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던 날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날씨에 눈이 오려나 하는 막연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출근을 했는데 퇴근 무렵이 되자 정말 먼지 같은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첫눈이었다. 오전 근무뿐인 토요일이었고 게다가 봉급날이었다. 별달리 퇴근 후의 계획이나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아 일손을 놓고 시계를 보는 것이 10분 간격이었다. 늘 빈자리가 없이 들이차던 열람실도 거의 비어 있었다. 대학생인 듯한 청년 서넛이 문득문득 눈발 날리는 창밖을 내다보곤 할 뿐이었다. 퇴근 전에 넘겨야 할 제본 견적서가 있었으나 나는 끝내 퇴근 시간을 20분 남겨놓고 손을 씻기 위해 비누와 타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면기의 물을 한껏 틀어놓고 손에 묻은, 좀체로 지워지지 않는 인주와 잉크를 끈기 있게 닦아내다가 문득 아 지겨워, 라고 중얼거리며 진저리를 쳤다. 여느 때 같으면 세 번쯤 비누칠을 해서 닦아 내야 개운할 습관이었으나 대강대강 비누칠을 하고 물기를 닦았다. 눅눅한 타월과 값싼 비누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수은이 벗겨져 얼룩진 거울 속의 얼굴을 보았다. 눈가에 엷게 기미가 깔려 보이는 것은 거울의 얼룩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거울을 보다가, 창 너머 아득하게
떨어지는 눈발을 바라보다가는 요란하게 울리는 퇴근벨 소리에 밀리듯 화장실을 나왔다. 열람실은 텅 비어 있었다. 사서주임은 화장을 고치다 말고 내게 월급봉투를 내밀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사환이 갖다 놓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조그만 손거울을 버텨놓고 뽀얗게 분을 바르고 눈썹에 손질을 했다.
“퇴근 안하세요?”
그녀의 화장이 퇴근 준비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녀의 아이 같기도 하고 할머니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일본의 무기(舞妓)와도 같이 하얗게 분칠한 얼굴을 보며 물었다. 그녀는 루즈를 바르기 위해 입술을 뾰죽이 한 채로 눈이 오잖아, 라고 말했다. 눈이 오는 것은 쉰 살이나 먹은 여자에게도 정성들여 화장을 하는 이유가 되는가 쓸쓸히 생각하며 나는 책상을 정리했다. 나도 한때 모든 여자들이 한 번씩 꿈꾸어 보기 마련인 독신 생활을 그리곤 했다. 결혼의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을 때의 얘기였다. 그러나 이곳 시립 도서관에서 그녀와 함께 근무하면서부터 나는 독신자의 꿈을 버렸다. 그녀는 종종 내게, 혼자 사는 게 좀 불편해? 라고 말하곤 했다. 여자는, 특히 혼자 사는 여자일수록 깔끔해야 한다는 지론으로 늘 화장을 짙게 하고 화려하게 성장을 해도 그녀에게서는 가을날의 나비 같은 스산함과, 위태롭게 파닥거리는 날개짓이 느껴져 오곤 했다. 그것은 바로 15,6년 후의 내 모습이었다. 혼자 사는 생활. 그녀는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말했으나 나는 그것이 얼마나 어둡고 지리한 시간의 궤적인가를 안다.
주임이 내게 표를 내밀었다. 여대 강당에서 하는 자선 음악회표였다.
“왜, 선생님이 가시잖구요, 다른 좋은 일 있으세요?”
“난 음악엔 취미가 없어.”
나는 표를 백에 넣고 주임을 뒤에 남겨 놓은 채 도서관을 나왔다. 눈발이 조금씩 굵어지고, 거리는 토요일 오후에다 연말이어서 마냥 붐비고 있었다. 한 해가 가고있다. 한 해가 간다는 것이 내게는 그만큼 더 늙어간다는 것밖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서른네 살이 된다. 끔찍한 나이다. 갑자기 벼랑 끝에 선 듯한 막막함이 엄습해왔다.
서른 살이 넘자 나는 뚱뚱해지고 우울해졌다. 스물 다섯의 나이에 나는 결혼의 꿈을 버렸다. 애인이었던 경욱이 나를 헌신짝처럼 차버리고 난 뒤 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악조건과 최악의 상황을 갖다 붙여도 좋았을 나이에 청춘의 꿈을 내던지고 공공연히 허무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고 서른네 살인 지금 쥐꼬리만 한 시립 도서관 사서의 봉급에 매달리고 9시 출근, 6시 퇴근에 갇혀 출퇴근 카드에 도장을 찍고 세 번 결근에 한 번 꼴로 시말서를 쓰며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 불쌍한 늙은이가 될라, 언제까지 그러고 있겠니, 마땅한 자리 나서거든 재취 자리라도 가거라. 늙은 어머니는 탄식했다. 그러나 '재취라도'가 아니었다. 재취 자리밖에는 나서지 않았다. 이혼한 사람, 춤바람 난 아내를 내쫓은 사람, 사람은 늙어야만 죽는 줄 알았는데 젊은 나이에 상처한 사람도 많았다. 남이야 어떻게 보든 우선 나 자신이 재취라는 것은 무언가 찜찜하고 신선하지 않았고 또 한갓 살기 위한 방편으로 결혼하다는 것은 여지껏의 오기가 용납치 않았다.
