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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나의 대학시절, 열 두 번째-32

나의 대학시절, 열 두 번째-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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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열 두 번째

날이 밝으면서부터 혹시 흥남역을 그냥 지나칠까봐 안달이 나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홍남이 아직 멀었느냐고 물으며 초조해했다.

기차 내에서는 안전원의 기차표와 통행증 검열을 여러차례 받았다. 심지어는 보따리 검열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는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생선 비린내가 풍겨 오자 옆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가 다음 다음 정류장이 흥남역이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차창 밖으로 어촌 풍경이 보였다. 집집마다 줄에 동태를 매달아 말리고 있었다. 드디어 15 시간의 기차 여행 끝에 우리는 흥남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니 매운 바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코가 다 얼얼해져 마후라를 끌어올려 코까지 덮을만큼 함경남도의 1월 날씨는 꽤 매서웠다.

흥남역 대합실에 들어가 안내원에게 신포로 가는 기차편을 물으니 오후 1시나 되여야 온다고 알려 주었다.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므로 뻐스편을 물었더니 뻐스 정류소는 역에서 한참 걸어서 어디로 어디로 가라고 한다. 초행길이기 때문에 말로만 들어서는 어디가 어딘지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큰댁에 이미 전보를 쳤으니 신포역에 큰댁 식구가 마중나와 있을 것이기에 그냥 대합실에서 기다리다가 기차를 타기로 했다.

대합실에는 긴 나무 의자 몇 개가 있고 한가운데에는 드럼통을 절반 잘라 개조한 듯한 난로가 하나 놓여 있었다.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시골 역사 그대로였다. 난로 옆에는 머리를 산발하고 얼굴에 때꾸정물이 질질 흐르는 아주 더러운 행색의 정신이상자 녀자가 너덜너덜한 옷차림으로 마른 명태를 뜯어먹고 있었다.

언제나 ‘우리공화국은 거지가 없는 사회주의 락원'이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어온 나는 너무 놀랐다. 현수도 마찬가지였다. 평양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녀자를 보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우리나라에도 거지가 있나? ' ‘설마 거지는 아니겠지, 정신이 나가서 자기가 집을 뛰쳐나온 거겠지? ' ‘정신이상자라면 왜 병원에 안 보내나?' 기차를 기다리느라 대합실 나무 의자에 앉아 있자니 시간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12시가 넘어가자 배가 고파왔다. 아침에 밥곽을 도저히 먹기가 힘들어 몇 술 뜨다가 그대로 버렸더니 더 배가 고팠다. 대합실 주변에는 먹을 것을 파는 곳이라곤 아무데도 없었다. 생각 끝에 배낭을 뒤져서 큰댁 선물로 마련한 빵 중에서 4개를 꺼내 현수와 각각 2개씩 나누어 먹었다. 현수도 입맛을 다시고 나도 더 먹고 싶었지만 몇 개 안되는 선물이 축나는 것 같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신포행 기차가 온다는 시각인 1시가 가까워오자 매표구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평양에서 산 표는 흥남역에 내리면서 이미 무효가 되였으므로 우리도 줄을 서서 다시 표를 샀다.

흥남역에서 1시간나마 가니 신포역이였다. 신포역 역시 흥남역처럼 작은 역이였다. 현수와 나는 개찰구에서부터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며 마중나와 있을 큰 댁 식구들을 찾았지만 방금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과 기차를 탈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가자 대합실에는 나와 현수 둘만이 남았다. 큰댁에서 마중나온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기차 시간이 엉망이니 나왔다가 되돌아갔나 보다생각하고 우리는 어쩔수 없이 큰댁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가 적어준 주소와 략도를 펴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묻고 또 물어 겨우 큰댁을 찾았다.

내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나의 대학시절, 열 두 번째-32 Meine College-Jahre, Nummer Zwölf - 32 Мои студенческие годы, номер двенадцать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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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열 두 번째

날이 밝으면서부터 혹시 흥남역을 그냥 지나칠까봐 안달이 나 이 사람 저 사람을 붙들고 홍남이 아직 멀었느냐고 물으며 초조해했다. 日が明けてから、もしかしたら興南駅を通り過ぎるかもしれないと心配になり、この人、あの人、あの人を抱きしめ、興南がまだ遠いかどうか尋ねながら焦りました。

기차 내에서는 안전원의 기차표와 통행증 검열을 여러차례 받았다. 列車内では、安全員による列車の切符と通行証の検査を何度も受けました。 심지어는 보따리 검열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는 아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袋の検閲まで行われることもあったが、これはごく当たり前のこととして受け止めている。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고 생선 비린내가 풍겨 오자 옆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가 다음 다음 정류장이 흥남역이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遠くに海が見え始め、魚の生臭い匂いが漂ってくると、隣に座っていた中年の男性が、次の次の停車駅は興南駅だと親切に教えてくれました。

차창 밖으로 어촌 풍경이 보였다. 車窓からは漁村の風景が見えました。 집집마다 줄에 동태를 매달아 말리고 있었다. 一軒一軒に紐で動物を吊るして干していました。 드디어 15 시간의 기차 여행 끝에 우리는 흥남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니 매운 바다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電車を降りると、刺激的な潮風が顔に当たる。 코가 다 얼얼해져 마후라를 끌어올려 코까지 덮을만큼 함경남도의 1월 날씨는 꽤 매서웠다. 鼻がヒリヒリしてマフラーを引き上げ、鼻まで覆うほど、咸鏡南道の1月の天気はかなり厳しいものでした。

