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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심청전 (The Story of Sim Cheong), 2 장 심청, 장님 아버지 밑에서 잘 자라다

2 장 심청, 장님 아버지 밑에서 잘 자라다

부인을 잃은 심 봉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젖을 달라고 우는 청이가 있었기에 마냥 슬픔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밤새 청이를 어르던 심 봉사는 새벽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젖동냥을 하러 길을 나섰다.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길을 찾아가던 심 봉사의 귀에 우물가의 두레박 소리와 아낙네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심 봉사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까이 가서 말했다.

“여보시오, 부인님들. 우리 청이 젖 좀 먹여 주시오. 태어나서 칠 일 만에 어미 잃고, 앞 못 보는 아비 손에 자라서 배고파 죽을 지경이오. 댁의 아기 먹이고 남은 젖이 있다면 불쌍한 우리 청이에게 한 모금만 나눠 주오.”

한 아낙네가 심 봉사에게 말했다.

“아이, 딱해라. 마침 옆집 부인이 해산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내가 부탁하여 보겠소.”

“고맙소. 고맙소. 정말 고맙소.”

심 봉사는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잠시 후, 심 봉사는 우물가에서 만난 아낙네의 도움으로 청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었다. 허겁지겁 젖을 빨던 청이는 배가 부르자 울음을 멈추었다.

“에그, 어린 것이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네.”

젖을 먹이던 부인이 심청을 안쓰럽게 보며 말했다. 이날부터 심 봉사는 본격적으로 청이에게 먹일 젖을 얻으러 다녔는데 처음이 어렵지 점점 도가 텄다. 동네 부인들도 심 봉사와 심청 부녀를 딱하게 여겨 살 방도를 함께 궁리해 주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심청은 배부르게 먹으며 자랄 수 있었다.

심청이 조금 더 크자, 심 봉사는 청이를 재워 두고 이 집 저 집으로 쌀을 구걸하러 다녔다. 그 쌀로 청이에게 죽도 끓여 주고 청이가 좋아하는 엿도 사 먹일 수 있었다. 심 봉사의 사랑 속에 심청은 쑥쑥 자라 어느덧 일곱 살이 되었다. 심청이 심 봉사에게 말했다.

“아버지, 말 못하는 까마귀도 날 힘이 생기면 먹이를 물어와 부모님을 섬긴다고 합니다. 아버지 덕으로 이만큼 컸으니 이제 먹을걸 구하는 일은 제게 맡겨 주세요.”

심청의 말을 듣고 심 봉사가 말했다.

“우리 청이, 기특하구나. 하지만 너를 위해 밥을 얻으러 다니는 일은 고생이 아니라 행복이고 보람이니 네 부탁은 들어주기 어렵겠구나.”

“앞 못 보는 아버지께서 밥을 얻으러 가다 넘어져 병이라도 나시면 그 불효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심청의 계속되는 부탁에 심 봉사는 마지못해 허락했고 심청은 아버지를 대신해 밥을 얻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겨울바람이 해진 저고리와 치마를 뚫고 들어왔다. 심청의 가녀린 몸은 사정없이 떨렸고, 짚신이 다 떨어져 드러난 버선 없는 맨발은 꽁꽁 얼었다.

하지만 심청은 아버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밥 짓는 냄새가 나는 부엌에 들어가 말했다.

“혹여 남는 밥을 한 숟가락 나눠 주신다면 추운 날 찬 방에서 기다리시는 부친께서 허기를 면할 수 있겠나이다.”

“에그, 딱해. 밥을 좀 줄 테니 가져가거라.”

심청의 모습을 보는 사람마다 어린 심청의 효심에 감탄하며 아낌없이 먹을 것을 주었다. 이 집 저 집에서 내어 준 나물에 쌀밥, 콩밥, 수수밥이 뒤섞여 형형색색이었다. 이렇게 심 봉사의 밥상에 매일 오곡밥이 올랐다.

“아버지, 따뜻한 물을 국 삼아 천천히 드세요.”

심청은 아버지의 손에 수저를 쥐어 주고 반찬도 올려 주며 심 봉사를 극진히 봉양했다.

고생하는 심청을 보며 심 봉사는 마음이 아팠지만 심청은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오히려 심 봉사를 위로했다.

