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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14 - 밀로라드 파비치 [카자르 사전] (Milorad Pavich)

Episode 14 - 밀로라드 파비치 [카자르 사전] (Milorad Pavich)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네 완연히 봄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또 썰렁한 날씨들이 계속 되고 있죠? '올해 봄 농사들을 다 망쳤다' 뭐 이런 얘기들도 들려오는데요. 이런 급변하는 기상들은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좀 좋아하는 그런 날씨입니다. 날씨가 바뀔 때마다 마음이 달라지고 이 천변만화하는 이 기상에 따라서 정신세계도 평소에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기 때문이겠죠? 네, 어제는 바람이 아주 강풍이 불면서 현수막들이 떨고 (요란하게 떨더라고요) 떨고… 혹시 간판들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이런 걱정도 하면서 길을 걸어다녔습니다. 이 파주의 출판단지에 가보면 많은 출판사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거기 보면 어려 건축가들이 작업을 했는데도 설계를 하고 집을 짓고 했는데도 어딘가 비슷한 데가 있어요. 일단 창을 좀 전부들 크게 냈어요. 창을 크게 내고 (시원시원하게) 그리고 내부도 구획을 많이 짓지 않고 건물 내부도 대체로 확트인 그런 건물들이 많습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출판사들이 서울에 있을 때는 넉넉치 못한 살림에 이 좁은 빌딩에 임대를 하거나 사옥이라고 할지라도 넉넉하게 쓰지 못하고 있다가, 땅값이 싼 이 파주에 가서는 마음껏 이제 그 한을 푸는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봤는데요.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출판사의 인테리어 출판사라는 건물… 출판사의 외양은 어때야 하는가… 그런 생각도 하게 됬는데요. 일전에 어떤 건축가 분한테 얘기를 들으니까 이 건축가 분들도 나름대로 한이 많더라고요. 서울에 멋진 건물을 지어놔도 간판이 다 뒤덮어 버린다는 거예요. 간판들이 뒤덮고 그다음에 뭐 창문에다가도 사람들이 뭐 써서 붙이잖아요. 뭐…'태권도' 이렇게 한 글자씩, 창 하나에 한 글자씩 해서 밖에서 보이도록 간판..즉 간판이 건물의 전면.. 파사드라고 하죠, 완전히 뒤덮어버려서 건축가가 원해 의도했던 어떤 건물의 모양은 사라진다는 거에요. 비슷비슷해 보이고 그런다는 것이죠. 그래서 건축가들도 이 파주 출판단지 같은 간판이 건물을 뒤덮어 버리지 않는 그런곳에 가면 그동안 하고자 했으나 못 했던 여러 건축양식들을 거기서 만들어 본다는 것이죠. 하여간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과연 출판에 어울리는 건물들에 대한 고려가 있었을 까…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출판사에는 편집자들이 주로 근무를 하는데, 편집자들이 열린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바람이 불고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꽆이 피고.. 말하자면 현실세계의 변화들.. 기상의 변화들.. 마음을 수런수런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을 편집자들도 보겠죠? 그런게 과연 편집에 좋을까? 그런 생각을 좀 했어요. 왜냐하면 편집자는 출근을 해서 자리에 앉으면 원고를 봅니다. 원고 속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있기도 하고요, 그런가 하면 저 먼 그리스-로마 시대의 신화들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고아의 일생에 대해서 빠져들기도 하죠.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집에 가야할 시간이고, '아! 내가 지금 경기도의 파주라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구나. '이런걸 깨닫고 집에 가는 것.. 이런게 이상적이지 않을 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자면 출판사에는 통유리창은 가능하면 자제하고 그리고 각 편집자들에게는 구획이 지어진.. 진짜 방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기만의 방처럼 느껴지는 어떤 은둔처같은 그런 느낌의 건물 내부 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원고에 집중하는 삶. 원고를.. 원고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다가 잠깐 현실로 돌아가는 삶. 이런게 좀 근사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우리나라의 출판사의 내부를 들어가 보면, 일반 회사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책과 원고가 막 쌓여있다는 거 말고는 무슨 말씀이냐하면 상급자가 하급자를 살펴보기 쉽도록 되어 있어요. 팀장이라던가 이런 분이 계시면 그분 밑에 있는 직원들이 팀장의 눈길 아래에서 일하도록 책상이 모여있죠. 그리고 또 사장님이 있다면, 사장님이 다른 직원들을 보기 쉬운 위치에 있고요. 그런 것은 다른 회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죠. 그러나 저는, 편집자들은 하나의 독자적인 뭐랄까요, 업무단위랄까요.. 이렇게 봐야하는게 아닌가 싶고, 그런 의미에서 편집자들에게 독자적인 좀 자기가 혼자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공간들을 절묘하게 만드는 인테리어 디자인 이런 것들, 그리고 외부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도 잘 느낄 수 없도록 만드는 어떤 공간, 이런게 이상적이지 않을 까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 저는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파리의 가면 있는 갈리마르 같은 명문 출판사들의 방이 꼭 그렇데요. 복도에는 카펫이 깔려있데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카펫이 깔려있고 조명은 약간 어둑하고, 들어가서 미로같은 이 복도를 통해가지고 편집자들로 총하는 것이죠. 방해를 받지 않고.. 편집자을 쉽게 찾아갈 수 없게 되어있다 이런 얘기를 들었고 제가 실제로 가서 본 미국의 어떤 출판사도 그런식으로 돼있었어요. 많은 파티션들로 편집자들이 나눠져 있고, 개개의 편집자가 어떤 작가를 만나거나 그럴때도 상급자가 그것을 알 수 없도록 구획이 지어져 있어요. 그런걸 보고 편집자가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어떤 풍토를 반영해 주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카자르 사전]이라는 책인데 제가 조금 전에 이런 얘기를 왜 이렇게 길게 드렸냐하면은 이 책이야말로 편집자라든다 독자( 편집자도 하나의 독자죠?) 독자들을 정말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그런 소설이거든요. 이 소설은 읽다보면은 진짜 같기도하고 가짜 같기도 하고 어떤 역사 같기도 하고 어떤 판타지 같기은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아주 매혹적인 소설입니다. 네, 이 소설은 한 때 카프카스 지방, 코카서스 지방이라고도 하죠, 여기서 세력을 떨쳤던 카자르 인들에 대한 일종의 역사 소설이라고 봐야될까요? 그런 것인데 사전의 형식으로 돼있습니다. 이렇게만 설명드려서는 이 소설의 매력을 다 말씀드릴 수가 없고요, 이 소설의 작가인 밀로라드 파비치라는 사람은 원래는 아주 유명한 유고슬라비아 (당시엔 유고슬라비아였죠, 지금은 세르비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지역의 시인입니다. 그 지역에선 아주 유명한 시인인데, 이 시인이 첫 번 째로 쓴 소설입니다.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상당히 시적인 뉘앙스를 많이 담고 있는 그런 소설이고요 이 분은 그렇게 때문에 시인이 소설을 쓸 때 생기는 문제들을 사전 소설이란 형식으로 돌파하게 된겁니다. 이야기를 쭉 끌고나가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짤막짤막한 그 에피소드들을 사전 형식으로 배치했는데요.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가서 유대교 버전, 이슬람교 버전, 그리고 기독교 버전 이렇게 세 버전으로 이 카자르 민족에 대한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게 왜 이렇게 세 민족…여러 버저ㄴ으로 나눠졌냐하면은 이 카자르 민족에 얽힌 미스테리 중에 하나는 8, 9 세기 무렵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있는 이 지역의 카자르 민족이 유대교로 개종했다는 설이 파다했습니다.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한데요. 그런데 또 한 편에서는 유대교로 개종한게 아니라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슬람교였다..아직까지 그런 논쟁이 있습니다. 이 군주가 세 종교 중 하나로 개종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자 이들이 개종을 한건데 이 개종의 시기, 이 미스테리한 개종의 시기에 이 민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여러 관점에서 조합한 소설입니다. 기독교의 관점, 이슬람교의 관점, 유대교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각자 자기의 종교로 카간이 개종을 했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게대가 이 소설은 남자 버전과 여자 버전이 따로 있습니다. 제가 갖고있는 것은 남자 버전인데 거의 다르지 않다고 해요. 한 부분 정도가 다르다고 하는데, 여성 버전은 저는 구해보질 못 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여간 아주 독측한 형식을 가진 소설이고요, 그 사건 자체도 좀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독서 습관을 가진분들이 읽어나가기에는 좀 어려울 수도 있는 그런 소설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전체를 뭐 쭉 읽어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고요 중간에 어떤 시적인.. 작가의 통찰이 빛나는 부분들을 제가 골라서 몇 부분을 읽어 드릴까 합니다. 그럼 일단 한번 한 부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아테 - 카자르의 공주, 카자르 민족의 개종과 관련된 논쟁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아테라는 이름은 카자르 민족의 네 가지 의식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경마에 나선 말이 경주를 시작하기 전에 눈가리개를 하듯이, 아테는 밤이면 양쪽 눈꺼플 위에 각각 단어 한 자를 써 두었다. 그 글자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된 카자르 알파벳에서 따온 것으로, 그 글자를 읽는 순간, 즉시 목숨을 잃게 되는 그런 글자였다. 눈먼 장님이 그 글자를 써 주었으며, 아침에 공주가 미처 목욕하기 전에 시중을 들기 위해 찾아온 시녀들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래서 공주가 잠자는 동안 이 글자들이 공주를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카자르 민족은 사람이 자고 있을 때가 가장 취약하고 해를 입기 쉬운 때라고 믿고 있었다. 아테는 아름답고 경건한 여인이었으며 그 글자들은 그녀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아테의 식탁 위에는 언제나 일곱 가지 종류의 소금이 놓여 있었다. 아테는 생선을 먹을 때마다 언제나 먼저 손가락에 소금을 묻히고는 했는데, 생선 한 조각을 먹기 전에 매번 다른 소금을 묻혔다고 한다. 아테는 그런 식으로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아테는 일곱 가지 종류의 소금을 먹었던 것처럼, 얼굴도 일곱 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전설에 따르면 아테는 아침마다 거울을 집어 들고 자리에 앉아서 얼굴을 그렸는데, 매번 다른 시종이나 시녀가 들어와서 얼굴 표정을 취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테는 아침마다 새로운, 지금까지 한 번도 보았던 적이 없는 새로운 얼굴 모습을 창조하곤 했다.

