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스물 세 번째-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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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스물 세 번째
꿈에도 생각지 못한 휴가를 가라고 하니 내 몸이 갑자기 하늘로 부웅 떠올라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초대소 어머니는 가족에게 가져다주라며 쌀과 사탕, 과자 등을 배낭에 싸 주었다. 나도 그동안 공작원 상점에서 구입해 둔 화장품, 만년필, 비누, 치약 등 사회에서는 구하기 힘든 물건을 챙겨 배낭에 넣었다. 딱 3년만이었다.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공작원 기본훈련을 마치고 1년만에 집에 다녀온 것이 첫 번째 휴가였다. 그때도 김일성 생일 특별 휴가였다. 차는 평양 천리마거리 동성교 부근에 있는 아빠트 앞에서 일단 멈추고 숙희와 지도원이 내렸다. 이곳에는 숙희네 집이 있었다. 지도원이 숙희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동안 나는 차 안에서 기다렸다. 자동차로 불과 1시간 남짓 걸리는 곳에 집을 두고도 3년만에야 와보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까웠다. 20여분이 지나서야 지도원이 돌아와 우리 집으로 향했다.
우리집은 새로 건설한 문수거리 문수동 무역부 아빠트였다. 하신동 외교부 아빠트보다 공간이 넓고 중앙 난방과 온수시설이 있는 신설아파트였다.
집에는 지도원이 미리 연락을 했는지 부모님과 동생들 모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붙들고 아래위, 앞뒤로 훑어보았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딸의 모습이 어디가 변했는지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한참 후에야 전과 같은 딸의 모습을 찾아냈는지 나를 안고 등을 두드리며 눈물을 흘리셨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말도 잇지 못했다. 동생들도 내 손과 옷깃만 붙들고 아무말 없이 반가움의 눈물을 흘렸다. 짙은 화장을 한 모습 때문에 약간 서먹서먹해 하는 것 같았으나 이내 평상시처럼 돌아왔다.
아버지는 웃음을 띠고 어머니 뒤에 서서 모녀의 포옹 장면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지도원은 감격스러운 남의 가족 상봉에 끼어들어 있는 자신의 위치가 불편한지 들어오라는 어머니의 권유를 사양하고 돌아갔다.
어머니는 방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그래 어떻게 지냈냐? 나는 다시는 못 볼 줄 알았구나.” 하며 또 눈물을 쏟았다. 옆집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종종 숨겨놓은 내 사진을 꺼내들고 울 때가 많았다고 한다. 중앙당에 소환되고 나면 나의 사진을 다 없애야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사진을 숨겨 놓았다.
내가 그동안 지나온 일들을 가족들에게 다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모든 게 비밀 사항이었고, 특히 지도원의 비밀을 지키라는 당부도 있어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더구나 어머니가 그 많은 비밀을 머릿속에 다 넣고 있을 자체가 괴로울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잘 있었어요. 별일 없어요”
어머니가 물을 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그렇게 넘겼다. 나는 아무런 화제거리도 꺼내지 못하고 그냥 일방적으로 어머니와 현옥이의 이야기만 들었다.
3년 넘게 초소에 갇혀 지내다나니 촌년이 된 기분이었고 가족과도 공동의 화제가 없어 어색한 분위기였다. 내가 그 집안의 가족이 아니라 손님처럼 생각되었다. 집을 이사해서 더더욱 분위기가 생소했다. 현수와 현옥이는 너무나 다정다감하게 친해져 내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좀 잘하라. 여자가 덜렁대기는....”
현수가 현옥이한테 웃으면서 꾸짖는 모습도 부러웠다. 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로부터 소외당하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하고 알지 못할 외로움을 느꼈다. 업어 키운 남동생 현수를 대하는 느낌은 현옥을 대하는 것과는 좀 각별했다. 이제 이 집안을 다 맡아 줄 사람이라는 생각에 대견하고 든든했다. 현수는 제법 청년티가 몸에 배이고 의젓했다. 그 사이에 키도 훌쩍 커 있었다. 몸이 아픈 막내 동생 범수는 그동안 팔 근육이 단단해져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범수는 몸이 좋지 않았지만 나를 더없이 반겨주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