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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절망의 나날, 열 번째-106

절망의 나날, 열 번째-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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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열 번째

경찰서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날짜 계산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공항에서 쓰러진 뒤 1주일 이상은 입안 상처 때문에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려과 담배 속에 든 독약을 깨물어 생긴 후유증과 자결하려고 혀를 물어 생긴 상처에 과로로 입안이 헐어 입 속은 쓰리고 따갑고 아팠다. 더구나 혀 때문에 퉁퉁 부어 오른 입 속은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간호사들과 의사표시는 도리질이나 손짓이나 표정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병원 생활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사무소는 병원과 달리 복도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리용하게 되어 있어서 화장실 가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우선 내 손목과 침대 다리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 여자 경찰의 손목에 채우고, 간호사와 여자 경찰이 옆에서 부축을 해야만 했다. 말이 부축이지 무릎 부상 때문에 그 두 사람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했다. 화장실 안에서까지 꼭 붙어 있어야 했으니 여간 낭패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리 급하게 여겨지던 용변이 잘 보아지지도 않았다. 서로 못할 짓이었다. 또 복도를 지날 때는 보초 근무를 하는 사복 경찰들의 따가운 시선을 온몸에 받아야만 했다.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끌려다니는 살인자의 모습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할 때는, 가련하고 비참한 처지가 된 내 자신이 서러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물론 동네 아주머니와 선생님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다시피 자랐고, 동무들로부터는 그렇게 싫지 않은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내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도 실감나지 않았고 이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까지도 원망스러웠다. 내가 만약 조국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부모님과 지도원을 붙들고 실컷 울면서 그동안 내가 받은 고통과 시련을 다 호소하리라는 어리석은 상상도 해보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런 생각을 했던 그 당시를 기억해 보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었는지 쓴웃음이 난다. 그땐 내가 얼마만큼 큰 죄를 지었는지, 어떤 벌을 받아야 마땅한지 확실하게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상상치 못할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젊은 여자이기 때문인지 경찰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은 몇 배 더 많았다. 경찰사무소에서도 그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다. 그곳에서는 남자 경찰 2명, 여자 경찰 1명, 간호사 1명이 밤낮으로 내 곁에 붙어서 감시를 했다. 침대에 묶여진 손목은 수갑에 스쳐 부어올랐고 심하게 쓰라렸다. 무릎은 움직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그렇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내 모든 감정을 숨기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서 저절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2시간마다 10여 분씩 간호사와 여자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걷는 련습을 했다. 그리고 매 시간 체온과 맥박을 재고 약과 우유죽을 반강제적으로 먹었다. 한번은 내 팔뚝에 고무줄을 묶고 혈관에 주사바늘을 꽂아 피를 뽑아 갔다. 저항할 수 없는 처지여서 그들이 하는 대로 피를 뽑아 가도록 할 수밖에 없었지만 피를 뽑을 때는 정말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것은 북조선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수사기관에서는 고문을 하다가 그래도 불지 않으면 혈관에 무슨 주사약을 넣어 자신도 모르게 사실을 슬슬 불게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들이 내 피를 뽑아 갈 때는 너무나 무서워 떨었다. 그들이 사실을 말하게 하는 주사약을 사용하기 위해 내 피검사를 하는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절망의 나날, 열 번째-106 Days of Despair, Tenth-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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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열 번째 Day of Despair, Tenth

경찰서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Life at the police station began.

