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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의 고백 (Kim Hyun-hee's confession), 공작원 초대소, 스무 번째-65

공작원 초대소, 스무 번째-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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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스무 번째

은혜는 허리 때문에 입원을 해서 보름정도 학습을 못하자 몹시 미안해 했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에게 일어 편지를 써보내곤 하였고, 나는 그간의 일어 학습 정형을 편지로 써서 초대소 아주머니가 만든 송편과 떡을 함께 싸서 운전수 아저씨 편에 보내기도 했다.

한 번 면회를 갔었는데 은혜는 9.15병원 내의 개별 특실에 있었다. 일 주일만에 만나니 그녀는 살이 쪄서 둥글둥글해 보였다. 식사는 서양식 료리로서 채소와 치즈가 나왔다. 처음 먹어 보는 치즈맛이 짜고 시고 별나서 나는 먹을 수가 없었는데 은혜 선생은 맛있다며 자꾸 먹으라고 권해 억지로 먹었다. 그후 초대소에서도 계속 치즈를 먹게 되어 맛을 들였다.

은혜는 불행한 여자다. 여기와서 생각하니 은혜가 새삼 더 불쌍한 마음이 들고 그 당시 그녀의 불행을 리해하지 못했던 것이 가슴 아프다. 은혜는 꼭 아들, 딸과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보내져야 한다. 지금도 은혜는 알려지지 않은 어느 초대소에 갇혀 술에 취한 채 자식을 그리워하며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하염없이 눈물짓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은혜로부터 일본인화 학습을 받던 기간 중에 노동당에 입당했다. 1982년 3월 초순. 나는 처음에 수용되었던 동북리 10호 초대소로 옮겨져 약 40일간 로동당 입당을 위한 정치사상 학습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 원칙',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 ‘김일성주의 리론에 대하여', ‘조선로동당 규약', ‘조선로동당 창건 력사' 등을 암송했다.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초대소 학습실에서 리명길 지도워, 오세영 과장과 또 다른 지도원 등 3명이 나의 입당 심사를 하면서 ‘당 규약', ‘유일사상 10대원칙', ‘입당각오', ‘입당 목적' 등에 대하여 질문했다. 이틀 후 초대소 학습실에서 부부장과 과장 오세영이 배석한 자리에서 나의 로동당 입당식이 열렸다. 먼저 벽에 부착된 김일성 초상화를 향해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한 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의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향도 발전시키는 조선로동당에 당원으로 입당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높은 긍지를 가지고 당과 수렴님을 위해 생명을 다 바쳐 당의 명예를 지키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맹세합니다.” 라고 선서했다.

부부장으로부터 ‘입당일자 1982년 4월 15일, 입당보증인 담당과장 오세영, 지도원 리명길'로 기재된 조선로동당 당증을 받았다. 북조선 주민 누구나 꿈에도 소원인 영예로운 조선로동당에 입당한 것이다.

나를 위해 하늘은 더욱 푸른 것 같았고 초대소 뒷산에 핀 진달래 꽃은 붉은 빛을 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감격해서 공작원으로서의 결의를 다지는 선서문을 읽을 때는 더욱 힘주어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 끝없이 충성을 다하는 김일성주의자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가 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엄숙히 선서합니다. 첫째,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높이 우러러 모시고 따르며...”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되뇌인 그 말을 하면서도 매번 감격하고 감동하던 그 당시의 충성심이 이제 생각하면 얼마나 유치하고 맹목적이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첫째도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고 둘째도, 셋째도 모두 같았다.

로동당에 입당하고 나서 하늘을 찌를 듯 충천하는 사기를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동북리 특각 3호 초대소로 돌아와 은혜와의 학습을 계속하였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


공작원 초대소, 스무 번째-65 Einladung der Arbeiter, Zwanziger-65 Workmen's Invitation, Twentieth-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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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스무 번째

은혜는 허리 때문에 입원을 해서 보름정도 학습을 못하자 몹시 미안해 했다. 恵は腰の病気で入院してしまい、一週間ほど学習ができないと、とても残念がっていた。 그녀는 병원에서 나에게 일어 편지를 써보내곤 하였고, 나는 그간의 일어 학습 정형을 편지로 써서 초대소 아주머니가 만든 송편과 떡을 함께 싸서 운전수 아저씨 편에 보내기도 했다. 彼女は病院から私に日本語で手紙を書いてくれたり、私はこれまでの日本語学習の成果を手紙に書いて、招待所のおばあちゃんが作ったお餅を一緒に包んで運転手さん宛てに送ったりしていました。

한 번 면회를 갔었는데 은혜는 9.15병원 내의 개별 특실에 있었다. 一度面会に行ったことがありますが、恵は9.15病院内の個別特室にいました。 일 주일만에 만나니 그녀는 살이 쪄서 둥글둥글해 보였다. 一週間ぶりに会うと、彼女は太って丸くなったように見えた。 식사는 서양식 료리로서 채소와 치즈가 나왔다. 食事は洋食料理で、野菜とチーズが出ました。 처음 먹어 보는 치즈맛이 짜고 시고 별나서 나는 먹을 수가 없었는데 은혜 선생은 맛있다며 자꾸 먹으라고 권해 억지로 먹었다. 初めて食べるチーズの味は塩辛くて酸っぱくて変な味で、私は食べられませんでしたが、恵先生は美味しいと何度も勧めてくれたので無理矢理食べました。 그후 초대소에서도 계속 치즈를 먹게 되어 맛을 들였다. その後、招待所でも引き続きチーズを食べるようになり、味を覚えました。

