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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라의 오디오북 (Novella Audio Books), 제1과 제1장 이무영 1/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ㅣ책읽어주는 여자

제1과 제1장 이무영 1/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ㅣ책읽어주는 여자

안녕하세요

한 박자 쉬어가는 곳 피어노벨라예요

오늘 이야기는 이무영의 제1과 제1장 입니다

작가 이무영은 귀농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 농민소설의 대표작가로 꼽히는데요

제1과 제1장을 발표한 다음 해인 1940년

그 속편으로 흙의노예를 발표했죠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고향으로 돌아간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고 농민의 사고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우리도 함께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덜크덕 덜크덕

퍼언한 신작로에 소마차 바퀴 소리가 외로이 울린다

사양에 키만 멀쑥하니 된 가로수 포플러의 그림자가

느른하니 길을 가로막고 있을 뿐

행인도 별로 없는 호젓한 신작로다

마을 앞에는 곰방대를 문 영감님이

발가숭이 손자 놈을 데리고 앉아서

돌 장난을 시키고 있다

약삭빠른 계절에 뒤떨어진 매미 소리는

마치 남의 나라에 갇힌 공주의 탄식처럼 청승맞다

이러 이 소 쯔쯔

안반짝 같은 소 엉덩이에 철썩 물푸레 회초리가 운다

소란 놈은 파리를 날려 주어 고맙게 여길 정도인지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저 뚜벅뚜벅 앞만 내다보고 걸을 뿐이다

소 마차가 마을 앞을 지날 때마다

주막집 뜰팡에 멍석을 깔고 땀을 들이던 일꾼들의 눈이

일시에 마차 짐으로 옮겨진다

이삿짐을 처음 보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눈에는 이 우차 위에 실려진 가구며 세간이

진기한 모양이다

항아리니 독이니 메주덩이 바가지 짝

이런 세간은 한 개도 볼 수 없고

농짝은 분명히 농짝이나 생김 생김도 그러려니와

시골서는 볼 수 없는 허들겁스럽게 큰 장이다

이모 저모에 가마니 짝을 대서 전부는 보이지 않지만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 거울이 번쩍한다

함짝 대신에 화류단층장 버들상자도

큰 것이 네모 반듯하다

뭣에 쓰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갓이며 검고 붉은 빛이 도는 가죽가방

면장 나리나 무슨 주임 나리나가 놓고 있는

그런 책상에 걸상도 화려하다

뉘 첩 살림인 게군

키만 멀쑥하니 여덟팔자 노랑수염이 담숭담숭 난

하릴없이 노름꾼처럼 생긴 한 친구가 이렇게 운을 뗀다

토 ㅅ자에 ㄱ했네

누군지가 이렇게 받자

토 ㅅ자에 ㄱ도 트 ㅅ자에 ㄹ일세 어디루 보니 저게 첩살림 같은가

첩살림이면야 자개장이 번득이면 번득였지

사물상이 당한 겐가

저 임자들을 좀 보지

이삿짐에서 여남은 간쯤 뒤떨어져서

진남색 저고리에

흰 바지를 받쳐 입은 청년이 하나 따라섰다

아직 햇살이 따가우련만

모자도 단정히 썼다

나이는 삼십사오 세쯤 되었을까

청년은 한 손으로 양장을 한 오륙 세 된

계집아이의 손을 잡고

그 옆에는 청년보다도 열 살이나 차이가 있음직한 젊은 여인이 역시 양복을 입힌 머스마의 손을 잡고 간다

한 너덧 살 되었음직한 토실토실하게 생긴 아이다

과자 주머니인지 바른손에는 새빨간 주머니를 늘였다

아빠 아직두 멀었우

말소리까지 타박타박하다

인저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에이 참 우리 철이 착하다

청년은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덤덤히 마차 뒤를 따라간다

화신상회만큼 되우

어린 것은 몹시 지친 모양이다

그래 그만큼 가면 돼

안타까운 듯이 젊은 여인이 대신 대답을 하자니까

어린것이 고개를 반짝 들고서 항의를 한다

뭘 엄만 아나 엄마두 첨이라면서

그래두 난 알아 그렇죠 아빠

청년과 여인은 어린것을 번갈아

업기도 하고 안기도 하다가

몇 걸음 걸려도 보고 몹시 거치장스러우련만

별로 그런 티도 없다

소에 끌려가는 이삿짐처럼

그저 묵묵히 끌려가고만 있다

거 어디루 가는 이삿짐요

마을 앞을 지날 때마다 소보고 묻듯 한다

마찻군은 나는 소 아니요 하고 퉁명을 부리듯

샌터 짐요

하고 돌아다보지도 않고 대답할 뿐이다

샌터 뉘 집 짐요

나도 모르오 하고는 소 엉덩이에다 매 질을 한다

이러 이 소

대꾸하기 귀찮다 어서 가자

마을을 빠져 나오더니 청년도 여인네도

뒤를 한 번씩 돌아다 본다

무슨 감시의 군역에서 벗어나기나 한것처럼

여인네는 가벼운 안도를 얼굴에 나타내기까지 한다

인저 내가 좀 물어 봐야겠군

아직두 멀었어요

인저 얼마 안돼

전에 다닐 때 얼마 안되던 것 같았는데 왜 이리 멀까

우찻군이 받아 넘긴다

여름이라 길두 늘어나 그렇지요

얼마 안 가니 조그만 실개천이 흐른다

청년 수택은 어려서 수수미꾸리 잡던 기억도 새로웠고

땀도 돌릴 겸 길목 포플러 그늘에서 참을 들이기로 했다 이 개천을 건너서 한 십분이면 그의 고향인

샌터에 다다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감두 같이 쉬어 갑시다

자 담배 한 개 피슈

고약두 있으십니까

고약이요

이런 담밸 피구 입술이 성찰 수가 있을라구요

이렇게 재미있는 늙은인 줄 알았더면

정거장에서부터 말벗을 해왔더면

오는 줄 모르게 왔을 걸

수택은 오늘 처음으로 웃었다

수택은 우차를 먼저 가게 하고

천천히 세수도 하고 발도 씻었다

아내가 핸드백에서 조그만 면경을 꺼내 화장을 하는 동안

어린것들도 벗기고 말끔히 씻어 주었다

물에 손을 잠그고 있으려니

어려서 물장난하던 기억이며

그동안 세파와 싸운 삼십 년간의 생활이 추억이 되어

덜크덕덜크덕

멀어져 가는 이삿짐 소리도 한층 더 서글펐다

패배자

그는 가만히 이렇게 자기를 불러 본다

시냇물은 조약돌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

수택의 발 밑을 지날 때마다

뭐라고 인지 종알대고 흘러간다

이 물소리를 해득만 한다면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었을 것을

그러나 지금의 수택으로서는

이 속삭이는 물소리보다도

지난날의 추억보다도

패배자의 짐을 싣고 가는 마차바퀴 소리만이

과장 돼서 울리는 것이었다

패배자

어째서 패배자냐

오랜동안 동경해 오던 이상 생활의 첫출발이지

누가 있어 자기를 패배자라고 부르기나 했던 것처럼

그는 분명히 이렇게 반항을 해본다

사실 이번 길은 수택의 일생에 있어서

커다란 분기점이었다

그것이 희망의 새 출발이 될지

패배가 될지는

그가 타고난 운명에 맡기려니와

현재 그의 가슴에 채워진 감회도

이 둘 중 어느것인지

그 자신도 모르고 있는 터다

그가 농촌 생활을 꿈꾸고

이른 봄 사아지 안을 두둑하게 넣은

춘추복 안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사직서가

이중봉투를 석 장이나 갈갈이 피우고 여름을 났을 때는

그래도 패배자란 감정이 없을 때였다

일금 오십 원의 샐러리 맨

그리 적은 봉급도 아니었다

회사 총무부 주임 말마따나

이런 자리를 노리는 대학 출신의 이력서가 기백장

서랍 속에서 신음을 하고 있는 터다

사변으로 해서 갑자기 물가가 고등해 진 터라

이 정도의 수입만 가지고는

도저히 도회에서 생활을 유지하기 가 어렵기는 하나

그렇다고 전혀 수입이 없는 것보다 나은 것은

주먹구구까지도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그의 계획을 듣고 친구의 대부분이 아니 거의 전부가