붐비는 사람들 틈에서 밀리듯 걷다가 화랑(畵廊)들이 있는 길로 접어들었다.
새빨간 비닐 깔개를 덮은 탁자 위에서 얼음이, 아니 북극을 볼 수 없는 우리 눈에는 빙산이라고 해야 할 얼음 덩어리가 녹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난로가 피워진 방 안에는 수많은 풍선이 비누 거품처럼 떠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거울 면을 거침없이 밟으며 훼손시키는 것으로 작가의 작의(作意)를 돕고 있었다. 나는 잇따라 전시실을 차근차근 돌아보았다. 화랑 순례는 경욱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경욱은 나와 함께 화랑 순례를 하면서도 본질적으로 내게 감수성이 없다고 말했다. 경욱과 헤어진 뒤로도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으면 화랑을 찾곤 했다. 그러나 진정한 흥미를 잃은 지는 오래였다. 무위(無爲)에서 탈출해 보려는 습관일 뿐이었다.
화랑을 나와 시계를 보았다. 세 시였다. 퇴근 한 후 두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집에 들어가기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대낮부터 집에서 갓 시집온 손아래 올케를 불편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쇼핑을 할까, 시장 백화점 등은 연말인 데다 토요일이어서 악마구리 끓듯 할 것이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불러낼 친구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복잡한 거리에서 늙은 개처럼 어슬렁거렸다. 극장 매표소 앞에는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영화기에' 하고 올려다보니 통속적인 애정물이라고 신문에 평이 난 불란서 영화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 영화를 보러 몰려들다니. 나는 새삼 신기한 느낌으로 늘어선 사람들을 훑어보다가 급히 눈을 돌렸다. 줄의 중간쯤에서 뽀얗게 분칠한 사서주임의 얼굴이, 차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앞에 선 사람들을 헤아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동행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듯 급히 그곳을 떠났다. 미아(迷兒)가 된 듯 막막했다. 문득 백 속에 든 음악회 표가 생각났다. 나는 구원받은 느낌으로 음악회장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걸음을 빨리 했다.
강단은 난방이 안 되어 추웠다. 시작 시간을 5분 남겨 놓고도 자리는 반도 차지않아 더욱 썰렁하고 스산했다. 나는 어깨를 웅숭거리고 조금씩 얼어 들어오는 발가락을 옴추렸다. 옆자리에 앉은 중년 부부는 팝콘을 사서 먹으며 내게서 프로그램을 빌어 갔다. 연주 곡목은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와 베토벤의 운명, 그리고 오페라 아리아 몇 곡으로, 자선 음악회라는 것을 감안해서인지 비교적 대중적인 것들이었다.
“쳇, 영화표를 주지 음악회 표를 줘요?”
“그래도 그 친구 크게 맘 쓴 거라니깐.”
옆자리의 그들은 연주가 시작된 뒤에도 쉬지 않고 지껄였고 여자는 연신 춥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그리고는 1부가 끝나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여가수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를 부르고 들어가자 청중들은 기계적으로 박수를 치고 앵콜을 불렀다. 여가수가 나와 다시 <어떤 개인 날>을 부르고 들어갔다. 짝짝짝, 박수는 계속되었다. 그 여자가 다시 나와 깊이 허리를 숙이고 들어가 버리자 청중들은 다시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가수가 인사를 하러 나올 때쯤 반 이상의 사람들은 입구를 향해 다투어 밀리고 있었다. 춥고 초라한 음악회였다.
거리에 나서서 나는 값싸게 취급 받고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어지럽게 퍼붓는 눈으로 앞이 안 보였다. 위로 받고 싶었다. 아니면 따끈한 커피 한잔이라도. 나는 즐비한 다방과 술집을 지나쳐 'Tea & Restaurant 藍繭遮' 간판이 붙은 조그만 문을 밀고 들어갔다. 기찻간처럼 길고 좁고 어두운 곳이었다. 카운터 가까운 곳에 서너 명의 청년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연인인 듯한 사람들이 두 패 있을 뿐이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커피를 부탁했다.
“커피는 안 되고 식사와 음료뿐입니다.”
“그럼 맥주 한 병 갖다 주세요.”
나는 내뱉듯이 말했다. 빈 속이어서일까. 첫 잔에 머리가 비잉 돌았다. 두 잔째에 몸이 따뜻해지고 묘하게 편한 심정이 되었다. 마지막 잔을 비워갈 무렵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혼자이십니까?”
나는 대답 없이 눈을 치떴다. 좀 길다 싶은 머리에 키가 날씬한 청년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스웨터 밖으로 체크무늬의 남방 셔츠 칼라와 소매를 내놓은, 아무렇게나 걸친 듯한 옷차림이 싱싱한 젊음의 표정과 자신만만한 태도 때문인지 한결 경쾌해 보였다. 역시 젊음이란 좋은 거야.
