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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나의 대학시절, 스물다섯 번째-45

나의 대학시절, 스물다섯 번째-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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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스물다섯 번째

나는 동생 현옥이에게 어머니가 물려주신 수예작품을 건네주면서, 만일 내가 다시 돌아오면 돌려줘야 한다고 당부 하다가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념려 마. 내가 잘 보관했다가 돌려줄 테니까.” 현옥이는 내 심정을 아는지 애써 쾌활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래일 나가서 가족 사진이라도 찍을까? 야, 가서 잘 하라우! 괜히 집안망신 시키지 말구 말이야...”

현옥이는 나를 고무하려다 끝내 나를 따라서 눈물을 흘렸다.

자정이 다 되여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서로 다투어 오늘 있었던 일을 토막 토막 설명했다. 아버지는 옷 벗는 것도 잊고 그 자리에 서서 못 알아 들은 사람처럼 같은 내용을 되묻고 되물었다. 아버지 얼굴에서 섭섭해 하는 표정이 스친것은 잠깐 뿐 곧 침착을 되찾으시고 나를 불러 앉혔다.

“나는 너를 잘 키워서 좋은 데 시집보내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길 바랬다. 아이들에게는 현모가 되고 남편에게는 양처가 되길 바랬어. 그렇지만.... 옛말에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사람이 태여나서 조국을 위해 값있게 살다 죽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을 항상 명심하고 당에서 하라는 데로 일 잘 해라. 우리 현희가 참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나를 고무하고 몇 가지 당부를 하였으나 여전히 섭섭해 하는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아버지 말에 기를 기울이다가 현모양처가 되길 바랬다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내 방으로 돌아와서 동생들에 둘러싸여 사진첩을 하나하나 보면서 지난 일들을 이야기 나누었다.

잠자리에 들었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가족과 헤어지는 섭섭함도 있었지만 설레이는 흥분감이 더 컸다. 내가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뽑혔다는 자긍심과 앞으로 전개될 당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뜩 가슴 부풀어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섭섭해 하는 것은 흔히 어른들이 품에서 자식을 떠나 보내며 느끼는 당연한 감정과 같은 것이며 괜한 로파심이라고 생각했다. 당에서 나에게 베푼 배려와 거는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도 하였다.

다음 날은 어느 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어머니는 밤을 지새웠는지 아직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느라고 그릇을 덜거덕거리고 있었다. 어머니 눈이 많이 부어 있음을 보았다. 밤새 우신 모양이다.

“일어났니? 더 자지 않구.....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

어머니는 나를 보자 또 눈시울을 적셨다. 줄곧 내 생각만 하신 것 같았다.

아침식사를 마친 뒤 현수에게 하신동 배급소에서 ‘식량 림시 정지 증명서'에 도장을 맡아 오도록 시키고 현옥이는 쌀을 들려 보내 ‘밥공장'에 가서 떡과 바꾸어 오도록 심부름을 보냈다. 10시쯤 정 지도원이 왔다. 아버지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그는 나를 데리고 시내에 나갔다. 천리마 동상 못 미처 모란봉으로 올라가는 길 부근에 간판이 없는 상점이 있었다. 그 길은 당시에는 단독 주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빠트가 들어서고 북새 거리가 들어섰다. 상점에서 내의, 스웨터, 양말, 신발, 치솔, 치약, 비누까지 한 트렁크를 구입해 주었다.

정 지도원은 나를 다시 집에 내려놓고 3시에 다시 오겠다며 가버렸다. 어린 동생들은 트렁크를 열고 북조선에서는 처음 보는 고급스러운 옷과 각종 필수품을 보고 마냥 부러워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나의 대학시절, 스물다섯 번째-45 Meine College-Jahre, fünfundzwanzig - 45 My College Years, Twenty-Five to Forty-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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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스물다섯 번째

나는 동생 현옥이에게 어머니가 물려주신 수예작품을 건네주면서, 만일 내가 다시 돌아오면 돌려줘야 한다고 당부 하다가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私は妹のヒョンオクイに母から受け継いだ手芸作品を渡し、もし私が戻ってきたら返してほしいと言いながら、涙を流してしまいました。

“념려 마. "気にするな。 내가 잘 보관했다가 돌려줄 테니까.” 현옥이는 내 심정을 아는지 애써 쾌활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래일 나가서 가족 사진이라도 찍을까? "私たちレイルで家族写真でも撮ろうかな? 야, 가서 잘 하라우! おい、頑張れよ! 괜히 집안망신 시키지 말구 말이야...” 余計な恥をかかせないでくれよ...」。

현옥이는 나를 고무하려다 끝내 나를 따라서 눈물을 흘렸다. ヒョンオクは私を励まそうとして、結局私と一緒に涙を流した。

자정이 다 되여 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다. 真夜中になり、父が帰ってきた。 어머니와 동생들이 서로 다투어 오늘 있었던 일을 토막 토막 설명했다. 母と弟たちが喧嘩して、今日あったことをバラバラに説明する。 아버지는 옷 벗는 것도 잊고 그 자리에 서서 못 알아 들은 사람처럼 같은 내용을 되묻고 되물었다. 父は服を脱ぐのも忘れてその場に立ち、まるで聞き取れない人のように同じ内容を聞き返し、聞き返した。 아버지 얼굴에서 섭섭해 하는 표정이 스친것은 잠깐 뿐 곧 침착을 되찾으시고 나를 불러 앉혔다. 父の顔に残念そうな表情が浮かんだのは一瞬だけで、すぐに落ち着きを取り戻して私を呼び寄せた。

