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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무대, 2017.02.04: 장경윤 - “한 달만 사랑할게!” [2]

2017.02.04: 장경윤 - “한 달만 사랑할게!” [2]

미나: 아득히 잊혀졌던 어린 시절 꿈에서 깨어보니, 그때처럼 우린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그동안 잊고있던 우진이의 든든한 등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난 뭔가에 홀린 듯, 눈을 뜬 그대로, 우진이의 자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우진: (자는 숨소리 새근새근)

미나: 그땐 우진이 너도 아이였었는데... 그새 어른이 됐네? 어... 왜 이러지? 왜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쑥 가라앉는 것 같지?

여직원: 미나씨? 왜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아까 박우진씨가 찾던데..

미나: 선배님. 우진이가 찾으면 저 못봤다고 해주세요. 여직원 으음? 미나씨 오늘 왜 저래?

...

미나: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이미나 너 왜 이러냐. 바보같이. 저거 우진이잖아? 에이씨. 또 어디로 숨지?

미나: 가만, 내가 왜? 내가 젤 왜 피해? 뭐 때매?

우진: 미나야?

미나: 엄마야 깜짝이야.

우진: 뭐야? 귀신이라도 봤어? 왜 이렇게 놀래?

미나: 내가 언제? ... 그냥 뭘 좀 생각하느라 그래.

우진: 너 이상해. 너 뭐있지? 아침부터 쭉 찾았는데 계속 바쁜 척이야.

미나: 있긴 뭐가 있어?

우진: 그럼 왜 날 피해?

미나: 내가? 언제?

우진: 너 수상해.

미나: 왜? 왜 찾았는데? 왜?

미나: 여긴 디자인실이잖아. 뭘 도와 달라는 건데?

우진: 거기 걸린 드레스 좀 입어봐.

미나: 이걸 입으라고? 이걸 내가 왜?

우진: 야. 너 좀 치사하다. 너 셔츠 만들 때 내가 도와 줬잖아. 니 서툰 솜씨 때문에 그때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줄 알아? 와 그때 생각하니까 다시 열받네. 나 피팅하다가 버려놓고 이사님하고 데이트하러 갔었지?

미나: 아 알았어. 이거 입으면 돼? 미나: 결혼하니까 이런 게 좋구나.

우진: 호프집 안가고 이렇게 집에서 술 한잔 할 수 있는거? 미나 응. 집에 돌아갈 걱정 안 해도 되고. 술 취할 걱정 안 해도 되고.

우진: 그러네. 집에서 마시니까 편해서 좋다.

미나: 우진아

우진: 왜? 왜 그렇게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미나: 만약에, 니가 누굴 좋아한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알어?

우진: 뭐? 그걸 왜 모르냐 바보야. 마음이 먼저 알잖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든. 사랑을 느끼는 그 순간, 심장이 쑥! 꺼졌 다 올라오는 것처럼... 숨이 턱 막히잖아.

미나: 아아.... 그런 거였구나.... 사랑한다는 게.

우진: 그것도 몰랐냐? 아, 이제 이사님 보면 가슴이 철렁 하냐? 오우... 그거 잘 됐네.

미나: 어?

어어... 후....

우진: 너 오늘 왜 이렇게 투쟁하듯이 술을 마시냐? 이제 그만 마셔.

미나: 나 안 취했어. 나 더 마실 수 있어.

우진: 너 취했어. 그만 마셔.

미나: 어?

술이 없네. 내가 가져올게. 너 딱 기다려. 우진: 알았어 알았어. 앉아 있어. 내가 가져올게. 어어?

미나: 아니라니까! 내가 내가 가져올 수 있다구....

미나: 아야....

미나: 서로의 다리가 엉켜 넘어지는 순간, 우진이와 나의 입술은 우연히 맞닿았다. 하지만 그 다음은... 우연이 아니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간절히 원해왔다 는 듯, 길고 긴 키스를 했다.

차이사: 조조영화는 처음이네요. 아침에 영화보면 더 좋아요?

미나: 그냥 값이 싸서 좋아요.

차이사: 하하하 미나씨 은근 귀여워요. 그래서 내가 미나씨 좋아하잖아요. 어쨌든 오늘은 아침부터 미나씨랑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은데요?