또다른 이야기를 빌릴 것 같으면 아테는 결코 미인이 아니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거울 앞에서 얼굴을 단련했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표정과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 이러한 미용 훈련은 어마어마한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주가 방으로 돌아와서 긴장을 풀자마자 그녀의 아름다움은 소금처럼 녹아내렸다. 9 세기 경의 비잔틴 황제는 유명한 철학자 포티우스 주교를 묘사할 때 '카자르의 얼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주교가 카자르 민족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가 위선자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다우브마누스에 따르면 두가지 의견이 모두다 틀린 것이다. '카자르 얼굴'이라는 용어는 아테 공주를 포함한 모든 카자르 민족의 특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들은 아침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처럼 완전히 새롭고 낯선 얼굴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친척들 조차도 서로를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이러한 내용과 정반대의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에 따르자면 카자르 민족은 얼굴 생김이 모두 똑같고 결코 바뀌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고 혼란이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주장이 사실이던 간에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카자르 민족의 외모는 기억하기 어려운 얼굴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테 공주가 카간의 궁전에서 벌어진 카자르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는 전설이나, 심지어 세 명의 아테 공주가 있었다는 전설 역시 설명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쓰여진 기독교 자료에는 카자르 궁전에 아테 공주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하지만 카자르 사전에 따르면 그리스와 슬라브의 수도사들 중에서 아테 공주를 숭배하는 종파 같은 것이 한 때 존재 했다고 한다. 이러한 종파가 생겨난 것은 카자르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아테가 유대 신학자들을 물리치고 카간과 함께 기독교를 채택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간이 아테의 아버지인지 남편인지, 혹은 오빠인지는 확실히 알 수 가 없다. 아테 공주의 기도문 중에 두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다. 비록 그 기도문이 성전으로 명명 받았던 일은 없지만 다우브마누스는 그 기도문을 '나의 아버지와 아베마리아'라고 불렀다. 두 기도문 중에서 첫 번째 것은 다음과 같다.

나의 아버지.. 우리의 배위에 탄 선원은 개미처럼 무리를 지어 몰려다닙니다. 오늘 아침에 나는 머리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선원들은 깨끗한 돗대위로 올라가서 마치 달콤한 포도 넝쿨을 개미둑 안으로 떨어뜨리 듯이 초록색 돗을 벗겨냈습니다. 키잡이 들은 배의 방향을 바꾸려고 키를 떼어낼 듯이 잡아 당기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마치 일주일동안 먹고 살기 위한 노획물을 손에 넣으려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중에서 아주 허약한 선원들은 소금기에 절어있는 밧줄을 잡아당기며 물위에 떠있는 우리들의 집인 배의 선창 밑으로 모습을 감춥니다. 오로지 아늬 아버지이신 그대만이 그들과 같은 굶주림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들이 필사적으로 배를 보러갈 때 나의 마음은 어느 사이에 당신에게, 나의 유일하신 아버지에게로 향해있습니다. 당신의 양식은 산산히 흩어지는 바람일 것입니다.

아테 공주의 두 번 째 기도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자신의 '카자르 얼굴'에 대한 설명인 것 같다. 나는 어머니의 삶을 외워 왔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한 시간 씩 거울 앞에서, 연극배우처럼 어머니 역할을 연기합니다. 벌써 몇 년 동안이나 날마다 그렇게 해왔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실내복을 걸치고 어머니의 부채를 쥐고 어머니처럼 머리카락을 털모자 모양으로 치장합니다. 나는 또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머니처럼 행동합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잠자리에 들 때에도 그렇게 합니다. 열정을 느낄 때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내 자긴의 어머니가 됩니다. 내가 어머니의 역할을 너무 잘하다 보니, 나 자신의 열정은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어머니의 열정만이 남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가 내 사랑의 느낌들을 모조리 훔쳐 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어머니 자신의 어머니에게 도둑질당한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떤사람이 내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새롭고 더욱 나은 모습으로 태어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테 공주는 영원히 죽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의 죽음은 기록으로 남아, 섬세한 장식이 달려 있는 칼에 새겨져 있다. 좀처럼 믿겨지지 않는 이 별개의 이야기를 다우브마누스는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테 공주가 실제로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만약 공주가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보아야 할 것 이다. 포도주 때문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테 공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해가 될 리도 없다.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빠른 거울과 느린 거울

어느 이른 봄날에 아테 공주가 말했다. "나는 내 옷에 길이 드는 것처럼, 내 생각에 길이 들게 되었다. 내 생각의 허리선은 언제나 똑같으며, 나는 내 생각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갈림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내 생각 때문에 갈림길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하루는 아테 공주의 시종들이 공주를 즐겁게 해 줄 생각으로 두 개의 거울을 선물했다. 그 거울의 모양은 다른 카자르 거울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반짝거리는 소금으로 만들어진 거울이었는데, 하나는 빠르고 다른 하나는 느렸다. 빠른 거울에 무엇인가를 비추어 보면, 그 속의 세상은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가 있었다. 느린 거울은 빠른 거울이 진 빚을 갚아 주는 셈이었다. 그것은 현재를 중심을 해서, 앞에 말한 거울이 빠른 만큼이나 이 거울은 느렸기 때문이었다. 시종들이 아테 공주에게 거울을 가져다 주었을 때, 공주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눈꺼풀의 글자들도 그대로 씌어져 있었다. 아테 공주는 느린 거울에 비친, 눈을 감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아테 공주는 눈을 한 번 깜빡거린 다음, 다시 눈을 깜빡거리기 전에 목숨을 잃었다. 아테 공주가 난생 처음 자기의 눈꺼풀에 씌어진 죽음의 글자를 읽게 된 것은, 그녀가 죽기 전에 그리고 죽은 후에 눈을 깜빡거렸기 때문이며 그것이 거울에 비쳤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온 글자와 미래에서 온 글자가 동시에 그녀를 죽인 것이다.