그리고 열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 삯바느질을 시작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다행히 어머니 곽 씨를 닮아 심청은 바느질 솜씨가 무척 뛰어났다. 부지런하고 알뜰한 심청의 노력 덕분에 심청이 열다섯이 되었을 때부터는 밥을 얻어 오지 않아도 부녀가 충분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2 장 심청, 장님 아버지 밑에서 잘 자라다 Kapitel 2 Simcheng gedeiht unter seinem blinden Vater Chapter 2 Shen Cheng Thrives Under a Blind Father Chapitre 2 Simcheng prospère sous les ordres de son père aveugle Capitolo 2 Simcheng prospera sotto il padre cieco Capítulo 2 Simcheng prospera com o seu pai cego Глава 2 Сымчэн процветает под руководством своего слепого отца

부인을 잃은 심 봉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곁에서 젖을 달라고 우는 청이가 있었기에 마냥 슬픔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밤새 청이를 어르던 심 봉사는 새벽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젖동냥을 하러 길을 나섰다. 지팡이로 앞을 더듬으며 길을 찾아가던 심 봉사의 귀에 우물가의 두레박 소리와 아낙네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심 봉사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까이 가서 말했다.

“여보시오, 부인님들. 우리 청이 젖 좀 먹여 주시오. 태어나서 칠 일 만에 어미 잃고, 앞 못 보는 아비 손에 자라서 배고파 죽을 지경이오. 댁의 아기 먹이고 남은 젖이 있다면 불쌍한 우리 청이에게 한 모금만 나눠 주오.”

한 아낙네가 심 봉사에게 말했다.

“아이, 딱해라. 마침 옆집 부인이 해산한 지 며칠 되지 않았으니 내가 부탁하여 보겠소.”

“고맙소. 고맙소. 정말 고맙소.”

심 봉사는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잠시 후, 심 봉사는 우물가에서 만난 아낙네의 도움으로 청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었다. 허겁지겁 젖을 빨던 청이는 배가 부르자 울음을 멈추었다.

“에그, 어린 것이 배가 많이 고팠던 모양이네.”

젖을 먹이던 부인이 심청을 안쓰럽게 보며 말했다. 이날부터 심 봉사는 본격적으로 청이에게 먹일 젖을 얻으러 다녔는데 처음이 어렵지 점점 도가 텄다. 동네 부인들도 심 봉사와 심청 부녀를 딱하게 여겨 살 방도를 함께 궁리해 주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심청은 배부르게 먹으며 자랄 수 있었다.

심청이 조금 더 크자, 심 봉사는 청이를 재워 두고 이 집 저 집으로 쌀을 구걸하러 다녔다. 그 쌀로 청이에게 죽도 끓여 주고 청이가 좋아하는 엿도 사 먹일 수 있었다. 심 봉사의 사랑 속에 심청은 쑥쑥 자라 어느덧 일곱 살이 되었다. 심청이 심 봉사에게 말했다.

“아버지, 말 못하는 까마귀도 날 힘이 생기면 먹이를 물어와 부모님을 섬긴다고 합니다. 아버지 덕으로 이만큼 컸으니 이제 먹을걸 구하는 일은 제게 맡겨 주세요.”

심청의 말을 듣고 심 봉사가 말했다.

“우리 청이, 기특하구나. 하지만 너를 위해 밥을 얻으러 다니는 일은 고생이 아니라 행복이고 보람이니 네 부탁은 들어주기 어렵겠구나.”

“앞 못 보는 아버지께서 밥을 얻으러 가다 넘어져 병이라도 나시면 그 불효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심청의 계속되는 부탁에 심 봉사는 마지못해 허락했고 심청은 아버지를 대신해 밥을 얻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겨울바람이 해진 저고리와 치마를 뚫고 들어왔다. 심청의 가녀린 몸은 사정없이 떨렸고, 짚신이 다 떨어져 드러난 버선 없는 맨발은 꽁꽁 얼었다.

하지만 심청은 아버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밥 짓는 냄새가 나는 부엌에 들어가 말했다.

“혹여 남는 밥을 한 숟가락 나눠 주신다면 추운 날 찬 방에서 기다리시는 부친께서 허기를 면할 수 있겠나이다.”

“에그, 딱해. 밥을 좀 줄 테니 가져가거라.”

심청의 모습을 보는 사람마다 어린 심청의 효심에 감탄하며 아낌없이 먹을 것을 주었다. 이 집 저 집에서 내어 준 나물에 쌀밥, 콩밥, 수수밥이 뒤섞여 형형색색이었다. 이렇게 심 봉사의 밥상에 매일 오곡밥이 올랐다.

“아버지, 따뜻한 물을 국 삼아 천천히 드세요.”

심청은 아버지의 손에 수저를 쥐어 주고 반찬도 올려 주며 심 봉사를 극진히 봉양했다.

고생하는 심청을 보며 심 봉사는 마음이 아팠지만 심청은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오히려 심 봉사를 위로했다.

그리고 열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 삯바느질을 시작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다. 다행히 어머니 곽 씨를 닮아 심청은 바느질 솜씨가 무척 뛰어났다. 부지런하고 알뜰한 심청의 노력 덕분에 심청이 열다섯이 되었을 때부터는 밥을 얻어 오지 않아도 부녀가 충분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