미나: 이사님께 조조영화의 추억을 선물하겠다면서, 아침부터 영화관을 찾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 난 알았다. 이사님을 핑계 삼아 도망쳐 나왔을 뿐이란 걸.

내 심장이 이렇게 설레는 이유는, 이사님도, 영화 속 남자주인공도 아닌 박우진, 그 녀석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걸려올 우진의 전화조차 두려워, 핸드폰까지 꺼버리고 하루를 보내버렸다.

미나: 벌써 밤이네.... 우진인 자나? 몰래 들어가야지. 엄마야! 깜짝이야.

놀랬잖아. 우진이 너 왜 거실에 이러고 있어? 아직 안 잤어?

우진: 왜 이제와. 나 많이 아픈데. 하루종일 너 기다렸는데.

미나: 뭐? 너 이마가 왜 이렇게 뜨거워? 얘가 몸도 완전 불덩이네. 구급차 부를게. 어서 병원가자.

우진: 그러지마.

미나: 병원 가야돼. 너 이러다 큰일 나.

우진: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병원에 안 가도 돼. 미나야 그냥 내 옆에 있어줘. 난 너만 있으면 돼.

미나: 바보같이 왜 혼자 아프고 그러냐? 나한테 전활 하지.

우진: 전화했는데... 전화기 꺼졌더라.

미나: 아... 미안. 미안해 우진아. 이미나 이 멍충이. 많이 아퍼? 진짜 병원 안 가도 되겠어?

우진: 어. 괜찮아. 니 얼굴 보니까 다 나았어.

미나: 그럼 우선 해열제부터 먹자. 어우 이 땀 좀 봐. 누워있어. 내가 얼른 닦아 줄게.

미나: 난 그날 밤 오롯이 우진의 옆을 지켰다. 우진에게 미안했고, 많이 걱정 됐고, 아픈 우진을 혼자 내버려 둔 나한테 화도 났다.

우진: 미나야?

미나: 음... 깼어? 열은 내렸네. 이제 괜찮아?

우진: 응. 이제 괜찮아. 다 나았어.

미나: 다행이다.

우진: 밤새 간호하느라 잠도 못자고.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미나: 친구끼리 이정돈 기본이지. 우리가 보통사인가? 결혼까지 해주는 절친이잖아.

미나: 몇시야? 와우 벌써 아침 열시가 넘었어.

우진: 미나 너 배 고프겠다.

미나: 그러게. 니 열이 내리니까 이제는 배가 고프네.

우진: 좀 쉬어. 식사는 내가 준비할게.

미나: 아냐. 내가 할게.

우진: 그냥 있어.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미나: 괜찮겠어?

우진: 어. 아주 좋아졌어.

미나: 누구지?

우진: 내가 나가볼게.

우진: 누구세요? 헉!! 이.. 이사님.

차이사: 박우진씨. 뭡니까?

박우진씨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여긴 이미나씨 오피스텔 아닌가요?

우진: 저 이사님.. 저기.. 그니까

미나: 우진아 누구야?

차이사: 요약하면, 미나씨 할머니가 나와 미나씨의 결혼을 반대하셔서 박우진 씨와 한 달 동안의 계약 결혼을 했다는 얘긴데.. 맞아요?

미나: ...네.

차이사: 계약 결혼이면 굳이 같이 살 필요까진 없을 텐데.. 박우진씬 왜 이 집에 사는 거죠?

미나: 그건..

우진: 그건 가끔 할머니께서 올라오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사님께서 오해는 안 하셨음 합니다. 미나와 저, 같이 살아도 변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차이사: 그건 박우진씨 생각이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미나: 이사님...

차이사: 알았습니다. 일단 생각을 좀 해보죠. 어쨌든 내가 안 이상 이 결혼은 이대로 둘 수 없습니다. 계약 기간도 거의 다 됐으니 이제 두 사람 계획대로 정리하시죠?

차이사: 지난번에 얘기한 품평회 말입니다. 중간 점검을 갖으려고 합니다.

남직원: 중간점검이요? 디자인 유출우려로 지금껏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요.

