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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나의 대학시절, 두 번째-22

나의 대학시절, 두 번째-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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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두 번째

녀자에게는 교도대 훈련이 육체적으로 힘에 부칠 뿐 아니라 모르는 남자와 함께 공동생활한다는 것부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내의를 한 벌밖에 주지 않아 세탁해 입기가 불편했다. 탈의실도 따로 없어 녀자 병실 안에 붙은 작은 창고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녀자 병실 건너 남자 병실이 있고 또 늘 보초장, 특무장이 드나들기 때문에 더운 여름철에 단추를 꼭꼭 채워서 군복을 입고 있어야 했다. 6개월 동안 삶아 빨아야 하는 세탁을 할 수 없어 녀학생들은 벙벙이 비닐주머니에 비누칠 해 놓은 세탁물을 넣어 따뜻한 곳에 오래 두었다가 세탁하는 방법을 머리써서 고안해냈다.

속내의를 세탁하는 것도 문제지만 세탁 후에 말리는 것도 큰 고민이였다. 남자들이 다니는 길목의 빨래줄에 그냥 내다 널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빨래줄에 그것들을 널고 그 위에 보자기를 씌우는 편법을 썼으나 바람이라도 불면 보자기가 날아갔다. 부끄럼을 한창 많이 타는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괴롭고 신경 쓰이는 일인지 몰랐다.

군대 생활이건 농촌 지원 활동이건 남녀가 집단생활을 하다 보면 가장 골치 아픈 것이 각종 비리사건과 부화사건이였다. 그러기 때문에 련대에서 부참모장이 나오거나 중대 정치 지도원이 정치사상 교양과 군사규율 교양을 하면서 그동안 일어난 각종 비리, 부화 사고를 례를 들면서 주의를 준다.

우리 중대 기구소대에 소속된 특무상사는 주변 마을 처녀와 몇 년 동안 사귀다가 싫어져 그 처녀를 버렸는데 그 처녀 집안에서 들고 일어나 결국 ‘부화사건'으로 처리되여 감정 제대하면서 탄광으로 배치되였다. 또 옆 중대의 녀특무장이 대원들에게 지급되는 소비품을 주지 않고 마을에 가져가 팔기도 하고 자기 집에 보내는 것이 들통나서 감정제대 되였다.

학생들간에도 종종 련애설이 나돌았다. 중학 시절에는 남녀 간에 말도 안하고 지내다가 대학에 가서는 내외하던 사이가 교도대 훈련 기간 6개월 동안 같이 생활하다시피 하다 보면 서로 롱말까지 하며 허물이 없어진다. 좋아하는 녀학생이 보초를 서고 있으면 슬그머니 찾아가 말을 걸고 심지어는 남몰래 크림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치는 일도 종종 있고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돌면 량쪽 모두 피해를 입는다.

남녀간의 관계란 아무리 단속하고 통제한다 해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인 것 같았다. 군대나 농촌이나 힘에 겹고 고달픈 나날이였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좋아하는 눈빛이 오갈 수 있기 때무에 본인들은 그 고비를 넘기고 주위에서는 그들을 화제 삼아 떠들면서 고충을 이겨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고 지겨운 훈련이지만 막상 훈련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그동안 정이 들어서 서운해 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몰래 마을에 내려가 기념 사진도 찍고 기념품도 주고 받으면서 섭섭한 마음을 나눈다.

내가 김대에 입학한 후 곧바로 6개월간 교도대 훈련을 나가고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바로 농촌지원을 나감으로써 그다지 학교 생활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자, 아버지는 나에게 평양외국어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다. 평양외국어대학은 졸업 후 좋은 직장에 배치되는 것이 보장되고 녀성으로서 적당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유익한 점이 있어 녀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아버지는 다시 입학할 준비를 하라고 충고하고 입학시험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다.

6개월간의 교도대 훈련이 없었다면 나는 그냥 김일성 종합대학 생물학부를 다녔을 것이고 나의 인생은 지금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중앙당에 공작원으로 소환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나의 대학시절, 두 번째-22 My College Years, Part Two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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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시절, 두 번째 My college days, the second

녀자에게는 교도대 훈련이 육체적으로 힘에 부칠 뿐 아니라 모르는 남자와 함께 공동생활한다는 것부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It is not uncomfortable for a woman to be trained in prison, not only to physically strengthen her strength, but also to live with a man she does not know. 내의를 한 벌밖에 주지 않아 세탁해 입기가 불편했다. It was uncomfortable to wear laundry because I only gave my underwear. 탈의실도 따로 없어 녀자 병실 안에 붙은 작은 창고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녀자 병실 건너 남자 병실이 있고 또 늘 보초장, 특무장이 드나들기 때문에 더운 여름철에 단추를 꼭꼭 채워서 군복을 입고 있어야 했다. 6개월 동안 삶아 빨아야 하는 세탁을 할 수 없어 녀학생들은 벙벙이 비닐주머니에 비누칠 해 놓은 세탁물을 넣어 따뜻한 곳에 오래 두었다가 세탁하는 방법을 머리써서 고안해냈다.

