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마흔 두 번째-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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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마흔 두 번째
중국에서 보통어는 아주 사투리만을 사용하는 지방 로인들이 아니면 대개 할 줄 안다.
그곳 학교에서 보통어로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말 학습을 위해 중공 소학교 국어 교과서 1~6학년용, 중학교 국어 교과서 1~3학년용, 중공 유치원 동화와 동요, <가정생활>, <광명>, <현대여성>, <개방>, <광주의 면모> 등 잡지와 <민주일보>, <인민일보>, <양성신문>, <남방신문> 등 일간지, 그리고 일어 학습을 겸하기 위해 일어로 된 중국어 회화 책을 교재로 삼았다. 청취력을 보강하기 위해 TV 시청은 물론 ‘제대한 병사', ‘여배우의 자살', ‘야밤의 노래' 등 30여 편의 중국 영화를 관람했다. 외국어를 배우는 데는 뭐니뭐니해도 현지인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생활에 뛰어드는 것만큼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없다고 본다.
광주에 가서 얼마 안되어 현지 사람과 사귈 기회가 왔다. 어느 날 박 지도원 집 아래층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는 허애영 이라는 처녀가 놀러왔다. 전에 그곳에 살 때 박 지도원의 아들 평철이를 귀여워하여 그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평철이를 잠깐 보려고 들렀다고 한다. 박 지도원 부인은 허애영에게 우리를 소개시켰다.
“우리 조카들인데 이쪽은 박옥란, 저쪽은 박화숙이야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배치받기 전에 중국어를 배우려고 삼촌 집에 놀러 와있어요.”
그 말에 허애영은 중국어를 배우러 왔으면 자기와 사귀면서 배우라고 했다. 그녀는 당시 25살로 광주여행사에서 부기원 일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체로 마르고 왜소한 광주 사람과는 달리 몸도 건강하고 성격도 활달했다. 얼굴은 별로 예쁘지 않았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후 몇 번 만나 친해지자 자기 은사라며 광주 어느 중학교 화학 교원은 당길명이라는 여선생을 소개해 주었다. 당 선생은 우리에게 호감을 갖고 한 주에 한번 정도는 꼭 자기 집에 오도록 할 정도로 친해졌다. 그리고 자기 제자들을 많이 소개시켰다. 광주 건축전문학교 교원인 채국광, 광주 동식물 연구소 지도원인 유주홍 등 그의 제자를 알게 되었다. 그들도 우리를 친절하게 대해 주며 자주 만나기를 원했다.
유주홍은 부모가 모두 홍콩에서 회사를 하기 때문에 비교적 잘 살았으나 외할머니 밑에서 5남매가 자랐다고 한다. 그는 광주 아동병원 간호원인 자기 여동생 유소란과 제남 대학에 다니는 남동생도 소개하였다. 특히, 홍매라는 30살 넘은 노처녀를 알게 되어 사귀었는데 그녀와는 추억거리가 많았다.
어느 날 박 지도원 부인이 약국에 갔다가 돈이 모자라 나머지 돈을 주기 위해 약국 점원을 집에 데리고 왔는데 그때 따라 온 여성이 바로 홍매였다. 홍매는 우리가 중어를 서툴게 하는 것을 보고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박 지도원 부인이 내 조카들인데 중어를 배우러 조선에서 잠깐 와 있다고 소개하자 그녀는 앞으로 자기를 자주 만나면 중어를 힘껏 가르쳐 주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홍매는 내 이름이 박옥란 이라고 하자 ‘옥란'이 중어 발음으로 ‘위란'이라고 하는데 서태후의 이름과 같다며 더욱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는 광주 어느 성의 지주 출신인데 부모들이 문화대혁명 때 탄압받을 것을 우려하여 싱가폴로 피신했다가 그곳에 정착해서 큰 장사를 하고 있으며, 홍콩에도 지점을 차렸는데 그 지점에는 홍매와 쌍둥이인 여동생이 일보고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의사인 언니와 형부 집에 얹혀 살고 있었는데 언니 집은 2층집으로 우리 아파트 뒤편 화교촌 고급 주택가에 있었다. 홍매는 영화에 광적이다시피 취미가 있어 많은 배우들과 교류를 가졌다. 그래서 배우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우리를 데리고 나갔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