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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절망의 나날, 일곱 번째-103

절망의 나날, 일곱 번째-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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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일곱 번째

나는 내 철저한 사상성은 믿지만 가혹행위가 육체에 가해졌을 때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어떻게 해서든 남조선으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결심을 굳혔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는 모든 것이 바레인에서 끝이 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죽더라도 바레인에서 죽고 싶었다. ‘내가 끝까지 남조선 비행기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버티면 자기들도 증거가 없는 한 어쩌겠는가. ' 그 생각만이 유일한 나의 위안이자 배짱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조선인이 아니라는 것만은 죽기살기로 고수해야 한다. 지금은 사건 발생 직후라 초긴장 상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곳에서 흐지부지 끝날지도 모른다고 락관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자기네들 인민이 죽은 것도 아니고 남조선 비행기와 남조선 인민들이 죽었는데 제3자들이 뭐 그리 있는 힘을 다해 수사를 하겠는가' 하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사건에 관련이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면 사고 비행기가 남조선 비행기이므로 나를 가차 없이 남조선으로 보낼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조선으로 가지는 않을 작정을 했다. 조선인도 될 수 없고 일본인도 될 수 없었으므로 이제부터는 중국인으로 행세를 할 수밖에 없다고 비상대책을 강구하였다. 다행히 나는 1985년도에 룡성초대소에서 6개월간 중국 교포 지도원으로부터 중국어를 집중적으로 교육받았고, 1년6개월 동안 중국 광주와 마카오에 파견되어 해외 현지 실습을 했기 때문에 중국어는 자신이 있었다. 운이 좋으면 우리 공화국의 혈맹국인 중국으로 나를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며, 그렇게 되면 조국에서 손 쓰기가 쉬울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런 계산이 서자 일이 쉽게 풀려 나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감이 솟았다. ‘그렇다. 이제부터 나는 중국인이다. ' 나는 내가 행세해야 할 내 지금 위치와도 부합되는 가짜 중국 사람을 선정해야 하고 거기에 맞는 가짜 경력을 완벽하게 짜 놓아야만 했다. 나의 머릿속은 중국인 실정에 따른 구상을 위해 복잡하게 바삐 돌아갔다. 이번 공작에 동원되기 직전 나는 마카오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동료 공작원 김숙희와 함께 중국 광주에 가 있었다. 대외 정보조사부에서 파견되어 나가 있는 박창해 지도원의 아빠트에서 10여 일간 대기하면서 마카오의 형편을 살폈다. 당시 마카오에서는 밀입국하여 오랜 기간 체류해 온 중국인들에게 일괄적으로 영주권을 주려 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그 정보를 알고 김숙희와 나는 마카오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두 번째로 광주에 갔던 것이다. 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중국인 처년 우잉으로, 김숙희는 빠이추이후이로 위장하자는 약속이 되어 있었다. 영주권을 주겠다는 발표가 있기를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평양 기지로부터 나에게 긴급 복귀하라는 전문이 날아들었다. 서둘러 평양에 돌아와 이번 남조선 려객기(KAL기) 폭파공작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그런 경력이 있어서 ‘우잉'이나 ‘빠이추이후이'로 행세하는 것이 어떨까 구상해 보았다. 그러나 만일 내가 ‘우잉'이라고 주장하고 그녀의 경력을 그대로 쓸 경우, 중국에 조회를 의뢰할 것이고 중국에서는 인적 조사 끝에 우잉을 찾아내 ‘우잉은 현재 중국에 살고 있다'하면 만사가 끝장이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 나는 고심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내고 나는 무릎을 쳤다. ‘그렇지. 이름과 경력을 따로따로 사용하자. ' 즉 이름은 김숙희가 사용하려든 빠이추이후이로 하고 경력은 우잉의 것으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제아무리 철저하게 추적해도 찾아낼 수가 없을 것이 틀림없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절망의 나날, 일곱 번째-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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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날, 일곱 번째

