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 use cookies to help make LingQ better. By visiting the site, you agree to our cookie policy.


image

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절망의 나날, 스무 번째-116

절망의 나날, 스무 번째-116

[...]

절망의 나날, 스무 번째

핸더슨과 나는 일종의 두뇌 싸움을 하고 있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즉흥적으로 꾸며대는 거짓말이 얼마만큼 신뢰감을 줄지 나 자신도 의문이었다. 확신이 없는 거짓말을 꼬치꼬치 따질 때는 정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특히 내가 고아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 그들은 털끝만큼도 믿지 않는 듯 ‘가족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몇 번씩이나 해가며 나를 울리곤 했다. 가족이라곤 아무도 없다고 우기면서도 가족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눈물을 보이자 그들의 의심은 점점 짙어져 갔다. 겨우겨우 여러 거짓말을 둘러대어 한 고비를 넘기자 마지막에는 “그러면 왜 자살하려 했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는 금방 대답할 적절한 거짓말이 생각나지 않아 당황하다가 멍청한 철부지 계집애처럼 ‘신이찌가 시켜서 그랬노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들이 내 말을 믿었으리라고는 나 자신도 믿지 않았다. 뒤이어 그녀는 일본 여자답게 신이찌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 캐기 시작했다.

“려행하면서 줄곧 호텔방을 함께 사용했는데 남녀가 한 방을 쓰면서도 아무 일이 없었나요?”

그녀는 끝내 잠자리 문제까지 들먹이며 신이찌와 나를 이상한 관계로 몰고 갔다. 나는 심한 모욕감마저 느꼈다.

남녀 관계를 엄격하게 통제하던 북조선에서 자랐고 이성에 대하여 눈이 뜨기 전인 18살의 철없는 어린 나이에 갑자기 공작원으로 소환되어 일반 사회와는 격리되었던 나. 산골 초대소에 밀봉 수용되어 바깥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아온 나로서는 그 말을 듣는 것조차도 부끄러웠고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대꾸하기조차 싫은 기분이었지만 내 처지가 그럴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일을 말로 설명해서 그녀를 납득시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 는 말만 되풀이 할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그 말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스러운 질문을 계속했다. 그런 그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호텔에 투숙하면 침대를 1인용으로 쓰나요, 2인용으로 쓰나요?” “마유미가 호텔방에서 옷을 갈아 입을 때는 신이찌가 밖에 나가 주는가요?” “마유미가 목욕할 때 신이찌는 어디에 있지요?” “신이찌의 옷 벗은 모습을 보았나요?” “신이찌의 배에 수술자국이 있는 걸 본 적은 없어요?” “신이찌 외에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경험은 있겠지요?”

나는 대답하기가 부끄러워 그저 간단하게 답변하거나 우물쭈물 망설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우리의 관계를 이상한 남녀 관계로 기정사실화하여 더 짙은 질문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나중에는 내가 화를 내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완강히 부인하자 그런 관계는 응당 있었어야 정상이 아니겠느냐며 오히려 반문하기까지 했다.

“손은 잡아 보았겠지?” “입맞춤 정도는 했을텐데...몸을 애무하지는 않았고?”

그녀는 나를 약 올리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수치스럽고 로골적인 질문을 해서 내 분노를 샀다. 나는 그녀의 끈질긴 질문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늙은이가 그런 짓을 할 수나 있겠어요?” 반항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재빨리,

“그럼 시도는 해봤는데 능력이 없어 못했다는 이야기야?”하며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졌다.

결국 옆에 있던 핸더슨이 이제 됐다고 제지한 후에야 그 질문은 끝을 맺었다. 나는 그 일본 여자가 너무 밉살스럽고 괘씸해서 화를 삭일 수가 없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절망의 나날, 스무 번째-116 Tage der Verzweiflung, Zwanzigste - 116 Days of Despair, Twentieth - 116

[...]

절망의 나날, 스무 번째

핸더슨과 나는 일종의 두뇌 싸움을 하고 있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ハンダーソンと私は、ある種の頭脳戦をしているような錯覚に陥った。 즉흥적으로 꾸며대는 거짓말이 얼마만큼 신뢰감을 줄지 나 자신도 의문이었다. 확신이 없는 거짓말을 꼬치꼬치 따질 때는 정말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특히 내가 고아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 그들은 털끝만큼도 믿지 않는 듯 ‘가족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똑같은 질문을 몇 번씩이나 해가며 나를 울리곤 했다. 가족이라곤 아무도 없다고 우기면서도 가족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눈물을 보이자 그들의 의심은 점점 짙어져 갔다. 겨우겨우 여러 거짓말을 둘러대어 한 고비를 넘기자 마지막에는 “그러면 왜 자살하려 했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는 금방 대답할 적절한 거짓말이 생각나지 않아 당황하다가 멍청한 철부지 계집애처럼 ‘신이찌가 시켜서 그랬노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들이 내 말을 믿었으리라고는 나 자신도 믿지 않았다. 뒤이어 그녀는 일본 여자답게 신이찌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 캐기 시작했다.

“려행하면서 줄곧 호텔방을 함께 사용했는데 남녀가 한 방을 쓰면서도 아무 일이 없었나요?”

그녀는 끝내 잠자리 문제까지 들먹이며 신이찌와 나를 이상한 관계로 몰고 갔다. 나는 심한 모욕감마저 느꼈다.

남녀 관계를 엄격하게 통제하던 북조선에서 자랐고 이성에 대하여 눈이 뜨기 전인 18살의 철없는 어린 나이에 갑자기 공작원으로 소환되어 일반 사회와는 격리되었던 나. 산골 초대소에 밀봉 수용되어 바깥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아온 나로서는 그 말을 듣는 것조차도 부끄러웠고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 기가 막혀서 대꾸하기조차 싫은 기분이었지만 내 처지가 그럴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런 일을 말로 설명해서 그녀를 납득시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 일도 없었다' 는 말만 되풀이 할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그 말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스러운 질문을 계속했다. 그런 그녀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호텔에 투숙하면 침대를 1인용으로 쓰나요, 2인용으로 쓰나요?”  “마유미가 호텔방에서 옷을 갈아 입을 때는 신이찌가 밖에 나가 주는가요?”  “마유미가 목욕할 때 신이찌는 어디에 있지요?”  “신이찌의 옷 벗은 모습을 보았나요?”  “신이찌의 배에 수술자국이 있는 걸 본 적은 없어요?”  “신이찌 외에 남자와 성관계를 가진 경험은 있겠지요?”

나는 대답하기가 부끄러워 그저 간단하게 답변하거나 우물쭈물 망설였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우리의 관계를 이상한 남녀 관계로 기정사실화하여 더 짙은 질문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나중에는 내가 화를 내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완강히 부인하자 그런 관계는 응당 있었어야 정상이 아니겠느냐며 오히려 반문하기까지 했다.

“손은 잡아 보았겠지?”  “입맞춤 정도는 했을텐데...몸을 애무하지는 않았고?”

그녀는 나를 약 올리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수치스럽고 로골적인 질문을 해서 내 분노를 샀다. 나는 그녀의 끈질긴 질문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늙은이가 그런 짓을 할 수나 있겠어요?” 반항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재빨리,

“그럼 시도는 해봤는데 능력이 없어 못했다는 이야기야?”하며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졌다.

결국 옆에 있던 핸더슨이 이제 됐다고 제지한 후에야 그 질문은 끝을 맺었다. 나는 그 일본 여자가 너무 밉살스럽고 괘씸해서 화를 삭일 수가 없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