“나는 너를 잘 키워서 좋은 데 시집보내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길 바랬다. "私は君を立派に育てていいところに嫁がせて、ただの普通の主婦になることを望んでいた。 아이들에게는 현모가 되고 남편에게는 양처가 되길 바랬어. 子供たちには母親になり、夫には養母になることを望んでいた。 그렇지만.... 옛말에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사람이 태여나서 조국을 위해 값있게 살다 죽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しかし、....昔から凡は死んで皮を残し、人は死んで名前を残すと言いますが、人が生まれて祖国のために価値ある人生を送って死ぬことも大切なことです。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는 말을 항상 명심하고 당에서 하라는 데로 일 잘 해라. 凡に食べられても正気を保てば生きていけるという言葉を常に肝に銘じて、党の言うとおりに仕事を頑張れ。 우리 현희가 참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私たちヒョンヒは、本当に誇らしいです。"

나를 고무하고 몇 가지 당부를 하였으나 여전히 섭섭해 하는 표정을 감추질 못했다. 私を激励し、いくつかの注意を促したが、やはり残念そうな表情を隠せなかった。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아버지 말에 기를 기울이다가 현모양처가 되길 바랬다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母は仕事を手放し、父の言葉に耳を傾け、現職になることを望んだという部分では涙を流した。

내 방으로 돌아와서 동생들에 둘러싸여 사진첩을 하나하나 보면서 지난 일들을 이야기 나누었다. 部屋に戻り、弟たちに囲まれ、写真集を一枚一枚見ながら、過去の出来事を語り合いました。

잠자리에 들었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가족과 헤어지는 섭섭함도 있었지만 설레이는 흥분감이 더 컸다. 家族と別れる寂しさもあったが、わくわくする興奮の方が大きかった。 내가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뽑혔다는 자긍심과 앞으로 전개될 당 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뜩 가슴 부풀어 있었다. 私はその多くの学生の中から選ばれたという誇りと、これから展開される党生活への期待に胸が膨らんでいました。

아버지와 어머니가 섭섭해 하는 것은 흔히 어른들이 품에서 자식을 떠나 보내며 느끼는 당연한 감정과 같은 것이며 괜한 로파심이라고 생각했다. 父と母が悔しがるのは、一般的に大人が抱きしめた子どもを見送るときに感じる当たり前の感情と同じで、無駄なロパシズムだと思った。 당에서 나에게 베푼 배려와 거는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도 하였다. 党が私に与えてくれた思いやりと期待に報いるために頑張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決意もしました。

다음 날은 어느 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어머니는 밤을 지새웠는지 아직 부엌에서 음식 장만하느라고 그릇을 덜거덕거리고 있었다. 母は夜更かししたのか、まだ台所で食材の買い出しに夢中で、ボウルをガタガタ鳴らしていた。 어머니 눈이 많이 부어 있음을 보았다. 母の目がかなり腫れているのを見ました。 밤새 우신 모양이다. 一晩中ウーシン模様。

“일어났니? 더 자지 않구.....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 もう寝ないよ.....また来れるだろうね....."

어머니는 나를 보자 또 눈시울을 적셨다. 母は私を見て、またまた目を潤ませた。 줄곧 내 생각만 하신 것 같았다. ずっと私のことばかり考えているようでした。

아침식사를 마친 뒤 현수에게 하신동 배급소에서 ‘식량 림시 정지 증명서'에 도장을 맡아 오도록 시키고 현옥이는 쌀을 들려 보내 ‘밥공장'에 가서 떡과 바꾸어 오도록 심부름을 보냈다. 朝食を済ませた後、ヒョンスにハシドン配給所から「食糧臨時停止証明書」に印鑑を押してもらい、ヒョンオクは米を送って「米工場」に行って餅と交換してくるよう用事を頼んだ。 10시쯤 정 지도원이 왔다. 아버지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그는 나를 데리고 시내에 나갔다. 천리마 동상 못 미처 모란봉으로 올라가는 길 부근에 간판이 없는 상점이 있었다. 千里馬像に届かず、牡丹峰に登る道付近に看板のないお店がありました。 그 길은 당시에는 단독 주택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빠트가 들어서고 북새 거리가 들어섰다. その通りは当時は一戸建てが多かったのですが、今はアパルトマンが建って賑やかな通りになりました。 상점에서 내의, 스웨터, 양말, 신발, 치솔, 치약, 비누까지 한 트렁크를 구입해 주었다. お店で下着、セーター、靴下、靴、歯ブラシ、歯磨き粉、石鹸までトランク一杯買ってくれました。

정 지도원은 나를 다시 집에 내려놓고 3시에 다시 오겠다며 가버렸다. チョン指導員は私を再び家に降ろし、3時にまた来ると言って去っていった。 어린 동생들은 트렁크를 열고 북조선에서는 처음 보는 고급스러운 옷과 각종 필수품을 보고 마냥 부러워했다. 幼い弟たちはトランクを開け、北朝鮮では見慣れない高級な服や様々な必需品を見て羨望の眼差しを向けていました。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