차이사: 한 번도 안 했으니까 하자는 겁니다. 완성이 안됐어도 진행된 정도만 보여주면 됩니다. 특히, 이미나씨? 박우진씨?

미나: 네?

우진: 네.

차이사: 두 사람은 처음으로 디자인한 옷을 제출하는 만큼 회사에서 기대가 큽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결과물 ‘반드시' 보여주세요. 우진: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차이사: 뭡니까?

우진: 저는 이번 품평회에 옷을 제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차이사: 그게 무슨 말이죠? 정식 디자이너로 인정받는 자리에 제출할 옷이 없다구요? 그게 말이 됩니까?

미나: 야아... 너 왜그래? 그 드레스는? 우진: 죄송합니다.

차이사: 그럼 박우진씨는 정식 디자이너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옷을 만들 지 못하는 디자이너는 이곳에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박우진씨는 내일 당장 대전공장으로 내려가세요. 이상!

미나: 여긴.. 웨딩드레스 샵 아니예요?

메니져: 이사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래만에 뵙습니다.

차이사: 아. 정메니져 반가와요. 여긴 저랑 결혼할 사람입니다. 예쁜 걸로 추천해주세요.

미나: 안녕하세요.

메니져: 축하드립니다. 신부님이 고우시네요. 이 쪽으로 오시죠.

미나: 이사님 드레스는 좀 나중에 해도...

차이사: 입어보는 건데 어때요? 우리 곧 결혼하는거 맞잖아요.

미나: 이사님은 결혼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기쁘고 행복해야할 순간 이었지만, 왠지 부담스러웠고 가슴 한 쪽이 시려왔다. 공장 발령 회의 이후, 우진이마저 날 피했다. 이렇게... 멀어지는 걸까, 두렵고 불안했다.

미나: 와아... 이게 다 뭐야? 이 많은 초랑 꽃이랑. 너무 예쁘다!

우진: 맘에 들어?

미나: 응. 맘에 들어. 넌 수트까지 입고 있으니까 더 근사해 보인다.

우진: 미나야 저기 봐봐.

미나: 와아! 드레스 완성했구나! 진짜 예쁘다. 이렇게 예쁜데 왜 제출 못하겠다고 했어...

우진: 이 드레스는, 선물할거야.

미나: 뭐? 누구... 한테?

우진: 이미나, 너한테.

미나: 응? 무슨 말이야 그게?

우진: 내가 처음으로 만든 이 드레스. 미나 너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미나: 진짜? 진짜 나한테 주는 거야? 우진아.

우진: 어서 입어봐. 니가 입은 모습 보고 싶어.

미나: 짜잔. 어때? 나 예뻐?

우진: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어. 예쁘다....

미나: 나도 맘에 쏙 들어. 너 솜씨 완전 좋은데?

우진: 미나야. 한번 안아봐도 돼?

미나: 어?

미나: 우진아 너 울어? 왜?

무슨일이야?

우진: 잠깐이었지만 너랑 이렇게 한 집에 살게 돼서... 기쁘고 행복했어.

미나: 왜 그래? 어디 멀리 가는 사람처럼.

우진: 너랑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었어... 근데 난 여기까지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미나: 그게 무슨 말이야?

우진: 이 결혼반지 돌려줄게. 우리 결혼은 이제 끝낼 때가 된 것 같아.

미나: 차이사님 때문에?

우진: 아니. 그런 거 아냐.

미나: 그럼... 내가 싫어?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할 만큼 그렇게 내가 싫어졌어?

우진: 바보야. 내가 너... 사랑하는 거 몰라? 널 사랑하지 않았다면, 한 달 아니 하루라도 너랑 결혼하는 일 같은건 없었어.

미나: 근데 왜? 왜 떠나는 건데?

우진: 어쩔 수가 없어....

미나: 나두 잘 몰랐었는데 이제야 겨우 알게 됐어. 내가.... 널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아침에 눈 뜰 때, 잠들 때, 항상, 니가 가장 먼저 생각 나. 회사에서도 너만 보이고, 니 목소리만 들려. 내 마음... 너무 늦게 깨달아서 미안해 우진아. 위장 결혼 같은 걸로... 널 이용하려 해서 정말 미안해.

