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스물 다섯 번째-70
[...]
공작원 초대소, 스물 다섯 번째
최 부과장은 후에 과장이 되어 남조선 비행기 폭파 임무를 직접 지휘했고, 나는 김승일이라는 로인을 소개받을 때 곧바로 임무가 나에게 맡겨지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 맡겨지는 임무가 어떤 것일지 잔뜩 긴장이 되였다.
“구체적 임무에 대하여는 오늘 저녁 5시에 부장 동지가 오셔서 직접 말씀을 줄 것이요.”
최 부과장은 그 말만 했을 뿐 임무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았다. 부장 맞을 준비를 하는 과장, 지도원, 그리고 접대원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나는 더욱 얼떨떨해졌다. 어떤 임무길래 이렇게 요란스러운가 하고 궁금증이 더해 갔다. 응접실 쇼파를 옮겨 부장이 앉을 의자 바로 앞에 나와 김 선생의 자리를 만들었다.
저녁 5시쯤 대외정보조사부 리 부장이 탄 하늘색 벤즈 승용차가 초대소 앞에 와서 멎었다.리 부장은 대외정보조사부 부장으로 임명되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때가 나와의 첫 대면이였다. 리 부장은 170Cm 정도의 키에 몸이 좋고 머리가 약간 벗어졌는데 만만치 않은 인상이였다. 부장은 보통 때는 일반 공작원과 대면을 잘 안하지만 임무를 받고 떠날 때나 복귀를 할 때만 한 번씩 나온다. 리 부장은 응접실 쇼파에 앉기가 무섭게 다시 자리에서 일어서며 문서를 펴들었다. 우리도 재빨리 따라 일어나 정중하게 부동자세를 취했다. 그는 한층 엄숙해진 분위기에서 헛기침을 한번 한 뒤 우리에게 임무에 대한 지령을 내렸다.
“이번에 당에서 김 선생과 옥화동무에게 주는 임무는 두 사람이 일본인 부녀 관광객으로 위장하고 해외려행을 하면서 남조선에 들어갔다 오는 것이요.”
나는 숨을 죽이고 내가 맡을 임무에 귀를 기울였다.
“ 이번 조편성은 토론끝에 일본인 부녀로 위장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는 결론이 났기 때문이오.”
그는 김 선생과 나에게 잠시 눈길을 주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김선생은 건강에 류의하면서 남조선에 들어가 별도의 임무를 완수한 후 돌아오고 옥화동무는 이번이 처음 공작이니 남조선까지는 들어가지 말고 그전까지 김 선생과 함께 다니며 건강을 잘 보살펴 주면서 해외실습을 하시오. 당의 신임과 기대가 크니 꼭 성공할 수 있도록 로정과 실정 연구를 잘 하도록 하오.”
남조선이라는 말이 부장의 입에서 나왔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나는 남조선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에 좀 안심이 되였다. 부장의 지령이 끝나자 김승일은 고개를 더 꼿꼿이 세우더니 조용하나 힘 있는 목소리로,
“당의 신임에 보답하기 위해 이번 임무를 꼭 성공하고 돌아오도록 철저히 연구하겠습니다.” 라고 결의를 나타냈다.
임무 부여가 끝나자 부장은 전부터 김 선생을 아는 듯 건강상태를 묻고 일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과장이 나에게 좀 나가 있으라고 눈짓을 했다. 낯선 사람들 속에 끼여 새색시마냥 거동을 조심하느라고 심신이 긴장된 탓에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잘 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중요한 비밀담화를 하기 위해 나를 쫓아내는 것이 왠지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 없는 사업 비밀을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쩐지 소외당하는 기분인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얼마쯤 지나 동석식사가 시작되였다. 초대소 식모가 정성들여 잘 차린 상에는 술고래인 부장을 위해 그녀가 손수 담근 쌀 막걸리도 올라 있었다. 그러나 부장은 첫 대면이라 그런지 한 잔만 들고 끝냈다. 그 후 우리는 항공 로선 및 공작 지역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