날짜 계산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가 공항에서 쓰러진 뒤 1주일 이상은 입안 상처 때문에 말을 할 수도 없었고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다. Although the date calculations are not accurate, I have been unable to speak and eat food for more than a week after I passed out at the airport because of a wound in my mouth. 려과 담배 속에 든 독약을 깨물어 생긴 후유증과 자결하려고 혀를 물어 생긴 상처에 과로로 입안이 헐어 입 속은 쓰리고 따갑고 아팠다. Ryeo and the pain caused by biting the poison in cigarettes and the wound caused by biting the tongue in order to self-determinate, the mouth was sore and sore and sore inside. 더구나 혀 때문에 퉁퉁 부어 오른 입 속은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Moreover, his tongue was swollen because of his tongue, and he was uncomfortable. 간호사들과 의사표시는 도리질이나 손짓이나 표정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Nurses and doctors had no choice but to steal, gesture or look. 그래도 병원 생활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Still, I thought it was better than living in a hospital. 경찰사무소는 병원과 달리 복도에 있는 공동화장실을 리용하게 되어 있어서 화장실 가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Unlike the hospital, the police office was supposed to use a communal toilet in the hallway, so going to the bathroom wasn't an inconvenience. 警察署は病院と違って、廊下にある共同トイレを利用することになっていて、トイレに行くのがとても不便でした。 화장실을 가려면 우선 내 손목과 침대 다리에 채워진 수갑을 풀어 여자 경찰의 손목에 채우고, 간호사와 여자 경찰이 옆에서 부축을 해야만 했다. To go to the bathroom, I first had to release the handcuffs on my wrists and the legs of the bed, fill the wrists of the female police, and the nurses and the female police had to support them from the side. 말이 부축이지 무릎 부상 때문에 그 두 사람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했다. The horse was a support, and because of a knee injury, he almost hung on the two. 馬に支えられ、膝の怪我のせいでその二人にほとんどぶら下がるようになった。 화장실 안에서까지 꼭 붙어 있어야 했으니 여간 낭패가 아니었다. It wasn't a waste because I had to stick to the bathroom. トイレの中まで密着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なかなか厄介でした。 처음에는 그리 급하게 여겨지던 용변이 잘 보아지지도 않았다. At first, the stool considered so urgent was not well seen. 最初はそれほど急を要すると思われていた排便もよく見えなかった。 서로 못할 짓이었다. It was impossible for each other. お互いに悪いことをした。 또 복도를 지날 때는 보초 근무를 하는 사복 경찰들의 따가운 시선을 온몸에 받아야만 했다. Also, when passing through the corridor, it was necessary to receive the warm eyes of the plainclothes police who were on guard. また、廊下を通るときは、見張りをする私服警官の厳しい視線を全身で受け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왼쪽 다리를 질질 끌며 끌려다니는 살인자의 모습을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할 때는, 가련하고 비참한 처지가 된 내 자신이 서러워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When I was conscious of their gaze staring at the murderer dragging my left leg with my eyes full of curiosity, I felt sad and pitiful and wanted to sit there and cry. 左足を引きずりながら引きずり回される殺人者の姿を好奇心旺盛な目でじっと見つめている彼らの視線を意識すると、可哀想で惨めな境遇になった自分が情けなくなり、その場にうずくまって泣きたくなった。 어린 시절, 부모님을 물론 동네 아주머니와 선생님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다시피 자랐고, 동무들로부터는 그렇게 싫지 않은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내가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도 실감나지 않았고 이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When I was a child, I grew up as if I was only taking care of cuteness from my parents and my aunts and teachers, and how did I become like this when I received envy of jealousy and envy from my comrades? I didn't realize that I had done something terrible, and I thought it was unfair that I was terrified like this. 子供の頃、両親はもちろん、近所のおばさんや先生から可愛がられて育ち、同級生からは嫉妬と羨望のまなざしを一身に受けていた私が、どうしてこんな身分になったのか......。自分がそんな恐ろしいことをしてしまったということも実感が湧かず、こうして恐怖に怯えていることが悔しい気もした。 심지어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까지도 원망스러웠다. Even my parents who gave birth to me were resentful. 私を産んでくれた両親さえも恨めしかった。 