반대를 한 것도 실로 이 단순한 타산에서였다

너 굴러들어 온 복 바가지를 차 버리고

어쩔테냐는 듯싶은 총무부 주임의 눈치나

철없이 날뛴다고

가련해 하는 눈으로 보는 동료들의 말투가

그의 결심에 되려 기름을 쳐 준것도 사실이기는 하나

수택의 계획은

그네들이 보듯이 그렇게 근거가 적은 것도 아니다

그의 계획이 무모함을 충고하는

친구와 동료들의 거의 전부가

생활난에 중점을 둔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수택 만큼 생활고를 겪어 온 사람도

그만한 낫세로는 드무리라

열두 살에 고향을 떠나서 중학교를 고학으로 마쳤고

열일곱에 동경으로 가서 C대학 전문부를 마치는 동안도

식당에서 벗겨 내버린 식빵 껍질과

먹다 내버리는 밥덩이를 사다 먹고 살아 온 그였다

일정한 직업이 없이 오륙년 동안 동경서 구르는 동안에도

공중식당 일망정 버젓하니 밥 한 끼 사 먹어 보지 못한 채

삼십 줄에 접어든 그였다

조선에 나와서도 지금의 x신문사 사회부 기자라는 직업을 얻기까지의 삼년간을

십전짜리 상밥으로 연명을 해 온 그였고

직업이라고 얻어서 결혼을 한 후도

고기 한 칼 떳떳이 사 먹어 보지 못한 그였다

더우기 십 개월이란 긴 동안

신문이 정간을 당하고

푼전의 수입이 없었을 때도

세 끼나 밥을 못 끓이고

인왕산 중허리 같은 배를 끌어안고

숨까지 가빠하는 아내와 만 하루를

얼굴만 쳐다보고 시간을 보낸

쓰라린 경험도 갖고 있는 그였다

이십 개월 동안에 그는 평상시 오고가던 친구들도

수입이 끊어지는 날로 거래가 끊어지는 것도 경험했고

쌀 말이나 설렁탕 한 그릇도

월급 봉투가 없이는 대주지 않는 것도 잘 아는 터였다

인제 널 것도 없지

하고 물을 때

입은 것밖에

하고 대답하던 아내의 우울한 음성도

아직 귀에 새로웠고

십여 장이나 되는 전당표를

삼개년 계획으로 찾아내던

쓰라린 경험도 아직 기억에 새로운 터였다

신문이 해간되던 바로 그 전 달이었지만

막역지간이라고 사양해 온 M이라는

친구한테 마침 그 날이 월급일이라서

아니

월급날을 일부러 택한 것이었지만

삼원 돈을 취대하러 갔다가 거절을 당하고

홧김에 욕를 하고 돌아온 사실을 기록해 둔 일기가

아직도 그의 책상 어느 구석에 끼워져 있을 것이다

이 수택이 선선히 사직서를 내놓고 나선 것이니

놀랄만한 사실임에 틀림은 없다

그래 갑자기 회살 그만 두면

마지막으로 사직서를 접수한 R씨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금후의 생활설계를 설명하는데

조금도 불안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행히 고향에 가면 십여 두락의 땅이 있겠고

생활수준이 얕아질 것이요

고료 수입도 다소 있을 것이고

마치 R씨까지도 유인해서 끌고 나갈 듯이

호기가 있었던 것이다

좀더 신중히 하지

호의에서 나온 이런 말에도 그는 적의나 있는 듯이

그럴 필요 없지요

하고 그 자리서 내 찼던 것이다

사직 이유는 병이었다

간부측에서 병 하고 반문했을 만큼

그는 그렇게 말 못된 병자는 물론 아니다

병이라면 그것은 생리적인 병보다도

정신적인 병이 더 위기에 가까웠었다

의사들이 폐가 어떠니 늑막이 위험하니 할 때도

한 편 겁은 내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속 짐작이 있기는 했었다

그와 같이 소설을 써 오던 H가

자기와 같은 자신으로 버티다가

쓰러진 그 길로 끝을 막은 무서운 사실에

잠시 아차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업을 버릴 만큼

약해진 터도 아니었다

이른 봄 그가 아내도 몰래 사직서를 쓰고

도장까지 단정히 눌러 가진 것은

그의 조그만 영웅심에서였다

수택은 동경에서부터 소설을 써왔다

장방형도 아니요 삼각형도 아니요

그렇다고 똑 떨어진 원도 아니다

세상에서는 그를 혹은 스타일리스트 라고 불렀고

한때 경향문학이 성할 때는

혹은 반동 또 혹은 동반자라고

또는 허무주의자라고 야유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 자신 자기의 특징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작가였다

소설가로서 차차 알려질 무렵

아니 그 덕택이 있겠지만은

그는 취직을 했었다

그것이 그의 작가생활의 마지막 이었다

저널리즘이란 문학의 매개체를 통해서

그 갓난애 숨길만한 잔명을 근근히 유지해 왔다

첫 월급을 타던 기쁨은

지난 모월 모일 밤 자정도 가까워

바야흐로 삼라만상이 잠들려 할 때

모모동 모모번지 근방에서

뜻 아니한 비명이 주위의 정적을 깨뜨렸다

이제 탐문한 바에 의하면

등등

이런 식의 기사를 쓸 때마다 희미해 졌고

그것이 거듭되기 1 년이 못되어

그는 자기가 문학도였다는 의식 까지도

완전히 잃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경찰서를 드나들며 강절도 밀매음 사기

등속의 사건 전말을 듣는 것이

무슨 문학수업의 좋은 찬스인 것처럼

생각하던 것도 일시적이었고

악을 폭로함으로써

민중의 좋은 시준이 되게 한다던 의협심도

사실 자기 위안의

좋은 방패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그는 완전히 기계였던 것이다

아침이면 나와서 종일 돌아 다니다가

저녁 대개는 밤에

집이라고 찾아든다

친구에 휩쓸려 술 잔도 마시고

회합에서 늦어 이차가 벌어지고

이러구러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달이 바뀌고 연도가 갈렸다

그러기를 5년

그 동안에 수택이가 얻은 것은 허영과 태만이다

그 에 얻은 것이 있다면 지기가 아닌

이런 사회에서의 독특한 존재인

이르는 바 친구

아니 지인이다

그리고 잃은 것은 얻은 것에 비해서 너무나 많았다

그는 적어도 세 사람의 친구는 가졌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한 해 두 해 지내는 동안에