우진: 그래도 우린 여기까지야 미나야.

미나: 나랑 정말 헤어지겠다는 거야? 내가 이렇게 매달려도?... 그래도 헤어지겠다는 거야?

우진: 약속했잖아 우리. 한 달 동안만 사랑하자고.

미나: 내가 잘못 했어. 니가 나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모른 척 했어. 벌 받을게. 벌주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치만 제발 헤어지잔 말만 하지마. 너 때문에 가슴이... 철렁했단 말이야.

우진: 잘 지내. 제발. 아프지 말고.

미나: 지금 이거... 프로포즈가 아니라 이별 파티였어?

우진: 미나야....

미나: 박우진 너 왜 그래? 그러지마 나 진짜 무섭단 말야.

우진: 잘 있어 미나야.... 안녕.... 미안해.....

미나: 너 진짜 가는 거야? 얼른 돌아와! 셋 셀 동안 안 오면 나 너 다신 안 볼거야. 하나 둘 셋..

차이사: 미나씨. 미나씨 일어났어요?

미나: 이사님? 이사님이 어떻게...

차이사: 이제 됐어요. 이제 아무 걱정 말아요.

미나: 여기가 어디예요?

차이사: 병원이예요. 이렇게 깨어나줘서 고마워요.

선생님!! 의사 선생님! 간호사! 환자가 깼어요! 의사: 이미나씨? 자, 여기 불빛보고, 눈 좀 깜빡여보세요.

미나: 선생님. 제가 왜... 병원에 있어요?

의사: 이미나씨. 죽다 살아났어요. 교통사고로 한 달동안 혼수상태였습니다.

미나: 제가... 한 달 동안 혼수상태 였다구요?

의사: 네. 완전히 코마상태에 들어간 줄 알았는데.... 이건 기적이예요! 정말 하늘이 도운 겁니다. 사고 당시 운전자가 핸들을 그렇게 꺾지 않았다면 아마 절대 살아날 수 없었을거에요.

미나: 아... 운전자...? 우진이는요? 우진이도 있지 않았나요?

의사: 저.. 그게....이미나씨에겐 우선 안정이 최우선입니다.

차이사: 그래요 미나씨..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말아요.

미나: 우진이가 옆에 있었어요. 우진이 지금 어딨어요?

의사: 후우. 박우진씨는..

간호사: 선생님!! 박우진 환자가...!! 빨리요!

의사: 네?

미나: 우진이가 왜요! 무슨 일이에요! 미나: 우진아. 내 목소리 들려? 제발.. 눈좀 떠봐.

간호사: 선생님 어레스틉니다.

의사: 제세동기 준비해. 200줄 차지!

간호사: 클리어!

의사: 숏!

의사: 300줄 차지!

간호사: 클리어!

의사: 숏!

간호사: 반응이 없어요.

미나: 안돼. 안돼. 가지마 이 나쁜 자식아. 우진아-

미나: 우진아... 너처럼 듬직한 나무로 골랐어. 마음에 드니? 네가 거름이 되고 뿌리가 돼서, 나무는 더 잘 자랄거야. 나처럼...

좀 전에 차이사님이랑 얘기하는 거 너도 들었지? 그래.

헤어졌어. 이사님은 언제까지고 날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바뀔 거 같지가 않아... 너 때문이야. 너, 우리 할머니랑 똑같은 얘길 했었잖아? 좋아하는 마음보다, 욕심이 더 크면 안되는 거라고. 결혼은, 욕심으로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아무리 말해도 못알아듣는 나 때문에... 한달동안 더 머물다 간거였지?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 죽음조차 미루고, 있는 힘을 다해 버텼던 거지? 꿈속에서도 나에게 있는 힘껏 말했던 거지?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날 위해서.........

우진아... 미안해. 그 사랑,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아서. 네가 날 지켜준 그 한 달 덕분에, 너 대신 내가 살았어. 이 반지, 우리가 누워있는 동안 할머니가 너랑 내 손에 나란히 끼워준 이 반지로, 널 영원히 기억할게. 한 달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

-끝.


