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쉰 한 번째-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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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쉰 한 번째
9월에 나는 왼쪽 어깨에 나 있는 결핵예방접종 흉터를 없애는 성형수술을 해준다고 하여 9.15 병원에 입원했다.
이때 중국 광주로 가라는 지령을 받고 나는 룡성 43호 초대소에 돌아왔다. 당시 담당 과장이던 한명일 과장과 리 지도원이 초대소를 방문하여 지시를 내렸다.
“최근 마카오 이민국에서는 대륙에서 밀입국한 난민들에게 곧 신분증을 발급해 줄 것이라는 정보가 들어와 있소. 그러니 동무들은 내일 모레 마카오 신분증을 얻기 위해 광주로 가서 대기하시오.”
숙희와 나는 다시 광주로 나가게 되었는데 마카오 침투공작 임무였다.
“이번 려행에는 3과장 지도원이 동무들을 데리고 가기로 되었으니 그 지도원의 지시에 따르시오.”
그는 마카오 신분증에 등록할 때의 중국인 가명과 그 신원에 대해서 알려 주었다. 나는 중국인 우잉으로 행세하고 숙희는 빠이추이후이로 행세하기로 결정했다.
“우잉은 현존하는 사람인데 오상시에 살고 있고 나이는 스물 여덟살이며 흑룡강성 오상시 성진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우하이엔으로 오상현에 있는 건축 공사장에서 당서기로 일하다가 문화혁명 시기에 반동분자로 몰려 끌려다니다가 풀려났는데 우잉이 5세 되던 해 강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다. 어머니는 딸 우잉을 옆집에 사는 장따이천 이라는 동무에게 맡기고 재가하였는데 장따이천도 다른 곳으로 이사간 이후부터는 혼자 생활하고 있다. 외할아버지 쭌여우는 광주에서 살다가 1983년에 돌아가셨다.”
리 지도원은 내가 위장할 신분의 주인공에 대해 알려 주었다. 우잉이라는 처녀가 누구인지 만나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운명이 파란만장하고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와 같은 신분에 맞도록 구체적인 출생, 성장과정, 학력 및 경력을 구상하여 제출하시오.”
숙희는 숙희대로 빠이추이후이에 맞게, 나는 나대로 우잉에 맞게 가짜경력서를 작성했다.
이번 출장은 단기간이므로 각자 사용할 간단한 생활 필수품과 옷 한 벌만 준비하라는 지시에 따라 최대한 짐을 간단하게 꾸렸다. 다음 날 오후 5시, 리 지도원으로부터 우리를 광주까지 인솔할 3과 소속 장 지도원을 소개받았다.
“이번 려행에는 공작비로 매 사람에게 광주에서 쓸 인민비 천원과 마카오에서 쓸 딸라 2만 불이 나와 있는데 장 지도원이 통일적으로 통제하도록 되어 있어서 장 지도원에게 맡겼소.”
그는 알려 주면서 새 공무 려권을 주었다. 이번에 내 려권에는 내가 ‘김화옥'으로 되어 있었고 김숙희의 려권에는 ‘김희숙'으로 되어 있었다. 이렇게 이름을 바꾼 이유는 1985년 7월 광주에 나갔을 때 김옥화라는 이름으로 된 려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비밀보장을 위해 화옥으로 하였던 것이다. 너무 급히 서두른 나머지 모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다음 날 아침 9시 장 지도원의 인솔 하에 평양 순안비행장을 떠났다. 범수 죽은 일, 현옥이 남편 급사한 일, 아버지와의 개운치 않은 작별, 어깨 흉터 수술의 실패와 부작용 등 복잡하고 좋지 않은 몸으로 평양을 떠나면서 나는 몹시 우울했다.
광주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혼자만 즉각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고 평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엄청난 지령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라' 는 임무를 받고 김승일과 함께 평양을 떠났던 것이다. 그 떠남이 평양과의 마지막 작별이었음을 나는 그때 작게나마 예감했었는지도 모르지만...‘설마...' 하는 기대감도 버리지 못했었다. ‘두고 온 평양은 잘 있으련만 두고 온 가족은 어찌나 되었는지....'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