그 세 친구도 없어졌고

문학도로서 쌓았던 조그만 탑도

출판기념회나

무슨 축하회의 발기인 란에서나 겨우 발견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다

동료들이 그달 그달 발표하는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는 우울했다

우두커니 맞은편 흰 회벽을 건너다 본다

성급한 전화 종소리도

그를 깨우쳐 주지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받잖을 전환 뭣하러 맸나요

문득 고개를 들면 천리안이라고 소문난

편집장의 두 줄 시선이 쏜다

아무것 하나 얻을 것도 없는 회합에 늦도록 붙잡혔다가

홀로 막차에 앉은 때의 그 공허 허무감

그것도 비길 데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그 큰 전차간에

동그라니 혼자 앉아 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눈 속이 뜨끈해 지는 일도 있었고

얼근히 술이 취했다가 깰 무렵에 집에 돌아가면

문득 숫보가 덮인 책상이 눈에 뜨인다

펜까지 꽂혀 있는 잉크 스탠드

한 달 가야 한 번 건드려 주지도 않는 원고지가

마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주인을 기다리며

망망한 대해에 떠 있는 목선처럼 애처로워진다

다소 술 기운이 작용을 했겠지만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다

낼부터는 나도 단연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1년을 별러서 시작한 것이

소설 못 쓰는 소설가라는 단편이었다

한 소설가가 취직을 했다

박쥐처럼 해를 못 보는 생활이 계속 된다

무서운 정열로 창작욕을 흥분시켜 주기는 하나

구상이 아물어지기도 전에 출근이다

잡다한 사무에 얽매여 허덕이는 동안에

해가 지고 오뉴월 엿가래처럼 늘어진 몸을 이끌고

회합이다 이차다 야근이다를 계속 한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짜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내일 형사들을 녹여 내어

재료를 얻어낼 계획이며

안의 진행방법 등을 공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운다

그러나 이 소설도 끝끝내 소설이 못되고 말았다

그것은 몹시 무더운 날 밤이었다

그는 소학생처럼 벽에다 좌우명을 써 붙였다

1 조기할 것

2 퇴사 즉시로 귀가할 것

3 독서 혹은 창작할 것

4 일찍 취침할 것

그러나 이 좌우명은 이튿날로 권위를 잃고 말았다

이튿날은

사회부 부서 모임이 밤 아홉 시까지나 계속되었다

갑론을박의 삼 사 시간을 겪은 그는

돌아오는 길로 쓰러져 자고 말았다

이튿날은 신문사 주최 축구대회 기사로 야근을 했고

다음날은 부득이한 회합이 있어

열시

거기서 다시 이차 삼차를 거듭해서

집에 돌아온 것은 새벽 세시였다

도대체 나는 뭣 때문에 사는 걸까

누구를 위해서 사는 걸까

문화사업

이런 반문을 해본다는 것은

벌써 하나의 전설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수택은 또 한 가지 위대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적어도 자기는 신문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 아닐 뿐만 아니라

영원히 신문기자로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아니

신문기자로서의 성공이

곧 문학적으로 그를 파멸시키는 것임을

그제서야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은 희극

아니 비극이었다

수택이 하루 이틀 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하는 일없이 교외를 빈들빈들 돌아 다녔다

하루는 S라는 동료를 유인해서 청량리로 나갔다

전부는 아니나 그만둘 계획만을 이야기하고

생계로 이야기가 옮아 갔을 때다

그도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 몰랐었다

매퀴한 냄새가 코를 꼭 찌른다

그 냄새는 코를 통해서

심장으로 깊이깊이 기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흙내였다

그것이 흙내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그가 어렸을 때 듣던 아버지의 음성이

바로 귓전에서 울리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흙내를 맡아야 산다

너도 공불 하고 나선

아비와 같이 와서 농사를 짓자

학문

학문도 좋긴 하다

허지만 학문이 짐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 그는 아버지를 비웃었다

흙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면서도

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가

가엾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조소하던 그 말이

지금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집으로 가자

흙을 만지자

수택의 로맨틱한 계획은 이리하여 세워진 것이었다

그의 첫 계획은

그동안 장만했던 가구를 전부 팔아 버리리라 한 것이나

아내가 너무 섭섭해 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상상한 것의 절반도 못되었다

이백 원 남짓한 퇴직금이 그들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소꼴지게와 함께 수택의 일행이 쪽대문 안에 들어서자

흰둥이란 놈이 컹 하고 물어 박는다

빈 집처럼 찬 바람이 휘 돈다

남의 집으로 잘못 들어온 모양이다

수택은 부리나케 나와 문패를 보니

분명히 자기 집이다

짐이 들어왔으니까 마중들을 나가신 모양이군요

아내가 들어가도 나오도 못하고 있는데

오빠 소리가 나며 와들 몰려든다

십 년 가까이 못 본 늙은 아버지도

설명을 듣지 않고는 모를 아이들 속에 끼어 있었다

뒤미처 찢어진 고무신짝을 집어 든 고모도 왔고

폭 늙은 어머니도 뒤따라 왔다

그래 이 몹쓸 것아

그렇게두

하고 막 어머니의 원망이 나오자 그는 사랑으로 나갔다

이간 장방은 새에 장지를 질러

웃 방은 남에게 세를 주었는지

주판 소리가 댈그락거린다

저 밖엣게 너들 짐이냐

그래 헌데 갑자기 이게 웬일이냐

차차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택은 안으로 들어왔다

안채 웃쪽으로 달린 골방이 치워졌다

바람이 잔뜩 든 벽하며

벽 흙을 안고 자빠진 종잇장이며

비워 두었던 탓인지 곰팡내가 펄썩 난다

색지를 붙인 궤짝이며 주둥이도 없는 단지

도깨비라도 나와 멱살을 잡을 듯싶은 방이다

횃대에 걸린 헌 옷은 흡사 죽은 사람같이 늘어졌다

수택의 그 아름다운 농촌생활의 첫 꿈이 깨진 것은

이 방에서였다

그의 공상에서는

방부터가 이렇게 허무하지는 않았다

그날 밤 아버지와 아들은 오래간만에 자리를 마주 했다

웃방에서 주판알을 튕기던 장사치도 갔고

단 둘만이 호젓이 앉았다

고향으로 내려오기로 하기는 하면서도

사실 수택은 집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자기가 집을 나갈 때는

논이 한 이십여 두락에 밭이 여남은 갈이나 있었다

그 후 동경서 나와서 들렸을 때는

논 닷말 지기가 줄었고

밭이 하루갈이 남의 손에 넘어 갔었다

그런지 칠 년

그동안 거의 남처럼

서신도 별로 없이 지내온 아버지와 아들이다

물론 이렇다는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으로 그런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이 문화인인 아들은