2017.02.04: 장경윤 - “한 달만 사랑할게!” [2]

미나: 아득히 잊혀졌던 어린 시절 꿈에서 깨어보니, 그때처럼 우린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자고 있었다. 그동안 잊고있던 우진이의 든든한 등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난 뭔가에 홀린 듯, 눈을 뜬 그대로, 우진이의 자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우진: (자는 숨소리 새근새근)

미나: 그땐 우진이 너도 아이였었는데... 그새 어른이 됐네? 어... 왜 이러지? 왜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쑥 가라앉는 것 같지?

여직원: 미나씨? 왜 그렇게 멍때리고 있어? 아까 박우진씨가 찾던데..

미나: 선배님. 우진이가 찾으면 저 못봤다고 해주세요. 여직원 으음? 미나씨 오늘 왜 저래?

...

미나: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이미나 너 왜 이러냐. 바보같이. 저거 우진이잖아? 에이씨. 또 어디로 숨지?

미나: 가만, 내가 왜? 내가 젤 왜 피해? 뭐 때매?

우진: 미나야?

미나: 엄마야 깜짝이야.

우진: 뭐야? 귀신이라도 봤어? 왜 이렇게 놀래?

미나: 내가 언제? ... 그냥 뭘 좀 생각하느라 그래.

우진: 너 이상해. 너 뭐있지? 아침부터 쭉 찾았는데 계속 바쁜 척이야.

미나: 있긴 뭐가 있어?

우진: 그럼 왜 날 피해?

미나: 내가? 언제?

우진: 너 수상해.

미나: 왜? 왜 찾았는데? 왜?

미나: 여긴 디자인실이잖아. 뭘 도와 달라는 건데?

우진: 거기 걸린 드레스 좀 입어봐.

미나: 이걸 입으라고? 이걸 내가 왜?

우진: 야. 너 좀 치사하다. 너 셔츠 만들 때 내가 도와 줬잖아. 니 서툰 솜씨 때문에 그때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줄 알아? 와 그때 생각하니까 다시 열받네. 나 피팅하다가 버려놓고 이사님하고 데이트하러 갔었지?

미나: 아 알았어. 이거 입으면 돼? 미나: 결혼하니까 이런 게 좋구나.

우진: 호프집 안가고 이렇게 집에서 술 한잔 할 수 있는거? 미나 응. 집에 돌아갈 걱정 안 해도 되고. 술 취할 걱정 안 해도 되고.

우진: 그러네. 집에서 마시니까 편해서 좋다.

미나: 우진아

우진: 왜? 왜 그렇게 봐?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미나: 만약에, 니가 누굴 좋아한다... 그러면, 그걸 어떻게 알어?

우진: 뭐? 그걸 왜 모르냐 바보야. 마음이 먼저 알잖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든. 사랑을 느끼는 그 순간, 심장이 쑥! 꺼졌 다 올라오는 것처럼... 숨이 턱 막히잖아.

미나: 아아.... 그런 거였구나.... 사랑한다는 게.

우진: 그것도 몰랐냐? 아, 이제 이사님 보면 가슴이 철렁 하냐? 오우... 그거 잘 됐네.

미나: 어?

어어... 후....

우진: 너 오늘 왜 이렇게 투쟁하듯이 술을 마시냐? 이제 그만 마셔.

미나: 나 안 취했어. 나 더 마실 수 있어.

우진: 너 취했어. 그만 마셔.

미나: 어?

술이 없네. 내가 가져올게. 너 딱 기다려. 우진: 알았어 알았어. 앉아 있어. 내가 가져올게. 어어?

미나: 아니라니까! 내가 내가 가져올 수 있다구....

미나: 아야....

미나: 서로의 다리가 엉켜 넘어지는 순간, 우진이와 나의 입술은 우연히 맞닿았다. 하지만 그 다음은... 우연이 아니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간절히 원해왔다 는 듯, 길고 긴 키스를 했다.

차이사: 조조영화는 처음이네요. 아침에 영화보면 더 좋아요?

미나: 그냥 값이 싸서 좋아요.

차이사: 하하하 미나씨 은근 귀여워요. 그래서 내가 미나씨 좋아하잖아요. 어쨌든 오늘은 아침부터 미나씨랑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좋은데요?

