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 use cookies to help make LingQ better. By visiting the site, you agree to our cookie policy.


image

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절망의 나날, 열 네 번째-110

절망의 나날, 열 네 번째-110

[...]

절망의 나날, 열 네 번째

꾸며낸 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정하고 따뜻한 우리 가족이 너무나도 보고팠다. 그만 진정해야지 하는데도 울음은 걷잡을 수 없이 자꾸 터져 나왔다.

마리아와 홍콩 여자는 내가 지난날의 내 고생이 서러워서 울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진정으로 측은해 하는 태도를 보였다.

“마유미, 진정해. 그간 고생이 많았겠군. 그만, 그만 울고 이야기를 계속해요.”

그들은 나를 달래며 함께 가슴아파해 준다. 나는 두 사람이 내 말과 행동에 깊이 빨려 들어오는 모양을 보고 힘을 얻어 다시 말을 이었다.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 일자리를 찾다나니 북경, 상해 바닥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외가의 도움을 받으려고 광주에 있는 외가로 가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머물면서 식당 종사원으로 일했고 상점 판매원으로 일하다가 작년 여름에 우잉이라는 여동무를 만났습니다. 그 동무가 밀선을 타고 국경을 넘어 마카오로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다른 몇 명의 청년들도 함께 있었는데 무사히 밀입국에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나 역시 이야기를 열심히 하다 보니 정말 그런 인물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내가 꾸며낸 인물이나 지금의 내 처치나 불행하고 기구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내 이야기는 정말 절실해지고 있었다.

“마카오에서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 이리저리 떠돌다가 도박장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도박장에서 일하던 중 일본에서 관광 온 ‘하찌야 신이찌'라는 일본 로인을 만났습니다. 이 로인은 나에게 친절했습니다. 몇 번 만나는 과정에서 내 처지를 듣고 불쌍하게 생각했는지 자기를 따라 일본에 가자고 제의해 왔습니다. 일본에 가서 자기 집에 양녀로 들어와 가정일을 돌보아 주면 매달 10만 엔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마카오에서의 생활도 너무 어렵고 힘들었던 처지여서 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를 따라 일본으로 갔습니다. 일본으로 가는 려권이라든가 비행기 표는 그 로인이 다 알아서 해결해 주어 나는 전혀 신경쓸 필요 없이 그냥 로인만 따라가면 되었습니다.”

나는 입술이 바짝 마르고 말하는 일도 힘에 부쳤으나 하던 끝에 다 말해 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그들이 특별한 질문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들은 소설책의 주인공을 대하고 있었다. 큰 불행을 겪어보지 않은 온실 속의 행복한 가정주부들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순수하고 여린 것 같았다. 어린 여자한테 속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그 여파를 몰아 신이찌와의 이야기에 열중했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꾜도 시부야꾸 에비수라는 동네에 있는 그의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는 내 이름을 ‘하찌야 마유미'라고 지어주었습니다. 로인은 나를 친딸처럼 귀여워했으나 집 밖으로 외출하는 것은 허용치 않았습니다. 내가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일본에 입국했기 때문에 밖에 나다니면 밀입국자로 붙잡힌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집 안에 갇혀 있다시피 했기 때문에 말이 일본에서 살았다고 할 뿐이지 일본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일년이 지나자 신이찌는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구라파 려행이나 같이 가자는 것이였습니다. 이번에도 그가 려권 수속과 경비를 다 책임졌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번 려행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 이상 아는 바 없습니다. 내가 그 비행기를 탔다가 내렸으며 내 말을 립증해 줄 신이찌는 이미 죽었다고 하니 기가 막힙니다. 더구나 모두들 내 말을 믿지 않으니 이제 모든 루명을 나 혼자 뒤집어쓰고 죽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된 것이 너무나 억울합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절망의 나날, 열 네 번째-110 Days of Despair, Fourteenth - 110

[...]

절망의 나날, 열 네 번째

꾸며낸 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정하고 따뜻한 우리 가족이 너무나도 보고팠다. 그만 진정해야지 하는데도 울음은 걷잡을 수 없이 자꾸 터져 나왔다.

마리아와 홍콩 여자는 내가 지난날의 내 고생이 서러워서 울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진정으로 측은해 하는 태도를 보였다.

“마유미, 진정해. 그간 고생이 많았겠군. 그만, 그만 울고 이야기를 계속해요.”

그들은 나를 달래며 함께 가슴아파해 준다. 나는 두 사람이 내 말과 행동에 깊이 빨려 들어오는 모양을 보고 힘을 얻어 다시 말을 이었다.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어 일자리를 찾다나니 북경, 상해 바닥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더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외가의 도움을 받으려고 광주에 있는 외가로 가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머물면서 식당 종사원으로 일했고 상점 판매원으로 일하다가 작년 여름에 우잉이라는 여동무를 만났습니다. 그 동무가 밀선을 타고 국경을 넘어 마카오로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다른 몇 명의 청년들도 함께 있었는데 무사히 밀입국에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나 역시 이야기를 열심히 하다 보니 정말 그런 인물인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내가 꾸며낸 인물이나 지금의 내 처치나 불행하고 기구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내 이야기는 정말 절실해지고 있었다.

“마카오에서 마땅히 머물 곳이 없어 이리저리 떠돌다가 도박장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도박장에서 일하던 중 일본에서 관광 온 ‘하찌야 신이찌'라는 일본 로인을 만났습니다. 이 로인은 나에게 친절했습니다. 몇 번 만나는 과정에서 내 처지를 듣고 불쌍하게 생각했는지 자기를 따라 일본에 가자고 제의해 왔습니다. 일본에 가서 자기 집에 양녀로 들어와 가정일을 돌보아 주면 매달 10만 엔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마카오에서의 생활도 너무 어렵고 힘들었던 처지여서 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그를 따라 일본으로 갔습니다. 일본으로 가는 려권이라든가 비행기 표는 그 로인이 다 알아서 해결해 주어 나는 전혀 신경쓸 필요 없이 그냥 로인만 따라가면 되었습니다.”

나는 입술이 바짝 마르고 말하는 일도 힘에 부쳤으나 하던 끝에 다 말해 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그들이 특별한 질문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들은 소설책의 주인공을 대하고 있었다. 큰 불행을 겪어보지 않은 온실 속의 행복한 가정주부들이어서 그런지 마음이 순수하고 여린 것 같았다. 어린 여자한테 속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그 여파를 몰아 신이찌와의 이야기에 열중했다.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꾜도 시부야꾸 에비수라는 동네에 있는 그의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는 내 이름을 ‘하찌야 마유미'라고 지어주었습니다. 로인은 나를 친딸처럼 귀여워했으나 집 밖으로 외출하는 것은 허용치 않았습니다. 내가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일본에 입국했기 때문에 밖에 나다니면 밀입국자로 붙잡힌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집 안에 갇혀 있다시피 했기 때문에 말이 일본에서 살았다고 할 뿐이지 일본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일년이 지나자 신이찌는 그동안 고생 많이 했으니 구라파 려행이나 같이 가자는 것이였습니다. 이번에도 그가 려권 수속과 경비를 다 책임졌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번 려행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 이상 아는 바 없습니다. 내가 그 비행기를 탔다가 내렸으며 내 말을 립증해 줄 신이찌는 이미 죽었다고 하니 기가 막힙니다. 더구나 모두들 내 말을 믿지 않으니 이제 모든 루명을 나 혼자 뒤집어쓰고 죽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된 것이 너무나 억울합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