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Мы используем cookie-файлы, чтобы сделать работу LingQ лучше. Находясь на нашем сайте, вы соглашаетесь на наши правила обработки файлов «cookie».


image

왓섭! 공포라디오, 우리 집안 여자들의 촉 이야기|왓섭! 공포라디오

우리 집안 여자들의 촉 이야기|왓섭! 공포라디오

지옥의 편입생님 사연입니다.

<우리 집안 여자들의 촉 이야기>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저에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외할머니는 촉이 좋으신데

보통 인상이 마음에 안 드신다던 연예인들은

전부 감방 신세를 졌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촉이 좋으신데

어머니의 말로는

여성 지인 한정으로 좋다고 하시더군요.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건설 사업으로 한창 잘나가시는

지인분의 집에 갑자기 연락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언니 집에 무슨 일 생길 것 같으니까

모든 금붙이나 값나가는 것들 우리 집에 다 맡겨놔.”

그분은 갑작스러웠지만

평소 친자매처럼 지내는 어머니의 말을 믿고

모든 금붙이, 모피 코트, 엔틱 가구 등

비싼 물건을 저희 집으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차압관이 들이닥쳐

그분 집에 차압 딱지를 붙여놓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 남편이 사업 부진을 숨기고 있었고

그 집은 아무도 모르게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어머니의 촉으로

비싼 물건들은 차압 딱지를 받지 않았고

그분은 그것들을 팔아

간신히 한고비 넘길 수 있었답니다.

후일 어떻게 알았냐고 어머니께 물으니

어머니께서는 그냥 단순히

그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일은 다른 이모의 일인데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포기할까 하던 때

어머니께 고민 상담을 하셨죠.

어머니는 그 얘기를 들으시고는

이모에게 1년 반만 버티라고 하셨고

그 이모는 그 말을 듣고는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정확히 1년 반이 지났을 무렵

그 이모가 저희 집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엄청난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오신 이모는

1년 반 사이에 고객이 엄청 느셔서

직급 또한 두 단계나 성장하신 상태였습니다.

거짓말처럼 일이 잘 풀렸다며

엄마 덕분에 잘 되었다면서 정말 고맙다고 하셨죠.

이 일 또한 나중에 어머니께 물으니

어머니께선 그저 그냥

일 년 반 정도 하면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만 하셨습니다.

이렇듯 어머니께선 촉이 좋으신데

자식이나 남자에게는

이 촉이 먹히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은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기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저 또한 어머니의 촉을 물려받은 건지

어릴 때부터 친구들의 숨겨진 우울증과

가정사를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는 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율 사립 고등학교에서

전학 온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했지만,

으레 대학을 위해 일상을 포기하고

미친 듯이 경쟁과 공부만 보게 하는

성적 지향주의, 학벌주의 사회에 치여

우울증이 심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인 저희 학교에 전학 오게 된 거죠.

한창 내신에 신경 쓰는 고2,

그 친구를 경계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사람을 가리지 않는 저는 그 친구와 금방 친해졌고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정신 상태 때문에 학원엔 다니지 않았는데

저는 다니는 학원이 있어

시험 기간엔 방과 후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시험 기간이 2주 남았을 때

저는 영어학원에서

불현듯 벼락에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그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았고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친구가 전화를 받자마자 어디냐고,

지금 뭐 하고 있냐고 물었고

그 친구는 지금 뛰어내릴 거라며

높은 다리 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의 집은 제가 전에 살고 있던 아파트였고

그 다리가 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7층 정도의 높이라

떨어지면 살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높이였죠.

저는 학원을 박차고 달려나갔고

그 친구를 겨우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시험이 끝난 저는 친구들과 게임을 했는데

이전보다 더 강한 감각이

또 이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아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친구의 휴대폰이 꺼져 있었습니다.

저는 불안하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이틀이 지나서야 이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날 성수대교에 갔다가

경찰한테 잡혀 집에 오게 되었다고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2살이 된 우리는

모종의 사건을 이유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행복하게 지내는 그 친구를 보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가 그때 너를 도울 수 있어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행복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말이죠.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행복의 기분이란 성적이나 돈처럼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압류 딱지로 파산한 이모도

지금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잘 살고 있고

그 친구도 오히려 높은 성적으로 우울증이 심했지만

지금은 행복하니 말이죠.