은혜는 불행한 여자다. 여기와서 생각하니 은혜가 새삼 더 불쌍한 마음이 들고 그 당시 그녀의 불행을 리해하지 못했던 것이 가슴 아프다. ここに来て考えてみると、改めて恵が可哀想に思えて、当時彼女の不幸を理解できなかったことが胸が痛みます。 은혜는 꼭 아들, 딸과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보내져야 한다. 恩は必ず息子と娘と家族がいる日本に送られるべきです。 지금도 은혜는 알려지지 않은 어느 초대소에 갇혀 술에 취한 채 자식을 그리워하며 동쪽 하늘을 바라보고 하염없이 눈물짓고 있을 것이다. 今頃、恵は未知のある招待所に閉じ込められて、酒に酔ったまま、子を懐かしんで東の空を眺めながら涙を流していることだろう。

나는 은혜로부터 일본인화 학습을 받던 기간 중에 노동당에 입당했다. 私は恩寵から日本語化学習を受けていた期間中に労働党に入党した。 1982년 3월 초순. 나는 처음에 수용되었던 동북리 10호 초대소로 옮겨져 약 40일간 로동당 입당을 위한 정치사상 학습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私は最初に収容されていた東北里10号招待所に移され、約40日間、労働党入党のための政治思想学習を集中的に受けた。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 10대 원칙',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 ‘김일성주의 리론에 대하여', ‘조선로동당 규약', ‘조선로동당 창건 력사' 등을 암송했다. 党の唯一の思想体系確立の10大原則」、「党の唯一の指導体制確立」、「金日成主義理論について」、「朝鮮労働党規約」、「朝鮮労働党創建の歴史」などを暗唱した。 김일성 생일을 앞두고 초대소 학습실에서 리명길 지도워, 오세영 과장과 또 다른 지도원 등 3명이 나의 입당 심사를 하면서 ‘당 규약', ‘유일사상 10대원칙', ‘입당각오', ‘입당 목적' 등에 대하여 질문했다. 이틀 후 초대소 학습실에서 부부장과 과장 오세영이 배석한 자리에서 나의 로동당 입당식이 열렸다. 二日後、招待所学習室で副所長と課長のオ・セヨン氏が立会いのもと、私の労働党入党式が行われました。 먼저 벽에 부착된 김일성 초상화를 향해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한 뒤, まず壁に貼られた金日成の肖像画に向かって腰をかがめて敬意を表した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정치적 신임과 배려에 의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향도 발전시키는 조선로동당에 당원으로 입당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며 높은 긍지를 가지고 당과 수렴님을 위해 생명을 다 바쳐 당의 명예를 지키고 끝까지 투쟁할 것을 맹세합니다.” 라고 선서했다. 「敬愛する領袖金日成同志と親愛なる指導者金正日同志の政治的信任と配慮によって、偉大な領袖金日成同志が郷土を発展させる朝鮮労働党に党員として入党したことを無限の光栄と思い、高い誇りを持って党と領袖のために生命を捧げて党の名誉を守り、最後まで闘争することを誓います」。と宣誓した。

부부장으로부터 ‘입당일자 1982년 4월 15일, 입당보증인 담당과장 오세영, 지도원 리명길'로 기재된 조선로동당 당증을 받았다. 副部長から「入党日1982年4月15日、入党保証人担当課長オ・セヨン、指導員リ・ミョンギル」と記載された朝鮮労働党党証を受け取った。 북조선 주민 누구나 꿈에도 소원인 영예로운 조선로동당에 입당한 것이다. 北朝鮮の住民なら誰しもが憧れる名誉ある朝鮮労働党に入党したのである。

나를 위해 하늘은 더욱 푸른 것 같았고 초대소 뒷산에 핀 진달래 꽃은 붉은 빛을 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私のために、空はより青く見え、招待所の裏山に咲くツツジの花は赤みを増しているような気がしました。 너무나 감격해서 공작원으로서의 결의를 다지는 선서문을 읽을 때는 더욱 힘주어 읽어 내려갔다. とても感激し、工作員としての決意を固める宣誓文を読むときは、さらに力強く読み上げた。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 끝없이 충성을 다하는 김일성주의자 주체형의 공산주의 혁명가가 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엄숙히 선서합니다. 첫째,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높이 우러러 모시고 따르며...” 第一に、私たちは偉大な領袖と親愛なる指導者同志を崇拝し、尊敬し、従って..."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되뇌인 그 말을 하면서도 매번 감격하고 감동하던 그 당시의 충성심이 이제 생각하면 얼마나 유치하고 맹목적이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何十回、何百回と繰り返したその言葉を口にしながらも、毎回感激し、感動していた当時の忠誠心が、今思えばどれほど幼稚で盲目的だったのか、とんでもない。 첫째도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고 둘째도, 셋째도 모두 같았다. 第一も偉大な領袖と親愛なる指導者同志、第二も第三も同じだった。

로동당에 입당하고 나서 하늘을 찌를 듯 충천하는 사기를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老同党に入党してからは、天を突くような充実した士気を自分でも感じることができた。

다시 동북리 특각 3호 초대소로 돌아와 은혜와의 학습을 계속하였다. 再び東北里特設3号招待所に戻り、恵みとの学習を続けた。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