원시인 그대로인 아버지를 경멸 했고

아버지는 또 아버지대로

너무나 문화한 아들을 경이원지 했을 뿐이다

흙 냄새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이냐

그깟 놈

눈만 다락 같이 높았지

그는 이렇게 자기 아들을 조소했다

아들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흙투성이가 되어 사는 꼴이 싫다 했다

흙에서 나서 흙을 만지며 컸고

흙을 먹고 사는 아버지

옷에까지 흙투성이가 되어 사는

흙인지 사람인지 모를 한낱 평범한 농부에게

털끝 만한 존경도 갖지 못했다

당당한 문화인인 아들은

흙투성이인 김영감을

내 아버지라고 내세우기조차 꺼려했다

이러한 아버지를 가졌다는 것은

자기의 큰 치욕이라고까지 생각해 온 터다

결혼을 하면서도 자기 아버지를 청하지 않은 것도

그 자신은 친구나 동료들한테 달리 변명은 했겠지만

사실 자기 아버지의 그 흙투성이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허영에서였다

김영감만 해도 이런 눈치를 못 챌 리 없었다

집안에서고 동네에서

왜 며느리 보는데 안 가느냐고 해도

아 그 잘난 놈 잔치에 못난 애비가 가

댕꼴 곽주식이 아들 놈 처럼

제 애빌 보구 누구냐니까

우리집 머슴이라고 대답 하더라는데

그런 놈들이 애빌 보구

행랑아범 이라구 하지 말란 법이 있다던가

이렇게 격분을 했었다

사실 그때의 수택으로서는 어쩌면

그렇게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가 싫으니까 차라리 못 오게 한 것 이었을 것이다

이런 아들이 지금 도시에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사람이란 흙내를 맡아야 하느니라

대처 사람들이 암만 고량진미로 음식을 만든대도

시골 음식처럼 구수한 맛이 없느니라

마찬가지야

사람이란 흙내도 맡고 된장 맛도 나고 해야

구수한 맛이 나는 게지

음식이나 사람이나 대처 사람들이 맑구 경우야 밝지

허지만 사람이란 경우만 가지고 산다더냐

일테면 말이다

내가 네 발등을 잘못해서 밟았다고 치자꾸나

그러면 넌 발끈할 게다

하지만 우리 시골 사람들은 잘못해 밟았나보다 하군

그만이거든

경우로 친다면야 남의 발을 밟은 사람이 글지

그래 이 많은 인총에 경우만 가지고 살려구 들어

수택이 중학교를 다닐 때

고향에 돌아온 것을 붙잡고

김영감은 이렇게 자기의 지론을 폈다

그때만 해도 도회물을 먹은 아들은

물론 코웃음을 쳤다

몇 핸가 후의 일이다

음력과세를 한다고 고향에 내려온 일이 있었다

이십 년래의 혹한이니 삼십 년의 추위니

날마다 신문이 떠들어댈 때였다

그는 겉으로는 하도 오래간만이니

집에 와서 과세를 한다고 꾸몄지만

사실은 근방 읍에까지 출장이 있어서

온김에 들린 것이었다

그날 밤 수택의 집에는 도둑이 들었다

벽에서 나는 황토 냄새와

그야말로 된장내처럼 쾨쾨한 냄새로

잠을 못 이루고 있을 때

울 안에서 발소리가 난다

조금 있더니 누군지 밖에서

아무것두 없으니 나오 나오

하는 애원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 음성이었다

수택은 문구멍으로 가만히 내다 봤다

도둑이 분명하다

밖에서는 나오라고 하나

나갈 길을 막아선지라 어쩔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황당해 한 도둑은 급기야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나갈 길을 좀 티워줘유

이때 그는 벌써 부엌을 돌아서 울 안에 와 있었다

손에 흉기 하나 들지 않은 좀도둑 임을 발견한 그는

억 소리와 함께 덮쳐 잡아 나꾸었다

그는 학창시절에 배운 유도로 도둑을 메었다 치고는

제 허리끈으로 두 팔을 꽁꽁 묶었다

온 집안이 깨고 뒤미처 김영감도 달려들었다

영감의 손에는 지게작대기가 쥐어져 있었다

도둑놈도 그랬고 수택이도 그랬고

온 집안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 했다

몽둥이에 맞을 사람은 그 도둑이리라고

그러나 아니었다

지게작대기에 아랫종아리를 얻어 맞은 것은 아들이었다

수택 자신도 그랬고 도둑도 그랬을 게고

집안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것은 영감이 흥분한 나머지 잘못 때린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수택은 얼른 피했었다

피하고는 안심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김노인의 작대기는 재차 아들에게로 향하고 겨누어졌다

이 몰인정한 녀석

내 물건 도둑 안 맞았으면 그만이지

사람은 왜 친단 말이냐 응

이 치운 겨울에 도둑질하는 사람은

여북해 하는 줄 아느냐

우리네 시굴 사람은 그런 법이 없다

도둑은 울고 있었다

도둑의 등에는 쌀 한 말이 짊어 지어졌다

이튿날 수택은 지리할 만큼

긴 설교를 듣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람이란 법만 가지구 사는 게 아니니라

법만 가지고 산다면야

오늘날처럼 법이 밝은 세상이 또 어디 있겠니

법으로만 산다면야

법에 안 걸릴 놈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넌 법에 안 걸리는 일만 하고 사는상 싶지

그런게 아니니라

올 가을에두 기다무라란 사람의 과수원에서

사과 하나 따 먹다가 징역을 갔느니라

남의 것을 따는 건 나쁘지

나쁘기야 하지만 그게 징역갈 죄는 아니지

어젯밤 일을 본다면

너두 네 과수밭의 실과를 따면

징역 보낼 사람이 아니냐

너 어제 그게 누군 줄 아냐

모르는 체하긴 했다만 내 저 아버진 잘 안다

알구 보면 아 알만한 사람야

시굴서야 서루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모두 한 집안 식구거든

사람 사는 이치가 다 그런 게란 말야

이러한 일이란

적어도 도회인의 감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수택은 오늘 아버지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동안에

막연히 나마 이 이르는 바

흙냄새 의 감정이 이해 되어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김영감은 아들의 이 뜻하지 않은 계획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아들은 논 닷 마지기에 밭 하루 갈이만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자리 좋은 논으로만 여덟 마지기도 준다 했고

집도 한 채 세워주마 한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소작권을 이동 받은 것에 불과 했었다

그의 집안에는 논 닷 마지기와

밭 두어 뙈기가 남아 있을 뿐이란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피란 무서운 것인가 보구나

난 네가 애비 옆으로 와서 이렇게 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더니라

첨엔 답답하겠지만 차차 농사에도재밀 붙이구

허지만

갸가 이런 구석에서 살려구 허겠느냐

웬걸요 저 보다도 제가 서둘러서 한 노릇이니까

별말 없을 겝니다

그래 그럼 됐구나 뭐

인제 나두 남들한테 떳떳스럽구

버젓이 아들을 둘씩이나 두고도

자식을 거느리고 있지 못한 것이

동네 사람들 보기에 미안타는 것이었다

그의 형은 딴 뜻을 품고 집을 나간지 십 년이다

하여튼 이리해서 수택의 농촌생활은 시작이 되었다


제1과 제1장 이무영 1/2ㅣ한글자막(CC), 한국단편, 소설읽기, 오디오명작,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ㅣ책읽어주는 여자 Lektion 1, Kapitel 1, Lee Moo Young 1/2ㅣLettering (CC), koreanische Kurzgeschichte, Romanlektüre, Audioklassiker, koreanischer Roman, koreanisches Hörbuch, und Frauenlektüre Lesson 1, Chapter 1, Lee Moo Young 1/2ㅣKorean text (CC), Korean short story, novel reading, audio masterpiece,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and a woman who reads to you Leçon 1, Chapitre 1, Lee Moo Young 1/2ㅣLettering (CC), Korean Short Story, Novel Reading, Audio Classics, Korean Novel, Korean Audio Book, and Woman Reading Урок 1, Глава 1, Ли Му Ён 1/2ㅣЛеттеринг (CC), корейский рассказ, чтение романов, аудиоклассика, корейский роман, корейская аудиокнига, женское чтение

안녕하세요 Bonjour

한 박자 쉬어가는 곳 피어노벨라예요 Un lieu pour faire une pause Pianobella

오늘 이야기는 이무영의 제1과 제1장 입니다 Aujourd'hui, nous parlons de la leçon 1, chapitre 1 de Moo Young Lee.