속내의를 세탁하는 것도 문제지만 세탁 후에 말리는 것도 큰 고민이였다. 남자들이 다니는 길목의 빨래줄에 그냥 내다 널 수가 없었다. I couldn't just hang out on the clothesline of the streets where men go. 할 수 없이 빨래줄에 그것들을 널고 그 위에 보자기를 씌우는 편법을 썼으나 바람이라도 불면 보자기가 날아갔다. I couldn't help but put them on a clothesline and put a cloth on it, but when the wind blew, the cloth went off. 부끄럼을 한창 많이 타는 나이의 처녀들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괴롭고 신경 쓰이는 일인지 몰랐다. For the virgins of the shy age, I didn't know how painful and anxious it was.

군대 생활이건 농촌 지원 활동이건 남녀가 집단생활을 하다 보면 가장 골치 아픈 것이 각종 비리사건과 부화사건이였다. Whether living in the military or supporting the rural area, the most troublesome cases of men and women were various corruption cases and hatching cases. 그러기 때문에 련대에서 부참모장이 나오거나 중대 정치 지도원이 정치사상 교양과 군사규율 교양을 하면서 그동안 일어난 각종 비리, 부화 사고를 례를 들면서 주의를 준다. For this reason, the deputy chief of staff from Ryundae University or a major political instructor cultivates political ideology and military discipline, giving attention to examples of various corruption and hatching incidents.

우리 중대 기구소대에 소속된 특무상사는 주변 마을 처녀와 몇 년 동안 사귀다가 싫어져 그 처녀를 버렸는데 그 처녀 집안에서 들고 일어나 결국 ‘부화사건'으로 처리되여 감정 제대하면서 탄광으로 배치되였다. 또 옆 중대의 녀특무장이 대원들에게 지급되는 소비품을 주지 않고 마을에 가져가 팔기도 하고 자기 집에 보내는 것이 들통나서 감정제대 되였다.

학생들간에도 종종 련애설이 나돌았다. 중학 시절에는 남녀 간에 말도 안하고 지내다가 대학에 가서는 내외하던 사이가 교도대 훈련 기간 6개월 동안 같이 생활하다시피 하다 보면 서로 롱말까지 하며 허물이 없어진다. In middle school, if you do not speak between men and women and then go to college and go home and abroad while living together for six months during the training period of the prison guards, you will end up talking to each other and disappear. 좋아하는 녀학생이 보초를 서고 있으면 슬그머니 찾아가 말을 걸고 심지어는 남몰래 크림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When a favorite female student was standing on the guard, she went and talked, and even secretly gave cream. 그러나 그 도가 지나치는 일도 종종 있고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돌면 량쪽 모두 피해를 입는다. However, the road is often overlooked, and if two people do and rumors say that such a thing goes wrong, both sides suffer damage.

남녀간의 관계란 아무리 단속하고 통제한다 해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인 것 같았다. 군대나 농촌이나 힘에 겹고 고달픈 나날이였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좋아하는 눈빛이 오갈 수 있기 때무에 본인들은 그 고비를 넘기고 주위에서는 그들을 화제 삼아 떠들면서 고충을 이겨 나가기도 했다. It was a difficult and difficult day for the military or the rural community, but in the midst of that, even when the eyes that I like can come and go, they passed over the hump and talked about them around them to overcome their grievances.

그렇게 힘들고 지겨운 훈련이지만 막상 훈련이 끝나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그동안 정이 들어서 서운해 한다. It's such a hard and tiring training, but when it's time to go home after training, I feel sorry for it.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몰래 마을에 내려가 기념 사진도 찍고 기념품도 주고 받으면서 섭섭한 마음을 나눈다.

내가 김대에 입학한 후 곧바로 6개월간 교도대 훈련을 나가고 훈련을 마치고 돌아와 바로 농촌지원을 나감으로써 그다지 학교 생활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자, 아버지는 나에게 평양외국어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했다. 평양외국어대학은 졸업 후 좋은 직장에 배치되는 것이 보장되고 녀성으로서 적당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유익한 점이 있어 녀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After graduating from Pyongyang Foreign Language College, it was guaranteed to be placed in a good job, and it was popular with female students because it had the advantage of being able to have a suitable job as a female. 아버지는 다시 입학할 준비를 하라고 충고하고 입학시험을 다시 볼 수 있도록 보장해 주었다.

6개월간의 교도대 훈련이 없었다면 나는 그냥 김일성 종합대학 생물학부를 다녔을 것이고 나의 인생은 지금과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중앙당에 공작원으로 소환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