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마흔 여덟번째-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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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마흔 여덟번째
어머니는 남자 앞에서 마구 웃지도 못하게 할 정도로 유난히 엄격한 분이었다.
또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챙기시는 분이기도 했다. 그런 어머니가 내가 공작원 교육을 받느라 짙은 화장을 하는 등 외모가 변해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몇 년만에 한 번씩 잠시 만나는 큰 딸을 꾸짖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앓는 것이 분명했다. 올 때마다 180도로 변모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내가 어머니는 걱정스럽고 한편 서글픈 눈치였다. 무엇이든 열성적으로 가족을 돌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머니가 나를 떠나보내 놓고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집에 안 계셨다. 아버지는 아프리카 앙골라에 무역대표부 수산대표로 나가있는데 4.15때 휴가를 받아 오실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는 이번에는 반가움보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나를 맞이했다.
“너를 어떻게 한다던?”
그 말뜻은 점점 나이 들어가는 딸의 장래가 고민되어 하는 말이었다. “언제 시집 보낸다던?” 하는 말과 같은 말이었다.
“내 걱정 말고 현옥이부터 결혼시키세요.” 나는 어머니의 말을 받아 언제나처럼 답변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쾌활하게 행동했다.
“그러지 않아도 금년 4월에 아버지 오시면 시집 보내려 하는데.... ” 어머니는 언니인 나를 젖혀두고 동생부터 결혼시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지 말끝을 흐렸다.
“잘됐네, 신랑은 있구요?” 나는 어머니의 심정을 알고 있어서 더욱 밝은 얼굴을 하고 관심을 가졌다.
“관광총국에서 일하는 청년이 하나 있는데.....” 어머니는 나에게 몹시 미안해 하면서 말을 꺼냈다.
“내 신경은 쓰지 말아요. 난 할 일이 많아요. 당에서 어련히 알아서 할라고.” 그 이야기는 그걸로 끝내고 말았다.
작은 딸을 결혼시키는 기쁨보다 큰 딸을 가슴아파하는 어머니와 더 이상 마주 대하기가 나 역시도 괴로웠다. 나도 마냥 마음이 펴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 해 한 해 늘어가는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초대소에 들어와 꽃다운 시절을 다 보냈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질 때도 있었다. 초대소 생활을 하면서부터 사회에 있을 때와는 달리 나는 가을을 싫어하는 버릇마저 생겼다.
나는 가을이 싫다. 인적 없는 초대소 창밖으로 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저무는 햇살이 걸렸고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면 내 운명을 남에게 맡기고 떠도는 나의 신세 같다는 처량 맞은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했다. 앞으로의 일도 확실히 알지 못한 채 마냥 준비만 하면서 눈치 보는 생활에 조금은 지쳐있었다.
대학교 때 동무들 생각, 가족 생각이 들 때는 아예 지금이라도 못하겠다고 나자빠지고 사회에 나가 속 편하게 시집이나 가버릴까 하는 마음도 가져보게 되는 때가 바로 가을이었다. 그러한 마음은 나뿐 아니라 숙희도 마찬가지였다.
“내겐 앞으로 어떤 일을 시킬까?” 가슴이 답답할 때는 참다 참다 내게 그렇게 묻기도 했다.
“내 생각에...넌 남자 공작원과 결혼시켜 홍콩 쪽으로 같이 보낼 것 같애.” 나는 되도록 희망적이고 행복한 공작원의 예를 들어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난?”
나 역시 숙희를 통해 신통한 이야기를 들으려는 것보다는 숙희에게라도 위안의 말을 듣고 싶어 그렇게 되묻곤 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