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 use cookies to help make LingQ better. By visiting the site, you agree to our cookie policy.


image

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절망의 나날, 열 여섯 번째-112

절망의 나날, 열 여섯 번째-112

[...]

절망의 나날, 열 여섯 번째

잠깐 잠든 사이에 또 꿈을 꾸었다. 저수지에서 수영 훈련을 받고 있는데, 손발이 마비 증상을 일으켰다. 그때 보트를 탄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죽어가는 딸을 그대로 버려두고 가버렸다. 랭정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아버지의 보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힘을 모두 모아 ‘아버지, 나 죽어요. '하고 울부짖었다. 내 울음소리에 놀라 꿈이 깨었다. 꿈을 깨고 나서도 아직 흐느끼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여자경찰과 간호사가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마유미, 왜 그래? 어디가 아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또 울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결코 그런 아버지가 아니었는데....

지난 4.15 휴가 때 집에 갔더니 아버지도 앙골라에서 휴가를 받아 와 계셨다. 몇 년만에 온 가족이 다 모여 단란하게 보낼 수 있는 하루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과음으로 많이 취하셨다. 아버지는 보통 때 과음하는 편이 아니었다. 취하셔서는 나를 따라 와 있는 리 지도원의 멱살을 움켜잡고

“내 딸 언제 시집보낼거요? 언제 집에 보내줄거냔 말이오?”라며 시비조로 항의를 했다.

어머니의 만류에 다른 방으로 가긴 했지만 그때 아버지는 침울하고 괴로운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딸의 불행한 장래를 예감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무역부에 볼일이 있어 일찍 나가봐야 하신다며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나 역시 오후에는 초대소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미리 인사를 하려고 문 밖까지 따라나가 “아버지”하며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지만 마주 잡아 주지도 않았다. 여느 때와는 판이하게 무뚝뚝한 시선으로 힐끗 쳐다보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돌아섰다. 아버지가 어제부터 왜 저러실까 하고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전 같으면 ‘오, 우리 큰딸'하며 다정하게 어깨를 토닥거릴 아버지였는데 그때는 정말 이상스러웠다. 나는 초대소로 돌아와서도 그것이 마음에 걸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한테 뭘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 그런 생각도 곰곰이 해보았으나 집히는 일이 없었다.

‘혹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나는 궁리 끝에 아버지가 앙골라로 떠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어도 집에 나가 아버지를 만나 뵙고 그 리유를 알아봐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초대소 식모에게 자유주의를 한 번 해야겠으니 눈 감아 달라고 사정을 했다. 평소에 오히려 초대소 식모가 눈 감아 줄 테니 자유주의로 집에 다녀오라고 권유해도 규률을 어기기 싫다며 거절하던 내가 오히려 자유주의를 하겠다고 자청하자 그녀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녀와요. 집에 가 있는 동안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초대소 식모는 리유도 묻지 않고 자유주의를 허락했다. 그녀만 눈 감아 주면 밤에는 자유주의가 가능했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초대소 경비 초소를 피해 그 구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휴가를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불쑥 밤늦게 내가 나타나자 가족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절망의 나날, 열 여섯 번째-112 Tage der Verzweiflung, sechzehnte - 112 Days of Despair, Sixteenth - 112

[...]

절망의 나날, 열 여섯 번째

잠깐 잠든 사이에 또 꿈을 꾸었다. 저수지에서 수영 훈련을 받고 있는데, 손발이 마비 증상을 일으켰다. 그때 보트를 탄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죽어가는 딸을 그대로 버려두고 가버렸다. 랭정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아버지의 보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 힘을 모두 모아 ‘아버지, 나 죽어요. '하고 울부짖었다. 내 울음소리에 놀라 꿈이 깨었다. 꿈을 깨고 나서도 아직 흐느끼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여자경찰과 간호사가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마유미, 왜 그래? 어디가 아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또 울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결코 그런 아버지가 아니었는데....

지난 4.15 휴가 때 집에 갔더니 아버지도 앙골라에서 휴가를 받아 와 계셨다. 몇 년만에 온 가족이 다 모여 단란하게 보낼 수 있는 하루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과음으로 많이 취하셨다. 아버지는 보통 때 과음하는 편이 아니었다. 취하셔서는 나를 따라 와 있는 리 지도원의 멱살을 움켜잡고

“내 딸 언제 시집보낼거요? 언제 집에 보내줄거냔 말이오?”라며 시비조로 항의를 했다.

어머니의 만류에 다른 방으로 가긴 했지만 그때 아버지는 침울하고 괴로운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이미 딸의 불행한 장래를 예감했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무역부에 볼일이 있어 일찍 나가봐야 하신다며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나 역시 오후에는 초대소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미리 인사를 하려고 문 밖까지 따라나가 “아버지”하며 손을 잡았다. 아버지는 내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지만 마주 잡아 주지도 않았다. 여느 때와는 판이하게 무뚝뚝한 시선으로 힐끗 쳐다보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돌아섰다. 아버지가 어제부터 왜 저러실까 하고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전 같으면 ‘오, 우리 큰딸'하며 다정하게 어깨를 토닥거릴 아버지였는데 그때는 정말 이상스러웠다. 나는 초대소로 돌아와서도 그것이 마음에 걸려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아버지한테 뭘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 그런 생각도 곰곰이 해보았으나 집히는 일이 없었다.

‘혹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가.' 나는 궁리 끝에 아버지가 앙골라로 떠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어도 집에 나가 아버지를 만나 뵙고 그 리유를 알아봐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초대소 식모에게 자유주의를 한 번 해야겠으니 눈 감아 달라고 사정을 했다. 평소에 오히려 초대소 식모가 눈 감아 줄 테니 자유주의로 집에 다녀오라고 권유해도 규률을 어기기 싫다며 거절하던 내가 오히려 자유주의를 하겠다고 자청하자 그녀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녀와요. 집에 가 있는 동안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초대소 식모는 리유도 묻지 않고 자유주의를 허락했다. 그녀만 눈 감아 주면 밤에는 자유주의가 가능했다.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초대소 경비 초소를 피해 그 구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갔다. 휴가를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불쑥 밤늦게 내가 나타나자 가족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