신의주에서는 신발 한 켤레를 사서 이동 할 때마다 보물단지 모시듯 하고 다녔다. As a gift for my mother when I returned home, I bought a plastic bag for the market in Hamheung City and a pair of shoes in Shinuiju, so I looked like a treasure complex whenever I moved.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Narration: Park Hyun-hyun was a confession of Kim Hyun-hee, Rang Dok, Daenam Institute of Techn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