미나: 이사님께 조조영화의 추억을 선물하겠다면서, 아침부터 영화관을 찾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 난 알았다. 이사님을 핑계 삼아 도망쳐 나왔을 뿐이란 걸.

내 심장이 이렇게 설레는 이유는, 이사님도, 영화 속 남자주인공도 아닌 박우진, 그 녀석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걸려올 우진의 전화조차 두려워, 핸드폰까지 꺼버리고 하루를 보내버렸다.

미나: 벌써 밤이네.... 우진인 자나? 몰래 들어가야지. 엄마야! 깜짝이야.

놀랬잖아. 우진이 너 왜 거실에 이러고 있어? 아직 안 잤어?

우진: 왜 이제와. 나 많이 아픈데. 하루종일 너 기다렸는데.

미나: 뭐? 너 이마가 왜 이렇게 뜨거워? 얘가 몸도 완전 불덩이네. 구급차 부를게. 어서 병원가자.

우진: 그러지마.

미나: 병원 가야돼. 너 이러다 큰일 나.

우진: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병원에 안 가도 돼. 미나야 그냥 내 옆에 있어줘. 난 너만 있으면 돼.

미나: 바보같이 왜 혼자 아프고 그러냐? 나한테 전활 하지.

우진: 전화했는데... 전화기 꺼졌더라.

미나: 아... 미안. 미안해 우진아. 이미나 이 멍충이. 많이 아퍼? 진짜 병원 안 가도 되겠어?

우진: 어. 괜찮아. 니 얼굴 보니까 다 나았어.

미나: 그럼 우선 해열제부터 먹자. 어우 이 땀 좀 봐. 누워있어. 내가 얼른 닦아 줄게.

미나: 난 그날 밤 오롯이 우진의 옆을 지켰다. 우진에게 미안했고, 많이 걱정 됐고, 아픈 우진을 혼자 내버려 둔 나한테 화도 났다.

우진: 미나야?

미나: 음... 깼어? 열은 내렸네. 이제 괜찮아?

우진: 응. 이제 괜찮아. 다 나았어.

미나: 다행이다.

우진: 밤새 간호하느라 잠도 못자고.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미나: 친구끼리 이정돈 기본이지. 우리가 보통사인가? 결혼까지 해주는 절친이잖아.

미나: 몇시야? 와우 벌써 아침 열시가 넘었어.

우진: 미나 너 배 고프겠다.

미나: 그러게. 니 열이 내리니까 이제는 배가 고프네.

우진: 좀 쉬어. 식사는 내가 준비할게.

미나: 아냐. 내가 할게.

우진: 그냥 있어.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미나: 괜찮겠어?

우진: 어. 아주 좋아졌어.

미나: 누구지?

우진: 내가 나가볼게.

우진: 누구세요? 헉!! 이.. 이사님.

차이사: 박우진씨. 뭡니까?

박우진씨가 왜 여기에 있습니까. 여긴 이미나씨 오피스텔 아닌가요?

우진: 저 이사님.. 저기.. 그니까

미나: 우진아 누구야?

차이사: 요약하면, 미나씨 할머니가 나와 미나씨의 결혼을 반대하셔서 박우진 씨와 한 달 동안의 계약 결혼을 했다는 얘긴데.. 맞아요?

미나: ...네.

차이사: 계약 결혼이면 굳이 같이 살 필요까진 없을 텐데.. 박우진씬 왜 이 집에 사는 거죠?

미나: 그건..

우진: 그건 가끔 할머니께서 올라오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사님께서 오해는 안 하셨음 합니다. 미나와 저, 같이 살아도 변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차이사: 그건 박우진씨 생각이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미나: 이사님...

차이사: 알았습니다. 일단 생각을 좀 해보죠. 어쨌든 내가 안 이상 이 결혼은 이대로 둘 수 없습니다. 계약 기간도 거의 다 됐으니 이제 두 사람 계획대로 정리하시죠?

차이사: 지난번에 얘기한 품평회 말입니다. 중간 점검을 갖으려고 합니다.

남직원: 중간점검이요? 디자인 유출우려로 지금껏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요.