흥남역 대합실에 들어가 안내원에게 신포로 가는 기차편을 물으니 오후 1시나 되여야 온다고 알려 주었다. 興南駅の待合室に入り、案内員に新浦行きの電車の時刻を尋ねると、午後1時になってからだと言われました。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므로 뻐스편을 물었더니 뻐스 정류소는 역에서 한참 걸어서 어디로 어디로 가라고 한다. あと3時間待た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バス便を尋ねると、バス乗り場は駅からかなり歩いたところにあるので、どこへ行けと言われました。 초행길이기 때문에 말로만 들어서는 어디가 어딘지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큰댁에 이미 전보를 쳤으니 신포역에 큰댁 식구가 마중나와 있을 것이기에 그냥 대합실에서 기다리다가 기차를 타기로 했다. 初めての道なので、言葉だけではどこがどこなのか分からないし、大家にすでに電報を打ったので、新浦駅に大家の家族が迎えに来ているはずなので、待合室で待ってから電車に乗ることにしました。

대합실에는 긴 나무 의자 몇 개가 있고 한가운데에는 드럼통을 절반 잘라 개조한 듯한 난로가 하나 놓여 있었다. 待合室には長い木製の椅子がいくつかあり、真ん中にはドラム缶を半分切って改造したようなストーブが一つ置かれていました。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시골 역사 그대로였다. みすぼらしい田舎の歴史そのままでした。 난로 옆에는 머리를 산발하고 얼굴에 때꾸정물이 질질 흐르는 아주 더러운 행색의 정신이상자 녀자가 너덜너덜한 옷차림으로 마른 명태를 뜯어먹고 있었다. 囲炉裏の横には、髪を散乱させ、顔に汚物を垂れ流す、とても汚い行儀の精神異常者の女が、ぼろぼろの服姿で乾いたスケトウダラをほじくっていた。

언제나 ‘우리공화국은 거지가 없는 사회주의 락원'이라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들어온 나는 너무 놀랐다. いつも「わが共和国は乞食のいない社会主義の楽園」という言葉を耳が痛いほど聞いていた私はとても驚いた。 현수도 마찬가지였다. 玄武もそうだった。 평양에서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녀자를 보니 마음이 이상해졌다. 平壌ではこのような姿は見られないので、このような女性を見ると不思議な気分になる。

‘우리나라에도 거지가 있나? '  ‘설마 거지는 아니겠지, 정신이 나가서 자기가 집을 뛰쳐나온 거겠지? まさか乞食じゃないだろうな、正気を失って家を飛び出したんだろうな? '  ‘정신이상자라면 왜 병원에 안 보내나?' 기차를 기다리느라 대합실 나무 의자에 앉아 있자니 시간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12시가 넘어가자 배가 고파왔다. 12時を過ぎるとお腹が空いてきた。 아침에 밥곽을 도저히 먹기가 힘들어 몇 술 뜨다가 그대로 버렸더니 더 배가 고팠다. 朝、ご飯がとても食べられず、何杯か飲んだ後、そのまま捨ててしまい、さらにお腹が空いた。 대합실 주변에는 먹을 것을 파는 곳이라곤 아무데도 없었다. 待合室周辺には食べ物を売っているところはどこにもなかった。 생각 끝에 배낭을 뒤져서 큰댁 선물로 마련한 빵 중에서 4개를 꺼내 현수와 각각 2개씩 나누어 먹었다. 考えた末、リュックサックを漁り、大家さんへのお土産に用意したパンの中から4つを取り出し、玄さんとそれぞれ2つずつ分けて食べました。 현수도 입맛을 다시고 나도 더 먹고 싶었지만 몇 개 안되는 선물이 축나는 것 같아 참을 수밖에 없었다. ヒョンスドさんも食欲をそそられ、私ももっと食べたかったのですが、数少ないお土産が湿っぽくなりそうなので我慢するしかありませんでした。

신포행 기차가 온다는 시각인 1시가 가까워오자 매표구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新浦行きの列車が来る時刻である1時が近づくと、チケット売り場の前に行列ができ始めました。 평양에서 산 표는 흥남역에 내리면서 이미 무효가 되였으므로 우리도 줄을 서서 다시 표를 샀다.

흥남역에서 1시간나마 가니 신포역이였다. 興南駅から1時間ほど行くと、新浦駅でした。 신포역 역시 흥남역처럼 작은 역이였다. 현수와 나는 개찰구에서부터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며 마중나와 있을 큰 댁 식구들을 찾았지만 방금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과 기차를 탈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가자 대합실에는 나와 현수 둘만이 남았다. ヒョンスと私は改札口から首を長く伸ばして、出迎えに来ている大家族を探しましたが、ちょうど電車を降りた人たちと電車に乗る人たちがすべて出ると、待合室には私とヒョンスの二人だけが残りました。 큰댁에서 마중나온 사람은 없었다. 大家さんからの出迎えはなかった。

이렇게 기차 시간이 엉망이니 나왔다가 되돌아갔나 보다생각하고 우리는 어쩔수 없이 큰댁을 찾아 나섰다. こうして電車の時間が狂ってしまったので、出てきては戻ったのだろうと思い、私たちは仕方なく大家さんを探しに出かけました。

우리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가 적어준 주소와 략도를 펴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묻고 묻고 또 물어 겨우 큰댁을 찾았다. 私たちは勇気を振り絞って、父が書いてくれた住所と地図を広げて、通りすがりの人に聞いて、聞いて、聞いて、聞いて、やっと大家さんを見つけました。

내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