나는 내 철저한 사상성은 믿지만 가혹행위가 육체에 가해졌을 때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어떻게 해서든 남조선으로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결심을 굳혔다. 이왕 이렇게 된 마당에는 모든 것이 바레인에서 끝이 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せっかくなので、全てがバーレーンで終わることを願うばかりだった。 죽더라도 바레인에서 죽고 싶었다. 死んでもバーレーンで死にたかった。 ‘내가 끝까지 남조선 비행기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버티면 자기들도 증거가 없는 한 어쩌겠는가. 私が最後まで南朝鮮の飛行機事件には関係ないと言い張れば、彼らも証拠がない限りどうしようもない。 '  그 생각만이 유일한 나의 위안이자 배짱이었다. その思いだけが私の唯一の拠り所であり勇気だった。 어떤 일이 있어도 조선인이 아니라는 것만은 죽기살기로 고수해야 한다. 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朝鮮人でないことだけは死守しなければならない。 지금은 사건 발생 직후라 초긴장 상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곳에서 흐지부지 끝날지도 모른다고 락관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今は事件発生直後で超緊張状態だが、時間が経てばここで一段落するかもしれないと楽観的に考えてみた。 ‘자기네들 인민이 죽은 것도 아니고 남조선 비행기와 남조선 인민들이 죽었는데 제3자들이 뭐 그리 있는 힘을 다해 수사를 하겠는가' 하는 심정이었다. 自分たちの人民が死んだわけでもなく、南朝鮮の飛行機と南朝鮮の人民が死んだのに、第三者がそんなに力を尽くして捜査するわけがない」という心境だった。 그러나 사건에 관련이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리면 사고 비행기가 남조선 비행기이므로 나를 가차 없이 남조선으로 보낼 것이다. しかし、事件に関係している気配を察知すると、事故機が南朝鮮の飛行機なので、私を容赦なく南朝鮮に送るだろう。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조선으로 가지는 않을 작정을 했다. どうにかして南朝鮮には行かないつもりだった。 조선인도 될 수 없고 일본인도 될 수 없었으므로 이제부터는 중국인으로 행세를 할 수밖에 없다고 비상대책을 강구하였다. 朝鮮人にもなれず、日本人にもなれないので、これからは中国人のふりをするしかないと非常対策を講じた。 다행히 나는 1985년도에 룡성초대소에서 6개월간 중국 교포 지도원으로부터 중국어를 집중적으로 교육받았고, 1년6개월 동안 중국 광주와 마카오에 파견되어 해외 현지 실습을 했기 때문에 중국어는 자신이 있었다. 운이 좋으면 우리 공화국의 혈맹국인 중국으로 나를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며, 그렇게 되면 조국에서 손 쓰기가 쉬울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運が良ければ、我が共和国の血盟国である中国に私を送るかもしれないし、そうなれば祖国で手を出しやすいかもしれないことではないか。 그런 계산이 서자 일이 쉽게 풀려 나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감이 솟았다. そんな計算が立つと、物事が簡単に解決するかもしれないという希望が湧いてきた。 ‘그렇다. そうだ。 이제부터 나는 중국인이다. '  나는 내가 행세해야 할 내 지금 위치와도 부합되는 가짜 중국 사람을 선정해야 하고 거기에 맞는 가짜 경력을 완벽하게 짜 놓아야만 했다. 私は自分が偽装すべき私の今の位置にも合致する偽の中国人を選定しなければならず、それに合う偽の経歴を完璧に組み立て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나의 머릿속은 중국인 실정에 따른 구상을 위해 복잡하게 바삐 돌아갔다. 私の頭の中は中国の実情に応じた構想のために複雑に忙しくなった。 이번 공작에 동원되기 직전 나는 마카오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동료 공작원 김숙희와 함께 중국 광주에 가 있었다. 今回の工作に動員される直前、私はマカオの永住権を取得するために、同僚の工作員であるキム・ソクヒと共に中国の広州に行っていた。 대외 정보조사부에서 파견되어 나가 있는 박창해 지도원의 아빠트에서 10여 일간 대기하면서 마카오의 형편을 살폈다. 対外情報調査部から派遣されているパク・チャンヘ指導員のパパットで約10日間待機し、マカオの状況を確認した。 당시 마카오에서는 밀입국하여 오랜 기간 체류해 온 중국인들에게 일괄적으로 영주권을 주려 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当時、マカオでは密入国して長期間滞在している中国人に一括して永住権を与えようとしているという情報があった。 그 정보를 알고 김숙희와 나는 마카오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두 번째로 광주에 갔던 것이다. 나는 실제로 존재하는 중국인 처년 우잉으로, 김숙희는 빠이추이후이로 위장하자는 약속이 되어 있었다. 私は実際に存在する中国人の嫁ウイングで、キム・スックヒはパイチュイフイに偽装する約束になっていた。 영주권을 주겠다는 발표가 있기를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평양 기지로부터 나에게 긴급 복귀하라는 전문이 날아들었다. 永住権を与えるという発表があるのを待っていたところ、突然平壌基地から私に緊急帰国するようにとの通達が飛んできた。 서둘러 평양에 돌아와 이번 남조선 려객기(KAL기) 폭파공작 임무를 맡았던 것이다. 그런 경력이 있어서 ‘우잉’이나 ‘빠이추이후이’로 행세하는 것이 어떨까 구상해 보았다. そんな経歴があるので、「ウーイング」や「パイチュイホイ」になりすますのはどうだろう、と考えてみた。 그러나 만일 내가 ‘우잉’이라고 주장하고 그녀의 경력을 그대로 쓸 경우, 중국에 조회를 의뢰할 것이고 중국에서는 인적 조사 끝에 우잉을 찾아내 ‘우잉은 현재 중국에 살고 있다’하면 만사가 끝장이었다. しかし、もし私が「ウイング」と主張し、彼女の経歴をそのまま書いたら、中国に照会を依頼され、中国では人的調査の結果、ウイングが見つかり、「ウイングは現在中国に住んでいる」となれば、万事休すだった。 ‘좋은 방법이 없을까? '  나는 고심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내고 나는 무릎을 쳤다. そんな中、ある方法を見つけ、私は膝を打った。 ‘그렇지. 이름과 경력을 따로따로 사용하자. 名前と経歴を分けて使いましょう。 '  즉 이름은 김숙희가 사용하려든 빠이추이후이로 하고 경력은 우잉의 것으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つまり、名前はキム・スックヒが使おうとしていたパイチュイヒイで、経歴はウイングのものを使おうということだった。 그러면 제아무리 철저하게 추적해도 찾아낼 수가 없을 것이 틀림없었다. そうなるといくら徹底的に追跡しても見つからないに違いない。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