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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절망의 나날, 열 세 번째-109

절망의 나날, 열 세 번째-109

[...]

절망의 나날, 열 세 번째

깜빡 잠이 들었는데 또다시 사람들 말소리가 들려 깨어보니 이번에는 일본 사람들이었다. 오늘 하루만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다 만나는 셈이었다.

바레인 사람, 필리핀 간호사, 영국 사람, 남조선 사람, 일본인, 나는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작 중국 사람만 만나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은 나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시켜 보았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 “이곳 생활이 불편하지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빨리 몸이나 회복하도록 노력해요.”

그들은 많은 말을 하였고 나는 그들이 내가 하는 일본말을 들어 보기 위해 그러는 줄 알았기 때문에 완벽한 일본어를 구사했다. 이들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말만 시켜 보아서는 일본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돌아갔다. 나는 아직은 국적불명의 여자로 그들에게 인식되고 있다는 확신이 섰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 나라 사람들을 불러들일 필요가 없을 것이 아닌가.

몸은 나날이 회복되어 갔다. 그리고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영어로는 구체적인 언어소통이 불편하다고 판단했는지 내가 주장하는 대로 중국인이라고 간주한 채 중국어로 조사를 했다. 마리아의 친구라는 홍콩 여자를 통역으로 내세웠다.

이 여자의 나이는 34살로 수년 전에 남편과 같이 바레인에 와서 중국료리집을 하고 있다며 자기 소개를 먼저 했다. 좀 마르고 갱핏한 여자였다. 그녀의 소개를 들으면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남편을 따라 외국에 나와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 여자야말로 가장 행복한 여자라는 부러움이 일었다. 한없이 부러워서 내 처지가 더 처참하게 느껴졌다. 그 여자를 대하고 앉자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이 여자는 중국어는 잘 못했으나 광동어와 영어에는 능했으므로 광동말로 통역을 했다. 심문은 마리아가 했다.

조사가 들어가기 직전에 눈물부터 펑펑 쏟은 것이 주효했는지 첫 질문부터 내 심정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역력했다. 동정적이고 부드럽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쩐지 시작부터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가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마리아의 심문이 시작되자 나는 이미 구상해 놓은 각본대로 거침없이 대답했다.

“나는 중국 동북 지방에 있는 흑룡강성 오상시라는 곳에서 출생했습니다. 건축공사 당서기로 사업하던 아버지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반동분자로 몰려 온갖 고문을 다 받고 풀려났으나 그 어혈로 고생하다가 내가 다섯 살 나던 해에 자살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살한 뒤 곧 나를 버려두고 다른 남자에게 재가했습니다. 그 후 나는 겨우겨우 그곳에서 중학교까지는 다녔으나 의지가지할 데 없이 떠도느라 학업도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배우지도 못한 고아로 여기저기 흘러다니다 보니 이런 생각지 못한 일까지 당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더 이상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세상에....그 훌륭한 아버지를 두고는 자살했다 하고, 그립고도 그리운 우리 엄마가 있으면서도 다른 남자에게 재가했다고 말해야 하다니...... 이런 기구한 운명이 또 있을까.' 나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 하염없이 울어댔다.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죽어 없어졌다면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을 텐데 왜 살아나서 이 고통을 겪는지, 가슴이 터질 것처럼 서러웠다. 꾸며낸 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정하고 따뜻한 우리 가족이 너무나도 보고팠다. 그만 진정해야지 하는데도 울음은 걷잡을 수 없이 자꾸 터져 나왔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절망의 나날, 열 세 번째-109 Tage der Verzweiflung, Dreizehnter - 109 Days of Despair, Thirteenth - 109 Dagen van Wanhoop, dertiende -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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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열 세 번째

깜빡 잠이 들었는데 또다시 사람들 말소리가 들려 깨어보니 이번에는 일본 사람들이었다. 오늘 하루만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다 만나는 셈이었다.

바레인 사람, 필리핀 간호사, 영국 사람, 남조선 사람, 일본인, 나는 중국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작 중국 사람만 만나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은 나를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시켜 보았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요?”  “이곳 생활이 불편하지요?”  “너무 걱정하지 말고 빨리 몸이나 회복하도록 노력해요.”

그들은 많은 말을 하였고 나는 그들이 내가 하는 일본말을 들어 보기 위해 그러는 줄 알았기 때문에 완벽한 일본어를 구사했다. 이들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말만 시켜 보아서는 일본인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돌아갔다. 나는 아직은 국적불명의 여자로 그들에게 인식되고 있다는 확신이 섰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 나라 사람들을 불러들일 필요가 없을 것이 아닌가.

몸은 나날이 회복되어 갔다. 그리고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다. 영어로는 구체적인 언어소통이 불편하다고 판단했는지 내가 주장하는 대로 중국인이라고 간주한 채 중국어로 조사를 했다. 마리아의 친구라는 홍콩 여자를 통역으로 내세웠다.

이 여자의 나이는 34살로 수년 전에 남편과 같이 바레인에 와서 중국료리집을 하고 있다며 자기 소개를 먼저 했다. 좀 마르고 갱핏한 여자였다. 그녀의 소개를 들으면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남편을 따라 외국에 나와 자유롭게 살아가는 이 여자야말로 가장 행복한 여자라는 부러움이 일었다. 한없이 부러워서 내 처지가 더 처참하게 느껴졌다. 그 여자를 대하고 앉자 말문이 막히고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이 여자는 중국어는 잘 못했으나 광동어와 영어에는 능했으므로 광동말로 통역을 했다. 심문은 마리아가 했다.

조사가 들어가기 직전에 눈물부터 펑펑 쏟은 것이 주효했는지 첫 질문부터 내 심정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역력했다. 동정적이고 부드럽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쩐지 시작부터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가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마리아의 심문이 시작되자 나는 이미 구상해 놓은 각본대로 거침없이 대답했다.

“나는 중국 동북 지방에 있는 흑룡강성 오상시라는 곳에서 출생했습니다. 건축공사 당서기로 사업하던 아버지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반동분자로 몰려 온갖 고문을 다 받고 풀려났으나 그 어혈로 고생하다가 내가 다섯 살 나던 해에 자살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살한 뒤 곧 나를 버려두고 다른 남자에게 재가했습니다. 그 후 나는 겨우겨우 그곳에서 중학교까지는 다녔으나 의지가지할 데 없이 떠도느라 학업도 계속하지 못했습니다. 배우지도 못한 고아로 여기저기 흘러다니다 보니 이런 생각지 못한 일까지 당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더 이상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지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세상에....그 훌륭한 아버지를 두고는 자살했다 하고, 그립고도 그리운 우리 엄마가 있으면서도 다른 남자에게 재가했다고 말해야 하다니...... 이런 기구한 운명이 또 있을까.' 나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 하염없이 울어댔다.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죽어 없어졌다면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을 텐데 왜 살아나서 이 고통을 겪는지, 가슴이 터질 것처럼 서러웠다. 꾸며낸 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정하고 따뜻한 우리 가족이 너무나도 보고팠다. 그만 진정해야지 하는데도 울음은 걷잡을 수 없이 자꾸 터져 나왔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