네, 잘 들어보셨습니까? 어떤 분위기인지 대충 감을 잡으셨을 것 같아요. 아테 공주는 이 소설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신비로운 어떤 여성. 어떻게 보면 여신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여신 캐릭터 같기도 하고요. 특히 여기에는 참 흥미로운 이미지들이 나오죠. 자기 눈꺼풀에 아주 위험한 글자를 적고 잔다.. 그것이 잠든동안 그녀를 보호해 준다ㅏ라던지, 또 빠른 거울과 느린 거울을 통해서 과거와 미래를 보고, 그런데 과거와 미래의 자기 눈꺼풀을 보고, 즉 위험한 글자, 자기 과거 자기 미래에서 온 글자들이 이 여자를 죽인다라던가….이런 거 상당히 신비롭죠. 이 인물에 대한 얘기는 계속해서 반복이 되는데요 이 인물 말고도 브란코비치라던가 몇 명 중요한 인물들, 개종사건에 얽힌 인물들인데, 우리가 중남미의 어떤 신비로운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해서는 많이 익숙해져 있죠? 약간 유머가 섞인 그런..황당한 그런 얘기인데 이 세르비아라던가 발칸반도 쪽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둡습니다. 어두우면서 신비롭고 또 어떤..음울한 미스테리랄까요? 이런 것들이 있죠. 우리가 이쪽을 생각하면 조금 전에 제가 배경음악으로 깔아드린 것은 그리스의 사비나 예나토라는 분의 노래였는데요. 이쪽 발칸 반도 쪽 생각하면은 떠오르는 작가들이 있죠. 영화 쪽에서는 에밀 쿠스리차 감독, [집시의 시간]같은 영화를 만들었던 에밀 쿠스리차 감독이 생각이 나고요, 그 정서도 좀 비슷하죠. 약간 신비로운 일들, 이상한 일들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어떤 슬픔이 깃들어있는 정도들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고요. 알바니아 역시 발칸 반도 쪽에 있는 나라죠? 알바니아도 종교적으로 상당히 복잡한데요. 그 발칸 반도 전체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이 알바니아의 이스마엘 카다래 같은 작가, 아주 좋은 작가죠? [부서진 서열]같은 소설.. 이런 것들 보면 알바니아 지역에서 복수.. 카눈이라고 그러죠 관습법인 카눈이라는 복수에 대한 얘기인데요, 복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됩니다. 한 번 복수하면 다른 사람이 복수하고, 또 그 복수가 복수로 이어지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이것이 어떤 인간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를 보더라도 이 책이 갖고 있는 뭐랄까요, 원시적인 위험한 매력..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 그러면 조금 전에는 아테 공주에 대한 얘기인데요, 이번에는 개종을 결심을 했다는 카간이라는 카자르의 군주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이슬람교 쪽으로 전승되어온 그린북에 나와있는 카간에 대한 내용입니다.

카간 - 카자르 군주를 의미한다, 타타르어 '칸'에서 온 단어인데 타타르어로 '칸'은 왕자 라는 뜻이다. 이븐 파들란의 주장에 따르면 카자르 민족은 카간을 강바닥에 묻었다. 카간은 언제나 또 한 명의 군주와 권력을 나누었고, 단지 제일 먼저 아침 문안 인사를 받는 정도의 권워만을 더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카간은 유서 있는 왕가에서 나왔는데, 이 가문은 아마도 터키 계통이었을 것이다. 그 반면에 왕 혹은 '베이' 라고 불리던 카간의 동료 군주는 카자르 제국의 평민 출신이었다. 9세기에 씌어진 야쿠비 문서를 보면, 카간은 6세기에 이미 칼리프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았다. 카자르 민족의 공동 통치에 대하여, 알 이스타흐리가 가장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아랍 력으로 320년에 씌어진 이 기록은 다음과 같다.

카자르의 정치와 행정에서 그 군주는 카자르 민족의 카간이라고 불린다. 이 사람은 카자르 왕 '베이'보다 지위가 더욱 높다. 하지만 카간을 임명하는 것은 바로 왕이다. 카간을 새로 임명하고 싶을 때, 왕은 카간으로 지명당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서 비단 조각으로 목을 조른다.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이 거의 숨이 끓어질 지경에 이르면 '얼마나 오랫동안 지배할 생각입니까?' 하고 묻는다. 카간으로 지명당한 사람은 '얼마만큼이오' 라고 대답 한다.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이 대답한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죽는다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때가 되어도 죽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말한 그 해를 채우자마자 살해된다. 카간은 유력한 집안 사람들의 거처에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카간에게는 명령을 내릴 권리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카간올 존경했으며 카간 앞에서는 모두가 엎드려 있었다. 권력이나 돈이 없어도, 명망이 높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한 명을 골라 카간으로 내세웠다. 누군가가 그 자리를 떠맡을 차례가 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재산 정도를 조사해 보지 않고 카간으로 내세웠다. 이것은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녀는 어떤 젊은이가 길에서 빵을 파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카간이 죽자, 그 자리에 오를 만한 사람은 이 젊은 친구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이슬람 교도였고 카간이라는 직위는 유대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카간의 동료 군주는 탁월한 전사였다. 한 번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적으로부터 약탈해 온 노획물 중에 뻐꾸기가 있었는데, 그 뻐꾸기가 울면 땅 밑에 있던 식수가 우물이 되어 솟아 나왔다. 이 뻐꾸기를 빼앗기게 되자, 적군들은 카자르 민족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함께 살게 되었다.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과거의 경우에 일곱 살을 먹을 동안, 이제는 한 살을 먹게 되었다. 카자르 사람들은 달력을 고쳐야만 했다. 새로 만든 달력은 기본 단위가 3개월로 구성되어 있었다. 1월은 해의 달, 2월은 달의 달, 3월은 달빛이 없는 달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20일 만에 태어났다. 여름 동안 곡식을 아홉 번이나 거두어들였으며, 그런 다음에는 겨울이 계속해서 아홉 번이나 찾이왔기 때문에 여름에 거두어들인 곡식을 먹으면서 살았다.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번 잠자리에 들었고, 열다섯 번 음식을 먹었다. 우유는 달빛이 없는 밤에만 신선한 상태를 유지했는데, 달빛이 없는 밤이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디에 길이 나 있었는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아침이 밝아오면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아볼 수 없었다. 밤이 계속되는 동안 부쩍 자라 버린 아이들도 있고 늙어 버린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이 다시 다가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이 세대를 보지 못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꿈 사냥꾼들이 새겨 넣었던 글자들은 점점 더 커졌다. 글자 가장자리까저 가보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이제 책으로는 그 크기를 감당해 낼 수 없었으므로, 꿈 사냥끈들은 산비탈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강물은 넓은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홀러갔다.