내가 만약 조국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부모님과 지도원을 붙들고 실컷 울면서 그동안 내가 받은 고통과 시련을 다 호소하리라는 어리석은 상상도 해보았다. I had a foolish imagination that if I could go back to my homeland, I would cry over my parents and instructors and cry out and complain of all the pain and trials I have suffered. もし私がもし祖国に帰ることができれば、両親と指導員を抱きしめて思いっきり泣きながら、今まで受けた苦しみと試練を訴えるという愚かな想像もした。 몇 년이 지난 지금 그런 생각을 했던 그 당시를 기억해 보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었는지 쓴웃음이 난다. Remembering those days when I was thinking about that many years later, I was bitterly laughed at how ridiculous the imagination was. 数年経った今、そんなことを考えていた当時を思い出すと、なんてとんでもない想像だったんだろうと苦笑いしてしまいます。 그땐 내가 얼마만큼 큰 죄를 지었는지, 어떤 벌을 받아야 마땅한지 확실하게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At that time, I wasn't sure how much I committed a crime and what punishment I deserved. その時は、自分がどれほど大きな罪を犯したのか、どのような罰を受けるべきなのか、はっきりと理解していなかったのだ。 내가 상상치 못할 커다란 범죄를 저지른 죄인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젊은 여자이기 때문인지 경찰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관심은 몇 배 더 많았다. Whether I was a sinner or a young woman who committed a huge crime I could not imagine, the police and other people around me were many times more interested. 私が想像を絶する大きな犯罪を犯した罪人だからなのか、それとも若い女性だからなのか、警察をはじめとする周囲の人々の関心は何倍も高かった。 경찰사무소에서도 그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다. 警察署でもそのせいでもっと苦しかった。 그곳에서는 남자 경찰 2명, 여자 경찰 1명, 간호사 1명이 밤낮으로 내 곁에 붙어서 감시를 했다. 침대에 묶여진 손목은 수갑에 스쳐 부어올랐고 심하게 쓰라렸다. The wrist tied to the bed was swollen by handcuffs and bitter. ベッドに縛られた手首は、手錠に当たって腫れてひどく痛かった。 무릎은 움직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My knee was so painful that it was difficult to even move. 膝は動くことすら困難なほど痛かった。 그렇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But I bite my lips and didn't say I was sick. しかし、私は唇を噛み締め、痛いと言わなかった。 내 모든 감정을 숨기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서 저절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다. Hiding all my emotions was soaking in my body that I did it on my own. 自分の全ての感情を隠すことが体に染み付いていて、自然とそういう行動をとるようになった。 의사의 지시에 따라 2시간마다 10여 분씩 간호사와 여자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걷는 련습을 했다. 医師の指示に従い、2時間ごとに10分程度、看護師や婦警の介助を受けながら、足を引きずりながら歩く練習をした。 그리고 매 시간 체온과 맥박을 재고 약과 우유죽을 반강제적으로 먹었다. The body temperature and pulse were measured and the medicine and milk porridge were forcibly consumed every hour. 한번은 내 팔뚝에 고무줄을 묶고 혈관에 주사바늘을 꽂아 피를 뽑아 갔다. Once, I tied a rubber band to my forearm and put a needle in a blood vessel to draw blood. 一度、私の前腕に輪ゴムを結び、血管に注射針を刺して血を抜いたことがあります。 저항할 수 없는 처지여서 그들이 하는 대로 피를 뽑아 가도록 할 수밖에 없었지만 피를 뽑을 때는 정말 그 자리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It was an irresistible situation, and I had no choice but to have the blood drawn as they did, but when I drew the blood, I really wanted to die on the spot. 抵抗できない状況だったので、彼らの言うとおりに血を抜かせるしかなかったが、血を抜くときは本当にその場で死にたくなった。 그것은 북조선에서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It was because of the story I heard from North Korea. それは北朝鮮で聞いた話が原因だった。 수사기관에서는 고문을 하다가 그래도 불지 않으면 혈관에 무슨 주사약을 넣어 자신도 모르게 사실을 슬슬 불게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The investigation agency said that if you still tortured while tortured, you would put some injections into your blood vessels and make the facts blow without your knowledge. 捜査機関では、拷問をしても吹かない場合は、血管に何らかの注射薬を入れ、知らないうちに事実を少しずつ吹かせるという話だった。 나는 그들이 내 피를 뽑아 갈 때는 너무나 무서워 떨었다. 그들이 사실을 말하게 하는 주사약을 사용하기 위해 내 피검사를 하는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Because I believed they were doing my blood test to use an injection that told them the truth. 彼らが事実を話す注射薬を使うために私の血液検査をするのだと信じていたからです。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Narration: Confession of Kim Hyun-hee of the Daenam Institute of Technology, Park Soo-hyun, was the po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