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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공작원 초대소, 열 아홉 번째-64

공작원 초대소, 열 아홉 번째-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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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열 아홉 번째

북조선에서는 누구나 당원이 되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여기고 있는데 은혜도 북조선에 오래 살다보니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입당하고 돌아온 날 은혜는 지도원에게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나도 당원이 되고 싶어요. 나는 언제 입당하나요?” 하고 졸라댔다.

그러면 지도원은,

“북조선에 와서 북조선 사람이 됐는데 당에 충성하고 열심히 일하면 입당할 수 있지.” 라고 사기를 돋우어 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은혜가 많이 가엾게 생각 되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무시당하면서 그 나라 사람처럼 살아가기를 원하는 그녀가 인간적으로 측은했다.

은혜는 일본에 두고 온 자기 아이가 그리워서 그런지 어린 아이를 좋아했다. 한번은 초대소 저 밑에 있는 마을에 갔다가 서너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애가 길가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은혜는 그 애를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애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새까맣고 영양부족으로 눈망울만 커 보였다. 반쯔도 안 입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어른 속옷 하나만 걸치고 비쩍 마른 몸에 배만 볼록 튀어나온 것이 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은혜가 나를 붙잡고 ‘저 애 좀 보라'며 손짓할 때는 흉을 보려고 그러는 줄 알고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은혜는 돌아서면서 저런 귀여운 애를 하나 데려다 키우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때 내가 너무나 은혜에게 담을 쌓고 있다고 생각했다.

은혜의 어깨에는 항상 외로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얼굴에도 늘 수심이 차 있었다. 저녁 산책길에 소나무 사이로 농저저수지가 보이는데 저녁노을이 질 때는 저수지 물이 붉게 물들어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은혜는 저녁노을을 볼 때마다 땅이 꺼지는 한숨을 내쉰다.

언제부터인지 돌아오는 길목에 새로 무덤 하나가 생겼다. 초대소 관리원 아바이의 묘라고 했다. 풀도 없는 벌거숭이 묘 앞을 지날 때마다 은혜는 그곳에 머물러 몇 분씩 묵념을 한 뒤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묘 앞에 꽂아 놓곤 했다. 생사를 모르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은혜와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붙어다니며 친자매처럼 지냈지만 어떤 때는 그녀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도 있었다. 북조선에서는 초대소의 가구나 집기는 일반 사회에서 상상도 못하는 수준의 고급품이었다. 그런데 은혜는 초대소 가구나 집기를 가리키면서 자기 집 것보다 못하다고 흉을 잡았다.

그리고 신년 명절날에 나오는 10개 품목, 즉 달력, 술3병, 사탕 한 통, 엿, 소고기 통조림, 꽁치 통조림, 복숭아 통조림, 담배 10갑을 선물로 받았는데 나에게는 사탕과자를 주고 나머지는 초대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기는 질이 나빠서 그것들을 먹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북조선에서는 최고의 선물로 여기는 것인데 그렇게 말을 하니 자존심이 말할 수 없이 상했다. 일본 경제가 조금 앞섰다고 허세를 부리를 것 같아 더욱 기분이 나빴다.

내가 남조선에 와서 생활해 보고서야 은혜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때는 이미 늦었지만 그것이 티끌만한 허세도 아닌 사실 그대로였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은혜가 허리를 쓸 수 없게 되어 보름 동안 공부를 못한 적이 있었다. 그 전에 일본에서 학교 다닐 때 정구부를 하다가 다친 허리가 도져서 그런다고 했다. 은혜가 앉고 서기도 힘들어해서 초대소 식모와 접대원 처녀가 뜨거운 물로 찜질을 해 주었으나 차도가 없어 약 일주일간 9.15 병원에 가서 입원 치료를 받고서야 점차 나았다. 보름정도 학습을 못하자 그녀는 몹시 미안해 했다.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공작원 초대소, 열 아홉 번째-64 Einladung an den Herzog, Neunzehntel-64 Invitation to the Duke, Nineteenth-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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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열 아홉 번째 Agent Invitation Office, ninth

북조선에서는 누구나 당원이 되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여기고 있는데 은혜도 북조선에 오래 살다보니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Everyone in North Korea regards being a member of the party as the greatest honor, but grace seems to have come to light after living in North Korea for a long time. 北朝鮮では誰もが党員になることを最大の栄誉とみなし、恵も北朝鮮に長く住んでいるうちにこのような事実を知ったようです。 내가 입당하고 돌아온 날 은혜는 지도원에게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On the day I joined and returned, Grace was like an innocent child to the instructor, 私が入党して帰ってきた日、恵は指導員に天真爛漫な子供のように、

“나도 당원이 되고 싶어요. “I want to be a member too. 나는 언제 입당하나요?” 하고 졸라댔다. When do I join? ” She said.

