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 use cookies to help make LingQ better. By visiting the site, you agree to our cookie policy.


image

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나의 어린시절, 스무번째-20

나의 어린시절, 스무번째-20

[...]

나의 어린시절, 스무번째

모내기 전투에 나가서 하는 오락회는 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인데 먼저 노래 부른 사람이 지명권이 있어 꼬리를 물고 오락회가 계속 진행된다. 때로는 남자와 녀자를 각 1명씩 지명해서 혼성 이중창을 시키기도 한다. 부끄럼을 많이 타서 안 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박수를 쳐대고 사회자는 빨리 빨리 나오라고 재촉을 한다.

이런 오락회를 매일 하다나면 모두 몇 번씩 노래할 차례가 오고 나중에는 노래 밑천이 드러난다. 그러다나면 남이 부르는 노래는 들리지 않고 다음에 자기 차례에는 또 무슨 노래를 부를까 고민하게 된다. 학생들로부터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남학생 4명이 ‘만수대 예술단' 4중창을 흉내낸 ‘평양구경왔네' 라는 노래였다. 노래를 부르며 취하는 그들의 몸짓에 우리들은 배를 그러쥐고 웃었다. 그들은 제법 로인의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우리는 잠시 피곤도 잊고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다.

아무리 즐거운 시간이 많더라도 역시 학생들이 기다리는 것은 집에 돌아가는 날이였다. 철수하기로 예정된 날이 다가오면 학생들은 더욱 조급증을 내며 목이 빠지게 그 날을 기다린다. 그런데 한 번도 예정된 날이 지켜지는 례가 없었다. 학생들 사이에 내일 철수한다는 소문이 돌지만 하루 밀리고 이틀 연기되고 열흘까지 늦춰지면 모두들 낙심하고 고달파한다.

철수 전날이 되면 지금까지의 식사에서 절약한 쌀로 밤새도록 절편을 만들어 20여개씩 나누어 준다. 녀자들은 절편을 그대로 비닐 봉지에 싸고 거기에다가 개울가에서 자라는 미나리와 달래를 캐어 집에 선물로 가져 간다. 어떤 애들는 농민들에게 옷가지와 크림을 주고 마늘이나 콩 같은 농작물로 바꾸어 특산물로 가져간다. 북조선에서는 이런 경우를 ‘자본주의를 한다' 고 한다. 물건에 욕심을 부려 자기 리익을 챙기는 행위를 ‘자본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반면에 남학생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떡 20개를 다 먹어치운다. 그런것만 봐도 확실히 녀자와 남자는 그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본주의, 리기주의' 현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예를들면, 모내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이면 모를 키울 때 쓰던 비닐 박막을 개울가에서 내다놓고 발로 밟아 빤다. 북조선에서는 비닐이 상점에서도 구할 수가 없는 아주 귀한 물건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찢어진 비닐조각을 몰래 챙겨 집에 가져가 보자기로 쓰거나 깨진 유리창 대신 사용한다.

집에 돌아가기 전날 밤이면 우물가는 녀학생들로 차고넘친다. 집에 고운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씻고 빨래비누로 머리도 감으며 오래간만에 얼굴에 크림도 바른다. 그러나 아무리 씻고 가꾸어도 다른 사람에 비해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농촌 처녀가 다 되였다고 놀림을 당하기 일쑤다. 그래도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다른 일에 신경 안 써서 그런지 다들 건강해졌다고 말해 주었다.

장기간 농촌 지원에서 돌아오면 공부 환경에 적응하려고 한동안 애를 먹는다. 열흘 정도는 수업시간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졸기 일쑤고 수학공식, 영어단어, 한자를 하면 모두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게된다. 머리를 안쓰고 육체 노동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단순해지는지 우리들은 체험으로 느끼게 되였다.

우리의 중학교 시절은 처음 겪어보는 여러가지 육체적인 로동의 경험으로 더욱 성숙해졌다. 막상 닥쳤을 때는 고달팠지만 지내놓고 보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적지 않게 인생에 도움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시절의 기억은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내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나의 어린시절, 스무번째-20 My Childhood, Twenties-20

[...]

나의 어린시절, 스무번째

모내기 전투에 나가서 하는 오락회는 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인데 먼저 노래 부른 사람이 지명권이 있어 꼬리를 물고 오락회가 계속 진행된다. The party that goes out to the battle of the planting is usually singing. The person who sings first has a nomination, and the party continues. 때로는 남자와 녀자를 각 1명씩 지명해서 혼성 이중창을 시키기도 한다. 부끄럼을 많이 타서 안 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아이들은 박수를 쳐대고 사회자는 빨리 빨리 나오라고 재촉을 한다. The more shy you try to leave, the more the children clap and the moderators urge you to come out sooner.

이런 오락회를 매일 하다나면 모두 몇 번씩 노래할 차례가 오고 나중에는 노래 밑천이 드러난다. 그러다나면 남이 부르는 노래는 들리지 않고 다음에 자기 차례에는 또 무슨 노래를 부를까 고민하게 된다. Then you can't hear the songs that others sing, and you're worried about what song to sing next. 학생들로부터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남학생 4명이 ‘만수대 예술단' 4중창을 흉내낸 ‘평양구경왔네' 라는 노래였다. 노래를 부르며 취하는 그들의 몸짓에 우리들은 배를 그러쥐고 웃었다. We gestured and laughed at their gestures as they sang. 그들은 제법 로인의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우리는 잠시 피곤도 잊고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다. They even mimicked the voice of Roin and we were able to forget laughter for a while.

