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시절, 다섯 번째-5
나의 어린시절, 다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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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시절, 다섯 번째
거의 매년 겨울마다 화장실 수도관이 얼어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것도 큰 고민거리였다.
용무가 급한 사람들은 엉덩이를 뒤로 빼고 이리저리 다른 화장실을 찾아 다니다가 할 수 없이 학교 화장실을 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도관이 얼지 않을 때라도 화장실을 가는 일은 고역 이였다. 언제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니 용무가 급한 사람이나 출근하는 아침시간에는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보통이였다.
“빨리좀 나오라요.”
참다못해 뒷사람이 안에 있는 사람에게 소리를 칠 때도 있었다.
늦가을 김장철이 되면 한 층 22가구당 수도가 2 개뿐 이니 공동수도는 야단법석이 난다. 배추와 무우를 실어다 아빠트 앞마당에 부리면 식구 모두가 달려들어 다듬은 다음 복도까지 날라다 놓는다. 그렇지 않아도 집집마다 쌓아 놓은 연탄 때문에 좁은 복도가, 김장감까지 쌓아 놓으니 더욱 좁아졌다. 어디 그뿐인가. 커다란 독까지 복도를 차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사람들은 복도를 지나려면 이리저리 몸을 틀면서 걸어야 하고 어떤 때는 독을 뛰어넘는 곡예까지 하였다.
김장감을 씻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아침 4시부터 7시까지,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 그리고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하는 식으로 3교대로 순서를 정해 김장감을 씻는다. 정해진 시간에 그 많은 배추를 다 씻으려면 보통 바빠난게 아니였다. 어떤 때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어머니와 둘이서 배추를 씻으면 손이 곱아 손가락을 움직이기조차 어렵게 되였다. 남조선에 와서 주부들이 설거지를 하거나 김장 때 고무장갑을 끼는 것을 처음 보고 정말 좋은 방법을 고안해냈다는 생각을 했다. 녀자들은 김장을 버무려 놓고 나면 손이 쓰리고 화끈거려서 밤새 운다. 겨울철에 물을 많이 만지는 녀자들은 손이 거칠어지고 터질 수밖에 없다. 쉴 새 없이 온갖 집안일을 하는 우리 어머니에게 이 고무장갑 한 켤레를 보내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김장이 끝나면 아빠트 앞마당에 큰 독 2~3개를 묻을 수 있는 공간을 파내고 나무 널판지를 대여 상자처럼 만든 다음 독을 넣고 그 위에 자물쇠로 채워야 한다. 김치를 꺼낼 때마다 자물쇠를 여는 불편을 겪어야 했지만 그래도 김치를 모두 도둑맞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 김치독은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위생 문화 사업이 활발해져 단속이 심해지면 파내기 시작한다.
월동준비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구멍탄이였다. 각 동에 있는 구멍탄 공장에서 배정받은 양만큼의 구멍탄을 사들였다. 통상 겨울철에는 600장 정도를 살 수 있는데 구멍탄 들여오는 날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온 식구가 동원되여 바께쓰, 소랭이에 탄을 담아 복도에 쌓아 놓는다. 복도에 시커먼 구멍탄이 쌓여 미관상 좋지 않다고 해서 쌓아놓은 구멍탄 겉면을 흰 종이로 붙여 가려야만 했다. 마당에 부리다가 깨어지거나 운반 도중 깨진 구멍탄은 일요일 날 손기계를 빌려다가 하나하나 찍어 말린 뒤 다시 사용했다. 그런데 구멍탄이 어찌나 힘이 없는지 걸핏하면 잘 깨여져 파손분이 많기 때문에 휴일 날이 되면 남자들은 하루 종일 구멍탄 찍어내느라 시간을 모두 보냈다.
구멍탄을 때면 가장 불편하고 위험한 것이 가스다. 겨울철만 되면 가스 때문에 많은 사고가 발생했다. 인민반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가스순찰대' 를 조직하여 각 가구를 순찰하게 한다. 보통 밤 1시 내지 2시 경에 순찰을 도는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깨워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도장을 찍은 뒤 돌아간다. 가스 순찰대 조직은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각 가구마다 사람을 내여 꾸려간다.
잠깐 동안이나마 자유분방하고 편리한 외국 생활에 젖어 있던 우리가족은 조국의 이러한 생활에 다시 적응해 나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