그러면 지도원은, Then the instructor,

“북조선에 와서 북조선 사람이 됐는데 당에 충성하고 열심히 일하면 입당할 수 있지.” 라고 사기를 돋우어 주었다. “I came to North Korea and became a North Korean person, but if I am loyal to the party and work hard, I can get a job.” And encouraged fraud. 「北朝鮮に来て北朝鮮人になったけど、党に忠誠を尽くし、一生懸命働けば入党できるよ」と。と士気を高めてくれた。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은혜가 많이 가엾게 생각 되었다. As I listened to it, I felt a lot of grace. 私はその言葉を聞きながら、恵がとても可哀想に思えた。 남의 나라에 와서 무시당하면서 그 나라 사람처럼 살아가기를 원하는 그녀가 인간적으로 측은했다. When she came to someone else's country and was ignored, she wanted to live like a person in that country. 他人の国にやってきて無視されながら、その国の人らしく暮らしたいと願う彼女に人間的に同情した。

은혜는 일본에 두고 온 자기 아이가 그리워서 그런지 어린 아이를 좋아했다. 한번은 초대소 저 밑에 있는 마을에 갔다가 서너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애가 길가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Once, I went to a village down there, and I saw a girl who was about three or four years old playing on the side of the road. ある時、招待所のすぐ下の村に行ったら、3~4歳くらいの女の子が道端で遊んでいるのを見かけた。 은혜는 그 애를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Grace stared at the child. 恵はその子をじっと見つめていた。 애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새까맣고 영양부족으로 눈망울만 커 보였다. The child's face was tanned in the sun and looked dark and lacking in nutrition. 子供の顔は日焼けして真っ黒で、栄養不足で目玉が大きく見えるだけでした。 반쯔도 안 입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어른 속옷 하나만 걸치고 비쩍 마른 몸에 배만 볼록 튀어나온 것이 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It was so embarrassing for me to see that I wore only one adult underwear that didn't even wear a pant's and went down to my knees. パンツも履かず、膝まで下がる大人用の下着1枚を身にまとい、痩せた体にお腹だけぽっこり出ている姿は、私が見ても恥ずかしいくらいでした。

은혜가 나를 붙잡고 ‘저 애 좀 보라'며 손짓할 때는 흉을 보려고 그러는 줄 알고 자존심이 상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When Grace grasped me and gestured, 'Look at her,' she knew she was trying to look bad, and her pride burned. 恵が私を捕まえて「あの子を見て」と手招きするときは、醜態を見ようとするのかと思い、プライドが傷つき、顔が火照った。 그러나 은혜는 돌아서면서 저런 귀여운 애를 하나 데려다 키우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중얼거렸다. But Grace turned around and muttered how good it would be to take a cute kid and raise it. しかし、恵は振り返りながら、こんな可愛い子が一人いればいいのにとつぶやいた。 나는 그때 내가 너무나 은혜에게 담을 쌓고 있다고 생각했다. 私はその時、自分があまりにも恵みに壁を築いていると思った。

은혜의 어깨에는 항상 외로움이 드리워져 있었다. Loneliness was always on the shoulders of grace. 恵の肩にはいつも孤独がかかっていた。 얼굴에도 늘 수심이 차 있었다. My face was always full of water. 顔にもいつも水深があった。 저녁 산책길에 소나무 사이로 농저저수지가 보이는데 저녁노을이 질 때는 저수지 물이 붉게 물들어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On the promenade in the evening, the reservoir is seen through the pine trees. When the evening glow, the reservoir water turned red and stopped our steps. 夕方の散歩道で松の木の間から農業用貯水池が見えるのですが、夕日が沈むと貯水池の水が赤く染まり、私たちの歩みを止めさせました。 은혜는 저녁노을을 볼 때마다 땅이 꺼지는 한숨을 내쉰다. Grace sighs when the evening glows and the ground goes out. 恵は夕焼けを見るたびに、地面が消えるようなため息をつく。

