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마흔 번째-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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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마흔 번째
6개월간의 집중적인 중국어 학습으로 회화가 가능하게 되자 우리는 상당히 잘 하는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현지에 가서 어학 실습을 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다.
1985년 6월 하순. 중국어 학습이 끝나자 오세영 과장이 와서,
“동무들은 앞으로 해외에 나가 공작 사업을 하기 위해 앞으로 1년간은 중국 광주에 가서 어학 실습을 하게 되오. 계속해서 6개월간은 마카오에 가서 어학 실습과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 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예정되어 있으니 그렇게들 아시오. 출발 시기가 7월 말 경으로 되어 있으니 그때까지 준비를 철저히 하오.” 하며 지시를 내리고 우리는 곧 준비에 들어갔다.
마카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종 편의시설 이용 방법과 그 요령을 마카오 관련 책자를 통하여 학습했다. 해외에 나가 본부의 지령을 직접 받을 수 있도록 A-2 수신 테이프를 가지고 밤낮으로 통신 훈련을 쌓았다. 통신 지도원의 지도하에 고속도의 수신 능력을 습득할 수 있었다.
매월 10일, 11일 자정과 25, 26일의 자정에 8050, 10300, 16100 키로헤르쯔에 주파수를 맞춰 평양 중앙방송을 청취하기로 약정했다. 호출부호는 공동 호출부호가 씨큐 616이고 개인 호출부호가 083, 914, 493, 490 등 4개로 하되 순차적으로 사용하기로 약속되었다. 암호 조직 및 해독 방법으로는 과학기술 부분 일본판 소형 책자와 암호표를 이용하여 해독하는 훈련을 하였으며, 기본 구호는 ‘청춘의 심장' 을 사용하도록 하고 그에 의거하여 암호 숫자를 해독하기로 했다. 출발에 앞서 우리는 암호표, 암호 해독용 일본 과학기술 서적, 수신용 소형 단파 라지오, 통신제원표가 기록된 수첩을 지급받고 장비품인 트렁크, 멜가방, 스웨터, 치마, 가을 양장, 속내의, 양말, 구두, 화장품 세트, 원주필, 돈지갑, 김옥화 이름으로 된 북조선 공무 려권을 받았다.
최 부부장은 해외 실습 출발 준비에 대한 점검을 마치고,
“김옥화 동무와 김숙희 동무는 내일 모레 중국 광주와 마카오로 해외 어학 실습을 가게 되었소. 그곳에 가서 중국어와 광동어를 완전히 습득하고 광주, 마카오의 환경을 완전히 료해하시오. 그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현지 지도 성원들과 련계를 잘 가지고 사고와 의견충돌이 없도록 하고 그 지도원에 의거하여 지도원이 보장하여 주는 대로 생활하는 것을 명심하시오.” 라는 지시를 시달했다.
출발 전날 저녁, 초대소 식당에서 베풀어진 환송연에는 오세영 과장, 부과장, 리지도원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오과장은 봉함한 회색 편지 1통을 주면서 말했다.
“북경과 광주에 도착하면 안내해 주도록 현지 주재 성원에게 이미 련락하였지만 혹시나 해서 편지를 썼으니 북경공항에 도착하여 마중 나온 박 지도원에게 이 편지를 주면 잘 지도해 줄 것이오.” 그들은 처녀 여자아이 둘만 떠나보내는 것이 불안한지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
7월 말. 숙희와 나는 평양 순안비행장을 출발하여 중국 광주로 떠났다. 숙희는 첫 해외려행이라 그런지 마음이 몹시 들떠 있는 듯 했다. 나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녀는 짐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면서 흥분을 감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나의 첫 해외려행 실습 때를 생각하며 숙희의 심정을 이해하였다. 이미 해외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나 역시도 가서 일 년 넘게 산다는 일이 가슴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비행기 안에서 숙희는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행동했다. 나는 그녀가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모른척하면서 은근히 숙희를 안내하는 역을 맡았다. 한창 자존심 강한 스무 살 처녀였던 우리들의 관계는 참으로 미묘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