작가 이무영은 귀농의 체험을 바탕으로 L'auteur Moo Young Lee s'appuie sur son expérience d'agricultrice pour créer l'ouvrage.

소설을 쓴 농민소설의 대표작가로 꼽히는데요

제1과 제1장을 발표한 다음 해인 1940년

그 속편으로 흙의노예를 발표했죠

자신의 존엄성을 회복하고자 고향으로 돌아간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를

그리고 농민의 사고를 이해해 가는 과정을

우리도 함께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덜크덕 덜크덕

퍼언한 신작로에 소마차 바퀴 소리가 외로이 울린다

사양에 키만 멀쑥하니 된 가로수 포플러의 그림자가

느른하니 길을 가로막고 있을 뿐

행인도 별로 없는 호젓한 신작로다

마을 앞에는 곰방대를 문 영감님이

발가숭이 손자 놈을 데리고 앉아서

돌 장난을 시키고 있다

약삭빠른 계절에 뒤떨어진 매미 소리는

마치 남의 나라에 갇힌 공주의 탄식처럼 청승맞다

이러 이 소 쯔쯔

안반짝 같은 소 엉덩이에 철썩 물푸레 회초리가 운다

소란 놈은 파리를 날려 주어 고맙게 여길 정도인지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저 뚜벅뚜벅 앞만 내다보고 걸을 뿐이다

소 마차가 마을 앞을 지날 때마다

주막집 뜰팡에 멍석을 깔고 땀을 들이던 일꾼들의 눈이

일시에 마차 짐으로 옮겨진다

이삿짐을 처음 보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눈에는 이 우차 위에 실려진 가구며 세간이

진기한 모양이다

항아리니 독이니 메주덩이 바가지 짝

이런 세간은 한 개도 볼 수 없고

농짝은 분명히 농짝이나 생김 생김도 그러려니와

시골서는 볼 수 없는 허들겁스럽게 큰 장이다

이모 저모에 가마니 짝을 대서 전부는 보이지 않지만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 거울이 번쩍한다