“잠깐 앉아도 될까요?”
청년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얼결에 고개를 저었다. 청년은 웨이터에게 맥주를 시키고는 다시 말했다.
“젊은 여자가 고독한 분위기를 갖는 것은 쉽지 않은데 댁에게는 그게 있어요.”
젊은 여자라니요, 나는 짧게 웃었다. 카운터 쪽에 자리 잡은 청년들 쪽에서 휘파람 소리, 딱딱 손가락 맞부딪는 소리들과 이쪽을 향해, 술 좀 먹어도 되느냐고 묻는 소리가 들렸다. 청년이 내 잔에 가득 술을 부으며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친구들이 있어요, 제가 오늘 애인과 이별을 했거든요. 이별이라니, 빌어먹을. 걷어차인 것이지요. 그래서 제가 한잔 사는 겁니다.“
“가보지 그래요, 나도 곧 일어나야 해요.”
“아닙니다. 술이나 실컷 먹게 내버려 두지요, 뭐.”
마지못해 청년은 일어나 그의 패들에게 갔다. 나는 사슴처럼 날렵하고 탄탄해 뵈는 그의 뒷모습을 쫓았다. 이렇게 싱싱한 젊은이들을 대해 본 것은 꽤 오래 전이었다. 젊은 여자라니. 어두운 탓이겠지. 나는 술기로 확확 달아오르는 볼을 감싸 쥐고 불빛을 피한 곳으로 옮겨 앉았다. 그는 곧 돌아왔다. 웨이터에게는 맥주 열 병을 그 쪽으로 보내라고 이르며,
“떠들지 못하게 물이나 먹이는 거죠. 어쨌든 제 생애에 특별한 날이니까요.” 라고 말했다.
“일 년 남짓 연앨 했어요. 그런데 가버린다지 뭐예요. 결혼도 마케팅이라는 데야 할 말 있나요? 따귀 한대 때려 보내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몇 살이에요?”
나는 손위 누나처럼 정답게 허물없는 태도로 물었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몰라요. 난 항상 하나의 큰 만남,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어 왔어요. 어머니며 누나이며 애인이기도 한. 이런 나를 마마보이라고도 한답니다. 그런데 댁은 혼자입니까? 외로워 보여요.“
“혼자라는 건 무슨 뜻? 사람은 누구나 혼자라고 그러더군요.”
테이블 위에는 술병이 점점 늘어갔다. 청년과의 이러한 고전적인 대화가 자꾸 술을 마시게 했다. 청년은 내가 끼고 있는 반지를 가리켰다. 잘디잔 에메랄드가 열입곱 개나 박힌 어머니의 결혼반지로,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에 물려받은 것이었다.
“디자인이 너무 특이해서 이미테이션 같아요.”
“이미테이션 같아 보여요?”
“진짜라면 좀 보여 주세요. 집에서 이런 장살 하거든요. 감정해 드릴께요.”
나는 반지를 빼어 그에게 건넸다. 불빛에 이리저리 비춰 보던 그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무래도 모르겠어요. 제가 꼭 로마 황제 같지요.”
그는 자기의 새끼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보였다. 그리곤 내게 엄숙히 선언했다.
“짐은 그대에게 자유의 몸이 될 것을 허락하노라.”
그와 나는 소리를 내서 웃었다. 그의 친구들이 그의 어깨를 치며 비틀걸음으로 술집을 나갔다.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들어 보였다. 친구들이 나가자 그는 문득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한 해가 가고 있습니다. 댁을 만난 것이 이 해의 마지막 장식이 될 거예요. 아니 시작이라고 해도 좋을까요.”
나는 그의 깨끗하고 잘생긴 얼굴을 보았다. 다소 경박해 보이고 눈매가 불안정한 건 넘치는 젊음의 활력 탓이리라. 나는 그의 진지한 시선을 피하며 이건 내가 사는 거예요 라고 말하며 웨이터에게 두 병을 더 부탁했다. 그의 젊은 얼굴이 꿈결처럼 흔들리며 멀어졌다.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곤 했다. 술집에 남아있는 건 그와 나뿐이었다. 취기가 주는 나른함, 해방감 따위에 나를 맡기면서도 문득 이 무슨 미친 짓인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열한 시였다. 돌아가야 될 시간이었다. 나는 이마께에 머무는 따가운 청년의 시선을 피하며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자리에 돌아왔을 때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컵에는 술이 반쯤 남아 있었다. 청년은 1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술을 너무 마셔 토하고 있나 보다. 나는 안쓰러운 심정이었다. 다시 10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웨이터가 계산서를 들고 와 테이블에 놓았다. 황당한 금액이었다.
“3번 테이블도 같이 계산한 겁니다.”
“뭐라고요?”
나는 비명을 지르며 손가락을 보았다. 없었다. 어머니의 결혼반지는 장난삼아 그가 손가락에 낀 뒤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람 어디 갔어요?”
“한 30분 전에 나가셨지요. 계산은 아주머니께서 하실 거라구요.”