차이사: 한 번도 안 했으니까 하자는 겁니다. 완성이 안됐어도 진행된 정도만 보여주면 됩니다. 특히, 이미나씨? 박우진씨?

미나: 네?

우진: 네.

차이사: 두 사람은 처음으로 디자인한 옷을 제출하는 만큼 회사에서 기대가 큽니다.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결과물 ‘반드시' 보여주세요. 우진: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차이사: 뭡니까?

우진: 저는 이번 품평회에 옷을 제출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차이사: 그게 무슨 말이죠? 정식 디자이너로 인정받는 자리에 제출할 옷이 없다구요? 그게 말이 됩니까?

미나: 야아... 너 왜그래? 그 드레스는? 우진: 죄송합니다.

차이사: 그럼 박우진씨는 정식 디자이너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옷을 만들 지 못하는 디자이너는 이곳에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박우진씨는 내일 당장 대전공장으로 내려가세요. 이상!

미나: 여긴.. 웨딩드레스 샵 아니예요?

메니져: 이사님, 안녕하셨습니까? 오래만에 뵙습니다.

차이사: 아. 정메니져 반가와요. 여긴 저랑 결혼할 사람입니다. 예쁜 걸로 추천해주세요.

미나: 안녕하세요.

메니져: 축하드립니다. 신부님이 고우시네요. 이 쪽으로 오시죠.

미나: 이사님 드레스는 좀 나중에 해도...

차이사: 입어보는 건데 어때요? 우리 곧 결혼하는거 맞잖아요.

미나: 이사님은 결혼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기쁘고 행복해야할 순간 이었지만, 왠지 부담스러웠고 가슴 한 쪽이 시려왔다. 공장 발령 회의 이후, 우진이마저 날 피했다. 이렇게... 멀어지는 걸까, 두렵고 불안했다.

미나: 와아... 이게 다 뭐야? 이 많은 초랑 꽃이랑. 너무 예쁘다!

우진: 맘에 들어?

미나: 응. 맘에 들어. 넌 수트까지 입고 있으니까 더 근사해 보인다.

우진: 미나야 저기 봐봐.

미나: 와아! 드레스 완성했구나! 진짜 예쁘다. 이렇게 예쁜데 왜 제출 못하겠다고 했어...

우진: 이 드레스는, 선물할거야.

미나: 뭐? 누구... 한테?

우진: 이미나, 너한테.

미나: 응? 무슨 말이야 그게?

우진: 내가 처음으로 만든 이 드레스. 미나 너한테 주는 선물이라고.

미나: 진짜? 진짜 나한테 주는 거야? 우진아.

우진: 어서 입어봐. 니가 입은 모습 보고 싶어.

미나: 짜잔. 어때? 나 예뻐?

우진: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어. 예쁘다....

미나: 나도 맘에 쏙 들어. 너 솜씨 완전 좋은데?

우진: 미나야. 한번 안아봐도 돼?

미나: 어?

미나: 우진아 너 울어? 왜?

무슨일이야?

우진: 잠깐이었지만 너랑 이렇게 한 집에 살게 돼서... 기쁘고 행복했어.

미나: 왜 그래? 어디 멀리 가는 사람처럼.

우진: 너랑 오래오래 같이 있고 싶었어... 근데 난 여기까지야.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미나: 그게 무슨 말이야?

우진: 이 결혼반지 돌려줄게. 우리 결혼은 이제 끝낼 때가 된 것 같아.

미나: 차이사님 때문에?

우진: 아니. 그런 거 아냐.

미나: 그럼... 내가 싫어?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할 만큼 그렇게 내가 싫어졌어?

우진: 바보야. 내가 너... 사랑하는 거 몰라? 널 사랑하지 않았다면, 한 달 아니 하루라도 너랑 결혼하는 일 같은건 없었어.

미나: 근데 왜? 왜 떠나는 건데?

우진: 어쩔 수가 없어....

미나: 나두 잘 몰랐었는데 이제야 겨우 알게 됐어. 내가.... 널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아침에 눈 뜰 때, 잠들 때, 항상, 니가 가장 먼저 생각 나. 회사에서도 너만 보이고, 니 목소리만 들려. 내 마음... 너무 늦게 깨달아서 미안해 우진아. 위장 결혼 같은 걸로... 널 이용하려 해서 정말 미안해.