어느 날 밤 말들이 달빛 아래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 천사가 카간의 꿈에 나타나 이런 말을 했다.

"주님은 당신의 행동에 기뻐하지시 않고 당신의 속마음에 기뼈하십니다." 카간은 꿈 사냥꾼을 불러 그 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째서 카자르인들에게 불행이 닥쳤는지 물어 보았다. 꿈 사냥꾼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한 사람이 오고 있는 중이며, 시간은 그것의 속도에 맞추어 흘러가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카간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점점 더 작아졌으며,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카간은 카자르 민족 사제와 꿈 사냥꾼을 내보내고 유대인, 아랍인, 그리스인을 각각 한 사람씩 불러다가 자신의 꿈을 설명하도록 명령했다. 카간은 자기 자신은 물론 국민들까지 포함하여, 세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한 해몽을 내놓는 사람을 따라 개종하기로 결정했다. 카간의 궁정에서 세 가지 종교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고, 카간은 아랍측 참석자인 이븐 코라의 주장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븐 코라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질문에 대해 가장 만족스러운 대답을 제시했다.

"우리 눈 뒤쪽의 완전한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꿈을 밝게 비추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의 빛인가? 혹은 날도 밝기 전에 우리가 미리 끌어다 쓰는 미래의 빛인가?" "어느 경우라도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빛이지요. 그러므로 어느 대답이 옳은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질문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니까요." 이슬람교를 도입한 카간의 이름은 알 수가 없다. 그 카간은 엘리프 표시 아래 묻혔다고 알려져 있다. 다른 자료에 따르면, 그 사람은 원래 이름이 카티브였는데, 신발을 벗고 발을 깨끗하게 씻은 후에 모스크로 걸어 들어갔다고 한다. 그 사람이 기도를 마치고 태양 속으로 들어가자, 그의 이름과 신발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질문.. 대단히 중요한 질문으로 이 소설에서 반복되고 있는데요. '우리 눈 뒤쪽에 완전한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꿈을 밝게 비추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의 빛인가? 혹은 날도 밝기 전에 우리가 미리 끌어다 쓰는 미래의 빛인가?' 굉장히 시적인 질문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어쩌면 천체물리학 같은 거 공부할 때 우리가 우리 눈에 와닿이 빛이 어디있나를 생각하잖아요. 그것은 수백만광년 떨어진 별에서 시작된 빛일 수도 있는거죠. 과거에서 오는 빛일수도 있고요. 그리고 지구가, 아니 이 우주가 어떤 하나의 점에서 창조되었다는 빅뱅설 같은 걸 믿는다면 언젠가 지구는 다시 하나의 점으로.. 전체 우주와 함께 수축되겠죠? 줄어들겠죠? 그런걸 보자면 그것은 또 미래에서 오는 빛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런 천체물리학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꿈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어떤 특성, 미래를 예시하기도 하고 또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들을 다시 되돌이키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죠? 이 소설에서는 그런 꿈이라는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게 나오는데요. 자 마지막으로 읽어드릴 부분 역시 꿈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거 상당히 흥미로운 꿈 사냥꾼이라는 존재도 이 소설에서는 중요한데, 이것은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것입니다. 이것을 읽어드리면서 저는 그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스킬라는 언제나 모든 상처는 새로운 심장이 되어 혼자 고동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사브르 검을 가지고 이러한 상처들 위에 십자가를 그렸다. 스킬라는 코에 털이 나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으로 스킬라를 알아보고 그를 피했다. 아베르키에 스킬라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음악가이면서 꿈을 읽을 줄 알았던 유수프 마수디가 남긴 것이다. 유수프 마수디와 아베르키에 스킬라는 이미 말한 것처럼, 콘스탄티노플의 터키 정부에 파견된 외교관 밑에서 하인으로 일했는데 마수디는 사람들의 꿈을 따라 여행하는 유령을 쫓아다녔다. 마수디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꿈을 꾸고 그 중 한 사람의 꿈이 다른 한 사람의 현실을 구성하는 경우, 꿈의 작은 부분이 언제나 남겨진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꿈의 아이들'이다. 꿈은 물론 꿈에 나오는 사람의 현실보다 더욱 짧다. 하지만 꿈은 언제나 아주 깊은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현실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약간의 찌꺼기가 남게 된다. 이러한 '잉여물질'은 꿈에 나오는 사람의 현실 속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제3의 인물의 현실 속으로 흘러 들어가 거기에 붙어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제3의 인물은 엄청난 어려움과 변화를 겪게 된다. 제3의 인물은 처음의 두 사람보다 더욱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인물의 자유의지는 다른 두 사람에 비해 두 배는 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하나의 꿈에서 다른 꿈으로 흘러가던 물질과 힘의 잉여가 이제 제3자의 영혼 속을 흘러 들었으므로,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일종의 양성체가 되어 '잉여물질'을 넘겨 준 두 사람에게 순간순간 번갈아 가면서 기울기 때문이다.


Episode 14 - 밀로라드 파비치 [카자르 사전] (Milorad Pavich) Episode 14 - Milorad Pavich [Khazar Dictionary] (Milorad Pavich)

