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열 일곱 번째-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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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열 일곱 번째
초대소에 있는 보초들 몰래 마을까지 내려 온 은혜는 사람들의 눈길에는 아랑곳없이 길에서담배까지 피워댔다.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잖아요. 나중에 사람들이 없을 때 담배를 피워요.”
나는 창피하기도 하고 낯이 뜨거워져 담배를 못 피우게 말렸더니 그녀는 담배 피우고 싶어 미치겠다며 담배에 불을 붙여 몰래 피웠다. 사람이 지나가면 담배를 뒤로 감추었다가 사람이 없으면 한 모금씩 빨아댔다. 은혜는 이날의 자유주의를 얼마동안 잊지 못하고 즐거운 듯이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그녀는 일본 말만을 사용하고 사는 일에 불편함이 없었지만 나는 조국 말을 두고 외국어만 사용하자니 갑갑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은혜와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 불편은 없지만 속이 후련하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저녁식사 후에는 초대소 식모 방에 찾아가 그 아주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추월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주머니는 당시 45세 정도의 량강도 혜산 부근 출신이었다. 처녀 때 고향에 있는 어느 공장 선반공으로 일하면서 서로 좋아하던 남자가 있었다 한다. 그때 옆집에 친척이라는 남자가 군대에서 제대한 후 삼지연에 있는 탄광에 배치되어 가던 길에 얼마간 묵었다. 그 남자는 추월을 보고 나서 추월의 어머니에게 딸을 달라고 졸라댔다. 자기는 삼지연에 직장 배치를 받아 가는 중이라며 떠벌렸다.
추월의 어머니는 무식한 편이어서 혁명 사적지가 많은 삼지연이란 이름이 신문이나 방송에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큰 도시인 줄로 착각하였다. 어머니는 딸을 큰 도시 직장에 배치되어 가는 유망한 젊은이에게 시집보낼 욕심에서 혼사를 적극적으로 나서서 서둘러 치르게 했다.
추월은 남편을 따라 삼지연에 가서 크게 실망했다 한다. 삼지연이란 곳은 지독한 시골이었고 반 강제로 맺어진 혼사이기 때문에 남편이 밉고 싫어서 더 견디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남편은 그 탄광에서 일하는 여자들과 이상한 소문을 뿌리며 바람까지 피웠다.
그 사이에 아들 둘과 딸 하나가 태어나 그런대로 애들한테 재미를 붙이며 참고 살았다. 어느날 남편이 사고로 탄광 밀차에 치어 죽었다. 장례식을 치르는데 처녀 때 서로 좋아하던 남자가 참석해 주었으며 그 남자는 아직도 마음은 변치 않았으나 자기도 이미 가정을 가졌으니 어쩌냐고 위로했다 한다.
추월은 남편을 잃은 뒤 요리사, 재단사, 접대원 등을 교육시키는 상업대학을 나와 중앙당에 뽑혀 초대소 식모가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특수학교인 남포학원에 보내고 사람들의 왕래가 별로 없는 산골 초대소에 묻혀 사니 좋다고 했다.
이런 하찮은 남의 신세타령이지만 조선말로 말을 듣고 대꾸하니 그것 자체도 나에게는 커다란 위안이었다. 조선 사람끼리 앉아 조선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평소에는 느껴보지 못하던 감정이었다. 초대소 식모와 조선말로 한참씩 떠들고 나면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듯했고 은혜와 다시 일본 말로 대화하는 일에 생기가 돌았다.
은혜는 이런 산속 초대소에 갇혀 살 여자가 못 되었다. 그래서 더 괴로워하고 그래서 더 술에 취해 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유주의를 자주 원했지만 나는 되도록 그 제안을 묵살했다.
한번은 전문적으로 일본 비데오 테프를 보는 초대소에 3일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초대소는 주체사상탑 주변에 위치해 있었다. 밤에는 주체사상탑 위에 있는 횃불이 타오르는 불빛을 내어 멀리서 보면 멋있어 보였다. 은혜는 밤이 되면 자유주의해서 주체사상탑에 가보기를 원했다. 우리가 벼르고 있던 참에 마침내 그 초대소의 마지막 밤이 되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