우진: 그래도 우린 여기까지야 미나야.

미나: 나랑 정말 헤어지겠다는 거야? 내가 이렇게 매달려도?... 그래도 헤어지겠다는 거야?

우진: 약속했잖아 우리. 한 달 동안만 사랑하자고.

미나: 내가 잘못 했어. 니가 나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모른 척 했어. 벌 받을게. 벌주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치만 제발 헤어지잔 말만 하지마. 너 때문에 가슴이... 철렁했단 말이야.

우진: 잘 지내. 제발. 아프지 말고.

미나: 지금 이거... 프로포즈가 아니라 이별 파티였어?

우진: 미나야....

미나: 박우진 너 왜 그래? 그러지마 나 진짜 무섭단 말야.

우진: 잘 있어 미나야.... 안녕.... 미안해.....

미나: 너 진짜 가는 거야? 얼른 돌아와! 셋 셀 동안 안 오면 나 너 다신 안 볼거야. 하나 둘 셋..

차이사: 미나씨. 미나씨 일어났어요?

미나: 이사님? 이사님이 어떻게...

차이사: 이제 됐어요. 이제 아무 걱정 말아요.

미나: 여기가 어디예요?

차이사: 병원이예요. 이렇게 깨어나줘서 고마워요.

선생님!! 의사 선생님! 간호사! 환자가 깼어요! 의사: 이미나씨? 자, 여기 불빛보고, 눈 좀 깜빡여보세요.

미나: 선생님. 제가 왜... 병원에 있어요?

의사: 이미나씨. 죽다 살아났어요. 교통사고로 한 달동안 혼수상태였습니다.

미나: 제가... 한 달 동안 혼수상태 였다구요?

의사: 네. 완전히 코마상태에 들어간 줄 알았는데.... 이건 기적이예요! 정말 하늘이 도운 겁니다. 사고 당시 운전자가 핸들을 그렇게 꺾지 않았다면 아마 절대 살아날 수 없었을거에요.

미나: 아... 운전자...? 우진이는요? 우진이도 있지 않았나요?

의사: 저.. 그게....이미나씨에겐 우선 안정이 최우선입니다.

차이사: 그래요 미나씨..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말아요.

미나: 우진이가 옆에 있었어요. 우진이 지금 어딨어요?

의사: 후우. 박우진씨는..

간호사: 선생님!! 박우진 환자가...!! 빨리요!

의사: 네?

미나: 우진이가 왜요! 무슨 일이에요! 미나: 우진아. 내 목소리 들려? 제발.. 눈좀 떠봐.

간호사: 선생님 어레스틉니다.

의사: 제세동기 준비해. 200줄 차지!

간호사: 클리어!

의사: 숏!

의사: 300줄 차지!

간호사: 클리어!

의사: 숏!

간호사: 반응이 없어요.

미나: 안돼. 안돼. 가지마 이 나쁜 자식아. 우진아-

미나: 우진아... 너처럼 듬직한 나무로 골랐어. 마음에 드니? 네가 거름이 되고 뿌리가 돼서, 나무는 더 잘 자랄거야. 나처럼...

좀 전에 차이사님이랑 얘기하는 거 너도 들었지? 그래.

헤어졌어. 이사님은 언제까지고 날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내 마음은 바뀔 거 같지가 않아... 너 때문이야. 너, 우리 할머니랑 똑같은 얘길 했었잖아? 좋아하는 마음보다, 욕심이 더 크면 안되는 거라고. 결혼은, 욕심으로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아무리 말해도 못알아듣는 나 때문에... 한달동안 더 머물다 간거였지?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 죽음조차 미루고, 있는 힘을 다해 버텼던 거지? 꿈속에서도 나에게 있는 힘껏 말했던 거지?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날 위해서.........

우진아... 미안해. 그 사랑,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아서. 네가 날 지켜준 그 한 달 덕분에, 너 대신 내가 살았어. 이 반지, 우리가 누워있는 동안 할머니가 너랑 내 손에 나란히 끼워준 이 반지로, 널 영원히 기억할게. 한 달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