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 use cookies to help make LingQ better. By visiting the site, you agree to our cookie policy.


image

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절망의 나날, 열 아홉 번째-115

절망의 나날, 열 아홉 번째-115

[...]

절망의 나날, 열 아홉 번째

당시 일본 호텔 여직원의 끈질긴 질문에 신이찌는 “내일 알리아 항공 편으로 떠난다” 고만 말해주고 전화를 놓았다. 바로 그 여자가 지금 나를 조사하기 위해 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녀가 호텔에서 우리 주변을 맴돌았던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것을 예사롭게 넘길 일도 아니었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작성해 온 질문서를 읽어 내려가는 형식으로 조사를 해나갔다. 그리고 내가 답변하는 내용을 핸더슨에게 통역해 주었다. 핸더슨의 보충 심문은 다시 그녀의 통역을 통해 나에게 전달되었다. 보충 질문은 신이찌와 만난 경위, 일본에서의 생활, 신이찌의 정체, 구라파 여행 일정과 활동 내용 등 아주 상세하고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마리아와 홍콩 여자에게 말했던 것보다 좀 더 상세하게 꾸며가며 대답했다. 완벽한 각본이 아니어서인지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씩 내용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 나는 신경을 곤두세워 가며 조심했지만 깊이깊이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앞뒤 말이 맞지 않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러면 오꾸보는 또 그것을 캐고 또 캐고, 묻고 또 물었다.

마리아와 홍콩 여자에게 이야기한 것과 약간씩 달라진 것은 학교 문제에 있어 너무 가난해서 철도 초급학교만 다녔다는 것과 광동에서 1년 반 동안 막로동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카오에서 술집 종업원으로 일했으며 그곳이 도박장을 겸한 술집으로 거기에서의 내 이름이 ‘릴리'였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신이찌와의 일본 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물을 때는 미리 정해진 각본도 없이 즉흥적으로 대답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그의 집은 벽이 밝은 회색이고 한 가지 색으로 된 타일 지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집은 거실, 식당, 침실, 부엌이 있고 모두 흰색 벽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의 집에서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다른 집들의 지붕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의 외출 한 번도 못했고 집에 갇혀 매일 TV만 시청했기 때문에 그 집의 정확한 위치나 그 주변 정황은 전혀 모릅니다.”

일본에 가 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그 부분이 어쩌면 함정이 되리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실지로 가보지 않고도 훤히 아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몇 월 며칠에 무슨 비행기로 일본을 떠났지요?”

일본 여자가 물었다.

“우리는 지난 11월 14일 오후 4시에 도꾜 공항을 떠났습니다. 비행기 편은 알 수 없고 승무원이 동양인인 점보 비행기를 탔습니다.”

갈수록 꾸며대는 것도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려행 일정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는 큰 애로사항이 없었다. 단지 투숙한 호텔 이름 등은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슬쩍 넘어갔다.

“바그다드에서 남조선 려객기 KAL(칼기)에 탑승할 때의 이야기를 좀 들려 주세요.”

그것은 핸더슨이 물었다.

“바그다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 짐은 물론 온몸도 샅샅이 검색을 당했습니다. 바그다드에서 칼기에 탑승하여 비행기 앞 쪽 자리에 앉았으며 옆 좌석에는 유럽 여자가 앉아 있었고 그 여자가 화장실에 갈 때 나도 갔고 그 후에 신이찌도 갔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핸더슨과 나는 일종의 두뇌 싸움을 하고 있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즉흥적으로 꾸며대는 거짓말이 얼마만큼 신뢰감을 줄지 나 자신도 의문이었다. 확신이 없는 거짓말을 꼬치꼬치 따질 때는 정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절망의 나날, 열 아홉 번째-115 Days of Despair, Nineteen - 115

[...]

절망의 나날, 열 아홉 번째

당시 일본 호텔 여직원의 끈질긴 질문에 신이찌는 “내일 알리아 항공 편으로 떠난다” 고만 말해주고 전화를 놓았다. 바로 그 여자가 지금 나를 조사하기 위해 와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녀가 호텔에서 우리 주변을 맴돌았던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었으며 그것을 예사롭게 넘길 일도 아니었음을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작성해 온 질문서를 읽어 내려가는 형식으로 조사를 해나갔다. 그리고 내가 답변하는 내용을 핸더슨에게 통역해 주었다. 핸더슨의 보충 심문은 다시 그녀의 통역을 통해 나에게 전달되었다. 보충 질문은 신이찌와 만난 경위, 일본에서의 생활, 신이찌의 정체, 구라파 여행 일정과 활동 내용 등 아주 상세하고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묻는 내용이었다.

나는 마리아와 홍콩 여자에게 말했던 것보다 좀 더 상세하게 꾸며가며 대답했다. 완벽한 각본이 아니어서인지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씩 내용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 나는 신경을 곤두세워 가며 조심했지만 깊이깊이 파고 들어가면 갈수록 앞뒤 말이 맞지 않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그러면 오꾸보는 또 그것을 캐고 또 캐고, 묻고 또 물었다.

마리아와 홍콩 여자에게 이야기한 것과 약간씩 달라진 것은 학교 문제에 있어 너무 가난해서 철도 초급학교만 다녔다는 것과 광동에서 1년 반 동안 막로동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카오에서 술집 종업원으로 일했으며 그곳이 도박장을 겸한 술집으로 거기에서의 내 이름이 ‘릴리'였다는 것 정도였다. 그러나 신이찌와의 일본 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물을 때는 미리 정해진 각본도 없이 즉흥적으로 대답하느라고 진땀을 뺐다.

“그의 집은 벽이 밝은 회색이고 한 가지 색으로 된 타일 지붕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집은 거실, 식당, 침실, 부엌이 있고 모두 흰색 벽이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그의 집에서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다른 집들의 지붕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의 외출 한 번도 못했고 집에 갇혀 매일 TV만 시청했기 때문에 그 집의 정확한 위치나 그 주변 정황은 전혀 모릅니다.”

일본에 가 본 일이 없는 나로서는 그 부분이 어쩌면 함정이 되리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실지로 가보지 않고도 훤히 아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몇 월 며칠에 무슨 비행기로 일본을 떠났지요?”

일본 여자가 물었다.

“우리는 지난 11월 14일 오후 4시에 도꾜 공항을 떠났습니다. 비행기 편은 알 수 없고 승무원이 동양인인 점보 비행기를 탔습니다.”

갈수록 꾸며대는 것도 한계가 있음을 느꼈다. 려행 일정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는 큰 애로사항이 없었다. 단지 투숙한 호텔 이름 등은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슬쩍 넘어갔다.

“바그다드에서 남조선 려객기 KAL(칼기)에 탑승할 때의 이야기를 좀 들려 주세요.”

그것은 핸더슨이 물었다.

“바그다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 짐은 물론 온몸도 샅샅이 검색을 당했습니다. 바그다드에서 칼기에 탑승하여 비행기 앞 쪽 자리에 앉았으며 옆 좌석에는 유럽 여자가 앉아 있었고 그 여자가 화장실에 갈 때 나도 갔고 그 후에 신이찌도 갔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핸더슨과 나는 일종의 두뇌 싸움을 하고 있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즉흥적으로 꾸며대는 거짓말이 얼마만큼 신뢰감을 줄지 나 자신도 의문이었다. 확신이 없는 거짓말을 꼬치꼬치 따질 때는 정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