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서른 세 번째-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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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서른 세 번째
우리가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리유는 일본에서 바로 서울로 입국하는 일본인의 경우 김포공항에서 심한 검색을 받아 신분이 드러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였다. 오래 전에 일본을 출발해서 유럽 지역을 관광한 뒤 돌아오는 길에 서울을 방문하는 일본인 관광객으로 위장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는 결론을 얻은 때문에 그렇게 했다.
김승일은 빠리 드골공항에서 나와 헤어져 서울행 항공기에 오르기에 앞서 몇 가지 당부 말이 있었다.
“지금부터 서로 헤여져 각자 행동해야 하니 앞으로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해라. 마카오에 가서 장 지도원을 만나거든 내가 아무 일 없이 남조선으로 떠났다고 하고 계획대로 9월 26일에 마카오로 들어가겠다고 전해.”
그와 막상 헤여져 첫 외국 려행을 혼자 해낼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앞섰지만 내색 않고 인사를 나누었다.
“김 선생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마카오에 가서 장 지도원에게 김 선생님께서 무사히 서울로 떠났다고 보고하겠습니다.”
나는 돌아서면서 김 선생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기를 빌었다. 나는 두려움을 안고 홀로 경유지인 타이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타이에 도착하여 홍콩행 비행기로 갈아탔다. 절반 가량의 승객이 모두 일본인 관광객들이였다. 내 옆에는 이라크 남자가 앉았는데 서툰 영어이면서도 큰 목소리로 일본인이냐 , 어디를 다녀오느냐 하며 꼬치꼬치 묻자 내 주위에 앉아 있던 일본 남자들이 자꾸 힐끔힐끔 돌아보며 나를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일본인으로 위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라크 남자보다는 일본인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비행기가 홍콩 공항에 가까워지자 나는 은근히 겁이 났다. 홍콩은 일본인이 많이 출입하는 곳이기 때문에 려권이 위조라는 것이 발각되지 않을까 념려스러웠다. 또한 지도원들로부터 홍콩에는 녀자를 랍치해 가는 깡패들도 많고 범죄도 많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에 더욱 긴장이 되였다. 홍콩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하는데 그다지 까다롭지 않아 다행이였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시꺼먼 색안경을 쓴 남자들이 많아서 모두 깡패처럼 보여 이들을 피해 다녔다. 홍콩은 유럽과 달리 섭씨 34도가 넘는 무더운 날씨였다.
모든게 낯설어 매표소를 찾다가 어떤 젊은 남자에게 물으니 그는 마침 잘 되었다며 자기가 5시 표를 샀는데 사정이 생겨 못 가게 됐으니 자기 표를 사라고 졸랐다. 나는 지금 당장 떠나는 표를 사야 한다고 거절하는데도 그는 막무가내로 표를 내밀었다. 그를 떼어내려고 곤욕을 치렀다. 겨우 매표소를 찾아 표를 구입하자 그 남자는 사라졌다. 배에 오르니 중국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동안 비행기에서도 한잠 못자고 긴장 상태에서 행동하느라고 심신이 몹시 지쳐 있어 창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마저도 흥미가 없었다. 고속 여객선은 오후 5시쯤 마카오 항구에 닿았다. 그곳에는 장 지도원이 마중나와 있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긴장 상태에서 달리다가 장 지도원을 만나니 반가움에 앞서 참았던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장 지도원도 나를 만나자 집 나갔다 돌아온 딸을 맞이하듯 반가워 하면서,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김 선생은 어떻게 되었소?” 라는 질문부터 해댔다.
“김 선생은 어제 빠리에서 무사히 서울로 떠났습니다. 계획대로 9월 26일에 마카오로 들어와 다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하고 내가 대답하자,
“지금까지는 잘 됐지만 정작 큰 문제는 이제부터야.” 장지도원은 중얼거렸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