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작가 김영하입니다. 네 완연히 봄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또 썰렁한 날씨들이 계속 되고 있죠? Yes, I thought it was definitely spring, but the chilly weather continues, right? '올해 봄 농사들을 다 망쳤다' 뭐 이런 얘기들도 들려오는데요. I hear stories like 'I ruined all the farming this spring'. 이런 급변하는 기상들은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좀 좋아하는 그런 날씨입니다. These rapidly changing weather is actually one of my personal favorites. El clima que cambia rápidamente es en realidad el tipo de clima que personalmente me gusta un poco. 날씨가 바뀔 때마다 마음이 달라지고 이 천변만화하는 이 기상에 따라서 정신세계도 평소에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기 때문이겠죠? It must be because your mind changes every time the weather changes, and according to this weather, you experience things that you cannot normally experience in your mental world, right? 네, 어제는 바람이 아주 강풍이 불면서 현수막들이 떨고 (요란하게 떨더라고요) 떨고… 혹시 간판들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이런 걱정도 하면서 길을 걸어다녔습니다. 이 파주의 출판단지에 가보면 많은 출판사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If you go to Paju's publishing complex, there are many publishers. 거기 보면 어려 건축가들이 작업을 했는데도 설계를 하고 집을 짓고 했는데도 어딘가 비슷한 데가 있어요. If you look there, even though young architects worked, they designed and built houses, there is something similar. 일단 창을 좀 전부들 크게 냈어요. 창을 크게 내고 (시원시원하게) 그리고 내부도 구획을 많이 짓지 않고 건물 내부도 대체로 확트인 그런 건물들이 많습니다. There are many such buildings with large windows (refreshingly cool), and the inside of the building is largely open without too many compartments. 그런 생각을 했어요. 출판사들이 서울에 있을 때는 넉넉치 못한 살림에 이 좁은 빌딩에 임대를 하거나 사옥이라고 할지라도 넉넉하게 쓰지 못하고 있다가, 땅값이 싼 이 파주에 가서는 마음껏 이제 그 한을 푸는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봤는데요. When publishers were living in Seoul, they could not afford to rent out this small building or use it even if it was an office building.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출판사의 인테리어 출판사라는 건물… 출판사의 외양은 어때야 하는가… 그런 생각도 하게 됬는데요. The interior of a publishing house The building called a publishing house... What should a publisher look like... That's what got me thinking. 일전에 어떤 건축가 분한테 얘기를 들으니까 이 건축가 분들도 나름대로 한이 많더라고요. I heard from an architect the other day, and these architects also had a lot of regrets in their own way. 서울에 멋진 건물을 지어놔도 간판이 다 뒤덮어 버린다는 거예요. 간판들이 뒤덮고 그다음에 뭐 창문에다가도 사람들이 뭐 써서 붙이잖아요. Signs cover it, and then people write something on the windows and put it on. 뭐…'태권도' 이렇게 한 글자씩, 창 하나에 한 글자씩 해서 밖에서 보이도록 간판..즉 간판이 건물의 전면.. 파사드라고 하죠, 완전히 뒤덮어버려서 건축가가 원해 의도했던 어떤 건물의 모양은 사라진다는 거에요. What… 'Taekwondo' is written one letter at a time, one letter per window, so that it can be seen from the outside.. In other words, the signboard is the front of the building.. It is called the façade. 비슷비슷해 보이고 그런다는 것이죠. It's just that they look and feel the same. 그래서 건축가들도 이 파주 출판단지 같은 간판이 건물을 뒤덮어 버리지 않는 그런곳에 가면 그동안 하고자 했으나 못 했던 여러 건축양식들을 거기서 만들어 본다는 것이죠. 하여간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과연 출판에 어울리는 건물들에 대한 고려가 있었을 까…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요.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출판사에는 편집자들이 주로 근무를 하는데, 편집자들이 열린 커다란 통유리창으로 바람이 불고 그리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비가 내리고 눈이 내리고 꽆이 피고.. 말하자면 현실세계의 변화들.. 기상의 변화들.. 마음을 수런수런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을 편집자들도 보겠죠? 그런게 과연 편집에 좋을까? 그런 생각을 좀 했어요. 왜냐하면 편집자는 출근을 해서 자리에 앉으면 원고를 봅니다. Because the editor goes to work and sits down to look at the manuscript. 원고 속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있기도 하고요, 그런가 하면 저 먼 그리스-로마 시대의 신화들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떤 고아의 일생에 대해서 빠져들기도 하죠.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집에 가야할 시간이고, '아! Then, when you suddenly come to your senses, it's time to go home, and you're like, 'Ah! 내가 지금 경기도의 파주라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구나. '이런걸 깨닫고 집에 가는 것.. 이런게 이상적이지 않을 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러자면 출판사에는 통유리창은 가능하면 자제하고 그리고 각 편집자들에게는 구획이 지어진.. 진짜 방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기만의 방처럼 느껴지는 어떤 은둔처같은 그런 느낌의 건물 내부 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원고에 집중하는 삶. 원고를.. 원고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다가 잠깐 현실로 돌아가는 삶. Manuscript.. A life that goes back to reality for a while after living in the world of manuscripts. 이런게 좀 근사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우리나라의 출판사의 내부를 들어가 보면, 일반 회사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If you look into the inside of a publishing house in Korea, it is not much different from a regular company. 책과 원고가 막 쌓여있다는 거 말고는 무슨 말씀이냐하면 상급자가 하급자를 살펴보기 쉽도록 되어 있어요. 팀장이라던가 이런 분이 계시면 그분 밑에 있는 직원들이 팀장의 눈길 아래에서 일하도록 책상이 모여있죠. If there is a team leader or someone like this, the desks are gathered so that the employees under him work under the team leader's eyes. 그리고 또 사장님이 있다면, 사장님이 다른 직원들을 보기 쉬운 위치에 있고요. And again, if there is a boss, the boss is in a position where it is easy to see other employees. 그런 것은 다른 회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죠. It's not that different from other companies. 그러나 저는, 편집자들은 하나의 독자적인 뭐랄까요, 업무단위랄까요.. 이렇게 봐야하는게 아닌가 싶고, 그런 의미에서 편집자들에게 독자적인 좀 자기가 혼자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공간들을 절묘하게 만드는 인테리어 디자인 이런 것들, 그리고 외부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도 잘 느낄 수 없도록 만드는 어떤 공간, 이런게 이상적이지 않을 까 이런 생각을 해봤는데, 저는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파리의 가면 있는 갈리마르 같은 명문 출판사들의 방이 꼭 그렇데요. 복도에는 카펫이 깔려있데요. There is a carpet in the hallway. 소리가 나지 않도록.. 카펫이 깔려있고 조명은 약간 어둑하고, 들어가서 미로같은 이 복도를 통해가지고 편집자들로 총하는 것이죠. 방해를 받지 않고.. 편집자을 쉽게 찾아갈 수 없게 되어있다 이런 얘기를 들었고 제가 실제로 가서 본 미국의 어떤 출판사도 그런식으로 돼있었어요. 많은 파티션들로 편집자들이 나눠져 있고, 개개의 편집자가 어떤 작가를 만나거나 그럴때도 상급자가 그것을 알 수 없도록 구획이 지어져 있어요. 그런걸 보고 편집자가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어떤 풍토를 반영해 주는 인테리어 디자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카자르 사전]이라는 책인데 제가 조금 전에 이런 얘기를 왜 이렇게 길게 드렸냐하면은 이 책이야말로 편집자라든다 독자( 편집자도 하나의 독자죠?) 독자들을 정말 다른 세계로 데려가는 그런 소설이거든요. It's a novel that really takes readers to another world. 이 소설은 읽다보면은 진짜 같기도하고 가짜 같기도 하고 어떤 역사 같기도 하고 어떤 판타지 같기은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아주 매혹적인 소설입니다. This novel is a very fascinating novel that takes us to a space that is real, fake, historical, and fantasy. 네, 이 소설은 한 때 카프카스 지방, 코카서스 지방이라고도 하죠, 여기서 세력을 떨쳤던 카자르 인들에 대한 일종의 역사 소설이라고 봐야될까요? Yes, this novel was once called the Caucasus, should it be regarded as a kind of historical novel about the Khazars who were influential here? 그런 것인데 사전의 형식으로 돼있습니다. 이렇게만 설명드려서는 이 소설의 매력을 다 말씀드릴 수가 없고요, 이 소설의 작가인 밀로라드 파비치라는 사람은 원래는 아주 유명한 유고슬라비아 (당시엔 유고슬라비아였죠, 지금은 세르비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I can't tell you all the charm of this novel by just explaining it like this. 이 지역의 시인입니다. He is a local poet. 그 지역에선 아주 유명한 시인인데, 이 시인이 첫 번 째로 쓴 소설입니다.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은 상당히 시적인 뉘앙스를 많이 담고 있는 그런 소설이고요 이 분은 그렇게 때문에 시인이 소설을 쓸 때 생기는 문제들을 사전 소설이란 형식으로 돌파하게 된겁니다. 이야기를 쭉 끌고나가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짤막짤막한 그 에피소드들을 사전 형식으로 배치했는데요. 거기에서 좀 더 나아가서 유대교 버전, 이슬람교 버전, 그리고 기독교 버전 이렇게 세 버전으로 이 카자르 민족에 대한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Going further from there, we are talking about the Khazar people in three versions: a Jewish version, a Muslim version, and a Christian version. 이게 왜 이렇게 세 민족…여러 버저ㄴ으로 나눠졌냐하면은 이 카자르 민족에 얽힌 미스테리 중에 하나는 8, 9 세기 무렵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있는 이 지역의 카자르 민족이 유대교로 개종했다는 설이 파다했습니다.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한데요. It is also accepted as orthodoxy. 그런데 또 한 편에서는 유대교로 개종한게 아니라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슬람교였다..아직까지 그런 논쟁이 있습니다. 이 군주가 세 종교 중 하나로 개종을 하겠다고 결심을 하자 이들이 개종을 한건데 이 개종의 시기, 이 미스테리한 개종의 시기에 이 민족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가 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여러 관점에서 조합한 소설입니다. 기독교의 관점, 이슬람교의 관점, 유대교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각자 자기의 종교로 카간이 개종을 했다..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게대가 이 소설은 남자 버전과 여자 버전이 따로 있습니다. 제가 갖고있는 것은 남자 버전인데 거의 다르지 않다고 해요. The one I have is the male version, but they say it's not that different. 한 부분 정도가 다르다고 하는데, 여성 버전은 저는 구해보질 못 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여간 아주 독측한 형식을 가진 소설이고요, 그 사건 자체도 좀 흥미롭습니다. Anyway, it's a novel with a very unique format, and the incident itself is a bit interesting. 그러나 일반적인 독서 습관을 가진분들이 읽어나가기에는 좀 어려울 수도 있는 그런 소설입니다. However, it is such a novel that it may be a bit difficult for those with normal reading habits to read. 그래서 이 소설은 전체를 뭐 쭉 읽어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고요 중간에 어떤 시적인.. 작가의 통찰이 빛나는 부분들을 제가 골라서 몇 부분을 읽어 드릴까 합니다. So, there is no point in reading the entire novel, and in the middle, I would like to pick and read a few of the parts where the writer's insight shines. 그럼 일단 한번 한 부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So let's read one part and share the story.