함짝 대신에 화류단층장 버들상자도

큰 것이 네모 반듯하다

뭣에 쓰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갓이며 검고 붉은 빛이 도는 가죽가방

면장 나리나 무슨 주임 나리나가 놓고 있는

그런 책상에 걸상도 화려하다

뉘 첩 살림인 게군

키만 멀쑥하니 여덟팔자 노랑수염이 담숭담숭 난

하릴없이 노름꾼처럼 생긴 한 친구가 이렇게 운을 뗀다

토 ㅅ자에 ㄱ했네

누군지가 이렇게 받자

토 ㅅ자에 ㄱ도 트 ㅅ자에 ㄹ일세 어디루 보니 저게 첩살림 같은가

첩살림이면야 자개장이 번득이면 번득였지

사물상이 당한 겐가

저 임자들을 좀 보지

이삿짐에서 여남은 간쯤 뒤떨어져서

진남색 저고리에

흰 바지를 받쳐 입은 청년이 하나 따라섰다

아직 햇살이 따가우련만

모자도 단정히 썼다

나이는 삼십사오 세쯤 되었을까

청년은 한 손으로 양장을 한 오륙 세 된

계집아이의 손을 잡고

그 옆에는 청년보다도 열 살이나 차이가 있음직한 젊은 여인이 역시 양복을 입힌 머스마의 손을 잡고 간다

한 너덧 살 되었음직한 토실토실하게 생긴 아이다

과자 주머니인지 바른손에는 새빨간 주머니를 늘였다

아빠 아직두 멀었우

말소리까지 타박타박하다

인저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에이 참 우리 철이 착하다

청년은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덤덤히 마차 뒤를 따라간다

화신상회만큼 되우

어린 것은 몹시 지친 모양이다

그래 그만큼 가면 돼

안타까운 듯이 젊은 여인이 대신 대답을 하자니까

어린것이 고개를 반짝 들고서 항의를 한다

뭘 엄만 아나 엄마두 첨이라면서

그래두 난 알아 그렇죠 아빠

청년과 여인은 어린것을 번갈아

업기도 하고 안기도 하다가

몇 걸음 걸려도 보고 몹시 거치장스러우련만

별로 그런 티도 없다

소에 끌려가는 이삿짐처럼

그저 묵묵히 끌려가고만 있다

거 어디루 가는 이삿짐요

마을 앞을 지날 때마다 소보고 묻듯 한다

마찻군은 나는 소 아니요 하고 퉁명을 부리듯

샌터 짐요

하고 돌아다보지도 않고 대답할 뿐이다

샌터 뉘 집 짐요

나도 모르오 하고는 소 엉덩이에다 매 질을 한다

이러 이 소

대꾸하기 귀찮다 어서 가자

마을을 빠져 나오더니 청년도 여인네도

뒤를 한 번씩 돌아다 본다

무슨 감시의 군역에서 벗어나기나 한것처럼

여인네는 가벼운 안도를 얼굴에 나타내기까지 한다

인저 내가 좀 물어 봐야겠군

아직두 멀었어요

인저 얼마 안돼

전에 다닐 때 얼마 안되던 것 같았는데 왜 이리 멀까

우찻군이 받아 넘긴다

여름이라 길두 늘어나 그렇지요

얼마 안 가니 조그만 실개천이 흐른다

청년 수택은 어려서 수수미꾸리 잡던 기억도 새로웠고

땀도 돌릴 겸 길목 포플러 그늘에서 참을 들이기로 했다 이 개천을 건너서 한 십분이면 그의 고향인

샌터에 다다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감두 같이 쉬어 갑시다

자 담배 한 개 피슈

고약두 있으십니까

고약이요

이런 담밸 피구 입술이 성찰 수가 있을라구요

이렇게 재미있는 늙은인 줄 알았더면

정거장에서부터 말벗을 해왔더면

오는 줄 모르게 왔을 걸

수택은 오늘 처음으로 웃었다

수택은 우차를 먼저 가게 하고

천천히 세수도 하고 발도 씻었다

아내가 핸드백에서 조그만 면경을 꺼내 화장을 하는 동안

어린것들도 벗기고 말끔히 씻어 주었다

물에 손을 잠그고 있으려니

어려서 물장난하던 기억이며

그동안 세파와 싸운 삼십 년간의 생활이 추억이 되어

덜크덕덜크덕

멀어져 가는 이삿짐 소리도 한층 더 서글펐다

패배자

그는 가만히 이렇게 자기를 불러 본다

시냇물은 조약돌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

수택의 발 밑을 지날 때마다

뭐라고 인지 종알대고 흘러간다

이 물소리를 해득만 한다면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었을 것을

그러나 지금의 수택으로서는

이 속삭이는 물소리보다도

지난날의 추억보다도

패배자의 짐을 싣고 가는 마차바퀴 소리만이

과장 돼서 울리는 것이었다

패배자

어째서 패배자냐

오랜동안 동경해 오던 이상 생활의 첫출발이지

누가 있어 자기를 패배자라고 부르기나 했던 것처럼

그는 분명히 이렇게 반항을 해본다

사실 이번 길은 수택의 일생에 있어서

커다란 분기점이었다

그것이 희망의 새 출발이 될지

패배가 될지는

그가 타고난 운명에 맡기려니와

현재 그의 가슴에 채워진 감회도

이 둘 중 어느것인지

그 자신도 모르고 있는 터다

그가 농촌 생활을 꿈꾸고

이른 봄 사아지 안을 두둑하게 넣은

춘추복 안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사직서가

이중봉투를 석 장이나 갈갈이 피우고 여름을 났을 때는

그래도 패배자란 감정이 없을 때였다

일금 오십 원의 샐러리 맨

그리 적은 봉급도 아니었다

회사 총무부 주임 말마따나

이런 자리를 노리는 대학 출신의 이력서가 기백장

서랍 속에서 신음을 하고 있는 터다

사변으로 해서 갑자기 물가가 고등해 진 터라

이 정도의 수입만 가지고는

도저히 도회에서 생활을 유지하기 가 어렵기는 하나

그렇다고 전혀 수입이 없는 것보다 나은 것은

주먹구구까지도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그의 계획을 듣고 친구의 대부분이 아니 거의 전부가

반대를 한 것도 실로 이 단순한 타산에서였다

너 굴러들어 온 복 바가지를 차 버리고

어쩔테냐는 듯싶은 총무부 주임의 눈치나

철없이 날뛴다고

가련해 하는 눈으로 보는 동료들의 말투가

그의 결심에 되려 기름을 쳐 준것도 사실이기는 하나

수택의 계획은

그네들이 보듯이 그렇게 근거가 적은 것도 아니다

그의 계획이 무모함을 충고하는

친구와 동료들의 거의 전부가

생활난에 중점을 둔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수택 만큼 생활고를 겪어 온 사람도

그만한 낫세로는 드무리라

열두 살에 고향을 떠나서 중학교를 고학으로 마쳤고

열일곱에 동경으로 가서 C대학 전문부를 마치는 동안도

식당에서 벗겨 내버린 식빵 껍질과

먹다 내버리는 밥덩이를 사다 먹고 살아 온 그였다

일정한 직업이 없이 오륙년 동안 동경서 구르는 동안에도

공중식당 일망정 버젓하니 밥 한 끼 사 먹어 보지 못한 채

삼십 줄에 접어든 그였다

조선에 나와서도 지금의 x신문사 사회부 기자라는 직업을 얻기까지의 삼년간을

십전짜리 상밥으로 연명을 해 온 그였고

직업이라고 얻어서 결혼을 한 후도

고기 한 칼 떳떳이 사 먹어 보지 못한 그였다

더우기 십 개월이란 긴 동안

신문이 정간을 당하고

푼전의 수입이 없었을 때도

세 끼나 밥을 못 끓이고

인왕산 중허리 같은 배를 끌어안고

숨까지 가빠하는 아내와 만 하루를

얼굴만 쳐다보고 시간을 보낸

쓰라린 경험도 갖고 있는 그였다

이십 개월 동안에 그는 평상시 오고가던 친구들도

수입이 끊어지는 날로 거래가 끊어지는 것도 경험했고

쌀 말이나 설렁탕 한 그릇도

월급 봉투가 없이는 대주지 않는 것도 잘 아는 터였다

인제 널 것도 없지

하고 물을 때

입은 것밖에

하고 대답하던 아내의 우울한 음성도

아직 귀에 새로웠고

십여 장이나 되는 전당표를

삼개년 계획으로 찾아내던

쓰라린 경험도 아직 기억에 새로운 터였다

신문이 해간되던 바로 그 전 달이었지만

막역지간이라고 사양해 온 M이라는

친구한테 마침 그 날이 월급일이라서

아니

월급날을 일부러 택한 것이었지만

삼원 돈을 취대하러 갔다가 거절을 당하고

홧김에 욕를 하고 돌아온 사실을 기록해 둔 일기가

아직도 그의 책상 어느 구석에 끼워져 있을 것이다

이 수택이 선선히 사직서를 내놓고 나선 것이니

놀랄만한 사실임에 틀림은 없다

그래 갑자기 회살 그만 두면

마지막으로 사직서를 접수한 R씨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금후의 생활설계를 설명하는데

조금도 불안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행히 고향에 가면 십여 두락의 땅이 있겠고

생활수준이 얕아질 것이요

고료 수입도 다소 있을 것이고

마치 R씨까지도 유인해서 끌고 나갈 듯이

호기가 있었던 것이다

좀더 신중히 하지

호의에서 나온 이런 말에도 그는 적의나 있는 듯이

그럴 필요 없지요

하고 그 자리서 내 찼던 것이다

사직 이유는 병이었다

간부측에서 병 하고 반문했을 만큼

그는 그렇게 말 못된 병자는 물론 아니다

병이라면 그것은 생리적인 병보다도

정신적인 병이 더 위기에 가까웠었다

의사들이 폐가 어떠니 늑막이 위험하니 할 때도

한 편 겁은 내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속 짐작이 있기는 했었다

그와 같이 소설을 써 오던 H가

자기와 같은 자신으로 버티다가

쓰러진 그 길로 끝을 막은 무서운 사실에

잠시 아차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업을 버릴 만큼

약해진 터도 아니었다

이른 봄 그가 아내도 몰래 사직서를 쓰고

도장까지 단정히 눌러 가진 것은

그의 조그만 영웅심에서였다

수택은 동경에서부터 소설을 써왔다

장방형도 아니요 삼각형도 아니요

그렇다고 똑 떨어진 원도 아니다

세상에서는 그를 혹은 스타일리스트 라고 불렀고

한때 경향문학이 성할 때는

혹은 반동 또 혹은 동반자라고

또는 허무주의자라고 야유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 자신 자기의 특징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작가였다

소설가로서 차차 알려질 무렵

아니 그 덕택이 있겠지만은

그는 취직을 했었다

그것이 그의 작가생활의 마지막 이었다

저널리즘이란 문학의 매개체를 통해서

그 갓난애 숨길만한 잔명을 근근히 유지해 왔다

첫 월급을 타던 기쁨은

지난 모월 모일 밤 자정도 가까워

바야흐로 삼라만상이 잠들려 할 때

모모동 모모번지 근방에서

뜻 아니한 비명이 주위의 정적을 깨뜨렸다

이제 탐문한 바에 의하면

등등

이런 식의 기사를 쓸 때마다 희미해 졌고

그것이 거듭되기 1 년이 못되어

그는 자기가 문학도였다는 의식 까지도

완전히 잃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경찰서를 드나들며 강절도 밀매음 사기

등속의 사건 전말을 듣는 것이

무슨 문학수업의 좋은 찬스인 것처럼

생각하던 것도 일시적이었고

악을 폭로함으로써

민중의 좋은 시준이 되게 한다던 의협심도

사실 자기 위안의

좋은 방패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그는 완전히 기계였던 것이다

아침이면 나와서 종일 돌아 다니다가

저녁 대개는 밤에

집이라고 찾아든다

친구에 휩쓸려 술 잔도 마시고

회합에서 늦어 이차가 벌어지고

이러구러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달이 바뀌고 연도가 갈렸다

그러기를 5년

그 동안에 수택이가 얻은 것은 허영과 태만이다

그 에 얻은 것이 있다면 지기가 아닌

이런 사회에서의 독특한 존재인

이르는 바 친구

아니 지인이다

그리고 잃은 것은 얻은 것에 비해서 너무나 많았다

그는 적어도 세 사람의 친구는 가졌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한 해 두 해 지내는 동안에

