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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절망의 나날, 열 두 번째-108

절망의 나날, 열 두 번째-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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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열 두 번째

나는 갑작스럽게 달라진 특별 대접에 불안을 느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이러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대접이 좋아도 걱정, 대접이 나빠도 걱정인 상황이었다.

찻잔을 놓기가 무섭게 핸더슨 부부가 아주 명랑한 표정을 지으며 “굿모닝 마유미”하고 들어섰다. 고개를 끄덕이려다 보니 그 뒤로 다른 사람들 몇 명이 줄을 이어 우르르 들어왔다. 나는 다시 불안과 공포로 눈을 감아 버렸다. 그들은 기자들이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들은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라면 일어나 앉고 고개를 들라면 들고 눈을 뜨고 카메라를 바라보라면 보고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고집을 피우며 저항할 힘도 없었고 무기력해진 상태에서 될 대로 되라며 자포자기해 버렸다. 그 상황에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진을 찍어 갔으니 신문에 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마라고 지구 전체가 떠들썩하겠지. 북조선에서는 물론 입을 다물겠지. 평양에 있는 다른 식구들이야 알 길이 없겠지만 앙골라에 무역부 수산 대표로 나가 계시는 아버지는 신문에 실린 내 사진을 보실 지도 모른다. 그렇게 귀엽게만 키우던 딸이 살인마라는 제목 아래 실린 사진을 보시면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제발 아버지가 그 신문을 못 보시길 빌었다.

가족들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다시 남조선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그곳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몰려들었다. 나는 남조선이라는 말만 듣고도 혹시 이 사람들이 나를 남조선에 데려 가려고 왔는가 하여 지레 겁을 먹었다.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치고 손끝까지 파르르 떨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 쏟아졌다. 그들이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해서 눈을 꼭 감고 오른쪽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가렸다. 옆에 있던 필리핀 간호사가 이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가 보라며 내 손을 치우려 했다. 나는 간호사의 손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더욱 격렬하게 울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순간순간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 말도 시키지 않았지만 마치 동물원에 구경 온 사람들처럼 나를 자세히 여기저기 뜯어보고 관찰한 다음 돌아갔다. 그들이 나간 뒤 나는 그들에게 혹시 무슨 꼬투리가 될 만한 부분이 없었는가 하고 그들이 뚫어지게 관찰하던 몸 부위를 슬며시 훑어보았다. 특별히 그럴만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남조선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핸더슨이 다시 돌아왔다.

“마유미가 자꾸 울기만 하니까 남조선 사람들이 그냥 돌아가잖아. 왜 그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핸더슨은 한층 더 의혹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조선 비행기가 사고났는데 왜 그 사람들이 나를 만나러 오는 거죠? 아무 관계가 없다는데도 자꾸 그 죄를 나에게 둘러씌우려 하니 어떻게 무섭지 않겠어요? 난 정말 억울해요.”

나는 둘러댔다.

핸더슨도 가고 나니 남조선 사람들 때문에 긴장했던 탓인지 피로가 엄습해 왔다. 기진맥진해 깜박 잠이 들었다. 평양을 떠난 이후에 단 하루도 편안한 잠을 자 본 적도, 맛지게 음식을 먹어 본 적도 없었다. 늘 긴장해서 불안에 떨고 촉각을 곤두세운 채 지내 왔다. 사건을 저지르고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초긴장 상태였기 때문에 내 몸은 최악이었다. 거기에 독약을 마셨고 혀를 깨물었으니 초죽음이 된 형편이었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또다시 사람들 말소리가 들려 깨어보니 이번에는 일본 사람들이었다. 오늘 하루만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다 만나는 셈이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절망의 나날, 열 두 번째-108 Tage der Verzweiflung, Zwölfte - 108 Days of Despair, Number Twelve-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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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열 두 번째

나는 갑작스럽게 달라진 특별 대접에 불안을 느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이러나 싶어 걱정이 앞섰다. 대접이 좋아도 걱정, 대접이 나빠도 걱정인 상황이었다.