아테 - 카자르의 공주, 카자르 민족의 개종과 관련된 논쟁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Athe - Khazar princess, who played a decisive role in the controversy over the conversion of the Khazar people. 아테라는 이름은 카자르 민족의 네 가지 의식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경마에 나선 말이 경주를 시작하기 전에 눈가리개를 하듯이, 아테는 밤이면 양쪽 눈꺼플 위에 각각 단어 한 자를 써 두었다. Just as a horse in a race puts on a blindfold before starting a race, Ate wrote a word on each of his eyelids at night. 그 글자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사용이 금지된 카자르 알파벳에서 따온 것으로, 그 글자를 읽는 순간, 즉시 목숨을 잃게 되는 그런 글자였다. The letters were taken from the Khazar alphabet, which was banned for use because it was dangerous, and the moment you read the letter, it was such a letter that you would lose your life immediately. 눈먼 장님이 그 글자를 써 주었으며, 아침에 공주가 미처 목욕하기 전에 시중을 들기 위해 찾아온 시녀들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래서 공주가 잠자는 동안 이 글자들이 공주를 적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카자르 민족은 사람이 자고 있을 때가 가장 취약하고 해를 입기 쉬운 때라고 믿고 있었다. 아테는 아름답고 경건한 여인이었으며 그 글자들은 그녀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아테의 식탁 위에는 언제나 일곱 가지 종류의 소금이 놓여 있었다. There were always seven kinds of salt on Athe's table. 아테는 생선을 먹을 때마다 언제나 먼저 손가락에 소금을 묻히고는 했는데, 생선 한 조각을 먹기 전에 매번 다른 소금을 묻혔다고 한다. 아테는 그런 식으로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아테는 일곱 가지 종류의 소금을 먹었던 것처럼, 얼굴도 일곱 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전설에 따르면 아테는 아침마다 거울을 집어 들고 자리에 앉아서 얼굴을 그렸는데, 매번 다른 시종이나 시녀가 들어와서 얼굴 표정을 취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테는 아침마다 새로운, 지금까지 한 번도 보았던 적이 없는 새로운 얼굴 모습을 창조하곤 했다.

또다른 이야기를 빌릴 것 같으면 아테는 결코 미인이 아니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거울 앞에서 얼굴을 단련했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표정과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 이러한 미용 훈련은 어마어마한 육체적 노동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주가 방으로 돌아와서 긴장을 풀자마자 그녀의 아름다움은 소금처럼 녹아내렸다. 9 세기 경의 비잔틴 황제는 유명한 철학자 포티우스 주교를 묘사할 때 '카자르의 얼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그것은 주교가 카자르 민족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가 위선자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다우브마누스에 따르면 두가지 의견이 모두다 틀린 것이다. '카자르 얼굴'이라는 용어는 아테 공주를 포함한 모든 카자르 민족의 특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들은 아침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처럼 완전히 새롭고 낯선 얼굴로 하루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친척들 조차도 서로를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이러한 내용과 정반대의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에 따르자면 카자르 민족은 얼굴 생김이 모두 똑같고 결코 바뀌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고 혼란이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주장이 사실이던 간에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Whichever claim is true, the conclusion is the same. 카자르 민족의 외모는 기억하기 어려운 얼굴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테 공주가 카간의 궁전에서 벌어진 카자르 논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얼굴을 보여주었다는 전설이나, 심지어 세 명의 아테 공주가 있었다는 전설 역시 설명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 쓰여진 기독교 자료에는 카자르 궁전에 아테 공주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하지만 카자르 사전에 따르면 그리스와 슬라브의 수도사들 중에서 아테 공주를 숭배하는 종파 같은 것이 한 때 존재 했다고 한다. However, according to the Khazar dictionary, there was once a sect that worshiped Princess Athe among Greek and Slavic monks. 이러한 종파가 생겨난 것은 카자르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아테가 유대 신학자들을 물리치고 카간과 함께 기독교를 채택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간이 아테의 아버지인지 남편인지, 혹은 오빠인지는 확실히 알 수 가 없다. 아테 공주의 기도문 중에 두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남아있다. Two of Princess Athe's prayers have been translated into Greek and have survived to this day. 비록 그 기도문이 성전으로 명명 받았던 일은 없지만 다우브마누스는 그 기도문을 '나의 아버지와 아베마리아'라고 불렀다. 두 기도문 중에서 첫 번째 것은 다음과 같다.

나의 아버지.. 우리의 배위에 탄 선원은 개미처럼 무리를 지어 몰려다닙니다. My father... Sailors aboard our ships swarm like ants. 오늘 아침에 나는 머리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선원들은 깨끗한 돗대위로 올라가서 마치 달콤한 포도 넝쿨을 개미둑 안으로 떨어뜨리 듯이 초록색 돗을 벗겨냈습니다. 키잡이 들은 배의 방향을 바꾸려고 키를 떼어낼 듯이 잡아 당기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The helmsman is struggling, tugging at the rudder to change the direction of the boat. 그 모습은 마치 일주일동안 먹고 살기 위한 노획물을 손에 넣으려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중에서 아주 허약한 선원들은 소금기에 절어있는 밧줄을 잡아당기며 물위에 떠있는 우리들의 집인 배의 선창 밑으로 모습을 감춥니다. 오로지 아늬 아버지이신 그대만이 그들과 같은 굶주림을 느낄 수 없습니다. Only you, our Father, cannot feel the same hunger as them. 그들이 필사적으로 배를 보러갈 때 나의 마음은 어느 사이에 당신에게, 나의 유일하신 아버지에게로 향해있습니다. 당신의 양식은 산산히 흩어지는 바람일 것입니다.