그 세 친구도 없어졌고

문학도로서 쌓았던 조그만 탑도

출판기념회나

무슨 축하회의 발기인 란에서나 겨우 발견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다

동료들이 그달 그달 발표하는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는 우울했다

우두커니 맞은편 흰 회벽을 건너다 본다

성급한 전화 종소리도

그를 깨우쳐 주지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받잖을 전환 뭣하러 맸나요

문득 고개를 들면 천리안이라고 소문난

편집장의 두 줄 시선이 쏜다

아무것 하나 얻을 것도 없는 회합에 늦도록 붙잡혔다가

홀로 막차에 앉은 때의 그 공허 허무감

그것도 비길 데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그 큰 전차간에

동그라니 혼자 앉아 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눈 속이 뜨끈해 지는 일도 있었고

얼근히 술이 취했다가 깰 무렵에 집에 돌아가면

문득 숫보가 덮인 책상이 눈에 뜨인다

펜까지 꽂혀 있는 잉크 스탠드

한 달 가야 한 번 건드려 주지도 않는 원고지가

마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주인을 기다리며

망망한 대해에 떠 있는 목선처럼 애처로워진다

다소 술 기운이 작용을 했겠지만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다

낼부터는 나도 단연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1년을 별러서 시작한 것이

소설 못 쓰는 소설가라는 단편이었다

한 소설가가 취직을 했다

박쥐처럼 해를 못 보는 생활이 계속 된다

무서운 정열로 창작욕을 흥분시켜 주기는 하나

구상이 아물어지기도 전에 출근이다

잡다한 사무에 얽매여 허덕이는 동안에

해가 지고 오뉴월 엿가래처럼 늘어진 몸을 이끌고

회합이다 이차다 야근이다를 계속 한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짜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내일 형사들을 녹여 내어

재료를 얻어낼 계획이며

안의 진행방법 등을 공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운다

그러나 이 소설도 끝끝내 소설이 못되고 말았다

그것은 몹시 무더운 날 밤이었다

그는 소학생처럼 벽에다 좌우명을 써 붙였다

1 조기할 것

2 퇴사 즉시로 귀가할 것

3 독서 혹은 창작할 것

4 일찍 취침할 것

그러나 이 좌우명은 이튿날로 권위를 잃고 말았다

이튿날은

사회부 부서 모임이 밤 아홉 시까지나 계속되었다

갑론을박의 삼 사 시간을 겪은 그는

돌아오는 길로 쓰러져 자고 말았다

이튿날은 신문사 주최 축구대회 기사로 야근을 했고

다음날은 부득이한 회합이 있어

열시

거기서 다시 이차 삼차를 거듭해서

집에 돌아온 것은 새벽 세시였다

도대체 나는 뭣 때문에 사는 걸까

누구를 위해서 사는 걸까

문화사업

이런 반문을 해본다는 것은

벌써 하나의 전설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수택은 또 한 가지 위대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적어도 자기는 신문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 아닐 뿐만 아니라

영원히 신문기자로서 성공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아니

신문기자로서의 성공이

곧 문학적으로 그를 파멸시키는 것임을

그제서야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은 희극

아니 비극이었다

수택이 하루 이틀 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하는 일없이 교외를 빈들빈들 돌아 다녔다

하루는 S라는 동료를 유인해서 청량리로 나갔다

전부는 아니나 그만둘 계획만을 이야기하고

생계로 이야기가 옮아 갔을 때다

그도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냄새인지 몰랐었다

매퀴한 냄새가 코를 꼭 찌른다

그 냄새는 코를 통해서

심장으로 깊이깊이 기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흙내였다

그것이 흙내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그가 어렸을 때 듣던 아버지의 음성이

바로 귓전에서 울리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흙내를 맡아야 산다

너도 공불 하고 나선

아비와 같이 와서 농사를 짓자

학문

학문도 좋긴 하다

허지만 학문이 짐이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 그는 아버지를 비웃었다

흙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면서도

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가

가엾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조소하던 그 말이

지금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집으로 가자

흙을 만지자

수택의 로맨틱한 계획은 이리하여 세워진 것이었다

그의 첫 계획은

그동안 장만했던 가구를 전부 팔아 버리리라 한 것이나

아내가 너무 섭섭해 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상상한 것의 절반도 못되었다

이백 원 남짓한 퇴직금이 그들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소꼴지게와 함께 수택의 일행이 쪽대문 안에 들어서자

흰둥이란 놈이 컹 하고 물어 박는다

빈 집처럼 찬 바람이 휘 돈다

남의 집으로 잘못 들어온 모양이다

수택은 부리나케 나와 문패를 보니

분명히 자기 집이다

짐이 들어왔으니까 마중들을 나가신 모양이군요

아내가 들어가도 나오도 못하고 있는데

오빠 소리가 나며 와들 몰려든다

십 년 가까이 못 본 늙은 아버지도

설명을 듣지 않고는 모를 아이들 속에 끼어 있었다

뒤미처 찢어진 고무신짝을 집어 든 고모도 왔고

폭 늙은 어머니도 뒤따라 왔다

그래 이 몹쓸 것아

그렇게두

하고 막 어머니의 원망이 나오자 그는 사랑으로 나갔다

이간 장방은 새에 장지를 질러

웃 방은 남에게 세를 주었는지

주판 소리가 댈그락거린다

저 밖엣게 너들 짐이냐

그래 헌데 갑자기 이게 웬일이냐

차차 말씀 드리겠습니다

수택은 안으로 들어왔다

안채 웃쪽으로 달린 골방이 치워졌다

바람이 잔뜩 든 벽하며

벽 흙을 안고 자빠진 종잇장이며

비워 두었던 탓인지 곰팡내가 펄썩 난다

색지를 붙인 궤짝이며 주둥이도 없는 단지

도깨비라도 나와 멱살을 잡을 듯싶은 방이다

횃대에 걸린 헌 옷은 흡사 죽은 사람같이 늘어졌다

수택의 그 아름다운 농촌생활의 첫 꿈이 깨진 것은

이 방에서였다

그의 공상에서는

방부터가 이렇게 허무하지는 않았다

그날 밤 아버지와 아들은 오래간만에 자리를 마주 했다

웃방에서 주판알을 튕기던 장사치도 갔고

단 둘만이 호젓이 앉았다

고향으로 내려오기로 하기는 하면서도

사실 수택은 집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자기가 집을 나갈 때는

논이 한 이십여 두락에 밭이 여남은 갈이나 있었다

그 후 동경서 나와서 들렸을 때는

논 닷말 지기가 줄었고

밭이 하루갈이 남의 손에 넘어 갔었다

그런지 칠 년

그동안 거의 남처럼

서신도 별로 없이 지내온 아버지와 아들이다

물론 이렇다는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으로 그런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이 문화인인 아들은

