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서른 한 번째-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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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서른 한 번째
쾨펜하겐에서 장 지도원을 만났을 때, 장 지도원은 이미 우리가 홍콩까지 갈 항공편을 알아본 후였다.
“두 선생들이 홍콩까지 들어가야 할 비행기표와 호텔을 예약했는데 래일까지 확정된다고 하니 9월 2일 오후 8시에 티보리 공원 정문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는 약속날자와 시간을 정하고 돌아갔다.
우리가 첫날 투숙했던 호텔은 객실료가 너무 비싸서 료금이 싼 로얄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이 호텔은 요금도 싸고 시내 중심가에 있어 밤 야경도 좋고 교통도 편리했으나 일본인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통에 행동하는데 몹시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많은 데일수록 시치미를 뚝 떼고 일본 부자 행세를 했다. 그러자 젊은 일본인들은 간혹 인사를 하기도 하면서 정말 일본인으로 보는 듯 했다.
우리는 로얄 호텔에서 5박 6일간 체류하면서 관광 뻐스를 타고 단마르크의 명소인 ‘인어상'을 보러 갔다. 인어 조각상이 인기여서 하나 살까 고민도 했지만 사람들이 보면 녀자 라체라고 깜짝 놀랄것 같아 그만 두었다. 시간이 나면 ‘티보리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부두가를 거닐거나 시내 중심가를 돌아다니며 관광객으로 행세했다. 북구라파의 중심 거리에는 영화관이 즐비한데 얼굴을 들기가 민망할 정도의 라체 그림과 문란한 도덕성을 나타내는 광고 포스터가 여기저기 나붙어있었다. 그 당시엔 북조선에서 들은 대로 ‘자본주의는 과연 부패되고 타락한 사회로구나' 하고 절실하게 느꼈다. 9월 2일 저녁 8시에는 사전 약속했던대로 티보리 공원 정문 앞으로 나가 장 지도원과 만났다. 티보리 공원은 저녁이 되면 온갖 오락, 요리, 구경거리가 많아 관광객들로 붐볐다. 장 지도원은 나에게 프랑크푸르트-쮸리히-제네바-빠리-홍콩 까지의 항공권을 주었고, 김승일에게는 프랑크푸르트 -쮸리히-제네바- 빠리-서울 -홍콩까지의 항공권과 호텔 예약권을 주었다. 장 지도원은 우리에게 다음 로정과 다시 만날 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
“프랑크푸르트부터는 두 선생이 나와 헤여져 독자적으로 행동해야 하니 경각심을 가지고 무사히 다녀오기 바라오. 나는 미리 마카오에 가서 기다릴 테니 두 사람은 빠리까지 갔다가 옥화동무는 9월 21일에 마카오에 들어와야 하며, 김 선생은 남조선에 들어갔다가 9월 26일까지 마카오로 들어오시오. 래일 공항으로 나가 선생들이 떠나는 것을 전송할 테니 공항에서 다시 만납시다.”
다음 날 11시에 걱정스러워 하는 장 지도원의 전송을 받으면서 우리는 쾨펜하겐공항을 떠나 약 2시간 뒤에 서독 프랑크프르트공항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 날씨는 밝고 따뜻했다. 시내 호텔에 투숙해서 5박 6일 동안 ‘베토벤 생가', ‘미술박물관' 등 유적지를 둘러보고 공원을 산책하며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곳은 다른 데와는 달리 한적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번잡하고 정신없는 도시보다 마음도 편했고 정신적으로 약간의 긴장도 풀리는 듯해서 좋았다. 처음 자본주의 국가로 들어서면서는 혹시 남조선에서 나온 특무나 현지 경찰에 미행당하지나 않는지, 또 사용하고 있는 일본 려권이 위조라는 사실이 발각되지나 않을지 불안해하고 줄곧 긴장했었다. 그러나 비엔나, 쾨펜하겐, 프랑크푸르트를 들러오는 동안 자신감이 붙어서 차츰 나아졌다.
특히 스위스 쮸리히에 와서는 그림처럼 평화로운 분위기 덕분에 임무 조차도 잊을 정도로 안정이 되였다.
쮸리히의 호텔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아담하면서도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우리가 투숙한 호텔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푸른 잔디 언덕 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 그림엽서에서 나옴직한 풍경이였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