아테 공주의 두 번 째 기도문에 나오는 이야기는 자신의 '카자르 얼굴'에 대한 설명인 것 같다. The story in Princess Ate's second prayer seems to be an explanation of her 'Khazar face'. 나는 어머니의 삶을 외워 왔습니다. 그리고 아침마다 한 시간 씩 거울 앞에서, 연극배우처럼 어머니 역할을 연기합니다. 벌써 몇 년 동안이나 날마다 그렇게 해왔습니다. I've been doing that every day for years now. 나는 어머니의 실내복을 걸치고 어머니의 부채를 쥐고 어머니처럼 머리카락을 털모자 모양으로 치장합니다. 나는 또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머니처럼 행동합니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잠자리에 들 때에도 그렇게 합니다. 열정을 느낄 때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내 자긴의 어머니가 됩니다. 내가 어머니의 역할을 너무 잘하다 보니, 나 자신의 열정은 사라져버리고 오로지 어머니의 열정만이 남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가 내 사랑의 느낌들을 모조리 훔쳐 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것을 못 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역시 똑같은 방법으로 어머니 자신의 어머니에게 도둑질당한 일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떤사람이 내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새롭고 더욱 나은 모습으로 태어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테 공주는 영원히 죽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의 죽음은 기록으로 남아, 섬세한 장식이 달려 있는 칼에 새겨져 있다. 좀처럼 믿겨지지 않는 이 별개의 이야기를 다우브마누스는 인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아테 공주가 실제로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만약 공주가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라고 보아야 할 것 이다. 포도주 때문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아테 공주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해가 될 리도 없다.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빠른 거울과 느린 거울

어느 이른 봄날에 아테 공주가 말했다. "나는 내 옷에 길이 드는 것처럼, 내 생각에 길이 들게 되었다. 내 생각의 허리선은 언제나 똑같으며, 나는 내 생각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갈림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내 생각 때문에 갈림길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다. " 하루는 아테 공주의 시종들이 공주를 즐겁게 해 줄 생각으로 두 개의 거울을 선물했다. 그 거울의 모양은 다른 카자르 거울과 거의 다름이 없었다. 반짝거리는 소금으로 만들어진 거울이었는데, 하나는 빠르고 다른 하나는 느렸다. 빠른 거울에 무엇인가를 비추어 보면, 그 속의 세상은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가 있었다. 느린 거울은 빠른 거울이 진 빚을 갚아 주는 셈이었다. 그것은 현재를 중심을 해서, 앞에 말한 거울이 빠른 만큼이나 이 거울은 느렸기 때문이었다. 시종들이 아테 공주에게 거울을 가져다 주었을 때, 공주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눈꺼풀의 글자들도 그대로 씌어져 있었다. 아테 공주는 느린 거울에 비친, 눈을 감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Princess Arte saw her reflection in the slow mirror with her eyes closed and died on the spot. 아테 공주는 눈을 한 번 깜빡거린 다음, 다시 눈을 깜빡거리기 전에 목숨을 잃었다. 아테 공주가 난생 처음 자기의 눈꺼풀에 씌어진 죽음의 글자를 읽게 된 것은, 그녀가 죽기 전에 그리고 죽은 후에 눈을 깜빡거렸기 때문이며 그것이 거울에 비쳤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온 글자와 미래에서 온 글자가 동시에 그녀를 죽인 것이다.

네, 잘 들어보셨습니까? 어떤 분위기인지 대충 감을 잡으셨을 것 같아요. 아테 공주는 이 소설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신비로운 어떤 여성. 어떻게 보면 여신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여신 캐릭터 같기도 하고요. In a way, I think that she might be a goddess... It's like a goddess character. 특히 여기에는 참 흥미로운 이미지들이 나오죠. 자기 눈꺼풀에 아주 위험한 글자를 적고 잔다.. 그것이 잠든동안 그녀를 보호해 준다ㅏ라던지, 또 빠른 거울과 느린 거울을 통해서 과거와 미래를 보고, 그런데 과거와 미래의 자기 눈꺼풀을 보고, 즉 위험한 글자, 자기 과거 자기 미래에서 온 글자들이 이 여자를 죽인다라던가….이런 거 상당히 신비롭죠. 이 인물에 대한 얘기는 계속해서 반복이 되는데요 이 인물 말고도 브란코비치라던가 몇 명 중요한 인물들, 개종사건에 얽힌 인물들인데, 우리가 중남미의 어떤 신비로운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해서는 많이 익숙해져 있죠? 약간 유머가 섞인 그런..황당한 그런 얘기인데 이 세르비아라던가 발칸반도 쪽의 분위기는 상당히 어둡습니다. 어두우면서 신비롭고 또 어떤..음울한 미스테리랄까요? 이런 것들이 있죠. 우리가 이쪽을 생각하면 조금 전에 제가 배경음악으로 깔아드린 것은 그리스의 사비나 예나토라는 분의 노래였는데요. 이쪽 발칸 반도 쪽 생각하면은 떠오르는 작가들이 있죠. 영화 쪽에서는 에밀 쿠스리차 감독, [집시의 시간]같은 영화를 만들었던 에밀 쿠스리차 감독이 생각이 나고요, 그 정서도 좀 비슷하죠. 약간 신비로운 일들, 이상한 일들이 태연하게 벌어지고 어떤 슬픔이 깃들어있는 정도들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고요. 알바니아 역시 발칸 반도 쪽에 있는 나라죠? Albania is also a country on the Balkan Peninsula, right? 알바니아도 종교적으로 상당히 복잡한데요. Albania is also very complex religiously. 그 발칸 반도 전체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이 알바니아의 이스마엘 카다래 같은 작가, 아주 좋은 작가죠? [부서진 서열]같은 소설.. 이런 것들 보면 알바니아 지역에서 복수.. 카눈이라고 그러죠 관습법인 카눈이라는 복수에 대한 얘기인데요, 복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됩니다. 한 번 복수하면 다른 사람이 복수하고, 또 그 복수가 복수로 이어지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이것이 어떤 인간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데 이런 이야기를 보더라도 이 책이 갖고 있는 뭐랄까요, 원시적인 위험한 매력..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 그러면 조금 전에는 아테 공주에 대한 얘기인데요, 이번에는 개종을 결심을 했다는 카간이라는 카자르의 군주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이슬람교 쪽으로 전승되어온 그린북에 나와있는 카간에 대한 내용입니다.

카간 - 카자르 군주를 의미한다, 타타르어 '칸'에서 온 단어인데 타타르어로 '칸'은 왕자 라는 뜻이다. Khagan - means a Khazar monarch. 이븐 파들란의 주장에 따르면 카자르 민족은 카간을 강바닥에 묻었다. According to Ibn Fadlan, the Khazars buried the kagan in the riverbed. 카간은 언제나 또 한 명의 군주와 권력을 나누었고, 단지 제일 먼저 아침 문안 인사를 받는 정도의 권워만을 더 지니고 있을 뿐이었다. 카간은 유서 있는 왕가에서 나왔는데, 이 가문은 아마도 터키 계통이었을 것이다. 그 반면에 왕 혹은 '베이' 라고 불리던 카간의 동료 군주는 카자르 제국의 평민 출신이었다. 9세기에 씌어진 야쿠비 문서를 보면, 카간은 6세기에 이미 칼리프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았다. 카자르 민족의 공동 통치에 대하여, 알 이스타흐리가 가장 자세하게 기록해 두었다. 아랍 력으로 320년에 씌어진 이 기록은 다음과 같다.