여러분 행복의 기준은 남의 기준이 아닌,

여러분만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나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우리 집안 여자들의 촉 이야기|왓섭! 공포라디오 My Household Women's Tales of Choc|What's Up! Horror Radio

지옥의 편입생님 사연입니다.

<우리 집안 여자들의 촉 이야기>

외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저에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외할머니는 촉이 좋으신데

보통 인상이 마음에 안 드신다던 연예인들은

전부 감방 신세를 졌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촉이 좋으신데

어머니의 말로는

여성 지인 한정으로 좋다고 하시더군요.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건설 사업으로 한창 잘나가시는

지인분의 집에 갑자기 연락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언니 집에 무슨 일 생길 것 같으니까

모든 금붙이나 값나가는 것들 우리 집에 다 맡겨놔.”

그분은 갑작스러웠지만

평소 친자매처럼 지내는 어머니의 말을 믿고

모든 금붙이, 모피 코트, 엔틱 가구 등

비싼 물건을 저희 집으로 옮겨놓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아침,

차압관이 들이닥쳐

그분 집에 차압 딱지를 붙여놓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 남편이 사업 부진을 숨기고 있었고

그 집은 아무도 모르게 기울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어머니의 촉으로

비싼 물건들은 차압 딱지를 받지 않았고

그분은 그것들을 팔아

간신히 한고비 넘길 수 있었답니다.

후일 어떻게 알았냐고 어머니께 물으니

어머니께서는 그냥 단순히

그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일은 다른 이모의 일인데

일이 잘 풀리지 않아 포기할까 하던 때

어머니께 고민 상담을 하셨죠.

어머니는 그 얘기를 들으시고는

이모에게 1년 반만 버티라고 하셨고

그 이모는 그 말을 듣고는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정확히 1년 반이 지났을 무렵

그 이모가 저희 집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엄청난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오신 이모는

1년 반 사이에 고객이 엄청 느셔서

직급 또한 두 단계나 성장하신 상태였습니다.

거짓말처럼 일이 잘 풀렸다며

엄마 덕분에 잘 되었다면서 정말 고맙다고 하셨죠.

이 일 또한 나중에 어머니께 물으니

어머니께선 그저 그냥

일 년 반 정도 하면 풀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만 하셨습니다.

이렇듯 어머니께선 촉이 좋으신데

자식이나 남자에게는

이 촉이 먹히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은 제 이야기입니다.

저는 기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저 또한 어머니의 촉을 물려받은 건지

어릴 때부터 친구들의 숨겨진 우울증과

가정사를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는 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자율 사립 고등학교에서

전학 온 친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했지만,

으레 대학을 위해 일상을 포기하고

미친 듯이 경쟁과 공부만 보게 하는

성적 지향주의, 학벌주의 사회에 치여

우울증이 심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반 고등학교인 저희 학교에 전학 오게 된 거죠.

한창 내신에 신경 쓰는 고2,

그 친구를 경계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사람을 가리지 않는 저는 그 친구와 금방 친해졌고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정신 상태 때문에 학원엔 다니지 않았는데

저는 다니는 학원이 있어

시험 기간엔 방과 후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시험 기간이 2주 남았을 때

저는 영어학원에서

불현듯 벼락에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명히 그 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았고

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친구가 전화를 받자마자 어디냐고,

지금 뭐 하고 있냐고 물었고

그 친구는 지금 뛰어내릴 거라며

높은 다리 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친구의 집은 제가 전에 살고 있던 아파트였고

그 다리가 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7층 정도의 높이라

떨어지면 살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높이였죠.

저는 학원을 박차고 달려나갔고

그 친구를 겨우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시험이 끝난 저는 친구들과 게임을 했는데

이전보다 더 강한 감각이

또 이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아

전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친구의 휴대폰이 꺼져 있었습니다.

저는 불안하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이틀이 지나서야 이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그날 성수대교에 갔다가

경찰한테 잡혀 집에 오게 되었다고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그래도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2살이 된 우리는

모종의 사건을 이유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행복하게 지내는 그 친구를 보며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가 그때 너를 도울 수 있어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행복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말이죠.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행복의 기분이란 성적이나 돈처럼

숫자로 환산할 수 있는 것에서

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압류 딱지로 파산한 이모도

지금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잘 살고 있고

그 친구도 오히려 높은 성적으로 우울증이 심했지만

지금은 행복하니 말이죠.

여러분 행복의 기준은 남의 기준이 아닌,

여러분만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나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