찻잔을 놓기가 무섭게 핸더슨 부부가 아주 명랑한 표정을 지으며 “굿모닝 마유미”하고 들어섰다. 고개를 끄덕이려다 보니 그 뒤로 다른 사람들 몇 명이 줄을 이어 우르르 들어왔다. 나는 다시 불안과 공포로 눈을 감아 버렸다. 그들은 기자들이었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그들은 사진기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라면 일어나 앉고 고개를 들라면 들고 눈을 뜨고 카메라를 바라보라면 보고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ベッドから起きろと言われたら起き、座れと言われたら座り、頭を上げろと言われたら上げ、目を開けろと言われたら目を開け、カメラを見ろと言われたら見、私はただ言われるがままでした。 고집을 피우며 저항할 힘도 없었고 무기력해진 상태에서 될 대로 되라며 자포자기해 버렸다. 그 상황에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사진을 찍어 갔으니 신문에 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고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살인마라고 지구 전체가 떠들썩하겠지. 북조선에서는 물론 입을 다물겠지. 평양에 있는 다른 식구들이야 알 길이 없겠지만 앙골라에 무역부 수산 대표로 나가 계시는 아버지는 신문에 실린 내 사진을 보실 지도 모른다. 그렇게 귀엽게만 키우던 딸이 살인마라는 제목 아래 실린 사진을 보시면 아버지의 심정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제발 아버지가 그 신문을 못 보시길 빌었다.

가족들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또다시 남조선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그곳 경찰의 안내를 받으며 몰려들었다. 나는 남조선이라는 말만 듣고도 혹시 이 사람들이 나를 남조선에 데려 가려고 왔는가 하여 지레 겁을 먹었다.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치고 손끝까지 파르르 떨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자꾸 쏟아졌다. 그들이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해서 눈을 꼭 감고 오른쪽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얼굴을 가렸다. 옆에 있던 필리핀 간호사가 이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는가 보라며 내 손을 치우려 했다. 나는 간호사의 손을 완강히 거부하면서 더욱 격렬하게 울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고 순간순간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아무 말도 시키지 않았지만 마치 동물원에 구경 온 사람들처럼 나를 자세히 여기저기 뜯어보고 관찰한 다음 돌아갔다. 그들이 나간 뒤 나는 그들에게 혹시 무슨 꼬투리가 될 만한 부분이 없었는가 하고 그들이 뚫어지게 관찰하던 몸 부위를 슬며시 훑어보았다. 특별히 그럴만한 것은 없는 것 같았다. 남조선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핸더슨이 다시 돌아왔다.

“마유미가 자꾸 울기만 하니까 남조선 사람들이 그냥 돌아가잖아. 왜 그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핸더슨은 한층 더 의혹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남조선 비행기가 사고났는데 왜 그 사람들이 나를 만나러 오는 거죠? 아무 관계가 없다는데도 자꾸 그 죄를 나에게 둘러씌우려 하니 어떻게 무섭지 않겠어요? 난 정말 억울해요.”

나는 둘러댔다.

핸더슨도 가고 나니 남조선 사람들 때문에 긴장했던 탓인지 피로가 엄습해 왔다. 기진맥진해 깜박 잠이 들었다. 평양을 떠난 이후에 단 하루도 편안한 잠을 자 본 적도, 맛지게 음식을 먹어 본 적도 없었다. 늘 긴장해서 불안에 떨고 촉각을 곤두세운 채 지내 왔다. 사건을 저지르고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초긴장 상태였기 때문에 내 몸은 최악이었다. 거기에 독약을 마셨고 혀를 깨물었으니 초죽음이 된 형편이었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또다시 사람들 말소리가 들려 깨어보니 이번에는 일본 사람들이었다. 오늘 하루만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다 만나는 셈이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