카자르의 정치와 행정에서 그 군주는 카자르 민족의 카간이라고 불린다. 이 사람은 카자르 왕 '베이'보다 지위가 더욱 높다. 하지만 카간을 임명하는 것은 바로 왕이다. 카간을 새로 임명하고 싶을 때, 왕은 카간으로 지명당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서 비단 조각으로 목을 조른다. 그런 다음에 그 사람이 거의 숨이 끓어질 지경에 이르면 '얼마나 오랫동안 지배할 생각입니까?' 하고 묻는다. 카간으로 지명당한 사람은 '얼마만큼이오' 라고 대답 한다. 만약 그 사람이 자신이 대답한 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죽는다면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때가 되어도 죽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말한 그 해를 채우자마자 살해된다. 카간은 유력한 집안 사람들의 거처에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카간에게는 명령을 내릴 권리가 없었지만, 사람들은 카간올 존경했으며 카간 앞에서는 모두가 엎드려 있었다. 권력이나 돈이 없어도, 명망이 높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한 명을 골라 카간으로 내세웠다. 누군가가 그 자리를 떠맡을 차례가 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재산 정도를 조사해 보지 않고 카간으로 내세웠다. 이것은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녀는 어떤 젊은이가 길에서 빵을 파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카간이 죽자, 그 자리에 오를 만한 사람은 이 젊은 친구뿐이었다고 한다. However, when Kagan died, it was said that this young friend was the only one who could take the place. 하지만 그 젊은이는 이슬람 교도였고 카간이라는 직위는 유대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카간의 동료 군주는 탁월한 전사였다. 한 번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적으로부터 약탈해 온 노획물 중에 뻐꾸기가 있었는데, 그 뻐꾸기가 울면 땅 밑에 있던 식수가 우물이 되어 솟아 나왔다. 이 뻐꾸기를 빼앗기게 되자, 적군들은 카자르 민족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함께 살게 되었다. 시간은 너무나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과거의 경우에 일곱 살을 먹을 동안, 이제는 한 살을 먹게 되었다. 카자르 사람들은 달력을 고쳐야만 했다. 새로 만든 달력은 기본 단위가 3개월로 구성되어 있었다. 1월은 해의 달, 2월은 달의 달, 3월은 달빛이 없는 달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20일 만에 태어났다. 여름 동안 곡식을 아홉 번이나 거두어들였으며, 그런 다음에는 겨울이 계속해서 아홉 번이나 찾이왔기 때문에 여름에 거두어들인 곡식을 먹으면서 살았다. 사람들은 하루에 다섯 번 잠자리에 들었고, 열다섯 번 음식을 먹었다. 우유는 달빛이 없는 밤에만 신선한 상태를 유지했는데, 달빛이 없는 밤이 너무나 오랫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디에 길이 나 있었는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마침내 아침이 밝아오면 사람들은 서로를 잘 알아볼 수 없었다. 밤이 계속되는 동안 부쩍 자라 버린 아이들도 있고 늙어 버린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이 다시 다가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이 세대를 보지 못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꿈 사냥꾼들이 새겨 넣었던 글자들은 점점 더 커졌다. 글자 가장자리까저 가보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이제 책으로는 그 크기를 감당해 낼 수 없었으므로, 꿈 사냥끈들은 산비탈에 글자를 쓰기 시작했다. 강물은 넓은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홀러갔다.

어느 날 밤 말들이 달빛 아래에서 풀을 뜯고 있을 때, 천사가 카간의 꿈에 나타나 이런 말을 했다.

"주님은 당신의 행동에 기뻐하지시 않고 당신의 속마음에 기뼈하십니다." 카간은 꿈 사냥꾼을 불러 그 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째서 카자르인들에게 불행이 닥쳤는지 물어 보았다. 꿈 사냥꾼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기를, 위대한 사람이 오고 있는 중이며, 시간은 그것의 속도에 맞추어 흘러가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카간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점점 더 작아졌으며,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카간은 카자르 민족 사제와 꿈 사냥꾼을 내보내고 유대인, 아랍인, 그리스인을 각각 한 사람씩 불러다가 자신의 꿈을 설명하도록 명령했다. 카간은 자기 자신은 물론 국민들까지 포함하여, 세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한 해몽을 내놓는 사람을 따라 개종하기로 결정했다. 카간의 궁정에서 세 가지 종교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고, 카간은 아랍측 참석자인 이븐 코라의 주장에 마음이 흔들렸다. 이븐 코라는 다른 무엇보다도, 다음 질문에 대해 가장 만족스러운 대답을 제시했다.

"우리 눈 뒤쪽의 완전한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꿈을 밝게 비추는 것은 무엇인가? “What lights up the dreams that take place in the total darkness behind our eyes?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의 빛인가? 혹은 날도 밝기 전에 우리가 미리 끌어다 쓰는 미래의 빛인가?" "어느 경우라도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빛이지요. 그러므로 어느 대답이 옳은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질문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니까요." 이슬람교를 도입한 카간의 이름은 알 수가 없다. 그 카간은 엘리프 표시 아래 묻혔다고 알려져 있다. It is said that the kagan was buried under the sign of an elf. 다른 자료에 따르면, 그 사람은 원래 이름이 카티브였는데, 신발을 벗고 발을 깨끗하게 씻은 후에 모스크로 걸어 들어갔다고 한다. 그 사람이 기도를 마치고 태양 속으로 들어가자, 그의 이름과 신발은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네, 잘 들으셨습니까? 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질문.. 대단히 중요한 질문으로 이 소설에서 반복되고 있는데요. '우리 눈 뒤쪽에 완전한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꿈을 밝게 비추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억 속의 빛인가? 혹은 날도 밝기 전에 우리가 미리 끌어다 쓰는 미래의 빛인가?' 굉장히 시적인 질문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어쩌면 천체물리학 같은 거 공부할 때 우리가 우리 눈에 와닿이 빛이 어디있나를 생각하잖아요. 그것은 수백만광년 떨어진 별에서 시작된 빛일 수도 있는거죠. 과거에서 오는 빛일수도 있고요. 그리고 지구가, 아니 이 우주가 어떤 하나의 점에서 창조되었다는 빅뱅설 같은 걸 믿는다면 언젠가 지구는 다시 하나의 점으로.. 전체 우주와 함께 수축되겠죠? 줄어들겠죠? 그런걸 보자면 그것은 또 미래에서 오는 빛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런 천체물리학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또 꿈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어떤 특성, 미래를 예시하기도 하고 또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들을 다시 되돌이키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죠? 이 소설에서는 그런 꿈이라는 부분이 대단히 중요하게 나오는데요. 자 마지막으로 읽어드릴 부분 역시 꿈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거 상당히 흥미로운 꿈 사냥꾼이라는 존재도 이 소설에서는 중요한데, 이것은 그것과는 약간 다른 것입니다. 이것을 읽어드리면서 저는 그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스킬라는 언제나 모든 상처는 새로운 심장이 되어 혼자 고동친다고 생각했다. Skilla always thought that every wound became a new heart and beats alone. 그리하여 사브르 검을 가지고 이러한 상처들 위에 십자가를 그렸다. 스킬라는 코에 털이 나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것으로 스킬라를 알아보고 그를 피했다. 아베르키에 스킬라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음악가이면서 꿈을 읽을 줄 알았던 유수프 마수디가 남긴 것이다. 유수프 마수디와 아베르키에 스킬라는 이미 말한 것처럼, 콘스탄티노플의 터키 정부에 파견된 외교관 밑에서 하인으로 일했는데 마수디는 사람들의 꿈을 따라 여행하는 유령을 쫓아다녔다. 마수디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꿈을 꾸고 그 중 한 사람의 꿈이 다른 한 사람의 현실을 구성하는 경우, 꿈의 작은 부분이 언제나 남겨진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꿈의 아이들'이다. 꿈은 물론 꿈에 나오는 사람의 현실보다 더욱 짧다. 하지만 꿈은 언제나 아주 깊은 것이기 때문에, 어떤 현실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언제나 약간의 찌꺼기가 남게 된다. 이러한 '잉여물질'은 꿈에 나오는 사람의 현실 속으로 완전히 들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제3의 인물의 현실 속으로 흘러 들어가 거기에 붙어 있게 된다. 결과적으로 제3의 인물은 엄청난 어려움과 변화를 겪게 된다. 제3의 인물은 처음의 두 사람보다 더욱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인물의 자유의지는 다른 두 사람에 비해 두 배는 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하나의 꿈에서 다른 꿈으로 흘러가던 물질과 힘의 잉여가 이제 제3자의 영혼 속을 흘러 들었으므로,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일종의 양성체가 되어 '잉여물질'을 넘겨 준 두 사람에게 순간순간 번갈아 가면서 기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