언제부터인지 돌아오는 길목에 새로 무덤 하나가 생겼다. A new grave was created on the way back from when. いつの間にか、帰り道に新たに墓が一つできました。 초대소 관리원 아바이의 묘라고 했다. It was said to be the grave of the supervisory officer, Abai. 招待所管理人アバイの墓だそうです。 풀도 없는 벌거숭이 묘 앞을 지날 때마다 은혜는 그곳에 머물러 몇 분씩 묵념을 한 뒤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묘 앞에 꽂아 놓곤 했다. Every time I passed in front of a bare tomb without grass, Grace stayed there and meditate for a few minutes, then pulled out a cigarette and put it in front of the tomb. 草も生えていない裸の墓の前を通るたびに、恵はそこに立ち止まり、数分間黙祷を捧げた後、タバコを一本抜いて墓の前に挿していた。 생사를 모르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그런다는 것이었다. It was because they thought about their parents who did not know the life and death. 生死を知らない両親のことを考えてのことだという。

은혜와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붙어다니며 친자매처럼 지냈지만 어떤 때는 그녀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릴 때도 있었다. With Grace, she always stays close and sleeps outside of bedtime, but sometimes she touches my pride. 恵とは寝る時間以外はいつも一緒にいて、親子のように過ごしたが、時には彼女が私のプライドを傷つけることもあった。 북조선에서는 초대소의 가구나 집기는 일반 사회에서 상상도 못하는 수준의 고급품이었다. 北朝鮮では、超小屋の家具や家財道具は一般社会では考えられないレベルの高級品でした。 그런데 은혜는 초대소 가구나 집기를 가리키면서 자기 집 것보다 못하다고 흉을 잡았다. ところが、恵は超小型の家具や家財道具を指して、自分の家より劣っていると罵倒しました。

그리고 신년 명절날에 나오는 10개 품목, 즉 달력, 술3병, 사탕 한 통, 엿, 소고기 통조림, 꽁치 통조림, 복숭아 통조림, 담배 10갑을 선물로 받았는데 나에게는 사탕과자를 주고 나머지는 초대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기는 질이 나빠서 그것들을 먹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And I received 10 items on New Year's Day, calendar, 3 bottles of alcohol, 1 candy, candy, canned beef, canned saury, 10 canned peaches, and 10 packs of cigarettes as a gift. He said he couldn't eat them because of poor quality. そしてお正月に出る10品目、つまりカレンダー、酒3本、キャンディー1本、飴1本、飴玉、牛肉缶詰、サンマの缶詰、桃の缶詰、タバコ10箱をプレゼントされたのですが、私には飴玉を渡し、残りは招待客に配り、自分は質が悪くて食べられないということでした。 북조선에서는 최고의 선물로 여기는 것인데 그렇게 말을 하니 자존심이 말할 수 없이 상했다. 일본 경제가 조금 앞섰다고 허세를 부리를 것 같아 더욱 기분이 나빴다. I felt even worse because the Japanese economy was a little ahead. 日本経済が少し先行したからといって、気取ってるような気がして、さらに気分が悪くなった。

내가 남조선에 와서 생활해 보고서야 은혜의 심정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때는 이미 늦었지만 그것이 티끌만한 허세도 아닌 사실 그대로였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And I admitted that it was already late, but it wasn't a dusty bluff. そして、時すでに遅しだったが、それが気取った虚勢ではなく、事実のままであったことを認めざるを得なくなった。

은혜가 허리를 쓸 수 없게 되어 보름 동안 공부를 못한 적이 있었다. Grace had been unable to use her waist, so she had never studied for the full length. 恵が腰が使えなくなり、一ヶ月間勉強ができなかったことがあった。 그 전에 일본에서 학교 다닐 때 정구부를 하다가 다친 허리가 도져서 그런다고 했다. Before that, he said that his back was hurt when he was playing tennis and was hurt while in school in Japan. その前に日本で学校に通っていた時、正球部で腰を痛めたのが原因だそうです。 은혜가 앉고 서기도 힘들어해서 초대소 식모와 접대원 처녀가 뜨거운 물로 찜질을 해 주었으나 차도가 없어 약 일주일간 9.15 병원에 가서 입원 치료를 받고서야 점차 나았다. The grace of sitting and standing was difficult, so the first-time staff and the receptionist gave me a hot compress with hot water. 恩寵は座るのも立つのも大変で、招待所の女将と接待係の処女がお湯で湿布をしてくれたが、治らず、約一週間、9.15病院に行き、入院治療を受けてから徐々に良くなった。 보름정도 학습을 못하자 그녀는 몹시 미안해 했다. When she couldn't learn at full length, she was very sorry. 半月ほど学習ができないと、彼女はとても残念がっていた。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