원시인 그대로인 아버지를 경멸 했고

아버지는 또 아버지대로

너무나 문화한 아들을 경이원지 했을 뿐이다

흙 냄새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이냐

그깟 놈

눈만 다락 같이 높았지

그는 이렇게 자기 아들을 조소했다

아들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흙투성이가 되어 사는 꼴이 싫다 했다

흙에서 나서 흙을 만지며 컸고

흙을 먹고 사는 아버지

옷에까지 흙투성이가 되어 사는

흙인지 사람인지 모를 한낱 평범한 농부에게

털끝 만한 존경도 갖지 못했다

당당한 문화인인 아들은

흙투성이인 김영감을

내 아버지라고 내세우기조차 꺼려했다

이러한 아버지를 가졌다는 것은

자기의 큰 치욕이라고까지 생각해 온 터다

결혼을 하면서도 자기 아버지를 청하지 않은 것도

그 자신은 친구나 동료들한테 달리 변명은 했겠지만

사실 자기 아버지의 그 흙투성이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는 허영에서였다

김영감만 해도 이런 눈치를 못 챌 리 없었다

집안에서고 동네에서

왜 며느리 보는데 안 가느냐고 해도

아 그 잘난 놈 잔치에 못난 애비가 가

댕꼴 곽주식이 아들 놈 처럼

제 애빌 보구 누구냐니까

우리집 머슴이라고 대답 하더라는데

그런 놈들이 애빌 보구

행랑아범 이라구 하지 말란 법이 있다던가

이렇게 격분을 했었다

사실 그때의 수택으로서는 어쩌면

그렇게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가 싫으니까 차라리 못 오게 한 것 이었을 것이다

이런 아들이 지금 도시에는 얼마나 많을 것인가

사람이란 흙내를 맡아야 하느니라

대처 사람들이 암만 고량진미로 음식을 만든대도

시골 음식처럼 구수한 맛이 없느니라

마찬가지야

사람이란 흙내도 맡고 된장 맛도 나고 해야

구수한 맛이 나는 게지

음식이나 사람이나 대처 사람들이 맑구 경우야 밝지

허지만 사람이란 경우만 가지고 산다더냐

일테면 말이다

내가 네 발등을 잘못해서 밟았다고 치자꾸나

그러면 넌 발끈할 게다

하지만 우리 시골 사람들은 잘못해 밟았나보다 하군

그만이거든

경우로 친다면야 남의 발을 밟은 사람이 글지

그래 이 많은 인총에 경우만 가지고 살려구 들어

수택이 중학교를 다닐 때

고향에 돌아온 것을 붙잡고

김영감은 이렇게 자기의 지론을 폈다

그때만 해도 도회물을 먹은 아들은

물론 코웃음을 쳤다

몇 핸가 후의 일이다

음력과세를 한다고 고향에 내려온 일이 있었다

이십 년래의 혹한이니 삼십 년의 추위니

날마다 신문이 떠들어댈 때였다

그는 겉으로는 하도 오래간만이니

집에 와서 과세를 한다고 꾸몄지만

사실은 근방 읍에까지 출장이 있어서

온김에 들린 것이었다

그날 밤 수택의 집에는 도둑이 들었다

벽에서 나는 황토 냄새와

그야말로 된장내처럼 쾨쾨한 냄새로

잠을 못 이루고 있을 때

울 안에서 발소리가 난다

조금 있더니 누군지 밖에서

아무것두 없으니 나오 나오

하는 애원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 음성이었다

수택은 문구멍으로 가만히 내다 봤다

도둑이 분명하다

밖에서는 나오라고 하나

나갈 길을 막아선지라 어쩔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황당해 한 도둑은 급기야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나갈 길을 좀 티워줘유

이때 그는 벌써 부엌을 돌아서 울 안에 와 있었다

손에 흉기 하나 들지 않은 좀도둑 임을 발견한 그는

억 소리와 함께 덮쳐 잡아 나꾸었다

그는 학창시절에 배운 유도로 도둑을 메었다 치고는

제 허리끈으로 두 팔을 꽁꽁 묶었다

온 집안이 깨고 뒤미처 김영감도 달려들었다

영감의 손에는 지게작대기가 쥐어져 있었다

도둑놈도 그랬고 수택이도 그랬고

온 집안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 했다

몽둥이에 맞을 사람은 그 도둑이리라고

그러나 아니었다

지게작대기에 아랫종아리를 얻어 맞은 것은 아들이었다

수택 자신도 그랬고 도둑도 그랬을 게고

집안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것은 영감이 흥분한 나머지 잘못 때린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수택은 얼른 피했었다

피하고는 안심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김노인의 작대기는 재차 아들에게로 향하고 겨누어졌다

이 몰인정한 녀석

내 물건 도둑 안 맞았으면 그만이지

사람은 왜 친단 말이냐 응

이 치운 겨울에 도둑질하는 사람은

여북해 하는 줄 아느냐

우리네 시굴 사람은 그런 법이 없다

도둑은 울고 있었다

도둑의 등에는 쌀 한 말이 짊어 지어졌다

이튿날 수택은 지리할 만큼

긴 설교를 듣지 않으면 안되었다

사람이란 법만 가지구 사는 게 아니니라

법만 가지고 산다면야

오늘날처럼 법이 밝은 세상이 또 어디 있겠니

법으로만 산다면야

법에 안 걸릴 놈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넌 법에 안 걸리는 일만 하고 사는상 싶지

그런게 아니니라

올 가을에두 기다무라란 사람의 과수원에서

사과 하나 따 먹다가 징역을 갔느니라

남의 것을 따는 건 나쁘지

나쁘기야 하지만 그게 징역갈 죄는 아니지

어젯밤 일을 본다면

너두 네 과수밭의 실과를 따면

징역 보낼 사람이 아니냐

너 어제 그게 누군 줄 아냐

모르는 체하긴 했다만 내 저 아버진 잘 안다

알구 보면 아 알만한 사람야

시굴서야 서루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모두 한 집안 식구거든

사람 사는 이치가 다 그런 게란 말야

이러한 일이란

적어도 도회인의 감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수택은 오늘 아버지와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동안에

막연히 나마 이 이르는 바

흙냄새 의 감정이 이해 되어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김영감은 아들의 이 뜻하지 않은 계획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아들은 논 닷 마지기에 밭 하루 갈이만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자리 좋은 논으로만 여덟 마지기도 준다 했고

집도 한 채 세워주마 한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소작권을 이동 받은 것에 불과 했었다

그의 집안에는 논 닷 마지기와

밭 두어 뙈기가 남아 있을 뿐이란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피란 무서운 것인가 보구나

난 네가 애비 옆으로 와서 이렇게 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더니라

첨엔 답답하겠지만 차차 농사에도재밀 붙이구

허지만

갸가 이런 구석에서 살려구 허겠느냐

웬걸요 저 보다도 제가 서둘러서 한 노릇이니까

별말 없을 겝니다

그래 그럼 됐구나 뭐

인제 나두 남들한테 떳떳스럽구

버젓이 아들을 둘씩이나 두고도

자식을 거느리고 있지 못한 것이

동네 사람들 보기에 미안타는 것이었다

그의 형은 딴 뜻을 품고 집을 나간지 십 년이다

하여튼 이리해서 수택의 농촌생활은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