아무리 즐거운 시간이 많더라도 역시 학생들이 기다리는 것은 집에 돌아가는 날이였다. 철수하기로 예정된 날이 다가오면 학생들은 더욱 조급증을 내며 목이 빠지게 그 날을 기다린다. When the day is due for withdrawal, the students become more impatient and wait for the day to become thirsty. 그런데 한 번도 예정된 날이 지켜지는 례가 없었다. 학생들 사이에 내일 철수한다는 소문이 돌지만 하루 밀리고 이틀 연기되고 열흘까지 늦춰지면 모두들 낙심하고 고달파한다. There are rumors that students will withdraw tomorrow, but if they are pushed a day, delayed for two days, and delayed by ten days, everyone is discouraged and upset.

철수 전날이 되면 지금까지의 식사에서 절약한 쌀로 밤새도록 절편을 만들어 20여개씩 나누어 준다. On the eve of the withdrawal, cut the slices overnight from the rice saved from the meal so far and distribute them over 20 pieces. 녀자들은 절편을 그대로 비닐 봉지에 싸고 거기에다가 개울가에서 자라는 미나리와 달래를 캐어 집에 선물로 가져 간다. The ladies wrap the slices in plastic bags, and then pick up the buttercups and soybeans that grow in the stream and take them home as gifts. 어떤 애들는 농민들에게 옷가지와 크림을 주고 마늘이나 콩 같은 농작물로 바꾸어 특산물로 가져간다. Some kids give farmers clothes and cream and turn them into crops such as garlic or soybeans to take as special products. 북조선에서는 이런 경우를 ‘자본주의를 한다' 고 한다. In North Korea, this is called 'capitalism'. 물건에 욕심을 부려 자기 리익을 챙기는 행위를 ‘자본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It is to criticize the act of taking greedy interests on things as self-interest as 'capitalism'. 반면에 남학생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떡 20개를 다 먹어치운다. On the other hand, most of the boys eat 20 of the rice cakes on the spot. 그런것만 봐도 확실히 녀자와 남자는 그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Just looking at it, the woman and the man could feel that the behavior was different.

‘자본주의, 리기주의' 현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다. 예를들면, 모내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이면 모를 키울 때 쓰던 비닐 박막을 개울가에서 내다놓고 발로 밟아 빤다. For example, by the time the planting is almost over, the plastic thin film used to grow the hair is put out in the stream and is treaded on your feet. 북조선에서는 비닐이 상점에서도 구할 수가 없는 아주 귀한 물건이다. In North Korea, vinyl is a very rare item that cannot be found in stores. 그래서 아이들은 찢어진 비닐조각을 몰래 챙겨 집에 가져가 보자기로 쓰거나 깨진 유리창 대신 사용한다. So children sneak a piece of torn plastic and take it home and use it as a cloth or use it instead of a broken glass window.

집에 돌아가기 전날 밤이면 우물가는 녀학생들로 차고넘친다. The night before we go home, we are full of female students going to the well. 집에 고운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씻고 빨래비누로 머리도 감으며 오래간만에 얼굴에 크림도 바른다. Wash your body to get back home, wash your hair with laundry soap, and apply cream on your face after a long time. 그러나 아무리 씻고 가꾸어도 다른 사람에 비해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농촌 처녀가 다 되였다고 놀림을 당하기 일쑤다. However, no matter how washed and cared for, the face is burned black compared to other people, and it is often teased that the rural maiden is finished. 그래도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다른 일에 신경 안 써서 그런지 다들 건강해졌다고 말해 주었다.

장기간 농촌 지원에서 돌아오면 공부 환경에 적응하려고 한동안 애를 먹는다. When I come back from rural support for a long time, I struggle for a while to adjust to my study environment. 열흘 정도는 수업시간에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졸기 일쑤고 수학공식, 영어단어, 한자를 하면 모두 처음 보는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게된다. For about 10 days, all of you doze off in class without anybody saying anything, and if you write math formulas, English words, or kanji, you will feel unfamiliar as you see them for the first time. 머리를 안쓰고 육체 노동으로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단순해지는지 우리들은 체험으로 느끼게 되였다. We felt as an experience how simple people who were headless and who lived only by physical labor.

우리의 중학교 시절은 처음 겪어보는 여러가지 육체적인 로동의 경험으로 더욱 성숙해졌다. Our middle school years have matured with the experience of many physical labors we have experienced for the first time. 막상 닥쳤을 때는 고달팠지만 지내놓고 보면 육체적, 정신적으로 적지 않게 인생에 도움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When I first came, it was difficult, but when I went on, I realized that it helped my life a lot, both physically and mentally. 그래서인지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시절의 기억은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내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Narration: Confession of Kim Hyun-hee of the Daenam Institute of Technology, Park Soo-hyun, was the po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